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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씨의 식탁

2015년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홍연식의 <마당 씨의 식탁>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영위하는 만화가 가족(아빠, 엄마, 아기)의 애틋하고 먹먹한 가정사를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재미있고 인상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2015-12-09 김현우
“2009년 겨울 파주. 우리 부부는 이사 갈 집을 찾고 있었다. 가진 돈으로는 주변에 공장이나 축사가 있는 집밖에 구할 수 없다. 교통이 불편할수록 집세는 싸기에 파주에서도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아담한 독채에 작은 텃밭 하나 딸려 있는 집이면 족한데...”  - <마당 씨의 식탁>, 8~11p, 프롤로그 中에서 발췌

2015년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홍연식의 <마당 씨의 식탁>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영위하는 만화가 가족(아빠, 엄마, 아기)의 애틋하고 먹먹한 가정사를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재미있고 인상 깊게 표현한 작품이다.

사실 홍연식은 2012년에도 가난한 신혼부부의 도시탈출 전원생활기인 <불편하고 행복하게>라는 작품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경력이 있는데, <마당 씨의 식탁>은 캐릭터나 구성방식 등이 다소 바뀌긴 했지만, 내용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전작인 <불편하고 행복하게>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주제와 내용으로 두 번이나 오늘의 우리 만화에 선정된 것도 대단하지만, 전작과 비슷한 이야기가 또다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은 <마당 씨의 식탁>이란 ‘작품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본 리뷰는 본래는 한 몸이었을 같은 작가의 두 작품, 즉 홍연식의 <불편하고 행복하게>와 <마당 씨의 식탁>을 동시에 소개하되, 작가 본인도 작품 속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시간과 공간이라는 근본적인 개념이 가족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어나가는가에 대해 진지하고 의미 있는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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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트럭에 올라탄 나는 문득 헷갈렸다. 그것은 내가 30년간 살던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순전히 나의 선택인 건지, 아니면 도시 생활에 적응 못하고 도망가는 모습인지...” - <불편하고 행복하게>, 1권 46~48p 中에서 발췌
 
<불편하고 행복하게>는 홍연식 작가의 자전적인 인생이야기이자 자신이 직접 몸으로 체득한 전원생활에 대한 매우 리얼한 이야기다. 작중에 ‘나’ 또는 ‘홍작가’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이 작품을 그린 홍연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신혼부부는 왜 서울을 떠나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아주 친절한 프롤로그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한 편의 수필처럼 담담히 써내려간, 만화도 아닌 글로만 이루어진 프롤로그를 이 지면에 전부 옮길 수는 없으니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 2005년 3월에 만화학원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남을 시작한 나와 아내는 몇 년간의 연애를 거쳐 빈손으로 결혼했다. 당시 만화가였던 나의 사정은 매우 좋지 못했다. 부모님은 오랜 갈등이 악화되어 별거에 들어가셨고, 동생도 자기 한 몸 돌보기 빠듯했다. 나도 서른이 넘어 하던 일들을 모두 접고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자는 힘든 결정을 한 시기여서 경제적인 사정도 매우 좋지 못했다. 어머니의 수술 두 번과 아버지의 급격한 건강 악화, 점점 늘어만 가는 빚, 불안정한 학교생활 등 결국 3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하게 된 나는 휴학 중에 고학생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과감히 결혼을 감행한다. 창작그림책 작가라는 꿈을 향해 확실하게 한발 한발 나아가는 강한 사람인 아내와 함께 나는 출판사로부터 일감(주로 학습만화)을 맡아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살림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한 출판사에서 작업실까지 얻어주며 맡긴 대형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나는 아내의 제안을 따라 서울을 벗어나 살아보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2005년 9월 27일 나와 아내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로 이사를 온다. ] 이것이 프롤로그에 쓰여 있는 신혼부부가 낯선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된 동기이자 이유다.

