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實錄)’이라는 단어가 있다. 실록이라 하면 우리는 주로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지만 논픽션 다큐 같은 장르적 성격의 의미로 쓰인다. 나는 주로 70년대 실존 인물을 다룬 일본 임협물이나 한국의 <실록 김두한>(1974) 같은 옛날 폭력영화에서 이 단어를 보았던 기억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2.임금의 제위 기록이란 뜻을 제외하고, 1.사실을 실제로 적은 기록, 3.사실에 공상을 섞어서 그럴 듯하게 꾸민 이야기나 소설(=실록물)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나는 이 두 항목의 차이가 재미있다. 1번은 순수 논픽션이라는 건데, 3번은 사실 기반에 양념이 좀 가미된 장르물이라는 것. 아무튼 이 한자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잘 써먹는 듯하다. 작품 앞에 ‘실록’이 붙는 순간 생겨나는 이상한 무게가 있다.
일본문학의 대표적 특징은 ‘사소설(私小說)’의 고유한 발달이다. 작가 자신이 1인칭 화자로서 체험과 심경을 고백하는 문학. 다자이 오사무와 <인간실격>은 이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작품이다. 인간이라면 타인 앞에서 꾸며내기 마련인 허위와 가식은 물론 수치심마저 초월하여, 자신을 낱낱이 해체하듯 고백해 독자 앞에 전시하는 이 전위적 글쓰기는 오늘날도 작가 지망생의 첫 방법론이 되곤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사소설 작가로 <고역열차 苦役列車>(2011)를 쓴 니시무라 겐타(西村賢太)를 기억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상은 글렀다 싶어서 풍속점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축하해줄 친구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습니다.” 과연 솔직한 작가였다.
일본의 사소설은 만화와 만나 ‘실록 만화(実録マンガ)’ 장르가 되었다. 일본에서 누구든 한 번 꿈꿔볼만한, 코너에 몰린 인생을 반전시킬 방법은 여전히 만화다. (우리는 웹툰과 유튜브일까?) 만화가 히트하려면 대중이 전에 본 적 없는 신박한 소재를 들이미는 게 중요하다. 근데 그런 소재를 찾는 건 어렵다. 모르는 소재를 잡으려니 자료조사와 취재만으로 벅차다. 그러자 미처 생각지 못한 가장 가까운 소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나! 이렇게 사는 건 여기 나뿐인데? 평범하게 사는 건 사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나’는 의외로 독특한 소재다. 게다가 나 자신의 체험만큼 진중하게 그릴 수 있는 이야기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남 얘기를 좋아하고 본래 취향이 노골적이라 누군가의 ‘실화’라고 하면 솔깃하다. 나의 체험에서 오는 디테일과 실재감은 타인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나’를 그린 실록 만화를 통해 재야의 신인이 메이저에 데뷔하고, 마이너로 몰락했던 기성작가가 부활한다. 만화가 생활 중 돌연 가출, 자살기도와 노숙, 도피생활과 복귀 후 알코올 중독 치료 과정까지의 실화를 그린 아즈마 히데오(吾妻ひでお)의 <실종 일기 失踪日記>(2005)와 <실종 일기 2: 알코올병동 失踪日記2 アル中病棟>(2013)은 이 장르의 대표적 작품이다. 일본식 미소녀 캐릭터, 소위 ‘로리’와 ‘모에’의 시대를 연 작가로 평가되는 그가 특유의 동글동글한 만화체로 그린 실화는 여간한 극화보다 훨씬 강렬하고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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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 일기 & 실종 일기 2: 알코올 병동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2011, 2015)
<실종 일기>가 출판되자 평단과 미디어가 극찬했고, 권위 있는 상들이 모아졌고, 작가에게 대담 요청과 집필 의뢰가 늘어났다. 그는 자전적 만화로 고난에서 구원받고 부활한 작가의 어떤 전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례가 결국 인간이 살고자 자신의 고통을 담보로 세상과 하는 어떤 거래 같고, 작가라는 일 자체가 이 더럽고 치사한 거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슬프다. 인생에서 부여받은 유일한 재주이자 직업으로써 만화는 평생 그를 착취했을 뿐, 부활과 구원 같은 건 실은 어디에도 없었던 건 아닐까. 단지 자기만족과 짧은 위안이 있었을 뿐. 아즈마 히데오는 식도암 투병 끝에 2019년 10월 13일, 69세로 영면했다.
가난, 알코올중독, 우울증, 친족의 투병이나 죽음, 가정불화, 성폭력 등을 겪은 작가의 경험은 실록, 리얼, 논픽션, 에세이, 휴먼 등의 단어가 붙는 만화들로 승화되었다. 사이바라 리에코 <만화가 상경기>, 만슈 키쓰코 <알코올 중독 원더랜드>, 다나카 케이이치 <우울증 탈출>, 우에노 켄타로 <안녕이란 말도 없이>, 오카노 유이치 <페코로스…> 시리즈, 키쿠치 마리코 <취하면 괴물이 되는 아빠가 싫다>, 카호 <나랑 SEX하면 뜬다> 등이 내 기억에 남는다. 실록 만화는 진실한 만큼 선정적이다. 독자의 흥미가 이 경계를 애매하게 오가는 것을 업계는 놓치지 않는다. 사연이 없으면 취재해서 만드는 르포르타주(reportage) 즉 ‘르포(리포트)’ 만화에 이르면, 작가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일부러 더럽고 위험한 일을 찾아다녀야 한다. 오자와 카오루의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는 철저히 편집부 기획으로 만들어진 실록 만화의 사례다.
