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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할 수 있는 이유

가담항설(글, 그림 랑또 / 네이버웹툰 연재) 리뷰

2024-04-16 이성호

마주할 수 있는 이유

1. <가담항설>의 언어학

  랑또의 작품은 언제나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특촬물에서 악당의 부하와 주인공이 사귀는 <악당의 사연>, 오이가 말하는 것으로 부족해 연예인급 인기를 가지고 있는 <! 오이>, 서랍이 소원을 들어주는 <니나의 마법서랍>까지 매번 신선한 설정을 가져오는데 <가담항설>은 그중에서도 언어가 환상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충격을 가져다주기 충분하다. 그 이외에도 장사 혈통과 사군자 등의 설정은 동양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큰 흥미를 느끼며 작품을 감상했을 것이다.

  <가담항설>의 설정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언어다. 작품에서 언어는 사용자가 그 언어를 이해하는 만큼 힘을 갖는다. 예를 들어, 바를 정()을 새기지 못하던 심영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다시 바를 정()을 각인할 줄 알게 되고, 복아는 고전 수필인 조침문을 종이에 써 한설을 고친다. 글자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면 심영호와 같이 어디든 각인을 새길 수 있지만 이해가 부족할 경우 복아와 같이 종이에 누구나 아는 글을 적음으로써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곧 언어 의미의 발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언어를 통한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리적 효과를 지니는 방어 결계와 환상적 효과를 지니는 허상 결계를 만드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지식의 실천적 의지가 실제 능력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물리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도 되니 공부가 곧 힘이 되는 세상이다.

  언어가 곧 힘을 가진다는 것은 동양 철학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서양 철학에서도 언어와 의지의 관계는 무척이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명제의 총체이고, 명제는 실재의 그림이며 실재의 총체는 세계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며 세계를 읽고 표현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언어로 이루어지니 언어가 넓을수록 세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 그래서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 이것은 <가담항설>에서 자신의 언어로 상대를 가둘 수 있는 결계와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여 결계를 푸는 독안으로 나타난다.

  <가담항설>은 그래서 언어의 전달력과 묘사력을 중하게 여긴다. 전달과 묘사가 중요한 이유는 언어가 곧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결계는 인간에게만 통하며 자연에는 통하지 않는다. <가담항설>의 의사소통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마음이 통한다면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뜻이 곧 타인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본인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과 본인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뜻을 명확히 하는 전달력과 타인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한 묘사력은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기반이 되며, 작품에서는 본인의 언어 의지로 세계를 통제하는 힘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가담항설>의 언어 윤리를 바탕으로 한다면 악인은 그러한 능력을 쓰지 못하는 것이 마땅하다. 언어는 세계에 대한 이해이므로 악인이라면 세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주나 화동들도 각인을 새길 줄 알고 결계를 쓸 줄 안다. 악인이라고 하여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암주는 자신의 혈통을 부정하다가 흉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화동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움이 뛰어난 아이들이었지만 유호선을 따르고 신룡을 제거한다는 목표가 있을 뿐 악인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악인은 단순한 악인이 아닌 서사적 언어로 구성된 인물로 탄생하게 된다. <가담항설>의 인물 또한 서사를 통해 윤리적으로 변하게 되고, 누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단정해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작품에서 악인과 선인을 단정 두지 않는 이유는 바로 가능성때문이다.

2. 사람은 사람을 통해 변한다.

  <가담항설>에서 중요하게 둔 관점 중 하나는 상황에 따라 진심은 변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것뿐이다. 이전 왕이 신룡을 죽이려던 것도 신룡이 변하는, 죽을 수도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며 백매가 신룡을 의심한 것도 신룡의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며 암주가 이갑연에게 목적 있는 애정을 바랐던 것도 혹시라도 이갑연이 변했을 때 담담히 받아들이기 위함이었다. 타인의 진심이 변한다는 것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며 이때 개인은 영원한 불행에 빠지게 된다. 불신에 빠진 사람은 타인을 불신으로 묶어놓는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갑연과 신룡인데, 둘 다 배반하는 인물을 가차 없이 처벌하는 공통점이 있다. 본인의 이익에 따라서만 행동하기에 그 둘 모두에게는 무력이 필수적인데 이갑연은 암주에게 그 힘을 빌리고 신룡은 그 스스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가담항설>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모든 인물은 윤리적이다. 스스로 행하는 바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며 그에 따른 책임도 충분히 질 자세가 되어 있다. 심영호와 같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인물은 깨달음을 통해 윤리적 태도를 만들어 준다. 암주와 갑연의 최후도 스스로들이 인정하는 최후이기에 죽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매력적인 인물들에 비해 가장 정석적인 성장형 인물이어서 복아는 작품에서 잘 주목받지 못한다. 그래서 똑똑한 인물들도 복아를 양반으로 오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작중에서 복아를 보자마자 노비로 알아챈 인물은 심영호밖에 없다. 심영호보다 뛰어난 인물인 이청조차 복아의 신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복아가 얼마나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뛰어나지 않았으며 명영을 만나기 전까지 반항적인 노비의 삶을 살았으니 따져보면 작품에서 제대로 성장한 사람은 복아밖에 없다.

  <가담항설>에서 등장하는 대부분 인물이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더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눈이 간다. 복아, 심영호, 이청과 같이 크게 주목받지 않은 인물들이 오히려 더 끌리는 이유는 진짜로 우리가 해야 할 현실적이면서도 윤리적인 행동을 그들이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윤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책임 있는 변화다. 한설이 복아를 만나고, 복아가 명영을 만나고 심영호가 홍화를 만나고 이청이 임춘복을 만난 것처럼 인간은 변한다. 당연히 진심도 변한다. 진심이 영원할 필요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다. 진심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진심을 보장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타인이 우리와 마찬가지이길 바라며 진심이 영원하기를 갈고 닦을 수 있을 뿐이다. 최후에 타인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서로의 진심이 영원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필진이미지

이성호

22년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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