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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가챠에 열광하는가? :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가챠 열풍 살펴보기

가챠는 불확실성, 희소성, 수집 욕구를 자극하며 작은 사치 문화와 SNS를 통해 확산된 트렌드로, 중독 및 사행성 문제가 있지만 지속 가능한 문화 현상으로 전망된다

2025-09-29 최기현

사람들은 왜 가챠에 열광하는가? :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가챠 열풍 살펴보기

최근 우리 사회는 가챠 열풍에 휩싸여 있다. 모바일 게임에서 시작된 랜덤 뽑기는 오프라인 매장의 캡슐 토이, 키링, 문구, K-POP 포토 카드 등으로 확산되며, 가챠가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25 트렌드 코리아의 키워드 중 하나인 무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 세대는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은 콘텐츠를 선호한다. 귀엽고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가챠 아이템들이 인기를 끌며 무해력 세대의 요구에 어김없이 부응한다.

물론 가챠 열풍이 최근에 갑자기 생긴 현상은 아니다. 90년대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는 이미 100원짜리 동전으로 캡슐 완구를 뽑는 기계가 있었고, 몇 년 전의 일이지만 포켓몬스터 빵의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오픈런을 한다던가 애니메이션이나 연예인, 운동선수의 포토 카드를 뽑기 위한 에피소드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부는 가챠 열풍은 그 규모와 파급력에서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가챠는 '찰캉찰캉'이라는 뜻의 일본어 가챠가챠(ガチャガチャ)에서 유래한 단어로, 캡슐을 뽑는 기계에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릴 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다. 캡슐 안에는 피규어, 키링, 미니어처, 굿즈, 인형 등 다양한 상품이 들어 있다. 과거 캡슐 토이의 주요 소비자가 초등학생이었다면 최근 유행하는 가챠의 주 소비층은 구매력이 뒷받침된 20~30대로 확대되었다.

 

일본에서는 가챠가 거대한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2023년 일본 캡슐 완구 시장 규모640억 엔(6,000억 원)에 달하며, 전국에 60만 대 이상의 가챠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1. 우리나라 역시 서울 홍대 인근에 20여 개의 가챠샵이 문을 열었고, 대형 서점과 편의점에서도 가챠 머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용산 HDC아이파크몰은 작년 9150여 대의 가챠 머신을 설치한 가챠 파크를 조성했고. 첫 달에만 4만 명이 방문하여 약 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기사도 보도된 바 있다2. 가챠 산업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는 아직 없으나 업계에서는 올해 시장 규모를 400여억 원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가챠가 유행하는 이유로는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 즉각적인 보상 심리, 희소성에 대한 소장 욕구, SNS를 통한 자기표현 등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요인을 들 수 있다. 동시에 그 이면에는 청소년들의 과도한 지출, 사행성 조장 논란, 확률 조작 의혹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한 번만 더심리를 이용한 반복 구매 유도는 중독적 소비 패턴을 만들어낸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가챠에 열광하는가? 이 글에서는 요즘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을 투영하는 가챠 현상을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것이 일시적 유행일지 아니면 새로운 문화 경제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인지 전망해 보고자 한다.


