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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웹툰의 주인공이 먼치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 <운명을 보는 회사원>

운명을 보는 회사원(글 영완, 그림 임성욱 / 네이버웹툰 연재)리뷰

2024-04-17 최기현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웹툰의 주인공이 먼치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 <운명을 보는 회사원>

1.

  어제 내가 행동한 결과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 내가 행동한 결과가 모이면 내일의 나를 만든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 특히 직장인들은 어제의 나 또는 입사 초기의 자신을 돌아보며 그때 다르게 행동했으면 내 삶이 바뀌지 않았을까?’ 후회하기 마련이다.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직장 내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경조사는 물론 회식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 어딘가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숨어 있다. 불안함을 부추기는 사회현상도 한몫한다. 회사 생활을 소재로 한 웹툰, 웹소설은 이런 심리에 부응이라도 하듯 실수라고는 1도 하지 않는, 능력 있는 먼치킨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독자의 콘텐츠 소비를 합리화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높은 자리에 올라간 임원이 하루아침에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처하다가 신기하게도 신입사원으로 회귀하여 전지적 시점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웹툰이 있는가 하면, 굳이 회귀를 하지 않더라도 통찰력 하나만으로 주위의 신뢰를 얻어내는 작품 속 신입사원도 있다. 회귀 코드를 적용하여 능력 있는 먼치킨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웹툰으로 <상남자>,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있고, 바둑에서 얻은 통찰력을 업무에 적용하여 주인공이 위기 속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는 웹툰 <미생>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직장인의 삶이나 직장생활을 다룬 웹툰은 그동안 여러 편 연재되어왔다. 오늘 소개하는 <운명을 보는 회사원> 역시 회사생활을 소재로 하는 것은 앞선 작품들과 소재는 비슷하다. 반면 <운명을 보는 회사원>이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방법은 판타지적 회빙환 코드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주인공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보면 비현실적인 <미생>의 컨셉도 아니다. <운명을 보는 회사원> 역시 먼치킨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매력 있는 이유는 회빙환 코드가 아닌 다른 소재를 사용하여 주인공의 능력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바로 사주(四柱)이다.

2.

  사주는 명리학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는 개념으로 사람이 태어난 연, , , 시를 조합하여 그 사람의 성격, 운명, 건강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사주로 사람의 기본 성향, 강점, 약점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인생의 여러 시기에 대한 운세를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 또한 개인의 타고난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대처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사주는 운명론이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빅데이터로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사주를 보기 위해서는 태어난 날과 태어난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태어난 날을 알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어렵지 않다. 그러나 태어난 시간을 아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일부러 물어보는 것 역시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러운 설정 속에서 웹툰이 주인공에게 개연성을 주는 장치는 바로 손을 맞잡는 악수이다. 주인공은 악수를 하는 순간 그 상대가 태어난 시간을 알게 되는 신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제 상대의 사주를 알 수 있는 퍼즐 조각은 모두 맞춰졌다. 똑똑한 머리를 가진 주인공은 독자와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과 악수를 하는 순간 순식간에 사주를 계산하여 상대방의 성격, 운명, 건강을 정확하게 예측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최선의 행동을 취한다. 마치 회귀한 주인공이 전생에서 겪었던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독자에게 사이다를 전달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인공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했더라도 독자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어떤 기회로 어떤 방식으로 상대방과 악수를 할 것이냐가 이 웹툰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그리고 악수를 하는 순간 주인공이 파악한 상대방의 성격과 운명은 웹툰의 세계관에서 절대적이면서 신뢰할 만한 명제가 된다.

3.

  주인공인 영훈은 무당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힐 운명을 타고났으나, 그 운명을 거부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기를 원한다. 영훈은 관상과 사주를 통해 사람들의 운명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평범하게 살려고 하지만, 그의 신기한 능력 때문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상황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웹툰에서 주인공이 먼치킨 캐릭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 대부분이 능력 있는 먼치킨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상대가 꾸미는 음모와 계략을 간파하여 시원하게 대응하지도 못하고 팀장이나 선배의 갑질, 후배의 얄미운 행동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일상의 생활은 그리 쉽지 않으며 삶의 어려움은 직장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에 다닌 학생은 자신만의 고민이 있고, 아무런 고민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회사 사장님도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한 마디로 사는 것이 쉬운 사람은 없다.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타인과 부딪힌다. 다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알고 싶은 것은 상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처음 만날 때 서로의 MBTI를 확인해야만 안심이 된다는 어떤 MZ세대의 말처럼 MBTI라는 손쉬운 도구로 상대방을 파악하는 소통 방식은 요즘 세대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회귀를 통해 전생에서 이미 겪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나 사주와 관상으로 상대의 성격과 운명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독자의 희망 사항이다. 이 웹툰의 사주와 관상은 독자의 욕망을 작품 속에 투영하여 웹툰 속(또는 웹소설 속) 주인공이 독자를 대리 만족시키는 하나의 기제로 작용한다.

4.

  결국 <운명을 보는 회사원>에서 사주는 직장 내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높여주는 효과적인 장치이다. 상사나 동료, 경쟁상대의 심리와 운명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그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고, 불리한 상황일지라도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 방식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결국 주인공의 승리를 쟁취하는 초석이 되며 현실 직장인들이 겪는 불확실성과 무력감을 극복한다. 단순히 작품 속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심리적인 사이다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운명을 보는 회사원>이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능력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이 전개하는 사이다는 현실을 사는 사람을 격려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진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필자가 실제로 <운명을 보는 회사원>을 읽으면서 그런 격려를 받았으니.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웹툰의 주인공이 먼치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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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현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만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 공연,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만화 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글로는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5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