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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화는 ‘선거’ 만화다

투표와 관련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선거가 무엇이기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지며, 언론과 방송국은 입을 모아 투표 소식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더 나아가 우리 만화는 이런 선거를 어떻게 응시하고 있을까. 이 질문을 시작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2024-04-11 문종필

모든 만화는 선거만화다

  오늘은 202441022대 국회의원 선거 날이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동네에 있는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를 끝마친 후, 분주하게 집에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6시쯤 컴퓨터를 켜고 개표 예측 결과를 확인했다. 전국 투표율이 67%이다. 후보자들의 경쟁이 치열했던 것에 비해 투표율이 적게 나왔지만, 올라오는 기사를 확인해 보니 199214대 총선 이후 32년 만에 최고치라고 한다. 32년 전에는 어떤 후보자들이 경쟁했던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투표와 관련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선거가 무엇이기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지며, 언론과 방송국은 입을 모아 투표 소식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더 나아가 우리 만화는 이런 선거를 어떻게 응시하고 있을까. 이 질문을 시작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쇼베 퐁 다르크(Chauvet Pont d`Arc) 동굴 벽화

(출처: https://www.britannica.com/place/Chauvet-Pont-dArc )

  선거와 관련해 가장 먼저 이야기할 것은 를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이다. 국내에서도 유명하고 친숙한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다시, 그림이다라는 책에서 그림을 그리고 보는 것이 인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주은정 옮김, design house, 2012, 39.)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호크니는 프랑스 남부의 쇼베 퐁 다르크(Chauvet Pont d`Arc) 동굴 벽화를 예로 들면서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누군가는 백악(白堊)을 가지고 달리는 들소들의 모습을 그렸고, 누군가는 이 그림을 쳐다보며 “‘저것은 우리가 사냥하러 가서 잡아먹으려는 동물과 매우 닮았다’”(위의 책, 39.)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림을 그린 사람의 욕망이 존재하며, 구석기 시대에도 동굴벽화를 보며 누군가는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자 하는 욕망과 보고 싶은 욕망이 상충하는 이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그림 그리는 사람은 이런 인정 욕망의 보답에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도전적으로 그리며 점차 자신의 표현 능력을 과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시라면 과시하는 행위가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는 너무나도 중요한 인간의 본능과 닮아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본능이 이 글의 주제인 선거행위와 만화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구석기 시대의 그림 그리는 사람은 백악으로 자신 주변을 멋들어지게 재현하는 것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는 그렇지 않다. 언어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활발히 기록(재현)하기 시작했고, 기록의 결과물은 또다시 출판 기술의 발명으로 한 사람의 살결을 무한대로 증식시킬 수 있었다. 음악은 어떠한가. 자신의 마음을 선과 리듬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녹음기나 파일 저장능력의 발명으로 CD나 파일에 그 목소리를 영구 보전(재현)하게 된다. 카메라의 발명으로 외부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또는 판타지의 형식으로 필름에 오래도록 담아(재현)내기도 하고,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핸드폰 속 카메라를 이용해 청각과 촉각과 시각 모두를 움켜잡는다. 칸과 칸 사이에 놓인 홈통이 존재하는 만화도 마찬가지다. 출판만화와 웹툰 모두를 여유 있게 소화한 만화는 서로 다른 각자의 매체적 성질을 이용해 자신(작가)이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만화의 형식으로 움켜잡는다. 그리고 이 형식은 지금 막대한 자본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를 표현하는 무수히 많은 도구는 목소리와 표정만 다를 뿐 각자의 영역에서 동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그것이 그림 하나였다면, 지금은 기술발전과 표현 양식의 증대로 인해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되었다. 중요한 것은 언어든,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 만화든,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재현한다는 것이고, 만화 역시 를 표현하는 수많은 형식 중에 하나(‘도구’)로 그 역할을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선거를 이해해 보면 흥미롭다. 선거가 무엇인가.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는 일이지 않겠는가. 국민에게 걷어 들인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줄 수 있는 특정한 집단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게 그 임무를 맡기는 것이지 않겠는가.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동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선포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법을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제도가 민주주의 꽃인 선거이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선거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법의 동시대성은 자신과 관련된 삶을 표현하거나 재현하려는 예술가들의 작업과 어울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선거와 친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24년 동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담아내는 것이 예술(문학, 만화, 영화, 음악, 미술, 가요 등..)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은 의무적으로 이런 살결을 읽고 느낄 필요가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예술 중의 하나인 만화 또한 를 표현하는 수많은 형식 중에 하나(‘도구’)라는 점에서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인 것이다.

