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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공유하라 : 플랫폼의 역할은 여기서부터

매쉬업(Mashup)이 늘어나고 있는 IT 업계, 웹툰계는 어떨까? 웹툰 플랫폼이 데이터를 공유해야 할 필요성과 현실을 짚어본다.

2021-09-30 하희철


데이터를 공유하라 : 플랫폼의 역할은 여기서부터


연결, 파생, 확대… 매쉬업!

기술의 발전이나 사회적인 이슈 등으로 새로운 시장이 생기면 시장을 선도하는 플랫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시장을 개척해 업계를 선도하는, 바로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플랫폼이 있을 것이다. 그곳을 이용한 적이 있든, 해본 적이 없든 플랫폼의 이름을 알고 그곳에서 정확히 어떤 것을 제공하는지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그 플랫폼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 분야의 서비스를 이용할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그 플랫폼을 찾을 것이니까. 이렇듯 플랫폼의 힘은 알게 모르게,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의 생활 깊숙한 곳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나아가, 이미 우리의 생활에서 플랫폼이 공공재처럼 여겨지게 됐다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시장도 생기기 마련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파생된 자동차 수리, 타이어 교체 산업이 단적인 사례다. 이런 파생 시장은 다시 주류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는 선순환 효과를 낳는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이런 파생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외부 데이터나 기능들을 결합한 서비스를 ‘매쉬업(Mashup)’이라고 한다. 

매쉬업이 늘어나는 것을 시장이 성숙해진 증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특히 하루아침에 상전벽해가 이뤄지는 IT업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비스의 생사 주기가 빠르기 때문에, ‘버티는’ 시기인 데스밸리(Death Valley, 초기 자금 조달이나 시장 진입의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서 살아남아 시장에 안착하는 플랫폼이 적기 때문에, 파생 시장까지 생기는 사례는 더욱 적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웹툰 시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콘텐츠와 IT가 긴밀하게 결합된 웹툰 시장은 크고 작은 플랫폼들이 선두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두 IT 공룡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웹툰 서비스를 독립시켰고, 양강체제가 구축됐다. 두 플랫폼은 2차 IP 시장과 글로벌 진출 등 전방위에서 활약하며 웹툰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투자에서 오는 적자 폭도 감소하면서 안정적인 이익이 창출되는 시장 성숙기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그럼 이제 웹툰에서도 매쉬업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 기대감이 앞서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가장 큰 문제는 주류 플랫폼에서의 데이터가 외부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랫폼이 데이터를 공유하면 어떻게 될까?

데이터는 우리가 인터넷으로 이용하는 서비스의 모든 것이자 본질이다. 모든 서비스는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생성하고 주고받으며 생활한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소비된다.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거나 포털에서 검색 하나만 하더라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인터넷을 타고 이동한다. 이렇게 생겨난 데이터는 다양한 서비스를 탄생시킨다. 특히 최근에는 많은 업체들이 내외부적으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로 필요한 데이터만 골라서 주고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결국, 예전보다 데이터를 더 쉽고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는 말이다. API는 소프트웨어의 개발 및 통합에 사용되는 정의 및 프로토콜이다. 주로 개발의 유연성을 위해 이용된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데이터를 주고받는 메뉴판이자 창구 역할을 한다. 이 API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주로 토큰)을 받으면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그릇(JSON)을 받아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IT서비스 업체는 이용자 편의를 위해 API를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고, 일부는 데이터 마켓에서 자사 데이터를 판매하기도 한다. 다양한 매쉬업 서비스도 API로 플랫폼의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 공유는 플랫폼의 입장에서 득이 될 것이 많다. 이미 타 콘텐츠 업계에서는 데이터 공유가 활발하다. OTT(Over the Top) 업계에서는 최근 ‘와치파티(Watch Party)’ 솔루션이 파생됐다. 와치파티는 OTT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함께 보면서 채팅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기존에는 혼자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면 이제는 지인이나 가족, 또는 취향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게임은 데이터 공유 사례가 유서 깊다. 게임 전적 사이트인 오피지지(op.gg)와 플로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게임사에서 유저의 전적 데이터를 가져와 그 정보를 제공한다. 내 전적을 아이디만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어 서비스 론칭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다양한 게임 관련 파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심지어 역으로 게임단도 운영하고 있다. 플랫폼의 데이터가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파생 산업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긍정적인 사례인 셈이다. 콘텐츠는 아니지만 커머스 쪽에서도 데이터 공유가 활발하다. 쿠팡은 이미 자사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의 데이터를 API로 공유하고 있다. 예전에는 웹페이지의 크롤링 등을 통한 데이터 검색 서비스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API를 통한 데이터를 확보해 다양한 정보 기반의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 쿠팡이나 스마트스토어 등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판매업자가 쉽고 간편하게 판매 상품을 분석할 수 있다. 쿠팡은 자사 상품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양질의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업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 와치파티 서비스 '스크리나'

