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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를 밀어주세요>시대의 초상을 그린 만화가 오세영의 작품 세계를 만나다!

2016년 5월, 만화가 오세영의 별세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신문사들은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뛰어난 문장력과 데생력으로 ‘만화가들의 선생님’으로 불린다.”, “한국적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한국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 “<토지>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작가”, “근·현대사의 풍경에 대한 한국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화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만화 작가 양성에도 힘써” 등의 내용을 실은 수십 개의 기사가 작가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만화가 오세영을 기렸다.

2018-12-21 심상진


2016년 5월, 만화가 오세영의 별세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신문사들은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뛰어난 문장력과 데생력으로 ‘만화가들의 선생님’으로 불린다.”, “한국적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한국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 “<토지>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작가”, “근·현대사의 풍경에 대한 한국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화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만화 작가 양성에도 힘써” 등의 내용을 실은 수십 개의 기사가 작가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만화가 오세영을 기렸다.


거북이북스에서는 오세영 작가의 예술 세계를 독자들에게 다시금 소개하고자 오세영 작품집 <부자의 그림일기> 소장판을 출간했다. 수록 작품 모두 한 칸, 한 칸에 혼신을 쏟은 그림,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연민,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 오세영 작가의 리얼리즘 미학과 높은 완성도의 저력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오세영 작가의 만화가 복간되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의 만화는 만화사의 사료로서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으로서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한국의 근현대 역사 속 민중의 삶과, 사회의 다층적인 모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과, 사람들의 삶과 풍속이 담긴 오세영 작가의 작품은 펄떡이는 생명력으로 여전히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힘을 지닌다.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다양한 해석으로 층층의 의미를 쌓으며 독자들의 곁에 머물 것이다.

오세영 작가는 1986년 데뷔 이래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작품의 수가 많지는 않다. 완벽주의자이자 리얼리스트인 그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한국 근현대 단편 소설의 만화화 작업만 보아도 그의 완벽주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당대의 의복과 살림, 건축과 풍경까지 치밀하게 연구하고 고증하는 한편, 인물 또한 그가 해석한 작품 속 인물상을 표현하는 단 한사람으로서 형상화되어 있다.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살리는 각색, 그림과 연출을 통해 보이는 그의 절묘한 해석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이 펄펄 살아 움직이며 가슴 속으로 뛰어 들어오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이 책 <부자의 그림일기>에 실린 작품 중 <말>, <투계>, <복덕방>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또한 <부자의 그림일기>에 실린 단편 <고흐와 담배>, <14세 소녀의 봄>, <고샅을 지키는 아이>, <탈출>, <낡은 쇠가죽 쌈지 속의 비밀>, <최루>, <목론>, <땅꾼 형제의 꿈>, <부자의 그림일기>, <김 노인 경행록>, <쏴! 쏴! 쏴! 쏴! 탕>, <불> 같은 작품 역시 높은 완성도와 파격적인 연출,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빛난다. 
<부자의 그림일기> 소장판은 1988년 작 <불>에서부터 2008년 작<고흐와 담배>, 2014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출품작 <14세 소녀의 봄> 이르기까지 오세영 만화 세계의 자취를 살펴보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다.  1988년 작 <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돼지의 접붙이는 장면 묘사는 이미 그가 완성형의 작가로 등장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어린 시절 추억담인 듯 보였던 이야기가 인간의 폭력적이고 괴물 같은 속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마지막 반전을 이룰 때는 전율마저 솟는다.  <쏴! 쏴! 쏴! 쏴! 탕>에서는 1980년 5월 광주가 한 청년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말하고 있다. 그림은 그림대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지문의 대화는 대화대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독특한 구조로 엮어낸 솜씨가 일품이다. 그런가 하면 <김 노인 경행록>에서는 고물과 폐품을 수집하는 사내가 우연히 주운 낡은 서첩 속 이야기가 옛 문체와 그림으로 표현된다. 한 노인의 삶을 통해 그 세대의 삶을 드러내고 마지막 장면에서 일없이 벤치에 앉아 있는 현재의 노인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연출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 초창기부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발표한 오세영 작가는 <땅꾼 형제의 꿈>으로 한탕주의가 불러온 비극을 표현하는가 하면, <목론>과 <탈출> 같은 작품으로 그림과 칸 연출의 힘만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풍부하게 전달하는 실험을 하기도 한다. <최루>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 헤매는 주인공이 겪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낡은 쇠가죽 쌈지 속의 비밀>을 통해 분단의 비극과 고통을 형상화했다.
<고샅을 지키는 아이>는 오세영 작가가 펜뿐만 아니라 모필을 능란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이촌향도가 두드러지던 시기의 한 시골 마을에 남은 가족의 이야기로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한 정취를 그려냈다. 특히 아이가 혼자 집을 보는 장면에 흐르는 시적인 지문과 여백을 충분히 살린 구도, 영상 장면과도 같이 원경과 근경을 자유롭게 오가는 연출은 잔잔한 서정으로 다가온다. 뒤이어 밭에 나갔던 엄마와 아빠가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불안한 미래를 설계하는 대화를 그려낸 뒤 다시금 시대상을 담은 원경의 시골 마을 밤 풍경으로 마무리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자, 한국 리얼리즘 만화의 위대한 성취로 평가받는 오세영 작가의 단편 <부자의 그림일기>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뜨거운 감동을 전한다. 이 작품은 ‘부자’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가정의 아이가 화자이다. 이 아이의 눈을 통해 본 도시의 계층 분화와 그 과정의 부조리에 상처 입는 도시 빈민의 애환은 독자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면은 다큐멘터리적인 만화로, 다른 한 면은 아이의 그림일기로 구성란 이 짧은 단편에는 탁월한 서사와 연출을 통해 작가의 사회의 깊은 내면을 꿰뚫는 시선과, 약자를 향한 공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부자의 엄마는 늘 힘들게 일한다. 그리고 늘 슬프다. 아빠는 농약을 치다 쓰러져 돌아가셨고, 엄마는 점심을 굶으며 공사장에서 일한다. 어렵사리 마련한 포장마차는 구청 단속반에 빼앗기고, 추석날 빈 물그릇만 올린 차례상 앞에서 엄마는 운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백미인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는 더 이상 당하고 울지 않는다. 학교 운동회에서 단체 무용복을 마련하지 못하여 발표에서 제외된 딸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2학년 10반, 2학년 10반이 어디요? 우리 애도 2학년 10반이란 말이요”라고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리는 듯하다. 그리고 <부자의 그림일기>의 마지막 그림일기는 ‘엄마는 아직까지도 울지 않으셨다’라고 끝맺는다. 작가는 자본주의 팽창과 급속한 도시와에 따른 계급분화 과정에서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는 한 가족을 그리면서도 엄마의 모습을 통해 분노로 분연히 일어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민중의 뜨거운 생명력을 표현하였다.


