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히드클리프씨의 '워더링 하이츠'란 저택의 이웃에 로크우드란 사람이 세들어온다. '워더링'이란 폭풍이 불어 하늘 모양이 거칠어진 모습을 뜻 한다. 높은 곳에 집이 세워져 있어 일년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다. 어느 날 로크우드가 저택을 방문했을 때 눈이 세차게 내려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고 창 밖에서 나는 소리에 깨어보니 캐더린 린튼이라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로크우드가 비명을 지르자 히드 클리프가 달려와 창문을 열고 울면서 돌아오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다음 날 히드클리프에 관한 이야기를 가정부 딘을 통해서 듣게 된다.
20여 년 전 워더링 하이츠에는 언쇼 일가가 살고 있었고 딸이 캐더린이었다. 어느 날 언쇼 씨는 리버풀에 갔다가 히드클리프라는 소년을 데려 왔다. 언쇼 씨와 캐더린은 그를 좋아했지만 언쇼 씨의 아들 힌들리는 미워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부인이 죽었고 언쇼 씨도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아졌다. 집을 나갔던 힌들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나타났고 아내라는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날부터 히드클리프는 머슴으로 전락하고 힌들리의 학대는 심해갔다.
이듬해 힌들리 부인은 아들을 낳다가 죽고 힌들리는 더욱 난폭해진다.
그 무렵 캐더린은 마음 속으로는 야성적이고 강건한 히드클리프를 좋아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주 찾아오는 예의 바르고 멋진 신사 에드거에게 은근히 마음이 끌렸다.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일 것으로 안 히드클리프는 집을 나가고 캐더린은 그를 찾아 헤매지만 삼년 동안 히드클리프로 부터 소식이 없자 그녀는 에드거와 결혼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히드클리프는 힌들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는 힌들리를 파탄하게 만들고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되고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꾀어 결혼하려고 한다. 캐더린은 히드클리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딸 캐디 린튼을 낳다 죽는다. 한편 히드클리프가 자기와 결혼한 이유를 알게 된 이사벨라는 런던으로 가서 히드클리프의 아들 린튼을 낳는다. 힌들리는 술로 죽고 그의 아들 헤어튼은 히드클리프에게 학대받는다.
히드클리프는 그의 아들 린튼과 캐더린의 딸 캐디를 결혼시키고 이런 일 때문에 에드거의 건강이 악화돼 죽고 만다. 캐디가 스러쉬크로스 그레인지를 상속하였다가 병약한 린튼 히드클리프가 죽게 되자, 히드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쉬크로스 그레인지 모두의 주인이 되었다.
런던에 살던 로크우드가 워더링 하이츠에 들렀을 때는 히드클리프는 죽어서 캐더린의 무덤 옆에 묻혀 있었다.
폭풍 속에 타오른 어두운 정열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의 짧은 생애를 살펴보노라면 그녀야말로 오로지 문학에만 몰두하다가 간 작가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연약한 몸을, 그것도 결핵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가진 육신을 30년간이나 지탱해 준 것은 오직 문학이라는 지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더욱이 그녀의 대부분의 시가 발표할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고, 말년 경에 발표한 작품마저도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작을 계속한 그녀에게 있어 문학은 비단 정신적인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거의 육체적인 생명의 양식이기도 했다.
에밀리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의 빈농의 집안의 아홉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초등교육을 마치고는 직공으로 일하면서 생활을 돕다가 독지가를 만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하고 영국 국교파의 목사가 되었던 분이었던만큼 근검착실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었고, 어머니 마리아 브란웰은 콘월 출신으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기숙하면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여성이다. 이들은 요크셔의 하츠헤드에서 결혼하여 장녀 마리아 (1813년)와 차녀 엘리자베드(1884년)를, 돈튼으로 옮긴 후 3녀 샬로트 (1816년), 장남 패트릭 브란웰(1817년), 4녀 에밀리(1818년)와 5녀 앤(1820년)을 낳았다.
