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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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꾼 우시지마〉와 일본 직업물에 대한 몇 개의 생각: 팩트는 어떻게 만화가의 영감이 되는가

<지금, 만화> 14호 Essay 에 실린 글입니다. <사채꾼 우시지마>/마나베 쇼헤이

2023-03-27 고나무

들어가는 글 : 한국과 일본, 미국의 모든 웹툰, 만화 작가들은 웹툰웹소설 제작사인 팩트스토리에게 협업의 파트너이지 비평이나 평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글에서는 작품의 한계나 아쉬움보다 가능성과 장점을 더 이야기합니다. 이 점을 감안하고 읽어봐 주시면 감사드립니다.

 

두 종류의 리서치가 있다. 첫째 스토리에서 다루는 소재에 대한 기초조사다. 가령 영화 잡스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나는 프로그래밍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두 번째 내가 무엇을 써야 할지, 내 스토리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지 모를 때 하는 리서치가 있다. 이게 더 중요하다. 나의 경우, 리서치를 통해 인물의 갈등을 포착하면 그때 비로소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가령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친구와의 소송 같은.” 미국 드라마 작가 아론 소킨이 이 말을 하는 장면을 보며 홀짝이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미국 온라인 교육 사이트 마스터클래스’(https://www.masterclass. com/)강의에서 아론 소킨은 작가로서 리서치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뉴스룸, 소셜 네트워크등 실화 소재 또는 직업의 현실적인 이면을 주로 스토리 소재로 삼는다. 팩트스토리는 직업물, 실화 모티프 웹소설웹툰 기획사다. ‘리서치가 창작에 중요한 스토리가 팩트스토리의 강점이다. 지금, 만화의 이 글은 한국의 웹툰만화 작가들, 만화 열성 독자들께 창작에서의 리서치라는 주제로 잠시 수다를 나누자는 대화 제안이다.

이 수다의 소재로 일본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를 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직 기자로 일하고 있던 2007년 봄 이 작품 1권을 다 읽고 사회부 기사보다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미묘한 열등감도 느꼈던 것 같다.

사채꾼 우시지마는 마나베 쇼헤이 작가가 2004~2019년 잡지 빅코믹 스피릿츠에 부정기적으로 연재했던 작품이다. 사채업자 우시지마가 카우카우 파이낸스라는 불법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주된 이야기 소재다. 자신보다 더 지독한 상급 대부업자’, 야쿠자, 경쟁 대부업자 등이 경쟁자(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한다.

<그림1>〈사채꾼 우시지마〉 Ⓒ 마나베 쇼헤이

에피소드와 캐릭터는 어두워서 강렬하다. 파친코에 중독된 사람들은 잘못인 줄 알면서 우시지마에게서 고리로 돈을 꾼다. 이른바 열흘에 이자가 50%십오영업이다. 우시지마는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성매매를 강요하거나, 아들이 보는 앞에서 집안 물건을 가져온다. 국내외 대중스토리 역사에서 꽤 많은 안티히어로캐릭터가 존재해왔으나, 우시지마는 그중에 독하디 독한 안티히어로. 직접적 살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강압과 폭력을 행사한다.


이 작품에서 사채업의 현실은 표면적 도구가 아니라 갈등의 전개와 캐릭터 구축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령 우시지마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그가 고객 장부를 파기하는 행위로 보여진다. 우시지마의 일상 업무는 정보판매상한테 산 다중채무자 리스트를 보고 마구잡이로 전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엇보다 사채업의 현실은 캐릭터의 욕망과 개연성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우시지마가 툭툭 던지는 대사는 아주 쉬운 언어로 2004년 이후 현대 일본 사회의 어떤 면모를 전달한다. 가령 부하직원(타카다)이 왜 5만 엔이라는 소액만 대출해주느냐고 묻자 우시지마는 진짜 이유는 생계가 어려운 인간은 자치단체에서 생활복지자금 5만 엔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건 학교에선 안 가르쳐 주니까 아무도 모르거든이라고 답한다.

