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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의 탄생 : 만화 마케터의 굿즈 제작 일대기

정년이부터 하네되까지, 실제로 굿즈를 만들기 위해 조력하는 마케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2021-08-19 김수현

“웹툰 팬들에겐 종이책도 굿즈” 얼마 전 만화편집부의 편집장님으로부터 공유 받은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듣거나, 느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단순 굿즈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고가 담긴 책인데, 웹툰 연재를 뚝딱 옮기는 것만이 절대 아닌데…’라며 속상해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내게 종이책이 소중한 것처럼, 웹툰 팬들에겐 굿즈가 그 이상의 존재일지 모른다. 오히려 종이책도 굿즈만큼 갖고 싶은 무엇이 되었으니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선택받은 건 틀림없으니 말이다. 


무료 공개된 연재분과 쿠키 결제로 한 번에 볼 수 있는 웹툰을 한 권 한 권 손꼽아 기다려 단행본으로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다. ‘소장’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싶게, 더 나아가 갖고 싶고 내 책장에 간직하게 싶게 만드는 것이 임무인 마케터에겐 반가운 일이다. 굿즈를 만들 때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책에도 적용해볼까? 기획 단계부터 책과 굿즈를 하나의 상품으로 묶어서 준비해볼까? 굿즈에 대한 단서를 책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 늘 그래왔듯 책은 책으로만, 굿즈는 굿즈로만 여겼던 생각의 방향을 살짝 틀어보면 펼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진다. 종이책이든, 굿즈든 기꺼이 구매하고 간직하려는 독자들의 순수한 그 마음 자체에 집중하면 된다. 내가 이 웹툰의 팬이라면, 갖고 싶을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굿즈를 샀더니 책이 왔다.’는 독자들 사이의 밈을 농담으로만 여길 수 없지 않을까? 적어도 ‘만화’에서만큼은 그렇다. 


1. 굿즈 제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만화책을 파는 마케터에게 굿즈란 퇴사 전까지 쭉 함께 가는 런닝메이트나 다름없다. 굿즈 구상부터 제작, 배포까지 수없이 거듭하다보면 나만의 루틴과 함께 작지만 강한 노하우가 생긴다. 굿즈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일대기를 거치는지 나의 경험을 공유해본다. 


1) 원고 검토와 품목 결정: 무엇을 만들 것인가

편집자는 출간 예정작의 원고 검토를 요청하며, 책에 대한 중요한 소스나 포인트를 짚어준다. 특히, 굿즈 제작에 사용 가능한 일러스트나 굿즈용 일러스트 작업 가부는 절대 잊지 않는다. 작품에 대해 훨씬 잘 파악하고 있는 편집자가 먼저 품목을 제안하기도 한다. 마케터는 편집자가 준 정보와 원고에 기반해 심사숙고에 돌입한다. 작품의 세계관과 연관 짓거나 작품 속 소재를 활용한다면 품목 결정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연관 품목을 떠올릴만한 연결고리가 없거나 일러스트 소재가 한정적일 때는 잔머리를 가동시켜야만 한다. 

우선, 주위를 둘러본다. 나와 동료들의 책상 위에 무엇이 있나. 굿즈 샘플을 모아두는 박스와 책장도 뒤적거린다. 이전에 반응이 좋았던 굿즈를 다시 떠올려본다. 여기서 막히면, 시즌 상품(계절/기념일/신학기/유행 제품)이나 무난한 지류(책갈피/엽서/스티커/노트)로 가닥을 잡아본다. 그럼에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면, 온라인 서점 이벤트 카테고리에서 타 출판사에서 최근에 제작한 것들을 참고한다. 굿즈 제작자들의 SNS 계정이나 텐바이텐, 29CM, 원모어백 등 참고할만한 사이트를 염탐한다. (즐겨찾기 등록은 필수!)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와 사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제작 기간과 난이도, 예상 단가까지 동시에 필터링하는 것은 덤. 특별한 이슈가 있거나 예상 판매 부수가 큰 책은 온라인 서점별로 달리 굿즈를 제작하는 경우를 감안해 가능한 여러 가지의 품목을 리스트업 해두면 좋다.