이러한 부모에게서 에밀리는 침울하면서도 정열적이며 안정감은 덜하지만 웅변적이고도 기지가 풍부한 아일랜드적 성격을 물려받았고, 한편 호워드에 정착하면서 이와는 정반대로 정렬적이고 실제적이고 산문적이면서 고집스럽고 과묵한 요크셔적 기질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유전과 환경과의 현저한 대조는 그녀의 작품의 본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특징짓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힘차고 자유분방한 격정과 절도있는 부드러움, 즉 격렬함과 감미로움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성격인 것이다.
또한 그녀의 부모와, 후일 동거하게 된 이모 엘리자베드 브라웰이 모두 메더디스트(Methodist) 교파와 관계가 있었던 까닭에, 에밀리는 교파 자체에는 아무런 호감은 갖지 않았으나 웨즐리가 주창한 독서와 연구에 의한 수양과 결부된 종교적 열정이 은연중에 어린 그녀의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뿐더러 한때는 문학을 지망하기도 한 아버지와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어머니는 에밀리로 하여금 일찍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만들었다. 그들은 설교집을 발표하기도 하고 논설을 기고하기도 했으므로 문선(文選)이나 표지 교정쇄의 정정이 브론테 자매에게는 낯익는 작업이었다.
1820년 4월에 브론테 일가는 호워드로 이사했는데 이 쓸쓸한 마을 호워드의 목사관이 에밀리 평생의 주거가 되었다.
호워드는 영국 북부의 요크셔의 웨스트 라이딩 한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방은 페나인 산맥의 기복이 히이드로 덮인 산악지대이다. 첩첩이 둘러싼 황량한 산과 벌판 때문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래야 4마일의 시골길을 걸어가야 할 만큼 교통이 차단된 외딴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목사관을 둘러싼 자연 환경만이 황량한 것이 아니라 가정생활 자체가 냉랭했다.
이들은 호워드로 옮겨온 이듬해인 1821년 어머니 브론테 부인이 암으로 죽었다. 이때 샬로트의 나이 다섯살에 불과했고 에밀리는 세 살, 앤은 겨우 한 살이었다. 또한 1825년에는 큰언니 마리아와 둘째 언니 엘리자베드가 병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와 언니를 잃은 어린 딸의 상대가 되어 주지 못했다. 가사와 아이들을 돌보아주려고 온 이모 엘리자베드 브란웰 역시 완고하고 편협한 메더디스트 신자였으므로 인정에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상냥하고 자비스런 여인은 못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에밀리는 자력으로 위안 거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관심은 우선 자연으로 쏠렸다. 그녀는 보랏빛 히드가 만발한 들판과 우뚝 솟은 검은 바위, 넓은 하늘에 한없이 뻗은 능선에서 미적 쾌감을 맛보았으며 이 쾌감이 그녀의 취미를 간결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인간의 침해를 받지 않은 야성미와 힘차게 거침없이 들판을 불어제치는 폭풍은 자유에의 동경과 도적적인 영감을 일깨워 주었다. 황야에 서면 모든 인습적인 속박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샬로트에 의하면 과묵한 에밀리는 남성보다 강하고 어린아이보다 더 순진하며 그녀가 사랑하는 들꿩들과도 같이 황야의 젖을 먹고 그 품에서 자라나 황야의 자유를 숨쉬었던 인간이었다 한다. 그녀는 자기가 이토록 사랑한 황량하고 음울한 황야에서 장엄한 운율을 끌어내고 우주를 꿰뚫어보는 직감을 얻었던 것이다.
고독을 달래는 또 하나의 위안은 공상의 날개를 펴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오빠에게 사다준 열두 개의 장난감 병정이 공상의 세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4남매는 아프리카 해변에 글라스타운 왕국이라는 가공의 나라를 세우고 가지가지의 모험담을 산문과 시로 엮어 가공의 나라의 신문과 잡지라는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때 에밀리의 나이 여덟 살이었으며 그후로 그녀는 줄곧 이런 상상의 문학을 계속했다. 나중에 그녀는 동생 앤과 함께 북태평양상에 <곤달>이라는 이름의 상상의 섬을 만들고 이곳을 무대로 곤달 왕국의 이야기를 엮어냈다.