데이터 공유는 표준화의 초석

표준화는 산업의 주류화를 이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상품들은 모두 표준화가 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USB이다. USB 이전에는 데이터 케이블이나 충전 단자가 모두 달랐다. 이로 인해 많은 하드웨어 리소스가 낭비되고 환경 오염에도 영향을 미치자 국제표준기구에서 이를 강제로 표준화한 것이 USB이다. EU는 최근 ‘충전 단자를 USB-C로 통일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컴퓨터뿐 아니라 TV, 프린터 등 다양한 가전 기기에서도 USB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이로 인해 가전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우리는 몸소 체감하고 있다. 만약 USB의 표준화가 없었다면? 여전히 우리는 기기마다 다른 단자를 구매하고 뭔가를 연결할 때마다 바꿔 끼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표준화는 이용자의 간편함을 불러옴과 동시에 시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 '네이버웹툰'의 작품 소개 페이지. 작품 소개 정보가 독자적인 포맷이다.

그렇다면 표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바로 기업의 데이터 공유에서 비롯된다. 기구나 학계와 긴밀하게 협업하고 표준화의 근거와 기준을 마련한다. 경우에 따라 국제표준기구(ISO)의 인증을 받기도 하지만 웹서비스 쪽에서는 XML 기반 웹 서비스를 위한 표준기술은 W3C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거나 개발 언어에 따른 비영리조직에서 기술 표준화를 담당하기도 한다.

웹툰은 표준화가 잘 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플랫폼의 경쟁으로 저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기술적인 경쟁이 어쩔 수 없다면, 질적으로는 어떨까? 플랫폼마다 작품 분량, 댓글 시스템 등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어떤 곳은 매화 80컷 이상인 반면 어떤 곳은 60컷 이상인 경우도 있다. 어떤 곳은 쿠키를 구워야 하고 어떤 곳은 코인을 사야 한다. 이런 것이야 ‘플랫폼의 특성’에 가깝지만, 작품 정보, 줄거리, 태그 등 공통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정보들 역시 플랫폼마다 천차만별이다. 웹툰이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안에 있는 시스템이나 규격은 모두 다르다.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이지만 가파른 성장과 성숙기를 앞둔 시점에, 작품 정보에 대한 표준화 논의가 없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지점이다.


역할론으로는 담지 못할 플랫폼의 사정

데이터 공유는 플랫폼의 입장에서 많은 부담감이 뒤따른다. 그런 점에서 플랫폼의 책임을 강조하는 역할론으로는 데이터 공유의 명분이 부족한 점이 있다. 플랫폼은 기업이 일련의 비즈니스 활동으로 이익을 내기 위한 서비스 창구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플랫폼의 궁극적인 목적이 ‘시장점유’에 있다고 강조한다. 시장점유율을 높여 독식하는 구조가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이기 때문에 수많은 이해관계와 이익 추구시스템으로 얽혀 있어 데이터를 쉽게 공개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찬성하고 누군가는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큰 만큼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보안 문제이다. 데이터를 공개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의 접근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즉, 서버의 접근을 허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해킹 등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 전혀 나지 않는 보안에 더 많은 리소스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또 마케팅에서 경쟁자에게 중요한 대외비를 공개하게 될 수도 있다. 가령 유저의 행동 데이터가 공개된다면 경쟁사는 그것을 토대로 마케팅 전략을 따라 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예기치 못한, 상상도 못 했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데이터 공유를 강요하기보다, 장르, 작가명 등의 웹툰 작품 정보 목록과 같은 표준화가 가능한 API 제공과 함께 웹툰의 기술 표준화를 위한 비경쟁 요소 데이터를 오픈하기 위한 학계와의 협업 등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노력이 뒷받침되어 데이터 공유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