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님 이야기
만화의 장르를 분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화(漫畵)라는 예술 자체가 워낙에 저변이 넓어서 미디어 산업의 곳곳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것을 만화로 분류해야 하는가?”의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
2007-07-05
장헌길
만화의 장르를 분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화(漫畵)라는 예술 자체가 워낙에 저변이 넓어서 미디어 산업의 곳곳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것을 만화로 분류해야 하는가?”의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만화계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분류법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만화로 남성극화, 여성극화, 청소년극화, 아동극화 등 스토리와 그림이 결합되어 책의 형태로 상품화된 코믹스(comics), 두 번째는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고 잠언이나 시사, 그날그날의 단상 등을 특색 있는 그림체로 표현하여 신문이나 웹상에서 많이 보여 지는 카툰(cartoon), 이렇게 두 가지 정도의 기본 분류법외에도 요즘에 각광받는 모바일과 웹상에서 주로 시도하는, 간단한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결합한 형태, 또는 대개가 팬시상품이나 시화집으로 상품화 된 것으로 캐릭터를 극대화하거나 일러스트와 텍스트를 결합하는 에스프리 형태 등이 만화라는 큰 틀 안에 넣어져야 할 것이다. 만화장르를 분류함에 있어 현재까지 가장 일반적인 기준점이 되는 것은 “이 만화가 책으로 출판이 될 수 있느냐?”이다. 만화의 가장 기본적인 상품화로서 출판은 산업으로서의 역사도 매우 오래되었지만, 만화를 창작함에 있어 작가가 지면위에 컷을 나누고 그림을 그리며 대사를 입히는 전통적인 창작기법을 고수하게 하는, 제작의 기본 틀을 제시해왔다. 이것은 원고라는 형태의 ‘작품’이 책이라는 ‘상품’으로 호환되는 산업적인 시스템이자 출판사와 작가 간에 매우 오래된 역사 속에 방법론으로서 정립된 창작의 노하우이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규격이 없었기 때문에 상품화의 길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던 웹툰 장르도 이제는 그에 적합한 형태로 책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여기에 소개하는 권교정 작가의 “왕비님 이야기”도 전통기법의 만화라고 할 수 없는, 에스프리의 형태에 가깝지만, 책의 형태로 편집됨으로써 권교정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아주 맛있게 음미할 수 있는 예쁜 상품으로 독자 앞에 선보이게 되었다. “왕비님 이야기”는 ‘말을 하면 주위에 꽃이 자라고 보석이 생기는 처녀’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녀를 오직 자신만이 독점하려하는 젊은 왕’의 이야기로 권교정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짧은 단상이다. “모두들 당신의 보석과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줄도 모르는 자에겐 줄 필요가 없지, 하지만 나는 알았어, 당신과 당신의 꽃과 보석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그 진짜 가치를! 만일 당신에게 그 꽃과 보석이 없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진 않았을 거다.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지만” “보석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 것으로 휘둘리고 서로 시기하고 자랑거리로 삼는 일은 이제 그만둬요! 보석이 없어도 당신들의 좋은 점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왕과 왕비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에서 어떤 계기를 통해 왕과 왕비는 사랑의 진정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잔잔하고 쓸쓸하게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