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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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 분류 창작분야
  • 국가 대한민국
  • 출생 1929-01-28
  • 사망 1996년
  • 데뷔매체
  • 데뷔작 〈두꺼비 >(1955. 4. 1 ~6. 30, ‘경향신문》에 연재)
  • 출처 시공사 한국만화 인명사전

작가 소개

본명 : 김경언 金康彦(신문연재만화 게재시 필명을 정민 T敏으로도씀)
생년월일 : 1929년 1 월 28 일(1 996년 작고)
취미 : 사냥,낚시
학력 : 서울대학교 문리대 생물학과 졸업
경력 : 1970년미국이주전까지어린이만화단행본약 500 타이틀창작
활동 : 1970년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 기타 한국만화가협회 등 관련 단체의 초창기 임원으로 활동

작품 :
〈두꺼비 >(1955. 4. 1 ~6. 30, ‘경향신문》에 연재), 핵동이 )(1955. 5. 29~ 1956. 3, {:조선일보j에 연재),
<어수선>(1963. 8. 22~9. 26, 11. 1 ~ 12. 6, (.조선일보j에 연재),
<고구마>(1964. 11. 10~1966. 9. 4, (.조선일보j에연재)
<어수선 >(1956. 12. 1 ~1957. 12. 31, (.연합신문》에 384회 연재),
<바랑 오동이 >(1959. 3. 22~ 7. 3, (.연합신문》에 연재),
<깔끔이>(1959. 8. 1 ~196 1. 12. 31,《연합신문》에 연재),
<사공司空 선생 >(1958. 8. 27~10.8, (.서울신문》에 연재),
<어수선 魚壽善>(1963. 2. 1 ~2.28, 5. 1~5. 31, (서울신문》에 연재),
<이거참씨>(1963.8. 1~8. 31, (서울신문》에 연재),
<계세라 여사 桂世羅女史>(1 963. 12. 2~12. 30, 1964. 2. 1~2. 29, (서울신문》에 연재),
<손오공>(1959. 11. 1 ~1959. 12. 30, 부산《국제신보j에 연재),
<일일만평>(1 960. 9. 17~1 1. 20,서울 《일일신문》에 연재),
<알쏟이 >(1962. 1. 6~7. 7,《민국일보j에 연재 ),
<깔끔이>(1963. 4. 27~1964. 7,《동아일보》에 연재),
1960년대 초 본격적으로 〈의사 까불이).
<용가리>.<과가리>.<쌍가리〉 등 어린이 명랑만화창작작개l 대표작
<깔끔이〉({소년동0써 연재),
<의사까불이), <용가리〉시리즈등


작가에 대하여


김경언경인선생은 한국의 1960년대 어린이만화를 대표했던, 만화방시대의 최고 인기작가였다.
서울대 재학시절 이미 만화작가로 데뷔한 선생은 무궁한 만화적 발상력에다 천부적인 속필속화速筆速畵 능력까지 갖춰 한국만화사상 가장 ‘손 빠른 작가’로 작가 한 사람의 힘으로 만화를 창작하기로는 전대미문의 다작기록을 남겼다.
전성기시절인 1960년대 중반, 100쪽 짜리 만화책을 하루 평균 12권을 그려, 한 달이면 50~60권의 만화를 찍어냈다.
문하생이라 불리는 ‘어시스턴트’의 도움도 거의 없이 오로지 선생 혼자의 힘으로 스토리를 짜고, 데생을 하고 잉크를 듬뿍 찍은 펜대로 원고를 마감한 것이다.
선생은 10여 년에 불과한 창작기간 동안 약 500타이틀의 어린이만화를 발표했다. 총 발행 권수로 따지면 5,000권에 육박한다는 당대 동료작가들의 증언이다.
그가 창작해낸 ‘의사 까불이’ ‘용가리’등 명랑 만화는 하나같이 당시 최고의 인기 작으로 꼽혔다. 놀라운 일이었다. 선생은 1970년 한국 땅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5.16 쿠데타이후 만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심한 국내의 창작여건과 만화를 폄하하는 문화환경 등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만화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이민 준비기간동안 ‘미국식 만화’습작을 하는 등 준비도 치밀하게 했다.
그러나 이주 얼마 뒤 국내 친지들과의 재산권분쟁 등으로 심한 갈등을 빚어 중풍中風이 발병했고, 이 병은 곧 선생을 ‘반신불수’의 상태로 몰아가고 말았다.
처음 워싱턴 DC 외곽의 버지니아시에 정착했던 선생은 장남 정민씨가 장성하면서 아들을 따라 필라델피아로 이사, 1996년 향년 67세로 임종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채 피어보지도 못한 ‘만화인생’을 이국 땅에서 쓸쓸히 마감한, 안타까운 우리 원로만화작가 1세대. 김경언 선생의 일생은 우리 만화사의 열악했던 1960년대 창작환경을 굵은 목소리로 웅변하고 있다.

수상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