가챠 열풍의 심리적 요인 

미국 심리학자 스키너가 설명한 변동비율강화계획은 가챠의 실시 원리와 유사하다. 정해진 횟수의 행동이 이루어질 때마다 보상을 받는 고정비율 강화계획과 달리, 변동비율 강화계획은 몇 번의 행동을 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정비율 강화계획에서는 쥐가 레버를 5회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식이다. 여기에선 주어지는 보상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보상을 받은 뒤에는 잠깐 쉬는 행동이 자주 나타난다. 반면 변동비율 강화계획은 쥐가 평균 10번의 레버를 누르면 보상이 주어지는데, 실제로는 3, 어떤 때는 10, 어떤 때는 15번을 눌러야 먹이가 나오기 때문에 몇 번을 행동해야 보상을 받는지 예측 불가능하다. 보상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쥐의 반응속도가 빠르고 행동이 꾸준히 유지된다. 다시 말해 불확실성에 따른 기대감이 행동을 강화하여 중독적 행동이나 몰입을 유발하기 쉬운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변동비율 강화계획은 심리치료, 교육, 행동설계, 중독 연구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론이다. 모바일 게임에서 아이템을 뽑을 때 이번엔 정말 S등급 아이템이 나올 것 같아라는 기대감은 반복 구매를 유도한다. 실패하더라도 다음번엔 꼭 될 거야라는 희망이 좌절감을 상쇄하여 행동을 유지하게 한다. 카지노의 슬롯머신도 비슷하다. 가챠는 이러한 원리를 일상의 소비 영역에 적용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희귀한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요즘 사회에서 이런 본능은 명품, 한정판, 희귀 레어템에 대한 욕망으로 나타난다. 경제학의 희소성 원리가 가챠 시스템에 교묘하게 적용된다. 한정판, 시크릿 에디션, 0.1% 확률이라는 문구는 평범한 상품도 특별하게 만든다. 희소성이 가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실험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워첼은 동일한 쿠키를 두 조에 나누어 실험했다. 그 결과 같은 쿠키라도 항아리에 2개만 있을 때가 10개 있을 때보다 2배 이상 맛있다고 평가받았다. 이 실험은 어떤 자원에 희소성이 있을 때 심리적으로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수집 욕구도 인간에게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수집 행위는 통제감, 안정감, 정체성 확립과 연관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완전한 세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일종의 뿌듯함을 준다. 가챠는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체계적으로 자극한다. 시리즈물로 구성하여 전체를 모아야 완성이라는 강박을 만들고, 도감 시스템에서 빈 곳을 시각화하여 완성 욕구를 부추긴다. 결국 수집에 따른 구매를 부추기며 사람들의 지속적인 소비를 유도한다.

 

가챠에 열광하는 사회적 측면

MZ세대에게 가챠는 일종의 작은 사치다. 어차피 큰 것은 못 사니 작은 것이라도 즐기자는 심리다. 3천 원으로 느끼는 작은 설렘이 300만 원짜리 명품백보다 더 현실적인 행복으로 다가온다.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양수진 교수는 젊은 세대의 소비 형태가 소유를 목표로 하기보다 경험을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한다3. 가성비를 중시하는 MZ세대는 가격 대비 높은 쇼핑 가치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소유를 위해 큰돈을 소비하기보다 적은 돈으로 일회적이고 순간적이라도 높은 수준의 감정적 효용 경험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제 가챠는 개인적 즐거움을 넘어 사회적 경험이 되었다. 가챠의 뽑기 결과는 SNS 시대에 즉각적으로 공유되고 평가받는다. 자신이 원하는 가챠를 뽑은 사람은 자신의 운을 SNS에서 과시하거나 증명한다. 희귀템을 뽑은 순간의 영상은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댓글에는 부러움이 가득하다. 인스타그램의 #가챠 해시태그는 500만 개가 넘고, 틱톡의 가챠 언박싱 영상은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한다. 유튜브에서는 ‘100만 원어치 가챠 도전’, ‘희귀템 나올 때까지 뽑기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여기에 커뮤니티는 정보 공유와 집단 학습의 장이 되어 개인의 가챠 경험은 사회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가챠 열풍의 어두운 그림자