2) 제작 업체 확보: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품목을 결정하고 나면 어떤 업체에 제작을 맡길지 알아봐야 한다. 마케팅팀 내에서 자주 거래하는 업체 리스트가 족보처럼 전해 내려오거나, 알음알음 묻고 알려주는 일이 많지만 백지 상태일 때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000 제작 업체, 000 주문 제작, 000 커스텀 제작…다양한 검색 결과를 얻기 위해 검색어를 다르게 넣어보면 좋다. 그렇다면, 수많은 업체 가운데 어느 곳과 손잡아야 할까? 고민이 된다면 3가지 기준으로 걸러보자. 

첫 번째, 제작 사례. 업체에서 사이트 내 올려둔 제작 포트폴리오를 훑어보자. 포트폴리오가 없는 쪽보다는 있는 쪽을 택한다. 일일이 문의해보지 않아도 될 만큼 자세한 제작 사양이나 구체적인 가이드, 여기에 리뷰까지 확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두 번째, 피드백. 업체와 우리는 제작 기간, 단가, 사양, 디자인 작업, 발송까지 서로 묻고 답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쳐 아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 번 재촉하고 집착해야만 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패스. 제작 과정 내내 잘 되고 있는지, 내가 정말 이 굿즈를 무사히 받을 수 있는지 전전긍긍 마음을 졸여야 한다. 제작 전에 간단한 문의만 넣어 봐도 소통에 무리가 없는 곳인지 파악할 수 있다. 

세 번째, 직감(?). 제작 업체 서칭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업체 사이트만 들어가도 직감적으로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래, 여기야…. 굿즈 제작을 반복하며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직감이 틀린 적도 없지 않았다. 웬만하면 첫 번째, 두 번째 기준에 힘껏 의존하자. 


3) 디자인 작업과 제작: 어떻게 만들 것인가

품목, 업체를 결정하고 나면 디자인에 돌입한다. 제품의 특징을 감안해 사용할 일러스트를 택한다. 대부분 표지 이미지나 본문 일러스트를 활용하지만 저자에게 품목에 맞는 일러스트를 새로 의뢰하는 일도 있다. 굿즈만을 위한 미공개 특별 일러스트인데다 품목과 딱 맞는 그림이라 반응이 매우 좋다. 다만, 굿즈용 일러스트 작업에 적극적인 저자도 있고, 시간상의 이유 등으로 어려운 저자도 있기에, 어디까지나 협조를 구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의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의뢰할 때는 디자인 가이드 파일(=칼선 파일)이 따로 있는지, 어떤 그림을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재질과 사양을 가졌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어야 한다. 제작 업체와 파일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N차 수정의 지옥에 갇히지 않으려면 디자인 데이터 작업에 필요한 가이드를 최대한 자세히 파악해두어야 한다. 디자이너와 업체 사이에서 마케터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몇 번을 반복하다보면 그 전엔 전혀 몰랐던 생경한 디자인‧제작 용어에 어느새 익숙해져있다. 


4) 포장과 사진 촬영: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제작이 완료되면 포장에 돌입한다. OPP 봉투나 박스에 넣고, 사은품 식별을 위한 바코드 스티커를 붙인다. 완제품 그대로 포장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포장지 내에 넣을 배경지나, 겉면에 붙일 스티커를 따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포장 부자재 제작에 사용하지 못한 일러스트를 활용하면 담당자의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사소하지만 포장까지 이어지는 정성스런 디테일이 완성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걸 늘 느낀다. 

포장이 완료되면 온라인 서점 물류에 굿즈를 보내고, 이벤트 페이지와 배너 제작에 쓸 사진 촬영을 한다. 이때, 굿즈 제작만큼이나 중요한 게 촬영이다. 정성들여 만든 굿즈를 잘 찍기까지 한다면? 반응은 그 이상일 것이다. 빛나는 자연광의 행운이 없을 땐 최대한 깔끔한 색지나 천을 배경으로 둔다. 엽서와 필기구, 파우치와 화장품 등 굿즈와 연관성 있는 소품을 잘 챙긴다. 때론 근처 카페나 공원으로 장소를 바꾸어본다. 굿즈 단독컷, 소품을 활용한 연출컷, 사용자가 등장하는 사용컷, 이벤트 페이지 및 배너에 쓰도록 누끼를 따기 쉽게끔 깔끔하게 찍은 컷도 빠져선 안 된다. 다양하게, 최대한 많이 찍어둬야 귀중한 베스트컷을 건지기 쉽다. 