“집이 크니까 한 달에 두 드럼은 들겠다. 난방비만 36만원...가만! 연탄을 놓으면 어떨까? 문하생 시절엔 화실서 연탄난로를 피워봤어요.”
- <불편하고 행복하게>, 1권 104p 中에서 발췌

신혼부부가 이사한 죽엽산의 전원주택은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서울에서의 삶에 익숙했던 ""나""에겐 모든 것이 불편했다. 제일 먼저 교통. 서울에 볼일이라도 있으면 도보로 버스 정류장까지 30분, 마을버스?도시고속-마을버스로 한 시간, 그나마도 시골버스는 배차 간격이 매우 불규칙했고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했으며, 택시임에도 집 앞까지 가주지도 않았다(겨울엔 눈 때문에, 평상시엔 차 바닥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두 번째로 불편한 것은 생필품 조달과 난방 같은 문제들, 즉 생활에 꼭 필요한 행위들에 관한 부실한 라이프 라인(전기, 가스, 수도 등등), 세 번째가 등산객들이 주는 스트레스(불법주차, 쓰레기 무단 투기 등등), 네 번째가 고립감과 적막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 <불편하고 행복하게>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인공인 나와 그의 곁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내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산속의 겨울 추위에 절망하고, 꼬여가기만 하는 일에 짜증이 나며, 점점 목을 죄어오는 가난에 움츠러든다. 말이 좋아 전원생활이지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들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어떻게든 버텨내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어 닥쳐온 고난을 극복하면서 소소한 기쁨과 충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 지난하고 막막한 삶의 과정을 담담하고 리얼한 필치로 풀어낸 것이 바로 <불편하고 행복하게>인 것이다.

“창작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 부르면서 당신 지금 뭘 얼마나 준비한 거죠? 맨날 구상한다 하면서 결과물이 없잖아요. 그러고서 독촉전화도 피하는 이 상황은 뭐예요?”
“이리로 이사 온 이후론 내가 해야 할 집안일이 얼마나 늘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집 주변 손질에 연탄 갈아야지, 고양이, 개 사료주고 산책도, 때 되면 장봐야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도시보다 교통 불편해서 시간은 곱절로 들지. 한마디로 여기 생활이 나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이번 시리즈 맡은 담당은 매일 시간 체크를 하니 미치지 않고서야 진도가 제대로 나갈 수 있겠어요?”
“일을 줄이기로 해요. 조금 덜 먹고 덜 쓰면...”
“손가락 빨며 살자고요?”
- <불편하고 행복하게>, 1권 132p 中에서   

산중 겨울의 혹독함이 점점 심해지자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그나마 나의 특기이자 취미인 요리로 처음엔 재밌게 했던 전원밥상 차리기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 여기저기 맡아온 학습만화 일감도, 유기견 보호소에서 잘 키워보자고 데려온 개의 산책도, 시간 맞춰서 꼬박꼬박 갈아줘야 불이 꺼지지 않는 난로의 연탄 갈기도... 모든 것이 짜증으로 변한다. “나도 얼른 돈을 벌고 싶다”며 열심히 그림동화를 준비하는 아내에게 타박은 늘어가고,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라도 한 날은 미안함과 분노가 공존하는 스트레스에 고통 받는다.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읽다보면, 철저한 준비 없이 들어간 전원생활(또는 귀농)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 것인지 깊이 실감하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도시에선 당연한 것들이 시골에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집 주변을 정비하고 관리하며, 먹거리를 조달하고 삶의 쾌적함을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노동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아주 대단한 노력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주인공의 직업은 안 팔리는 만화가다. 아내도 아직 데뷔하기 전의 그림동화 작가다. 결국 노동으로 때울 수 없는 것들은 돈으로 메꿔야 하는데, 이 가난한 신혼부부는 지속적인 경제활동도 여의치 않은 프리랜서들인 것이다. 이렇듯 <불편하고 행복하게>의 전원생활에는 TV광고 속에 종종 등장하는 낭만과 여유 따윈 나오지 않는다. 

