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온 유명>: 무명 배우 '유명'이 유명(有名)에 이르기까지
네이버웹툰에서 매주 목요일에 연재되고 있는 <뮤즈 온 유명>은 유명이 누군가의 뮤즈에서 모두의 배우로 성장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명 배우였던 ‘유명’은 어느 날 갑자기 베일에 싸인 거장 사진작가의 뮤즈(모델)가 된다. 작가와 일면식도 없고, 촬영에 동의한 적도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의 모델이 되어 있었다. 모르는 척 동조하면 그토록 염원하던 유명(有名)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유명은 독이 든 성배일지도 모를 기회를 움켜 쥔다. 기꺼이 거장의 ‘뮤즈’ 역(役)을 맡기로 한 것이다.
전형적인 믿음: 사랑받는 유명한 배우
타인의 관심과 인정, 피드백이 전제되지 않는 과업이란 대체로 자기만족에 그친다. 그렇기에 관심은 곧 물질적 성공과 보상으로 향한다. 이를 사회적 성공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겠다. 배우란 개인의 화려한 면면을 앞세워 대중들에게 구체적인 판타지를 각인하는 직업 중 하나다. 한없이 치켜세워지다가도 집단의 호응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순식간에 침몰당하는 사회의 순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뮤즈 온 유명>은 29세 유명이 오피스텔의 변기를 닦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청소를 마친 유명은 주인에게 문자를 보낸다. 주인은 탁자에 놓인 봉투를 가져가라 한다. 일당이다. 청소도우미로 일해서 번 돈을 챙기고 퇴근하는 유명의 표정은 어둡다. 무심코 눈길이 간 백화점 옥외 광고판에는 대학교 후배였으나 이제 잘 나가는 배우가 된 ‘반예나’의 사진이 걸려있다. 아직은 젊다며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대로 살 수 없음을 체감하고 있는 시기, 유명은 거장 사진작가의 유작전에 전시된 스무 살 시절 본인의 사진들을 발견하게 된다.
난데없는 기회가 찾아온 거다, 이름 그대로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가.
뒤돌아보는 시기: 있었으나 잊은 과거, 잊는 동시에 있는 현재
분명 나인데, 저 시절의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었는지 영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스무 살 시절 본인의 사진을 마주하고 유명이 느낀 감정도 당혹감, 그리고 서글픔이었다. 추억이라 명명할 수 있을 그리움의 정서 외에도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싱그러움, 당당함 등에 당혹감을 느꼈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서글퍼 하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향해 달려가는 그 간절하고 뚜렷한 열정을 품었던 시절이란 얼마나 귀한가. 본인을 오롯하게 믿고 조용히 속마음을 키웠던 이의 회한이란 얼마나 아득했을까. 동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대학생 시절 유명은 성공한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대와 좌절과 희망이 뒤섞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낙오자로 전락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유명은 대형 기획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드라마의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다. 예나를 스타로 만들어 줬던 영화감독과 작품을 찍기도 한다. 그러나, 거장 사진작가의 뮤즈에서 배우로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하던 유명은 조바심에 시달린다. 한때의 이슈로 묻히기 전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므로 숙고한다. 과거를 온전히 품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채, 건실하게 현재를 쌓아 미래를 쟁취하고자 한다.
나아가는 힘: 주인공이자 관찰자의 기록
주인공은 고난 극복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므로 유명은 매번 불합리하고 거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유명은 항상 조심하고 또 경계하며, 차근차근 성장한다. 한없이 도전적이다 맥없이 주저앉는 현실적인 모순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자주 타인을 관찰하며 상념에 잠기고, 쉽게 흔들린다. 나아가 유명 본인의 생각을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애쓴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을, 또 독자를 설득하는 거다. 이에 유명이 스타덤에 다가갈수록 주변 인물들의 사연, 고민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뮤즈 온 유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 유명이 주인공이자 관찰자가 되어 주변을 낱낱이 파헤칠 때부터 시작된다. 웹툰을 보며 유명뿐 아니라 유명을 둘러싼 세상 그 자체에 이입하게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뮤즈 온 유명>이란 주인공 유명의 모순과 관찰자 유명의 서성임이 뒤섞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상상과 다른 현재를 살고 있거나, 쟁취했으나 여전히 흔들리는 이들에게
매주 연재되고 있는 <뮤즈 온 유명>으로 인해, 사실 매주 조금씩 괴로웠다. <뮤즈 온 유명> 속 군상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했고, 당시 원하던 모습이 되지 못한 나를 들켰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로, 또 스포일러가 될 것이 염려되어 관계성이나 주요 서사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음이 아쉽다.)
공부든 업무든 어떤 과업이든, 늘 할 일이 있었다. 대체로 노력 이상의 성취에 대한 기대감이 주된 동력이었던 것 같다. 확실한 건 없지만 일단 수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하는 거였으니까. 조직은 주어진 시간 내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고자 루틴이나 룰을 만드니, 나도 나만의 시간을 지키고 침해 당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다만 효율성이 담보하는 건 시간의 단축뿐이었다. 노력 이상의 성취란 매번 주어지는 게 아니었으므로.
실패가 어색하지 않다고 느낄 무렵, 오랜 시간 지망생으로 살았던 사람을 상담해 주는 어느 영상을 봤다. 상담사는 지망생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넌 지금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도전하고 실패해 버리면 그 가능성마저 잃어버리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서 가능성만을 붙잡고 있는 상태라고. 섬찟했다.
나는 다를 거라는 전형적인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멈추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직 실패하지 않았던 시절, 희망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었던 때가 떠올랐으니. 그럼에도 나아가야 했다. 지향하는 바는 모두가 다를 테지만 기대와 좌절과 희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과연 있을까. 무명과 유명, 명과 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가진 게 사람이다. 그래, ‘나’다. 나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뮤즈 온 유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