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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덕부정기’를 극복한 독자의 <세레나> 리뷰

압도적인 작화 속, 노블코믹스 같은 오리지널 웹툰

2024-01-30 조아라

진부하다 진부해. 언제부터인가 웹소설이 자꾸 웹툰으로 만들어 진다. 마케팅도 공격적이다. 차은우나 수지 같은 인기 연예인이 나와서 웹툰을 홍보한다. 물론 웹소설이 웹툰으로 재탄생 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웹툰도 종종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지니깐. 공급자 입장에서도 원작 팬의 클릭 수가 보장된 안전한 경로로 가는 것이 좋겠지. 게다가 나 같은 마케팅의 노예들은 뒷부분이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원작 웹소설을 찾아가 유료결제 하여 볼 테니 일거양득 아닌가.


[ 그림 1,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들 ]


개인적으로 이러한 것이 달갑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 속 수애의 목소리에 이끌려 <재혼황후>를, 수지의 미모에 넘어가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를 아직도 열심히 보고 있는 주제에(둘 다 웹소설 원작의 웹툰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가증스럽긴 하지만, 나는 이런 장르가 좀 낯간지럽다. 특히 중세를 배경으로 한 웹소설이 그렇다. 공작님이니 자작님이니 하는 우리나라에는 있지도 않던 계급체계도 그러려니와 영애니 영식이니 하는 특유의 단어도 괜스레 간질간질하다. 


그럴듯하게 치장한 서양식 이름도 민망하다. 이름이야 짓는 사람 자유라지만 웹소설의 작명 트렌드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재혼황후>의 주인공인 ‘나비에’ 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경동 나비엔’이라는 보일러 브랜드가 생각났을 뿐이다. 민망함의 정점은 <시월드가 내게 집착한다>라는 작품의 ’술탄‘이라는 이름(미들네임이긴 하지만)에서 찍었다. 작중 등장하는 저택이나 복식은 기독교 기반의 중세 유럽이 분명한데 갑자기 이슬람 지도자를 뜻하는 술탄이 들어가 있다니. 


오늘 리뷰할 <세레나>도 당연히 웹소설 원작의 웹툰이라고 생각했다. 썸네일 자체가 영락없는 웹소설 일러스트 같았기 때문이다. ‘세레나’니 ‘아이저’니 ‘프리드릭이’니 하는 주인공들의 이름과 서양식 저택을 본 순간 또 웹소설 하나가 웹툰계로 넘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원작 웹소설이 없었고, 호기심이 동하여 읽어보았다.


[ 그림 2 <세레나>의 썸네일 ]


읽어보니 온갖 클리셰의 집합소였다. 반듯한 그림체의 남자주인공(이하 남주)(아이저), 헐렁하고 자유로운 그림체의 서브남주(프리드릭), 그 사이에 여자주인공(이하 여주)(세레나), 그리고 남주와 얽혀있는 서브여주(다이아). [반듯 남주]-[헐렁 서브남주]-[그 사이에 여주]-[남주와 얽힌 서브여주] 구도의 안전한 전형은 가을동화나 파리의 연인, 상속자들 같은 옛날 드라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세레나라는 작품이 별로였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재미있다. 지금까지 빈정거렸던 것이 세레나를 찬양하기 위힌 빌드업이라고나 할까. 나는 매번 유료결제를 통해 세레나를 미리 보는 충성 독자이자, 완결까지 미리 감상할 수 있는 원작 웹소설이 없다는 것을 매우 아쉬워하는 독자이기도 하다. 만약 원작 웹소설이 있었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마지막화 까지 결제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일단 세레나의 작화는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요 근래 웹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작화 또한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 되었지만, 세레나의 작화는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물론 작화 자체가 훌륭한 작품은 세레나 말고도 많다. 하지만 세레나의 작풍은 굉장히 묘한 구석이 있다. 정적인 그림으로 동적인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 상 만화 속 인물들은 다소 과장하여 표현되기 마련이다. 세레나의 작화도 이러한 장르적 특성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실제 인간과 비교하면 등장인물의 눈은 과하게 크고, 턱도 지나치게 뾰족하며, 비율도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하다 보면 진짜 인간 같은 느낌을 준다. 정말 저렇게 생긴 인간이 존재할 것 같은, 비슷한 배우나 아이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 그림 3, 주인공 아이저의 등장 장면 ]


게다가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은 이러한 작화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한다. 감각적인 연출은 아이저의 첫 등장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첫 컷에서 마차 문이 열리고, 다음 컷에서는 하인이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 주며, 그 다음 컷에서야 마차에서 내리는 아이저의 다리가 간신히 보인다. 검정 정장을 입고 우산을 쓴 아이저의 모습은 그 다음 컷에서야 등장하지만, 독자는 여전히 우산에 가려진 아이저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좀 더 스크롤을 내려야만 비로소 아이저의 얼굴을 영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아이저 리아인스 그레이언, 27세”라는 말풍선을 단호하게 삽입함으로서 남주의 등장이 마무리된다. 더불어 이 작품은 앵글을 매우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각도에서 그들의 서사를 엿보는 착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세레나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긴장감 있는 영화를 한 편 감상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인물들 간의 간질간질한 텐션이 작품 내내 리드미컬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이러한 장르가 불호라고 했던 말은 취소하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나는 세레나 같은 장르의 웹툰이 좋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민망한 서양식 이름이 난무하는 다소 낯간지러운 웹소설 느낌의’ 웹툰이 좋다.


“….”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 만화 또한 ‘필라르’라든가 ‘루나레나’라든가 하는 정체불명의 서양식 이름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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