5) 독자 피드백 체크: 다음을 위한 준비

온라인 서점 이벤트를 오픈하고, 만화 편집부의 SNS 채널에 굿즈 소개를 하고나면 그때부터 며칠간은 내내 독자들의 반응 염탐에 돌입한다. 틈 날 때마다 트위터 검색창에 [도서 제목] [사은품 품목] [도서 제목 + 품목 + 아 진짜/너무] 등을 검색해본다. 굿즈 구상부터 제작, 포장, 입고, 이벤트 오픈까지 긴 여정이지만 독자들의 생생한 반응을 마주하면 힘듦은 사라지고, 해냈다는 후련함과 잔잔한 뿌듯함이 남는다. 합리적인 지적은 받아들이고, 충분한 칭찬에는 기뻐한다.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된다는 부담감에 때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건져 올리는 건 독자와 편집자의 반응과 응원이다. 대충 아무거나 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을 계속 다지게 만든다.


2. 실제 사례로 보는 굿즈의 세계

마케터로 일한지 3년, 만화를 담당하게 된 지 고작 2년째지만 원고를 쓰며 그간 만들어온 것들을 대충 세어보니 100가지는 훌쩍 넘는듯하다. 실수나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자신있게 언급할 수 있는 좋은 사례들도 쌓였다. 그 중 세 권의 책으로 문학동네 만화 마케팅팀이 만든 굿즈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1) 굿즈를 빼고 논할 수 없는 책, 『정년이』 


△ <정년이> 단행본. 문학동네 제공

굿즈에 대해 할 말이 가장 많은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책이다.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사례를 가장 많이 남긴 책. 그에 대한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실감나게 느낀 책.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사례를 가져왔다. 


-등장인물의 매력과 존재감을 살린 굿즈-

1권 출간 당시, 특별 부록으로 초판에 넣을 굿즈를 준비하던 때였다. 주인공이 인기를 독점하는 작품이 아니었기에 여러 인물들을 함께, 색다르게 담고 싶었다. 작품 속에서는 ‘국극’이라는 공동의 과제로 치열하게 노력하는 성숙한 모습이지만 정년, 영서, 주란이 2020년에 와있다면 어떨까? 평범한 학생들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에 ‘인생네컷’ 책갈피를 떠올렸다. 작고, 얇아 책에 쉽게 끼울 수 있는데다 그 또래 학생들에게 인기였다. 등장인물들의 복장도 그에 맞게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몬 작가님께 등장인물들을 오늘날 10대 학생들로 그려달라는 요청을 했다.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일러스트로 굿즈를 완성했고, 1020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2권에서도 기세를 이어 도앵, 옥경, 혜랑을 중심으로 한 컬러 배경 컨셉의 ‘언니들의 증명사진 책갈피’를 만들었다.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은 또래의 독자들이 지금 어떤 모습이며, 어떤 것을 소비하고, 즐겨하는지를 연결 지었던 시도가 잘 맞았다.  


△ <정년이>의 굿즈들. 문학동네 제공

가장 최근에 출간한 3권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다. 교보문고에서 오픈할 굿즈 품목을 결정하지 못해 난감하던 차에 작가님이 주신 표지 B컷이 눈에 들어왔다. 도앵이의 다른 모습이 담긴 표지 시안으로 어나더커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가볍게 던진 의견을 담당 편집자가 덥썩 물어 또 하나의 엄청난 굿즈로 완성시켰다. 단순히 표지 그림만 다른 것이 아니라 제목은 『도앵이』로, 책 날개엔 도앵이의 프로필을 넣어 ‘도앵이’의 존재감으로 꽉 채워냈다. 


-작품의 세계관을 반영한 굿즈-

『정년이』 굿즈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작품의 세계관을 굿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에게 중요한 매개가 되는 물건, ‘국극’이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 1권 굿즈 중 하나였던 ‘종이 인형 놀이’는 정년, 주란을 소재로 국극 단복과 평상복, 인생네컷에 쓰인 오늘날의 의상이 담겨 있었다. 국극과 인물의 특징을 살린 데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템 선정도 좋았다. 

