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한국 만화를 이야기하면서 절대로 빼먹어서는 안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에 <미생>은 독보적이다. 2012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며, 단행부 판매량만 200만부가 넘는 밀리언셀러이자, 웹툰 누적 조회수는 10억을 훌쩍 넘는 메가 히트작이다. 하지만 우리가 <미생>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많이 팔린’ 만화이기 때문이 아니다. 시대의 불안과 애환을 그린 만화중에는 미생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그 때문에 전국적인 신드롬이 불기도 했다. 심지어는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사실상 4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도입하려는 시도에 ‘장그래법’이라는 명칭을 붙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소위 만화 주인공의 이름이 붙은 법안이라니,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적이긴 했다. 그만큼 <미생>의 인기는 엄청났다. 문구점의 노트에는 미생 로고가 찍혀서 팔렸고, 편의점에서 파는 양말에도 미생이 찍혀 있었다. 말 그대로 삶 깊숙하게 파고든 작품이 된 것이다.
미생이 단지 웹툰으로만 큰 인기를 얻은 건 아니다. ‘미생 신드롬’을 견인한 건 역시 드라마였다. 웹툰의 영상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 웹툰 원작으로 대박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작품이 바로 미생이었다. 이 드라마로 임시완은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성공했다는 확신을 줬고, 강하늘과 변요한 등 스타 배우들을 탄생시켰다. 영상화 된 미생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작품 내의 미장센이나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가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무엇보다 원작이 가진 힘이 컸다. 애초에 이 웹툰은 바둑만화로 출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본격 바둑만화가 될 예정이었던 미생이 바둑을 옆으로 미루고 본격 바둑에 빗댄 직장생활 만화가 된 것은 많은 취재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다양한 회사원들을 만나 취재하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녹이기 위해 수없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둑을 중심에 두기보다, 바둑 한수 한수를 인생에 비유하는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미생은 1988년 응씨배 결승, 조훈현과 녜웨이핑의 대국을 매 회차에 비유하듯 진행해 나간다. 바둑을 인생에,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곤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본격 바둑만화보단 이런 비유가 더 적절했던 것 같다. 댓글란에서는 매 한수 한수를 해설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단행본에서는 웹툰 댓글에서 해설하던 당사자가 거부해 중앙일보 박치문 기자가 해설을 맡기도 했다.
<미생>은 실패한 바둑기사인 장그래가 군대에 다녀온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이는 찼고, 군대도 다녀왔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바둑이 전부인, 아무것도 없는 장그래가 우연한 기회에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고, 상사맨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숫기도 없고, 낯도 가리는 장그래가 들어간 부서는 영업 3팀. 매일 과로를 해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머리는 부스스한 오차장과 사람 좋은 만큼 능력도 있는 김대리, 그리고 후에 합류한 천과장 등에게, 장그래는 ‘회사원이 되는 법’을 배운다.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등 장그래의 동기들도 각각 자기 위치에서 일을 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회사원이 겪는 갑질,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이나 그걸 주지 못하는 상사들의 모습을 그렸다. 예를 들어 안영이가 여성이라 받는 차별, 또 장백기가 장그래에게 갖는 일종의 열등감, 한석율이 사무직의 중요성을 배워 나가는 일 등이 현실감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생은 ‘직장 판타지’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등장인물들이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좋다거나, 또 현실에 없는 인물들을 그려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그들마저도 일을 ‘잘’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만화적인 재미를 생각하면 당연히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SNS에서 스스로를 자조를 담아 ‘미생’이라고 부르고, ‘완생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낭만적인 수식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낭만화, 이상화마저 포기한 만화였다면 미생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오차장이 장그래에게 ‘우리 애’라고 말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장백기가 장그래에게 느끼는 열등감에 공감하기도 하고, 선차장과 안영이가 당하는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 오랫동안 남았던 궁금증이 있었다. 한차례 파도가 지나간 후에야 꺼내보는 궁금증이다. 장그래는, 정말로 청년의 얼굴일까?
앞서 말했던 대로, 서울의 지하철 광고판에 장그래(임시완 분)의 얼굴이 붙어있던 적이 있었다. 앞서 말했던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안을 광고하면서 등장한 장그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작가 본인도 나서서 ‘만화를 본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장그래를 살리기 위한 법이라고 홍보하는 쪽과, 장그래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는 장그래를 ‘청년의 대표주자’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연 장그래는 진짜 청년의 얼굴일까?
장그래는 고졸에 가진 재주라곤 바둑두는 재주 정도밖에 없지만 그 마저도 프로에 데뷔할 재능은 아닌, 말하자면 범재(凡才)를 가진 사람이었다. 때문에 군대를 다녀온 이후 미래가 막막해서 뭘 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는 분이 장그래에게 면접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장그래의 오랜 후원자였던 분이 아는 사람이라고 했고, 그 사람은 원 인터내셔널의 전무였다. 만화에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이 사람은, 장그래를 인턴 서류전형을 통과시켜 준다. 그리고 장그래는 자신의 재주로 면접을 돌파한다.
서류전형에 떨어진 사람들이 들으면 분노할 이야기다. 장그래는 그 뒤로도 낙하산으로 유명세를 치른다. 전형적인 취업비리고, 더 나쁘게 말하자면 공정한 경쟁을 깨버리는 일이다. 드라마에서는 최영후 전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원작에서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장그래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온 동아줄인 셈이다. 오늘도 서류전형에 떨어져서 소주를 들이켜는 청년들에게는, ‘내가 아는 전무님 하나가 없어서’같은 생각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내용이다.