가챠의 화려한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은 가챠 중독자의 뇌 활동 패턴이 도박 중독자와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4. 가챠 이용 시 뇌의 도파민 보상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충동 조절 능력이 크게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도파민은 쾌락과 보상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이 회로가 과활성화되면 게임이나 뽑기에서 나오는 불규칙한 보상에 중독될 위험이 커진다. 불규칙한 보상을 통한 가챠 시스템은 사용자로 하여금 한 번만 더충동을 지속시키며, 반복적인 과금과 중독 행동을 부추긴다. 특히 청소년과 게임에 취약한 이들이 여기에 쉽게 노출되어 중독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과소비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게임 분야에서 컴플리트 가챠 문제도 심각하다. 컴플리트 가챠란, 확률형 아이템에서 여러 종류의 아이템을 모두 수집(컴플리트)해야만 희귀한 아이템이나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게임 수익 모델이다. 일반 가챠는 게임 랜덤 획득 방식으로 하나의 아이템만을 얻지만, 컴플리트 가챠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모두 갖춰야만 보상을 얻는다. 각 아이템은 확률적으로 획득되기 때문에 전체를 모으려면 반복적인 결제가 필요하다. 중간에 포기하면 이미 지출한 비용은 매몰 비용이 되어 심리적인 타격도 크다. 수집이 완성되기까지 소비자에게 과도한 부담, 중독성, 추가 지출을 야기하기 때문에 사행성 강화라는 비판도 받는다.

지나친 사행성과 과금 유도 때문에 2012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컴플리트 가챠를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9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컴플리트 가챠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에 대해 업계는 게임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컴플리트 가챠가 게이머의 과도한 소비를 유도하는 중요한 수익 모델인 만큼, 이를 제한할 경우 게임 회사의 수익 감소와 개발 투자가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컴플리트 가챠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어필한다. 반면, 정부와 소비자 단체들은 과도한 사행성과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용자의 권익 보호와 건전한 게임 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법안에 찬성한다.

그 외에 가챠로 인한 환경 오염도 문제다. 버려진 플라스틱 캡슐과 가챠의 과대포장은 환경 부담을 가중한다. 일부 업체가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거나 캡슐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점은 한계로 남아있다.

 

가챠는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인가?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으나, 산업의 규모나 발전 방향, 사회적 이슈를 가늠해 봤을 때 가챠 열풍은 일시적 열풍이 아니라 당분간 사회문화 트렌드로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가챠는 단순한 캡슐 토이 판매를 넘어 IP 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반다이남코, 타카라토미 같은 대기업들은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를 가챠와 연계하여 시너지를 창출한다.

가챠 현상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를 넘어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불확실성의 시대, 작은 행운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의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가챠는 일확천금은 아니어도 소소한 기쁨을 주는 마이크로 도박인 셈이다. 소유욕, 희소성에 대한 수집욕, 우월감 등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자극하는 강력한 시스템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가챠는 놀이이자 문화이며, 소통의 매개다.

이미 대안적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완전 랜덤이 아닌 선택적 랜덤(몇 가지 중 선택), 교환 시스템(중복 아이템 교환), 포인트 적립(구매 시마다 포인트를 쌓아 원하는 상품 교환) 등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재미를 유지하는 방식들이 시도되고 있다. 착한 가챠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환경친화적 소재를 사용하거나, 지역 창작자와 협업하는 등 사회적 가치를 더한 가챠가 등장하고 있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 의미 있는 참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멸종 위기 동물 보호 캠페인과 연계한 동물 피규어 가챠는 판매 수익의 30%를 기부하는 식이다. 이는 소비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고 긍정적 경험을 강화한다.

가챠 열풍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투영한다. 가챠 열풍은 사회문화 현상으로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가챠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문제이다.

3,000원짜리 작은 캡슐이 열어준 판도라의 상자, 그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1 서울PN, <장난감이 아니라고? 5차 가챠붐 맞은 , 640억엔 시장이 움직인다>(2025.04.13.)

2 조선비즈, <유통가 휩쓴 가챠열풍, 랜덤 소비에 빠진 MZ세대>(2025.07.22.)

3 MoneyS, 한번 돌리는데 7,000, 가챠에 빠진 MZ세대(2025.04.14.)

4 강웅구 외, 도파민의 배신(포르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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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현

만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예술지원팀장 
2020 만화웹툰평론공모전 신인부문 가작
2021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22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