“여보, 지금 가진 거 없고 매달 집세 걱정하고 있긴 하지만... 우린 행복한 건지도 몰라요. 이런 좋은 곳에 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지내잖아요. 둘 다 건강하고. 그쵸?”
- <불편하고 행복하게>, 1권 171p 中에서

1권의 마지막에 가면, 주인공인 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큰 병을 앓고 쓰러진다. 그렇게 극한까지 몰리고 나서야 마지막 장에서 “이제껏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이 집 주변에 있었다는 걸...”하며 적응(어쩌면 포기일지도 모르지만)에 의한 반전이 다가온다. “생활이, 생활을 위해, 생활의 길을 연다”는 유명한 말처럼, 주인공은 극한의 상황에 몰리고 나서야 모든 것을 놓을 수 있는 철학적 상황에 다다르고, 그러한 인식의 전환은 일순간 자신의 삶과 주변의 풍경을 긍정의 기운으로 바꿔놓는다. 그러나 1권의 모든 내용에 걸쳐 주인공을 힘들게 했던 고난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는 진정한 전원생활의 의미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삶이란 이토록 잔혹하게도, 일정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결코 기쁨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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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했던 겨울의 깨달음이 있고 나서야 가난한 신혼부부의 전원생활은 활력을 띠고, 자연에 적응한 삶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 비로소 체험하게 된다. 처음엔 짜증나기만 했던 마당의 끝없이 돋아나는 잡초 뽑기도, 돌만 가득한 마당 옆의 텃밭 가꾸기도 즐거워지고, 닭장을 만들고 산나물을 뜯어 밥상을 차리며, 산에서 직접 장작을 구해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고기를 구워먹는 모든 일들이 행복감을 전해준다. 그렇게 그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연에 적응하고, 겨우겨우 소소한 행복을 얻는다. 그리고 그런 이후부터 일도 잘 풀리게 된다. 아내의 그림동화가 공모전 대상에 입상해 출판사와 계약을 맺게 되고, 나의 창작도 술술 잘 풀리게 된다. 아내가 공모전 상금으로 남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중고차를 선물하자 부부의 전원생활은 행복의 절정을 맞이한다.

“서운해요?”
“아니요, 전혀. 당신이 없었으면... 당신이 없었으면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었을까.”
“나도 당신 없인 여기까지 들어와 살지 않았죠.”
“그런가? 새로운 곳으로 떠날 준비는 됐지요?”
“네!”
- <불편하고 행복하게>, 2권 312~313p 中에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겨우 깨닫고 행복을 영위하던 그들의 산중생활은 너무도 어이없게도 땅주인들의 조경공사로 끝나게 된다. 주인공 부부의 집주인이 먼저 시작한 조경공사가 원인이 되어 주변의 땅주인들이 너도 나도 조경공사를 시작, 빈 땅에 강철 펜스를 치고 수시로 업자들이 드나들며 나무를 베어내고 중장비를 투입해 토지 정비 및 개발을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말았던 주인공 부부도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이사를 결심한다. 세입자의 사정이란 항상 씁쓸한 것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려지는 세입자의 결말은 정말 보기 괴로웠다. 특히 갖은 고난을 다 견뎌내고 손에 얻은 작은 행복마저도 무의미한 자본의 논리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결말은 쉬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혹독한 자연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노동과 의지를 투입한 실거주자들이, 그 땅에 살지도 않는 땅 주인들의 경계선 긋기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떠나게 된다는 것은, 이 작품이 비록 만화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판타지가 아닌 리얼을 지향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려주는, 슬픈 결말이다. 

마지막 장에서, 그들이 겨울부터 열심히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겨우 흙으로 바뀐 후에야 비로소 싹을 틔워 갖가지 채소들을 탄생시켰던 작은 텃밭이, 불도저에 의해 삽시간에 아무것도 길러내지 못하는 황무지로 바뀌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게 필자의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들은 이사를 결심한다. 이제 그곳은 더 이상 그들이 행복함을 느꼈던 죽엽산의 자연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그들의 2년간의 전원생활은 타의에 의해 끝이 나고, 다시 차에 이삿짐을 싣고 정착할 곳을 찾아야만 하는 가난한 세입자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더 이상 2년 전의 초짜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자연에 적응하는 노하우가 남겨졌다. 그것도 몸으로 직접 체득해 죽을 때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굳건한 삶의 지혜가 말이다.

