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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출판만화 시대와 웹툰 시대의 그림체에 대하여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그림체의 변화 웹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다

2020-06-04 김성훈



출판만화 시대와 웹툰 시대의 그림체에 대하여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그림체의 변화

웹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다



김성훈



2004년, 우리는 획기적인 만화 한 편을 만나게 된다. 아직 웹툰이라는 이름도 익숙하지 않던 그 시절에 발표된 강풀의 <순정만화>는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서사 웹툰의 출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작품이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특히 ‘그림’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만화잡지에서라면 만나기가 어려웠을 작품의 그림체가 웹이라는 공간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웹이 부여한 다양성
△ <엉덩국 만화공장>, <마음의 소리> , <열혈초등학교>

어쩌면 그것은 혁명과도 같은 획기적인 변화였다. 기성작가 화실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다음에야 데뷔한 이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 그래서 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가 컷 안에 완벽하게 배치되어야 했던 출판만화 특유의 전형은 여전했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순정만화>는 앞선 시대에 대해 안녕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이후 웹툰은 그림체에 크게 구애받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2006년에 첫 선을 보인 <마음의 소리>는 십 수 년 넘게 연재를 이어오면서 조석을 최고의 웹툰작가로 자리매김 시켰으며, <엉덩국 만화공장>, <잉여도감> 등을 발표한 엉덩국이나 <드라곤볼>, <열혈초등학교> 등을 발표한 귀귀 역시 정형화되지 않은 그림체를 통해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물론 잘 다듬어진 그림체에 익숙한 출판만화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작품들이 등장하여 대중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을 때마다 웹툰이 선사하는 다양성에 거부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세기에 걸쳐 내공을 다져온 출판만화에 대한 지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출판만화에 대한 그와 같은 지지가 이제는 소수의 취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출판만화로 데뷔했던 작가들의 시선은 어떨까. 이에 관한 대답은 이말년의 그림에 대한 허영만의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2012년 당시 한 인터뷰에서 허영만은 이말년의 작품에 대해 “이런 만화도 있을 수 있구나”라면서 “내가 그림을 잘 그리려고 옛날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게 화가 난다”(4월 4일 KBS 수요기획 ‘한국만화의 힘’ 중에서)고 얘기한 바 있다. 발표한 작품량, 영상화된 작품 수, 그리고 작품을 발표해온 시간들 등 제시되는 모든 지표에서 우리 시대의 최고의 만화가로 꼽기에 이론이 없을 만화가가 이러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것은 실상 당대 출판만화가 마주했을 느낌을 고스란히 대변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란 말이 던져주는 교훈은 유효하다. 출판만화에서라면 각광받지 못했을 그림체에 수많은 독자들이 열광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출판만화 시대로부터 필력을 다져온 작가들에게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경쟁력

 

윤태호, 이충호, 그리고 고진호. 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공교롭게도 이름이 ‘호’ 자로 끝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지만)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들의 만화를 보아온 독자라면 주저 없이 ‘웹툰 시대에서도 살아남은 출판만화가’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아니, 살아남았다기보다 출판 시대의 만화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웹툰작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이 웹에서도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출판만화 시절에 획득한 명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무대에 누구보다 앞서 도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충호 작가 <무림수사대 >


그리고 이들의 도전은 발표된 작품을 통해 ‘경쟁력’으로 바뀌었음을 증명해 보인다. <이끼>와 <미생>을 통해 스릴러와 전문만화를 넘나들었던 윤태호는 스크롤 연출 혹은 컷의 재배열을 통한 시도로 웹툰에 연착륙했다. <무림수사대>를 통해 무협액션물로서 극화의 감성을 이어간 이충호는 강렬한 명암대비를 통해 웹에서 오히려 그래픽노블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월야환담>, <테러맨> 등을 통해 부분 컬러라는 색다른 색채감을 선보였던 고진호 역시 출판만화 시절과는 구분된 그림체로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 고진호 작가 <테러맨>


그러니 살아남은 이들의 경쟁력은 출판만화든 웹툰이든 결국 그림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다만, 그 수단을 사용하고 이해하는 작가와 독자의 시선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매체가 달라짐에 따라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출판만화 시장이 망한다고 해서 만화가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걱정보다는 차라리 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라는 윤태호의 이야기는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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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