 

영화 특별시민, 롱 리브 덕 킹, 킹메이커, 정직한 후보, 대외비포스터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만화는 이처럼 중요한 사건이자 제도인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를 표현하는 수많은 예술 장르 중, 굳이 만화가 선거를 어떻게 응시하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만 보더라도 손쉬운 검색을 통해 특별시민(2017), 롱 리브 더 킹(2019), 킹메이커(2022), 정직한 후보2(2022), 대외비(2023) 같은 작품을 확인할 수 있으니, 같은 방식으로 선거 관련 작품을 찾아 선거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만화 텍스트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나 또한 이 방식을 모르고 있지 않아서 기타 여러 작품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검색해서 찾은 만화는 어린이 만화와 선거를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홍보성 만화가 대부분이었다. 김한석 만화가의 여의주(2018~2020)도 있었지만, 이 작품에 관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이 만화의 경우는 구체적으로 말해 만화라기보다는 어린 아이들에게 선거의 중요성을 알리는 작품이 많았다. 이 작품들은 어떻게 하면 공정한 선거가 가능한지에 다해 다루고, 국회의원이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선출된 대표자의 입장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작품이 만화적인 측면에서 선거와 관련이 있느냐고 누군가가 물어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다. 선거와 관련이 있지만 이런 계열의 작품은 지나치게 당위성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교육적인 면과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작가의 의도나 연출을 개성 있게 재현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만화적인 선거 관련 작품이라고 명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평론가가 노골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작품을 찾아 서술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보다는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이 읽어야 할 만화 텍스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선거의 중요성과 경각심을 갖도록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다시 말해, 선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작품을 선거와 연결해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한 선거 만화를 호명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도입부에 이야기한 것처럼 만화가들은, 예술가들은,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 이곳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들표지

  최근에 출판사 김영사에서 번역 출판된 케이트 비턴의 오리들(2024)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한 청년이 고향을 떠나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석유 채굴 현장에서 2년 동안 일하는 내용이다. 공구실에서 일했던 그녀는 이곳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곳 남성 노동자들에게 별의별 소리를 다 듣는다. 통근 차를 놓쳤을 때는 그녀에게 얼마면 돼?”(케이트 비턴, 오리들, 김영사, 2024, 62.)라고 자동차 창문 너머로 말하기도 하고, “셋이 즐겨보지 않을래?”(위의 책, 88.)와 같은 발언을 듣거나, “예쁜이 시간 참 안 가네.”(위의 책, 93.)와 같은 발언, ”다들 그냥 널 한번 보려고 오는 거야... 개네한테 넌 새로 온 여자애잖아(위의 책, 161.)와 같은 발언을 일상에서 습관처럼 듣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가 일하는 현장이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티(주인공)는 도망치지 못한다. 그녀가 견디는 이유는 특별한 것에 있지 않다. 오로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그녀가 무작정 비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혐오 발언을 내뱉은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이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온 거처럼, 그들(남자) 역시 먹고 살기 위해, 또는 가족들에게 넉넉한 돈을 부치기 위해, 작업 환경이 좋지 않은 이곳을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손쉽게 흐트러진 것에는 더욱 복잡한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페미니즘 입장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언어만을 통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케이트 비턴의 오리들은 이처럼 텍스트의 빈틈을 겨냥해 이곳의 노동 강도와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이런 만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대표자들이라면 일방적으로 혐오 발언을 하는 남성들을 무작정 비판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이 무슨 이유로 고향을 떠나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노동을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이곳에 오는 노동자들이 심각하게 겪는 외로움과 향수병과 지루함과 여자가 드물다는 점(위의 책, 375.)이 한 여성을 무슨 이유로 힘들게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슬기로운 위정자라면 만화로 재현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법과 제도를 일정 부분 수정할 수도 있고,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이곳의 부조리를 수정할 수도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이 만화는 지극히 선거 만화와 관련이 있다. 김영사 출판사에서 적힌 책 띠지에 미국 전 대통령인 버락 오마바의 추천 글을 광고로 단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책을 팔려는 출판사의 의도도 분명히 작동했겠지만, 이것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정치성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커튼 뒤에서표지