이때의 시가 1938년 《곤달의 시(Gondal Poems)》로 발표되었는데 《폭풍의 언덕》의 원형이라 할 만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에밀리는 다른 자매와 함께 여러 번 학교에 들어간 경험이 있으나 호워드의 황야를 떠나 있으면 언제나 건강을 해치는 까닭에 그녀는 주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책을 벗삼고 상상의 왕국을 지키며 시작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쓰고 싶어서 썼을 뿐 발표할 뜻이 없었으므로 샬로트가 우연히 동생의 작품을 읽고 그 박력과 독창성에 감탄한 나머지 발표할 것을 권했을 때 그녀는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결국 샬로트의 설득에 이해 세 자매의 시집《커러와 엘리스와 액튼의 시집(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이 남성적인 필명 벨이란 이름으로 1846년에 런던에서 자비 출판되었다. 자매가 남성의 필명을 쓴 것은 여류작가에게 갖는 일반의 편견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파운드의 비용이 들은 이 시집은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겨우 두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시집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자매는 계속해서 글을 썼다. 샬로트의 첫 소설 《교수(The Professor)》, 앤의 최초의 소설《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ay)》와 에밀리의 최초이자 유일한 소설《폭풍의 언덕》이 완성되었다. 그 당시 요구되었던 조건인 세 권의 분량에 미달하여 1년 반 동안 끈기있게 여러 출판사와 교섭을 벌인 끝에 런던의 뉴비사에서 겨우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면 맡아주겠다 했다. 샬로트의 둘째 번 소설《제인 에어(Jane Eyre)》가 스미드 엘더 사에서 출판되어 대성공을 거두자 에밀리와 앤의 작품도 덩달아 여태 거절하던 뉴비사에서 출판되었으나 세인의 주목을 전혀 끌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문학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그녀의 소설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인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더구나 에밀리는 내성적이어서 나타내기를 꺼려했으므로 그녀가《폭풍의 언덕》의 작가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제인 에어》와 같은 작가에 의해 씌어졌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제인 에어》로써 성공을 거둔 스미드 엘더사에게 세 자매에 대해서 호의적인 관심을 표시하기 시작하여 이들에게 행운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는 동안 브론테가에는 불행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 세 자매는 힘을 합해서 생계 유지에 안간힘을 써야 했었다. 오빠 패트릭 브란웰이 가정교사로 있던 집의 안주인인 로빈슨 부인을 사랑하다 가정교사직을 잃고 쫓겨나자 정신 이상자가 되어 술과 아편에 빠져 마구 빚을 지는 바람에 주관리가 그를 찾아 목사관에까지 쫓아오는 형편이었으며 아버지 브론테 목사마저 백내장에 결려 수술을 받아야하는 처지였다. 모처럼 브론테가에 서광이 비치는 듯했으나 브란웰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1848년 9월에 드디어 죽고 만다. 오빠의 죽음에서 받은 심적인 타격과 장례 때의 무리로 인해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그녀는 그해 12월 19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투박한 목사관의 창 너머로 호워드의 자연을 지켜보며 오로지 문학의 세계에서 고독을 달래던 그녀는 의사의 내진도 복약도 자리에 눕는 것마저도 거부하고 끝내 소파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폭풍의 언덕》에 관해서
《폭풍의 언덕》은 대조적인 성격의 두 집안과 그 사이에 끼어든 한 사람의 침입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쇼가에서는 소박한 시골부자인 언쇼 내외가 힌들리와 캐더린 남매를 데리고 폭풍의 언덕에 있는 저택에 살고 있다. 이 건물은 농장에 딸린 당당하고 오래된 건물로 온갖 대기의 난동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언덕 위에 있다 하여 <폭풍의 언덕집>이라 이름지어진 것이다. 린턴가는 좀더 부유하고 세련된 신사계급으로 린턴 부부가 에드거, 이자벨라의 두 자녀를 거느리고 폭풍의 언덕에 이웃한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잡은 드러쉬크로스 그레인지에 살고 있다.