2014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한국만화기획전시 <지지 않는 꽃>에 출품한 단편 <14세 소녀의 봄>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한 소녀의 입을 통해 소녀가 겪은 전쟁 범죄의 피해를 낱낱이 고발한다. 이 만화의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찌르는 반전의 연출로 잊히지 않는 울림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남는다. 2008년 작 <고흐와 담배>에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시대의 아픔과 약자의 목소리, 소시민의 시선이 아닌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의 시작점을 되짚는다. 이 작품은 오세영 작가의 작품 세계의 폭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고통과 상처를 가진 사람을 그려내고, 고통과 상처를 준 사회와 역사를 드러낸 오세영 작가의 작품은 한국 만화의 위대한 성취로 평가받았다.특히 누구나 인정하는 오세영 작가의 탁월한 그림은 치열한 습작과 연구를 통해 이룬 특별한 성취이다. 펜을 붓처럼 유려하게 쓰는가 하면, 직선 같은 곡선, 곡선 같은 직선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한 화면, 한 형상 속에서 두께와 성질이 다른 선들로 연출하는 솜씨가 누구와도 견주기 힘들 정도로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 선으로 이룬 인물과 사물, 배경, 시대와 공기, 풍속과 정취, 그 그림들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한 화면에서 이루는 조화와 파격은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완성도에 한계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이제 오세영 작가의 새 작품은 만날 수 없지만, 작가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 우리에게 있다. 오세영 작품집 <부자의 그림일기> 소장판은 큰 판형과 단단한 양장 제본으로 그의 작품을 더욱 깊게 감상할 수 있도록,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한국 만화의 걸출한 만화 장인이 전심전력을 기울여 완성한 시대의 명작을 담은 이 책을 오세영 작가와 그를 사랑한 독자들, 그리고 앞으로 그를 만날 독자들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