  최근에 읽은 또 다른 작품으로는 바람북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사라 델 주디체 작품의 커튼 뒤에서(2024)이다. 이 작품은 세계 2차대전 당시 유럽에서 숨죽이며, 살아가야만 했던 유대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텍스트의 첫 장면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대부분 커튼 뒤에서 시작되고, 커튼 뒤에서 끝났다(사라 델 주디체, 커튼 뒤에서, 박재연 옮김, 바람북스, 2024, 3.)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이 프롤로그처럼 이 만화는 커튼 뒤에서 있었던 두 사건이 작품을 힘겹게 통과한다. 첫 번째는 아픈 엄마를 놔두고 아버지가 젊은 금발의 여인과 바람피우는 것을 커튼 뒤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소녀는 이때 절망하며 인생을 배운다. 둘째는 [유대인 지위에 관한 제 2](“194162일에 제정되어 비시 정권에 의해 공포된 법으로, 이전 법을 대체하고 유태인 종족에 대한 새로운 법적 정의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금지된 직업 목록이 확대되었습니다. 이 목록에는 대사, 은행원, 광고 또는 부동산 중개인, 상점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법은 약 15,000명의 프랑스 유태인과 그에 못지않은 수의 외국인에게 적용되었습니다.”(위의 책, 133.))으로 인해 몸을 커튼 뒤에서 숨겨야만 살 수 있었던 소녀의 심정이 재현되었다는 점이다. 어린아이 입장에서 느껴지는 복잡하고 섬뜩한 감정이 텍스트에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소녀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숨기려 노력했던 칸과 칸 사이의 연출이 무엇인가 숨 막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역시나 이런 작품을 본 정치인들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까. 인간이 과거에 한 짓거리에 대해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용서받을 수 없음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2024년이니 누군가는 홀로코스트(Holocaust) 문제를 다루는 것이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선량한 인간이 한순간에 악마가 될 수도 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동일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 또한 지독한 선거 만화 중에 하나다.

  이 글의 처음 의도는 최근 작품을 선별해 선거 만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번역서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의 작가들이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문제를 다룬 이동은의 하나의 경우(2023)가 그렇고, 아동성추행 문제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담은 만화가 모로의 위리 이야기(2023)가 그렇고, 만화가 박건웅의 황금동 사람들(2023)(202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작업한 만화가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의 작품도 그렇다. 만화연구자들과 비평가들이 모여 만든 홈통 문화다양성 추천만화(2023, 2024) 도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와 기후 위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만화를 갈무리해 서평의 형식으로 정리해 놓은 이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안내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 지면에 모두 적을 수 없을 만큼 국내의 수많은 작가는 온몸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재현하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잘이든, 덜이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이 작업을 감행했을 것이고, 이런 마음은 자연스럽게 선거와 만난다. 직접적으로 선거의 쓸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유의 방식으로 만화 텍스트를 읽고 시민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동시대의 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선거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옳고 그림에 대해 시민들이 텍스트를 충분히 읽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의 선거 공약을 주시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세월 1994-2014〉 표지

  이 글을 2024410일에 쓰기 시작해 새벽이 지나 지금은 11일이 되었다. 그리고 5일 후면 세월호 10주년이 다가온다. 아니나 다를까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조용하지만 큰 목소리로 노래한다. 세월호를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디 예술가들뿐이겠는가. 이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 시민단체들 또한 도로에 팸플릿을 걸고 함께 애도하고자 한다. 만화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문은아가 글을 쓰고 만화가 박건웅이 그림을 그린 세월 1994-2014(2024)를 서점에서 구입해 넘겨보게 된다. 이 텍스트를 읽으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10년 전 어린 나를 생각하면서 2014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목소리 높였던 그 시절을 어떻게 떠올릴까. 기다리라고만 하는 무책임한 세상에 대항해 부끄럽지 않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 마음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무엇보다 이 계절에 없는 아이들은 지금 편히 쉬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만화와 선거는 이렇게 만나고 부딪친다. 나는 선거 만화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동시대의 아픈 상처와 감정을 재현하는 모든 만화가 선거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만화는 생각보다 정치적이고 전위적이다. 이 말을 마지막 문단에 적고 싶은 이유는 만화가 동시대적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동시대적인 만화는 선거 만화와 다름없는 것이다. 문제는 일부 정치인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지 않고 권력만을 탐하기 때문이다. 바쁜 정치인들이여, 시간이 없다면 만화를 읽어라. 만화를 읽고 시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 말은 내 목소리가 아닌, 동시대에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가 하는 목소리다. 이것은 자명하다. 듣는 자만이 정치를 잘할 수 있고, 듣는 자만이 법을 새롭게 바꾸어 나갈 수 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에 의해서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거에, 선거 제도에, 고민하고 의심하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필진이미지

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