어느 날 언쇼는 용무가 있어 리버풀에 갔다가 까무잡잡하고 빼빼마른 고아를 주워왔는데 그는 이 아이를 몹시 사랑하여 히드클리프라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자녀와 함께 키운다. 친아들 힌들리는 아버지가 이 아이를 유난히 사랑하는 데 반감이 생겨 히드클리프를 미워하지만 딸 캐더린은 그를 좋아한다 언쇼 부처가 죽자 힌들리는 온갖 수단을 다해서 히드클리프를 학대한다 소년은 점차 짐승처럼 무지하고 사나워진다. 마침내 캐더린도 이 거칠은 소년에게서 벗어나 린턴가의 아들 에드거에게로 마음을 돌린다. 이것은 안 히드클리프는 격분하여 가출하고 캐더린은 에드거와 결혼한다 3년만에 홀연히 돌아온 히드클리프는 이미 야비한 예전의 젊은이가 아니라 부유하고 의젓한 신사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캐더린은 옛 애인 히드클리프와 남편 에드거와의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느끼고 정신착란을 일으켜 딸 캐디를 낳고는 죽고 만다. 두 집안을 모두 파멸시키려고 계획한 히드클리프는 힌들리를 술과 도박에 빠뜨려 죽게 하고 그의 재산을 몽땅 자기 손에 넣는다. 그 결과 힌들리의 아들이며 언쇼가의 마지막 자손인 헤어턴은 히드클리프의 집에 빌붙어 사는 거지 신세가 되어버린다. 다음 단계로 히드클리프는 에드거의 동생 이자벨라를 꼬여내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교묘히 학대해서 견디다 못한 이자벨라는 런던으로 달아나 버린다. 그녀는 객지에서 히드클리프의 아들 린턴을 낳아 키우다 죽는다. 히드클리프는 병약한 자기의 아들 린턴을 에드거와 캐더린의 딸 캐디와 강제로 결혼시킴으로써 린턴가의 재산마저 자기 손에 넣으려 한다. 에드거도 죽고 그를 닮은 린턴도 죽어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완성될 단계에서 그의 복수는 캐디와 헤어턴에 의해서 실패하고 만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을 뿐 아니라 히드클리프 자신도 원수의 아들 헤어턴에게 어느덧 애정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작품의 읽고 있노라면 이렇듯 단순한 줄거리가 어느덧 머릿속에서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특이하게 전개시켰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창조, 긴박하고 정열적인 묘사에 우수한 역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주로 일인칭에 의한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져 가고 있는데 이 일인칭의 화자가 가끔 이중 역활을 하고 이야기의 전개도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의 시작부터가 그러하다. 즉 첫 장면은 드러쉬크로스 그레인지에 세든 록우드가 폭풍의 언덕으로 집주인을 찾아가는데 이 때의 히드클리프는 이미 언쇼가의 폭풍의 언덕과 린턴가의 드러쉬크로스 그레인지의 두 저택을 모두 차지하고 난 뒤였으며 두 집안의 자손을 완전히 자기 지배하에 두고 있어 줄거리고 보아서는 결말에 가까운 시기이다.
폭풍의 언덕 집을 찾아온 록우드는 그 집안 사람들의 괴상한 행동과 의문스러운 가족관계 등에 호기심이 생겨서 언쇼가의 늙은 유모 엘렌 디인을 졸라 이 집에 얽힌 자초지종을 듣는다. 일인칭으로 시작된 유모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일인칭의 화자인 캐더린과 이자벨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따분한 생활에 싫증이 난 록우드가 이곳을 떠났다. 얼마 후 다시 찾아와 보니 폭풍의 언덕의 집은 완전히 바뀌어 있어 다시 엘렌 디인에게 그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듣게 된다. 이런 식의 전개 때문에 자칫하면 줄거리가 혼동되어 독자가 끝까지 이야기를 좇아가기 힘들 때도 있으나 바로 그 점이 독자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겠다.