2권에서 정년이 부용에게 빌려주고, 부용이 정년에게 돌려준 손수건. 정년과 부용의 관계성을 표현하고, 상징하는 ‘그 손수건’을 작품 속에 등장한 모습 그대로 옮겨왔다. 두 인물이 가진 서사에 몰입한 팬들을 더욱 ‘과몰입’ 하게 만든다는 독자들의 실감나는 리뷰가 쏟아졌다. 단순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물건을 옮긴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담긴 서사를 재현한 것이다. 


2) 압도적인 작화 그 자체로 강력한 책, 『극락왕생』


△ <극락왕생> 단행본. 문학동네 제공

이야기도, 작화도 가득 찬 이 책은 표지만 보아도 금세 압도된다. 살아 움직이는 듯 묵직하고 입체적인 이미지에 화려하고 다채로운 컬러까지. 본문은 흑백만화임에도 개성 넘치는 표지와 챕터마다 삽입된 컬러 일러스트 덕분에 굿즈라면 어떤 것이든 반응이 좋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이상을 남기거나 받았던 것들이 있었다. 


-『극락왕생』이라면 누구나 떠올렸을법한 이것-

사실, 무얼 만들던 다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치밀하게 고민할 게 아니라 직관을 믿어보기로 했다. 먼 길 돌아가지 않고 누구나 떠올렸을법한 걸 선보이는 것. 극락왕생 > 불교 >관음보살 > 비나이다 > 향 >인센스 스틱…? 너무 뻔한 걸까? 잠시 주춤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뻔해야할 것 같았다. 기대했던 무언가가 짠-하고 나타났을 때의 반가움을 가늠해보면 예상치 못한 것이 주는 신선함만큼이나 짜릿할 것이다. 게다가 연꽃 위에 올라탄 자언이가 그려진 케이스라니. 마치 이 세상 어디선가 『극락왕생』의 관음보살이 피우고 있을 것만 같지 않나. 


△ 클래식한 매력의 <극락왕생> 굿즈들. 문학동네 제공.

-예상치 못한 의외의 선전, Classic is the Best- 

『극락왕생』 1권에는 챕터 사이마다 웹툰 연재분에는 없던 컬러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었다. 미공개 일러스트를 이렇게나 많이? 활용할 소스가 많다는 생각에 든든했지만 표지 이미지나 제목 타이포를 위주로 쓰게 되었고,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품목을 결정하지 못한 한 곳의 온라인 서점의 특전으로 미공개 일러스트를 하나씩 소장할 수 있는 엽서 세트를 준비했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수많은 굿즈 사이에서 어쩌면 무색무취같은 평범한 엽서 세트는 예상 밖으로 엄청난 선전을 펼쳤다. 엽서 세트를 특전으로 한 온라인 서점의 예상 판매량을 적어도 5배 이상은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때론, 정공법이 통하는 법이다.


3) 소장 욕구 100%, 초호화 특별판의 탄생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단행본. 문학동네 제공.

특별판의 존재와 인기를 실감한 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어느 날 공주가 되어버렸다』 초호화 특별판을 발견하고서부터였다. 이어 점차 다양한 책들이 특별판으로 신간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문학동네 만화에서는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가 첫 타자였다. 웹툰 팬덤의 규모나 탄탄한 작화, 다양한 소재까지 특별판 도서로 제격이었다. 책과 굿즈가 하나 된 특별판 제작을 위해 책을 만드는 편집자와 굿즈를 만드는 마케터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을 맞추었다. 담당 편집자가 주축이 되어 작품의 세계관, 인물, 소재와 연계한 품목들로 큰 틀을 만들었고, 세세한 구성이나 가격 설정, 제작 방식, 판매, CS까지 전반적인 모든 과정을 함께 긴밀히 소통하며 진행해야 했다.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만들어진 2개의 특별판은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험난했던 제작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을 풀어본다.


-특별판 제작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 

주인공 메데이아와 프시케에 대한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이 아이돌 팬덤의 모습과 닮아있었기에 특별판 자체를 일종의 아이돌 굿즈와 같이 접근했다. 실제 아이돌 굿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품목들을 적극 참고했다. 