“우리 둘 사이에~ 세상에 없던 존재가 태어났어요~ 너로 인해 우리는 가족이 되었지~ 엄마아빠 둘일 땐 몰랐던~ 세상을 알게 해준~”
- <마당 씨의 식탁>, 18p, 프롤로그 中에서    

<불편하고 행복하게>의 내용과 정서를 잇는, 마치 속편 같은, <마당 씨의 식탁>은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라든가, 사계절로 나뉜 챕터가 아닌 내러티브에 따른 구분 챕터 같은 작중 구성이 전작인 <불편하고 행복하게>에 비해 매우 상이하게 바뀌었지만, 주인공인 만화가 마당 씨가 전작의 주인공인 홍 작가라는 것을, 적어도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전작을 읽지 않아도 <마당 씨의 식탁>은 그 자체로 완결된 이야기 구조와 그 나름의 독립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감상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다만,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읽은 후에 이 작품을 감상한다면, 훨씬 더 느껴지는 깊이가 다를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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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홍연식은 <마당 씨의 식탁>에서, 전작에서 그저 흘러가는 삶의 풍경 중 하나로만 다루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아주 세밀하고 과감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듯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불편하고 행복하게>로부터 2년 후, 그들은 더 이상 신혼부부가 아니었고, 죽엽산처럼 완벽한 장소를 찾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그들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누구나 부모가 되어봐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했던가. 홍연식은 마당 씨라는 캐릭터를 빌어, 자신이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을 때의 가족과 자신이 부모가 되어본 이후의 가족에 대해 그 차이점을 심도 깊게 고찰하면서,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관해 매우 진지하면서도 특유의 담담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땅 밑으로 내려간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최하층으로 산다는 것은 땅위에서 살 권리마저 누리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 <마당 씨의 식탁>, 29p, 1화 외래진료 中에서

<마당 씨의 식탁>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매우 어려운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작품이다. 물론 전작인 <불편하고 행복하게>에서도 전원생활의 현실을 리얼하게 알려주는 동시에, 안 팔리는 만화가인 ‘나’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는 치열한 과정을 담담한 필치로 구현해냈지만, 사실 만화로서의 장르적 내러티브는 다소 빈약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불편하고 행복하게>가 어떤 정해진 결말을 향해 기승전결이라는 일정한 법칙을 갖고 순서를 밟아나가는 작품이 아니고,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성찰의 순간을 계절의 순서대로 차분하게 나열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당 씨의 식탁>이 전작과 비교해 가장 큰 내용의 변화가 있다면, 바로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충실한 내러티브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만화라는 장르에 익숙한 독자들이 아주 편안하면서도 쉽게, 스토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담담하고 차분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면서도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이나 어두운 가족사 같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매회마다 순간순간 끼워 넣어, 독자들의 감정이입의 밀도가 깊어지도록 차분하게 유도한다. 이러한 홍연식의 전작과는 다른 시도는, 마지막의 정해진 결말(어머니의 죽음)에 이야기가 다다랐을 때 한순간 강렬하게 폭발하는 감정의 폭탄을 독자들의 가슴에 심어주었고, 이것은 비슷한 경험을 했든 안했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다 같이 슬퍼할 수밖에 없는 두터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스토리로 ""내러티브의 충실함""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면, ""의미의 문제""에 관해서도 전작보다 훨씬 더 매끄럽게 다가간다. <마당 씨의 식탁>은 <불편하고 행복하게>와 비슷한 전원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부부생활을 소재로 삼아 나의 세계라는 명확한 주제를 전체 구성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전작의 주인공인 홍 작가가 만화가로서의, 일에 있어서의 깨달음을 얻는 데 집중했다면, <마당 씨의 식탁>의 주인공 마당 씨는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불편하고 행복하게>의 홍 작가나 <마당 씨의 식탁>의 마당 씨나 안 팔리는 만화가인 건 똑같고, 그들 부부는 여전히 가난하다. 하지만 홍 작가에겐 잘 느껴지지 않던 삶의 관록이 마당 씨에게선 느껴진다. 마당 씨는 여전히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을 하면서 집 주변의 텃밭을 가꾸며 만화원고를 만들고, 이젠 육아의 일부와 부모님의 통원치료까지 담당해야 하는, 전작보다 더욱 힘들고 지난한 삶의 고통을 매순간 견디어 내고 있지만, 그는 예전처럼 닥쳐온 위기 앞에서 허둥거리며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거나,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놔버리는 무책임한 포기 따윈 하지 않는다. 이 변화의 이유는 간단하다. 마당 씨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에 그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부모의 인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야 온전한 나의 세계가 유지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의 세상을 위해선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꿔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소중히 가꾸고 있는 나의 세계가 방해 받아선 안 된다.”
- <마당 씨의 식탁>, 142p, 7화 정밀검사 中에서
 