이 소설은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정열이 모욕받았을 때는 미쳐 날뛰는 복수와 증오로 변하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무섭도록 격렬한 애증이다. 캐더린과 힌들리의 성격은 오만하고 난폭하며 극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히드클리프의 무섭도록 강한 의지력은 거의 악마적이기도 하다. 이 세 사람의 야수적이며 난폭한 감정과 행동에서 우리는 지극히 지상적이며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임종이 가까운 캐더린이 히드클리프와의 마지막 밀회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며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실신하고 마는 광기며, 폭풍의 언덕의 2층 창 밖에서 20년을 허공에서 방황한 캐더린의 망령이 "들여 넣어 달라"고 통곡하는 소리는 꿈이라고는 웃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박진하고 처절하다. 숲 속에 서서 이슬에 젖은 채 밤새도록 캐더린의 임종을 지켜보고 섰던 히드클리프가 애인이 죽은 것을 알고 나무 밑동에 머리를 마구 부딪치며 피투성이가 되어 울부짖는 모습이며, 권총과 칼을 들고 비틀거리면서 원수 히드클리프를 쫓아다니는 힌들리, 모두가 격렬한 감정에 시달리는 인물들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인물과 그들의 말씨, 자연배경 등에 나타나는 지방색이다. 특히 작품의 배경이 되는 요크셔의 자연은 웅대하기만 하다. 폭풍의 언덕을 둘러싼 황량하고 음울한 황야의 사계절을 에밀리는 장려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숨막히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하늘가 땅이 맞닿는 겨울의 폭풍의 언덕, 푸른 하늘에 종달새 지저귀고 계곡에 넘쳐 흐르는 물소리가 감미로운 봄, 보랏빛 안개처럼 만발한 히드꽃 위로 윙윙거리는 벌, 확 트인 맑은 하늘아래 초롱꽃 사이로 나비가 팔락거리는 여름 저녁의 고요한 정조 등, 이 소설의 자연묘사는 대단히 감동적이다. 작품전체에서 흐르는 광기에 가까울이만큼 강렬하고 자유 분방한 분위기는 바로 이 처절하도록 야성적인 인물과 야성의 황야에 연유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과 자연이 일체가 되어, 변천해 가는 자연의 모습이 등장인물의 행위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고귀한 요소는 우주에 펼치는 에밀리의 무한한 포옹력이며 인간에의 동정이다. 에드거의 나약함. 이자벨라의 어리석음, 히드클리프의 잔혹함을, 그리고 힌들리의 잔인성과 캐더린의 자기본위를 그들의 슬픔과 애정과 증오와 더불어 그려 보이는 에밀리는 그들의 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무서워 달아나는 발걸음이 빠르다고 겁 많은 사슴을 멸시하는가?
또는 앙상한 그 모습이 흉하다고 죽어가는 늑대의 긴 울부짖음을 조소하는가?
아니면 용감하게 죽지 못하는 아기토끼의 비명을 재미있게 듣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스러져간 그를 위해서도 동정의 마음을 한껏 부드럽게 펴자.
이것은 《곤달의 시》의 하나인 〈stanzasto―〉의 일부이다. 한때는 촉망과 사랑을 한몸에 지니기도 했으나 정신이상자로서 비참하게 죽어간 오빠 패트릭 브란웰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읊은 것이다. 그녀는 불안전한 인간에게 운명이 부여한 성질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결코 나무라지 않는다. 황량한 히드의 언덕에서 벌어지는 인간 애증의 감동적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행위는 미워하나 인간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고매한 사상이 깔려 있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에서 무한한 이해에서 우러나는 동정심을 가지고 불안전한 인간을 책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옹호하거나 변명하는 법도 없이 인간의 진실을 숨김없이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작품 전체의 격렬하고도 야성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시적 상상의 극한을 생각하게 할 만큼 서정성이 풍부하다. 그 근저에는 확실히 리얼리즘이 살아 있다. 빅토리아조의 산물로는 보기 드물게 교훈조가 없는 자연스럽고 무리없는 작품이며 따라서 영국 낭만주의에 기여한 바 또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