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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느새 <여학교의 별>을 읽고 있다.

여학교의 별(글, 그림 와야마 야마 / 문학동네) 리뷰

2024-04-05 주다빈

당신은 어느새 <여학교의 별>을 읽고 있다.

  나는 <여학교의 별>이 출판된 첫해에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 그런데 첫인상이 좋지는 못했다. 1권 표지의 호시 선생이 재수 없게 생겼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딘가 느끼한 눈빛, 명석한 두뇌로 논리와 물리면에서 맞는 말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와야마 야마 작가님과 문학동네 편집부에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만화 소개를 보고 슴슴한 개그를 살짝 섞은 흔한 일상물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묵혀뒀다. 나중에는 이 책이 읽고 싶어졌는데 책장 어디에 꽂아뒀는지 생각이 안 나서 다음에 읽자고 넘긴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여학교의 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웃기게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고재밌겠다. 나도 저 만화 읽어봐야지.’ 했었다. 이게 그 책인 줄도 몰랐다. 뭐든지 유행이 되면 나도 해볼까 싶어지는 아주 소시민적인 성향으로 몇 년 만에 만화책의 비닐을 벗겼다.

  1권을 전부 읽고 너무 재밌어서 바로 다음 권을 읽고 싶었다. 이미 1권을 종이책으로 갖고 있으니 종이책을 구매해 시리즈를 모으고 싶은 덕후의 마음과 eBook으로 사서 빨리 다음 내용을 읽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엔 마음에 드는 만화 장면을 캡쳐하기 좋다는 이유로 eBook을 구매했다. 그렇게 3권까지 나온 <여학교의 별>을 전부 읽고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근데 왜 인기 있는 거야?’였다. 분명 만화를 읽으며 깔깔거리고 웃기도 했다. 그런데이렇게까지 선풍적이라고?’ 싶었다. 거기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재밌는데 흔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이번 리뷰에 <여학교의 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만화가 왜 인기 있는지 알고 싶다. 이건 만화의 유명세에 도전한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재밌고 나도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더 좋아할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여기 적히는 게 그렇게 신빙성이 높은 말은 아니다. 단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에 불과하다.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Liiter)20242/3월호에서 담당 편집자님도 정확한 이유는 의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왜 읽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릿터(Liiter)에서 문학동네 편집자님은 밈의 신흥보고라는 말을 쓰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금 덜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짤로 쓰기 좋은 컷들이 많다. 내가 eBook을 구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학교의 별> 1권에 아주 귀여운 강아지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털빛이 하얀 강아지는 학교 선생님의 부득이한 연유로 국어교사 호시의 반에 맡겨지는데, 여고생들은 이 강아지에게 짱구 눈썹을 그려준다. 시무룩한 강아지와 눈썹이 그려진 컷을 갖고 싶었는데 종이책을 핸드폰으로 찍었더니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꼭 고화질 사진으로 저장하고 나중에 어딘가 요긴하게 쓰고 싶은데 말이다. 가장 좋은 마케팅은 입소문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을 들일 필요도 없는 데 그 효과가 어마어마하다. 짤은 그런 면에서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가져오는 데 적절하게 사용되면 너도나도 짤의 출처를 물어본다. 앞서 이야기했던 강아지 에피소드 장면도 이렇게 바이럴이 됐었다. (심지어 나는 이 바이럴의 중심에 뚝 떨어져 버려서이건 또 무슨 밈이야했었다.) 이 외에도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해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이나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던 상황에 쓰기 좋은 컷들이 잔뜩 있다. 심지어 누구보다 진중한 그림체, 진중한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웃음을 더욱 자아낸다. 짤로 쓰기 좋다는 말의 다른 말은 공감 가는 장면이 많다는 얘기다.

  다른 점 꼽아보자면 어쨌든 잘생긴 선생님들이 나온다는 것 아닐까? 처음 재수가 없게 보였던 주인공 호시 선생님도 만화를 읽다 보니 매력적인 데다가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은 시니컬하고 매너리즘에 빠진듯해 보이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자신의 언행을 조심하려는 은근한 다정함을 지닌 인물이다. 또 아닌 척하면서 학생들이 하는 바보 같은 짓에 엄청난 호기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 공감되면서도 이 사람 꽤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가 호시 선생님 옆자리에 앉은 수학 선생 고바야시 케이지씨도 시원시원한 미남이다. 개인적으로 가끔 깨는 행동을 할 때가 있지만 그만큼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호감이다. 둘 사이의 티키타카도 재밌는 포인트다. 와야마 야마 작가는 BL 물을 즐겨 봤었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둘 사이의 묘한 관계 또한 독자를 사로잡는 포인트다. 그래서인지 <여학교의 별>2021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에서 1위를 차지했고 국내에서도 여성 독자층에서 인기몰이를 했다. 딱히 의식하고 보지 않았음에도 나 역시 호시 선생님이 기혼에 3살짜리 딸이 있다는 점에 어째선지 여러모로 실망감을 느꼈다.

그래도 이 만화를 추천한다!

  일본의 문화 잡지 TOKION2021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와야마 야마 작가는 스트레스 없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여학교의 별>의 등장인물들은 다들 조금 독특하지만 서로 갈등이 없도록 그려냈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물들이 오히려 서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공감되는 장면은 많지만 감정을 과소비하게 하는 장면은 없다. 미디어 과다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곳에 내 감정과 관심을 쏟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디어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길이를 줄였고 그 짧은 시간 내에 고감도로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순간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많은 뇌과학자가 추천하는 제대로 쉬는 법은 명상하기나 걷기처럼 정말로 뇌를 비울 수 있는 행동들인데 요즘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 게 일상이 됐다.

  스트레스 없는 이야기는 맹물 같은 것이라 아무래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루종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다 보면 맹물을 마셔야지만 해소할 수 있는 갈증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이런 심한 갈증은 탈수와도 연결된다는데, 이럴 때만큼은맹물을 마셔야지만 필요한 수분이 충분히 공급된다 한다. 느리고 잔잔한 여고 일상물 한 잔으로 도파민에 중독 일상에 휴지를 줘보심은 어떨까요?

필진이미지

주다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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