마당 씨의 가족사는 매우 어둡다. 그는 건설 일을 하는(흔히들 세간에서 노가다라고 부르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풍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으나, 학교에 다녀오면 자상한 어머니가 해주셨던 맛있는 음식들은 아주 소중한 행복의 기억이다. 단, 아버지가 술 취해 퇴근하기 전까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은 심해졌고, 결국 자신의 건강마저 심하게 해친다. 환갑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고관절이 완전히 망가져 목발을 짚고 살아야 했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심장병이 생겼다. 부모님의 불화는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만화가의 문하생이 되어 집을 나왔다. 그의 회상처럼 “내가 떠나려 했던 그 세계는 아버지가 통치하는 세상이었다. 어머니와 나와 내 동생은 그의 노동의 대가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한 치의 부정도 없지만... 술의 힘을 빌려 통치하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암흑과 같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마당 씨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삶의 근원적인 자세(또는 태도)라든가, 삶의 근본이 되는 어떤 심성 같은 것은 대부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 맛있게 먹는 방법, 삶의 고난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성실함과 끈기 같은 미덕들,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그를 정신적으로 지켜주었던 어머니와의 따뜻한 기억들. 

이렇듯 마당 씨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확실히 거리를 두어 떠나야만 하고, 철저히 나의 세계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하는 세계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버리겠다’ 독하게 맘을 먹는 그런 존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머니의 모든 것(특히 병원비나 그녀의 고독감)을 모두 다 떠안을 만큼 효자도 아니다.  

그는 부모님의 병세가 깊어질수록, 내가 지켜야 할 나의 세계 즉, 자신이 이룬 가족(아내와 자식)에 집중하고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어머니를 곁에서 보살펴드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병원비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궁핍함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절대로, 자신의 세계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마당 씨는 이 부조리한 모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나의 세계와 부모의 세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마당 씨는 싫어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어머니 사이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형인 동시에, 어떤 여자의 남편, 어떤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거의 모두가 이런 중의적인 존재의미를 지닌 불완전한 인간이고, 누구에게나 가족이란 행복의 원천임과 동시에 불행의 덫과 같은 모순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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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당 씨의 식탁>은 주인공인 마당 씨(작가)가 자식의 입장, 남편의 입장, 부모의 입장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삶을 영위하는 지난한 과정을 담아낸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그 고뇌와 성찰의 과정을 차분하게 옆에서 지켜볼 수 있게 구성한, 아주 잘 만든 만화이다.

<마당 씨의 식탁>에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17화 유산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당 씨의 처절한 자기반성과 후회, 그리고 깊은 슬픔을 묵직하게 그려낸 에피소드였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슬펐고, 또한 섬뜩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어떻게 했던가, 아마도 마당 씨처럼 저렇게 생각 없이 행동하면서 때때로 부모님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겠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그분들의 고단했던 세월에 대해 공감해드리고, 현재 느끼고 있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제대로 보듬어 드린 적이 과연 있었는가...   

“모든 것은, 잃고 난 다음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잔인하고 무거운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깊게 깨닫게 해준,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