누군가에겐 자신의 재주를 선보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누군가에겐 단지 인맥이 좋아서 그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당연히 장그래는 그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죽을만큼 열심히 일하지만 태생적 한계와 제도의 문제 때문에 정규직 전환에는 실패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미생>은 비정규직 장그래의 애환과 성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안영이와 장백기, 한석율 같은 캐릭터들은 주변부로 밀려나며 기득권처럼 다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서 비정규직 장그래를 ‘도와주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지점은,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청년으로서의 삶을 너무 얄팍하게 다루는건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그에 비해 안영이는 어릴 때부터 반장이 되어도, 전교 회장이 되어도 딸이라는 이유로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 아버지와 자신이 임원코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영이의 월급에만 관심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하이힐을 신는다고 꾸중을 듣거나, 자식을 담보삼아 돈을 빌려 일을 벌릴 궁리를 하는 아버지와 싸운다거나, 갖은 성차별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몫을 해 나간다. 안영이는 업무는 물론 성차별과도 싸우고, 부딪히며 성장해 나가는 캐릭터다. 직장인 성장물의 주인공으로는 오히려 안영이가 적합하진 않았을까?
장백기 또한 마찬가지다. 장백기는 스펙상으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지만, 사람을 대하기를 어려워하고, 때문에 팀에서 겉돌던 장백기는, 좋은 상사를 만나 재능을 펼칠 기회를 받는 장그래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장백기의 열등감은 낮은 자존감에서 왔다. 자기가 처한 상황, 즉 자신에게 무관심한 상사와 나에게 주어진게 없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업무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장백기는 장그래를 비롯한 동기들에게서, 또 상사에게서 일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성장한다. 2부에서 등장한 장백기가 신입 교육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점점 기성세대의 일원이 되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한석율의 경우는 어떨까? 요즘 말로 소위 ‘핵인싸’인 한석율은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발로 뛰며 소통하는 한석율은 오히려 경험과 지식,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통찰력은 부족하다. 젊은이의 치기와 용기는 있지만 단지 그뿐이다. 다만, 그가 보여주는 소통은 진짜다. 직접 발로 뛰는 한석율의 모습은 이 웹툰을 보는 장년층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웹툰이 ‘진짜 청년’의 모습을 배제하고 낭만화 된 모습만 보여주는건 아니다. 미생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청년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고졸 낙하산인 장그래는 자신이 ‘뭐라도 해보기 위해’ 파일 정리 방식을 개선했다가 꾸중을 듣는다. 아무리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일이라도 오래 지속된 일에는 이유가 있고, 사람들이 익숙해진 방식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과 함께. 다른 등장인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요즘 세대’에서 ‘팀으로 일을 해 나가는 규칙’을 배워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정부분 개인이 희생하고, 그 희생은 값진 것, 또는 ‘어쩔 수 없는’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미생은 ‘청년의 얼굴’을 보여주는 만화가 아니다. 기성세대, 또는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법’을 보여주는 만화다. 미생의 장면들에는 청년들에 대한 연민은 있지만, 동시대를 같은 세대로 살아가는 공감과 자조는 없다. 아직 이뤄낸 것은커녕 이뤄낼 기회조차 박탈당한 청년들에게 막무가내로 도전을 요구하고, 진취성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한편, 그들에게도 변명거리를 부여해주는 장면들이 그렇다. 예전에 일했던 이야기가 무용담이 되고, 술안주로 요즘 아이들을 씹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동세대로서의 자조 섞인 비판이 엿보인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개인의 삶의 가치를 일 속에서 찾는 구세대의 버릇을 버리지는 못했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미생은 일과 개인의 삶을 동일시하는 사회를 비판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거기서 벗어난 삶을 살아본 사람이 아주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사람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비판하기보다, 자발적으로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장그래와 동기들을 낭만적인 시선으로 그린다. 어른들의 자조섞인 비판의 목소리에 장그래는 “요즘 애들도 이렇게 열심히 하거든요?”라고 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장그래는 자신이 원해서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시즌2에서 ‘온길 인터내셔널’에 채용되는 것으로 보답 받는다. 삶이 곧 일이 되어야 보상받는 체계는 변하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그래는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진짜 청년의 얼굴이 아니다. 그들 사이 어디쯤에 청년들이 있다. 주말에는 야구장에 가고, 쉬는 날이면 맥주에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아침에 출근하면서는 카페인을 들이부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청년이 있다. 일과 삶을 분리하면 큰일 나는 시대가 끝나가는 지금, 나의 삶과 일 사이에 균형이 주목받고 있는 지금 <미생>은 비판받을 지점이 명확하다. 일과 삶을 분리하지 못한 장그래는, 분명 청년의 얼굴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미생>을 이야기하면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불편했던 이유를 길게 설명했다. 미생은 도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에 매몰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이입하고, 그들의 삶을 정당화하는데 힘쓴다. 말하자면 ‘산업 역군’이 된 사람들을 응원하는 만화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그저 개인의 삶을 살아낼 뿐인 평범한 사람들로 그린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냉철하게 맞붙지만 링 위에서 내려오면 소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생>에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생>을 보는 우리가 진짜로 이야기해야 하는걸, 열심히 일하고도 제 값을 못 받는 사람들과 ‘죽을 만큼’ 노력해야 평균인 세상,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갈아 넣어야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장그래를 청년의 표상으로 만들고, 장그래를 불쌍하게 여겨 수혜를 주는 것은 사절이다. 경쟁을 시키려거든 올바르게 경쟁할 수 있게 해 주고, 능력을 요구하려거든 능력을 펼 수 있게 해 주고, 도전하는 패기를 요구하기 전에 실패해도 괜찮은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삶과 일을 분리하고, 오차장처럼 몸을 바쳐가며 일하지 않아도 제대로 능력을 평가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더 이상 미생이라는 말이 자조의 의미로 쓰이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