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 목 차 >
제1회 학부모 간담회
제2회 소에 손 자아
제3회 할아버지
제4회 우리도 만들어요
제5회 우리 모두의 바램
제6회 수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전편
제7회 수화로 살아가는 사람들·후편
제8회 눈물의 졸업식
제9회 25,370원 (모즈 공동 작업소)
제10회 개근상 (모즈 공동 작업소)
< 작가 추신 >
3년전 어느날, 이미지 새틀라이트라는 영화사의 나까하시라는 사람으로부터 애니메이션 제의가 들어온 것이 이 일의 발단이다.
과거에도 몇번 내 작품이 영화화된 적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내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 그후로 내키지않는 제의는 거절한다는 것이 내 기본방침이 되었다.
며칠후, 나까하시씨를 만나 그의 계획을 들어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인즉,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려면 10억 몇천 정도가 필요한데 나까하시씨의 회사에는 그런 돈이 없으니까, 개인이나 단체에 협조를 얻어 1구좌당 백만원씩 제작기금을 모아 영화를 만들어, 돈을 낸 사람들이 스스로 상영운동을 벌여 회수하는 자주제작, 자주상영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난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런 무모한 계획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영화내용 이전의 문제였다. <도토리 집>에도 전화를 걸어, 위험한 이야기니까 처음부터 신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해 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때가 되면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후 1년동안을 나까하시씨는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나름대로 힘을 쏟고 있었다.
<도토리 집>은 물론이고, <휴식의 마을>, <동료들의 마을>, <달팽이> 등에도 취재를 나갔고, 여러 단체에도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어 공부하면서 각본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나까하시씨의 그런 진지한 태도에 반쯤 질려 버렸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도토리 집> 내부에서도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농중복장애인이나 공동작업소의 문제가 만화와는 또 다른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로 시설건설은 착수되었지만, 그후의 운영에는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 있었고, 새로운 운동 전개가 필요했다.
내 마음도 서서히 동요되기 시작했다. 나까하시씨의 말처럼, 전국공작연(공동작업소연맹)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대동단결할 수 있다면 10억이라는 돈도 꿈이 아닐지 모른다.
지금까지 처럼 기성영화사에 맡겨져 본의 아니게 각색당한 채, 극장에서 1~2주 상영한 뒤 끝나는 것 보다는, 우리가 생각했던대로 만들어 오랫동안 상영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이 작품에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드디어 각본의 초고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서 두세번 거절했지만, 영화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 성미 때문에 결국 내가 각본을 쓰게 되었다.
이제 어쩔 수 없다. 각본을 쓰게 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미지구상이 설정되고, 힘들긴해도 점점 작품에 빠져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이 원대한 영화만들기 운동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내 자신이 매저키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본의아니게 힘든 일로 빠져들고 만다.
그러던중,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총감독이라는 위엄있는 직책을 맡아 내용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백만원이라는 기금을 낸 사람들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어떻게해서든 만들어야 한다.
전일본농아협회, 전국공작연을 비롯한 장애인단체 회원들은 입이 딱 벌어질만큼 어마어마한 운동을 전개해 주었다. 또, 지금까지 장애인과 관계없었던 시민단체나 기업, 개인으로부터 많은 기금이 기부되었다(5월현재 약 550구좌).
영화계로서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던 나까하시씨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나도 <도토리>라는 슬로건 아래, 이 정도의 운동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 운동에 동참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이 책이 발행될 때 쯤이면 애니메이션 작업도 막바지에 접어들게 될 것 같다.
만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맛이 있는 작품을 여러분께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많은 기대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