△ 다양한 종류의 실록 만화들.
마스다 미리와 다카기 나오코 류(類)의 코믹 에세이 역시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실록 만화의 범주에 넣기는 꺼려진다. 내가 일상물과 실록 만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테마의 무게감이랄까, 불편함이다. 수필과 사소설을 문학의 척도로 나누는 지점과 비슷하다. 외면하고픈 불편한 진실을 담은 이야기가 바로 문학이다. 일본의 다양한 실록 만화와 미국·유럽 인디만화의 ‘그래픽 자서전’은 예술의 영역에서 만화를 창작하는 한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 만화에서도 상업 웹툰과 독립 그래픽노블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자전적 작품이 나오는 중이다. 어떤 이야기든 만화로 그릴 수 있다. 개인의 불편한 실화가 타인에게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지고, 이해와 공감에까지 이를 수 있는 건 매체로서 만화가 지닌 강력한 힘이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이러한 자전적 만화들이 가장 먼저 대중의 반응을 얻는 장소. 인터넷에서 반향을 일으킨 만화가 곧 책으로 출판되는 일은 하나의 공식이 되었다.
자신을 고백한 만화가 SNS를 통해 읽히고 화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현대의 인간관계와 소통 방식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간접적이고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모, 형제, 친구나 연인에게는 차마 직접 할 수 없는 고백이 인터넷의 타인에게는 가능하다. 익명의 투고와 무명의 반응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공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외와 고독이다. 2018년에 내가 읽은 최고의 실록 만화는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 さびしすぎてレズ風俗に行きましたレポ>(2016)였다. 2019년 올해도 같은 작가의 후속편 <나 혼자 교환일기 一人交換日記>(2016)를 읽으며 이 생면부지의 일본 만화가를 속으로 안쓰러워하고 걱정했다.
△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 (나가타 카비 지음, 조민경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8) 나 혼자 교환일기 (나가타 카비 지음, 주원일 옮김, 애니북스 2019)
필명으로 ‘곰팡이(카비)’를 쓰는 이 작가, 나가타 카비(永田カビ)는 오랫동안 앓아온 마음의 병이 있는, 한 마디로 ‘아픈’ 사람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를 의식하며 애정결핍과 자기부정만을 쌓아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며 우울증과 자해, 탈모와 폭식 충동에 시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은 의의로 분함을 일으켜, 그에게 “이렇게 된 거 발버둥 친 뒤 죽어주마”라는 이상한 생의 의욕이 된다. 살려는 욕구는 신기하게도 ‘살(肉, flesh)’에게로 향한다. 나이 서른에 이르도록 타인과의 애정 어린 친밀함을 나눈 경험이 전혀 없는 그는, 자신이 집착하는 어머니 이외의 여성과 성적으로 접촉하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낀다. “누구라도 좋으니 안기고 싶은” 막연한 욕구는 “내가 여자임을 스스로 인식하거나, ‘나’이기 전에 먼저 ‘여자’로서 과잉 정의되지 않는” 등의 구체적인 조건을 만들어 간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어른이길 포기했던 봉인을 풀고 섹스를 경험하고 싶다. 그러나 어떻게 단숨에 타인과 그런 친밀한 관계를 경험할 것인가? 그가 결국 선택한 방법은 풍속점이었다. 레즈비언 업소의 여성을 돈으로 사는 것이었다.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는 고립된 삶을 살던 병적인 자아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선택한 성매매 경험담이다. 솔직함을 넘어 적나라한 이 만화의 가치는 단순히 개인적인 고백에만 머물지 않고 보편적 인간의 이기적인 진실에까지 도달한다고 느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작품은 2018 하비상(Harvey Award)에서 베스트 망가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실록 만화는 개인의 삶은 물론 작가의 커리어에서도 분명한 반전이다. 나가타 카비는 데뷔는 했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은 없고 주목을 받지 못하는 만화가였다. 작가가 우주의 별처럼 많은 업계에서, 정통 픽션으로 승부하여 도드라지기란 어렵다. 또한 속 편히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나 상황인 작가가 몇이나 될까? 독자인 우리는 ‘사연팔이’를 비웃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사연이나마 팔린다면 마땅히 팔아야 한다.
작가는 후일담 <나 혼자 교환일기>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억누른 부모 곁을 떠나 드디어 자립을 시도한다. 그에겐 전작으로 얻은 작은 명성보다 가족의 반응, 새로운 독립생활에 적응, 그리고 여전한 관계의 욕구가 문제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 이 작가에 대한 걱정이 끝나긴 요원해 보인다. 끔찍하게 예민한 마음의 병은 낫지 않고, 작가는 계속 자신의 삶에서 흘린 피로 만화를 그릴 모양이다. 아직 정발되지 않은 최신작 <현실도피하다 너덜너덜해진 이야기 現実逃避してたらボロボロになった話>(2019)는 그가 술을 퍼마시다 알코올성 급성 췌장염에 걸려 입원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런 만화를 그리는 작가와 기다리는 독자, 모두 슬픈 병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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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 교환일기 2 & 현실도피하다 너덜너덜해진 이야기
온갖 주의(ism)가 충돌하는 이 시대에 각자의 정의에만 함몰되지 않으려면, 세상의 현실과 타인의 삶을 고려하는 시각과 사유의 폭을 넓게 길러야 한다. 실록 만화가 개인을 넘어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는 지점은, 누구의 삶도 함부로 판단하고 규정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