책갈피, 엽서세트와 같은 기본적인 구성을 챙기고, 아름다운 작화와 핵심 인물들의 존재감을 명확히 살릴 수 있는 일러스트 보드와 아크릴 스탠드를 넣었다. 작품 내용이나 단행본 외전에 등장하는 소재를 활용했던 초대장 카드와 주인공의 초상화, 주인공들이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설정으로 만든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 별책부록까지 너무 넘치지도 않게,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조화로운 구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만, 각기 다른 여러 가지의 품목을 한꺼번에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반적인 굿즈 제작 수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량 생산이다보니 단가 책정을 위해 여러 버전의 사양으로 견적을 받고 또 받아야 했다. 구성품들의 시안도 여러 가지라 제작 직전까지 편집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확인에 확인을 반복해야 했다. 혹시나 빠진 게 있으면 어쩌나, 제작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나 담당 편집자와 두 손을 맞잡고 기대감과 불안감을 넘나들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

첫 번째 특별판을 무사히 출간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던 그 때,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맞닥뜨렸다. 아크릴 스탠드 조립이 되지 않는다는 CS 문의가 갑작스레 밀려들었던 것. 배송 중에 생긴 파손이나 종종 발견되는 불량품, 구성품 누락 등 미리 예상하고 차분히 대비해두었던 내용에는 전혀 없던 것이었다. 


△ 부러지지 않을까 싶었던 아크릴 스탠드와 굿즈. 문학동네 제공

아크릴 스탠드와 받침대가 끼워지는 부분이 단단히 고정될 수 있도록 다소 꽉 맞게끔 제작이 되어 이거 부러지는 거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꽉 눌러야 끼울 수 있었다. 소중한 메데이아 아크릴 스탠드를 차마 힘껏 세게 누를 수 없었던 독자들로부터 조립이 불가하다는 문의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의로 들어오는 모든 아크릴 스탠드를 일일이 회수할 수 없었기에 급히 조립 가이드 영상을 촬영해 SNS에 업로드했다. 그럼에도 조립 불가 건으로 접수된 회수품들은 대부분이 조립이 가능한 제품이었다. 편집부와 마케터가 직접 스탠드를 받침대에 조립한 상태로 다시 보내드리며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 이렇게 조립법을 유튜브에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문학동네 제공.

첫 번째 특별판에서 겪은 여러 시행착오를 되새기며 두 번째 특별판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2권 버전의 아크릴 스탠드 조립 영상을 미리 준비하고, 아크릴 스탠드 포장 배경지에 QR 코드로 연결했다. 조립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때, QR 코드로 접속해 조립 영상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조립 불가와 관련한 CS는 놀랍게도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더불어, 두 번째 특별판에는 CS 접수 안내지를 함께 동봉했다. 공식 접수 메일을 만들어 CS 문의 건이 여러 채널을 통해 산발적으로 퍼지지 않도록 접수 채널을 단일화했다. 게다가 한 번의 문의로, 한 번에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CS 접수에 대한 가이드와 양식을 구체적으로 안내했다. 덕분인지 첫 번째 특별판 때와 비교해보면 훨씬 체계적으로 문의사항이나 CS 접수 건들을 잘 응대하고, 처리해나갈 수 있었다.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를 통해 경험한 두 번의 특별판 제작 및 판매로 많은 것들을 체득했다. 이로써 또 다른 새로운 책의 특별판도 얼마든지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무언갈 준비하고 있다. 

 

3. 마치며: 굿즈는 혼자 만들 수 없다

원고 청탁을 전해 받았던 때가 문득 떠오른다. 과연 내가 잘 얘기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 글에서 사례로 언급한 모든 것들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나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창작한 작가, 편집자만의 시선에서 좋은 포인트를 짚어주는 편집자,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실행에 옮기며 함께 시너지를 내는 마케터, 상상을 실제로 구현시켜주는 디자이너, 현장에서 땀흘리며 제품을 만들어주시는 제작업체, 때론 열렬한 반응으로, 때론 쓴 소리로 맞아주는 독자 여러분까지. 모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덕분에 다양한 사례를 남기고, 이렇게 한 편의 글로도 묶을 수 있었다. 대충, 아무거나 하려는 마음을 늘 경계하며 지금처럼 지루할 새 없이 현장을 마구 뛰어다니는 마케터로 잘 지내고 싶다.  




김수현 (문학동네 기획마케팅부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