사채꾼 우시지마의 이 리얼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가 마나베 쇼헤이가 이 작품의 창작에서 취재를 많이 했고 중요시했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마나베 작가는 20218월 쇼가쿠칸이 운영하는 미디어 뉴스포스트세븐과 인터뷰에서 취재를 중요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렇다, (작가로서) 취재를 하는 편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작품을 위해 야쿠자 사채업자 등을 많이 만났다고 마나베 작가는 설명했다. “저의 경우 술 마시면서 이야기한다는 감각인데요, 아침까지 같이 있어 친해지면 아침쯤 취재원이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그걸 기억해서 그것을 핵심으로 스토리를 만듭니다.”

아론 소킨과 비슷한 취지의 설명도 눈에 띈다. “감정입니다. 묘사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드라마이므로 그 사람의 본심의 감정이 흘러나오면 그것이 작품 창작으로 이어집니다.” 한국에서 19세 이상 감상가능인 이 하드보일드한 작품은 제23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만화부분 소셜임팩트상을 수상했다. 현재까지 누적 발행부수는 2,100만 부이며 2010년 드라마화되었고 2012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했다.


<그림2>〈큐조의 대죄〉 Ⓒ 마나베 쇼헤이

71년생의 마나베 작가는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 인력파견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소고기덮밥에 계란을 추가할까 말까 고민했고, 당시 사귀던 미용사 여자친구가 인근 신사 뒤편에서 머리를 잘라줬다고 한다. (아사히신문2021228일 인터뷰) 그리고 마나베 작가는 이번에는 실존하는 변호사들을 취재하여 2020년 신작 〈쿠조의 대죄를 공개했다.

5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일본 만화시장에 이처럼 현실사건이나 직업의 현 실을 스토리에 녹인 직업물이 적지 않다. ‘캐릭터는 창작이되 에피소드는 실 화 모티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보험조사관(마스터키튼), 미술품 경매시장 (옥션하우스)을 소재로 한 작품부터 중쇄를 찍자같은 직업물을 보며 일본 만화 의 소재의 다양함을 한 번쯤 떠올린 한국 웹툰만화 작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채꾼 우시지마는 논픽션이나 다큐가 아니다. 엄연히 대중 스토리로서의 완성도와 쾌감이 인기의 이유다. 중반 이후엔 기존 조폭 장르의 만화문법도 많이 따른다. 스토리로서의 본질적 매력 때문에 애초 “1권만 게재하고 종료하기로 예정되었던”(요미우리티비 프로그램 만화가의 진심 앙케이트)이 작품이 46권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팩트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가 아니라 팩트가 스토리에 도움이 된 작품이다.

따라서 리서치가 만화 창작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낡은 질문이며, ‘어떤 리서치가, 언제, 어떤 장르의 만화 창작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되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년잡지는 판타지가 아닌 작품도 많기 때문에 정보가 중요해진다뉴스포스트세븐의 기사(만화의 취재란 무엇인가-구치소 취재에 동행하다201912)대목을 읽고 반가움에 무릎을 쳤다. 이종범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를 읽으며 취재와 전문가 감수의 풍부함이 놀라웠고, 윤태호 작가가 보도연감을 어떻게 창작에 활용하는지 알려주었을 때 반가웠다.

모든 좋은 스토리가 취재를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어떤 좋은 스토리는 취재를 필요로 한다. 팩트스토리는 한국 장르스토리 시장에서 팩트가 활용되는 새로 운 길을 5년째 고민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웹툰 및 웹소설 작가들을 한 해 한 해 만나고 있기에, 고민의 길이 외롭지 않다. 지금, 만화의 이 기고 글이 외롭지 않다는 증거다.


필진이미지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 작가
前 한겨례신문 기자
『독재자의 비밀 (전두환을 읽는 31가지 방법)』,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인생 이맛이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