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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레벨업이 필요한 순간들 (만화 전공자에게 찾아왔던 인생의 순간들)

만화인으로써 가질 수 있는 '고민'과 '트라우마' 극복기를 '나 혼자만 레벨업'에 비추어 보다

2024-05-01 김한재


<나 혼자만 레벨업>, 모두가 알다시피 요즘 대세인 레벨업 시리즈 웹툰의 시초이다. 주인공이 레벨업이 될 때 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보면서 나는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쩜 이리 시원시원한지. 시대의 흐름이라고나 할까. 요즘 잘 나가는 웹툰들을 보면 예전의 영웅 이야기 공식처럼 자각을 하고, 여행을 통해, 성장을 하고, 결과를 얻는. 그런 맥락의 이야기보다는 태초부터 능력을 가진 전지전능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먼치킨류를 선호한다고 한다. <테러맨>이나 <부활남>, <전지적 독자 시점>도 그렇고 근래 넷플릭스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스위트 홈> 시리즈 역시 주인공은 무적으로 보인다. 지루할 수 있는 과정은 생략하고 하이라이트부터 챙겨보는 욕구는 유튜브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영화한편을 10분 리뷰에서 뚝딱 챙겨볼 수 있는 시대이니. 사실 요즘 고전문학이나 소설 한편 제대로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서정적인 영화한편 진득하니 서사를 즐기며 ‘관람’하는 관객은 얼마나 될까? (다양성이 걱정되는 요즘이다.) 이세계 판타지물과 레벨끝판왕의 주인공 이야기가 흥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요약버전의 콘텐츠를 즐기는 요즘 트렌드에 맞는 이야기 구조이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나의 레벨업은, 과연 판타지일까? 일상이 평범한,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인 것 같은데 그러하다면 과연 나는 레벨 1 정도의 존재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선택하고, 노력하고, 그리고 조금씩 이루어내고 있다.


모험 : 유치원 시절에는 친구들과의 모험이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그 모험이라는 것이 ‘동네 개천에 놓인 임시설치 다리 건너기’ 같은 것.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스릴이 넘쳤던 일이었는지!


득템과 특성형성 : 초등학생 시절에는 책읽기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저녁에 빨리 자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 이불 속에 파묻혀 거실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의지해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열혈 책벌레였던 것 같다. 덕분에 ‘안경’이라는 아이템을 득템(?)하게 된다. 좋아하는 책 실컷 보라고 구립도서클럽에 등록을 해 주셨는데 그곳에서 만화책방의 존재를 알게 되며 만화라는 인생 파트너와 첫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동네 놀이터에서 상급생에게 흠씬 두드려 맞고 난 후에는 태권도에 입문하게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 : 중학생 시절에는 그림그리기와 학교 개구멍을 반가워하며 막강 중2병을 거친다. 이때 맞닥뜨린 수상한 아저씨의 행동 덕분에 젠더에 관련한 편견이 생겨나게 되기도 한다.


현자의 만남 : 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동아리와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부와는 담 쌓고 있다가 현자를 만나 뵙고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만화동아리는 직접 학교에 건의하여 창단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동아리 회장과의 사투가 벌어진 뻔(?)하기도 한다. 그렇게 평범한 것 같지만 나름 우여곡절이 있는 사건들을 지나보내며 쫄깃하게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했었다. 20대에 들어서기 전까지의 나만 해도, 나의 세계는 참 많이 변화를 겪고 있었고, 그 모든 시간과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의도치 않았던 가방끈 수집가 그리고 상습 전과자 : 내 인생에서 공부는 아주 아주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첫 전공은 전문대 과정의 <사회체육과> 였었다. 슬램덩크의 동작이 너무 멋져보였고, 경험하지 못하고 움직임을 알지 못하면 그릴 수 없는 것이 만화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아직까지도 경험은 창작의 가장 큰 모토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생뚱맞았던 첫 전공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었다 (체육하기 그렇게 좋은 피지컬은 아니었기 때문에 성적은 별로였다.) 지금은 사라진 농촌활동도 꼬박꼬박 다니면서 농사도 열심히 지어봤고 졸업 후 미국으로 만화 유학을 다니면서도 별별 파트타임도 다 해 봤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고 경험을 해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애니메이션 전공을 거쳐 감성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뭐하나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 전공들을 쫒아 다니면서 배워왔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것이 보이면 무작정 신청하고 배워보는 편이다. 지금와서 보니 배운다는 것에는 끝도 시작도 따로 있지 않았다. 조금 늦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 같다. 전문대로 시작했던 나의 가방끈이 이렇게 길어지고 많아진 이 시간 동안, 어느 시간도 늦었던 적이 없었다. 가방끈이 필수는 절대 아니지만, 최고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좋아하고 만족할만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노력은 항상 하기를 바란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시나브로 성장해온 자신이 보인다. 우리에게는 행복과 즐거움도 있지만 늘 시련이 찾아왔고 어려운 선택의 기로가 놓이고 있다. 잠시 좌절은 할 수 있을지언정 나의 이야기를 포기하지는 말자.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고 현재의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일이 바뀌고 있었으니. 겪지 못한 세상의 이야기는 이세계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 있을 법한 드라마라고 하는 <이두나!>, <스카이 캐슬>이 나에게는 그렇고, 현존하지만 오로라가 보인다는 핀란드의 풍경도 그렇다. 내가 절대 경험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곳의 이야기.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세계에 진입 하게 된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그 곳의 존재를 알고, 동기가 생기고, 접점을 만나고 적응을 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더 이상의 이세계물은 아닌 것이 되 듯. 우리 이야기의 방향과 끝은 아직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아야 하며, 순간순간이 진심이고 최선이다 보면, 나의 레벨은 조금씩 향상되고 있을 것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 고민에 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은 'hanjae.elly.kim@gmail.com'로 연락주세요. 같이 고민해 드리겠습니다.

필진이미지

김한재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조교수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연구 노리토이 대표 

* 저서
Chat GPT로 만화/웹툰 제작하기, 2023
작가들을 위한 캐릭터 타로카드,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