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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플랫폼은 프로슈머 문화를 품을 수 있을까

기술 발전으로 더 이상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웹툰의 소비자들은 프로슈머로 거듭날 수 있을까?

2021-09-30 노모뎀



웹툰 플랫폼은 프로슈머 문화를 품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웹툰을 즐겨본다. 특히 인기 웹툰은 연재분마다 달려있는 댓글의 조회수와 찬성, 반대 숫자가 대단해서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큼지막한 소식들에 견줄 정도의 규모다. 네이버웹툰 월요일 종합 인기순 1위로 개제된 ‘참교육’ 의 경우 2021년 10월 24일 무료 공개 회차의 BEST 댓글이 동의 숫자 55523을 얻고 있다.

 


이렇듯 오늘날 웹툰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호응을 수치화해서 보여준다. 때로는 그 숫자가 작품의 연재나 플랫폼의 연재 방식, 혹은 구독 옵션에 영향를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댓글 시스템이 작가와 작품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소비자가 소비자의 위치에만 머무르도록 표현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1972년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과 배링턴 네빗(Barrington Nevitt)은 에서 현대의 생산공정이 전산 자동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친화적인 도구들로 개선된다면 소비자도 생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1980년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고도로 발달된 시장과 기업의 대량생산 제품 맞춤이 소비자(Counsumer)이면서 곧 생산자(Producer)인 '프로슈머'(Prosumer)를 도출해낼 것이라 예견했다. 한 세월 지난 2006년 <부의 미래>를 통해 프로슈머 경제는 새로운 '비화폐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저술했다.

2006년 이전까지 토플러나 맥루한이 내다본 프로슈머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제품 대량생산 기술 발전으로 생산기술에 과도한 지식과 노동력이 불필요하게 된다면, 소비자가 생산공정에 끼어들어 생산자와의 경계가 사라질 수 있다는 개념에 가까웠다.그러나 문화예술 작품들이 디지털 콘텐츠화되고, 그 콘텐츠들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는 21세기에는 새로운 의미로서의 '프로슈머 시대'가 가능해졌다. 생산과 공정의 기술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가능하다면 소비자와 생산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 게임 속의 게임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로블록스는 대표적인 ‘프로슈머’들의 플랫폼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인터넷은 방대한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확장이었다. 그 시기 이후의 20년 간 인터넷은 웹이라는 보급망을 통해 교육과 문화의 배포와 전시는 물론, 거대 미디어를 통해 2차원 시청각을 넘어서 가상현실의 무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도구로 공유됐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들은 발전과 개선을 거듭하며 '개발자들의 프로슈머화'를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웹 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문화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보여주고 있는 웹툰이라면 그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어쩌면 남다른 프로슈머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웹툰 전성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만화는 소위 '2차 창작'으로 불리는 , 독자들에 의한 만화 작품의 재창작 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있어왔다. 만화는 인쇄 기술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발전과 함께 일상 속 친숙한 기호문화상품으로 거듭났다. 진지하게 자본을 투여하고 수익을 추구하는 생산활동이 아닌 팬덤 활동의 표현으로 불거진 2차창작문화는 어느 순간부터 자체 시장의 가능성도 보여주며 작은 규모의 전시회는 물론 대형 마켓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왔다.

 


△ 대표적인 2차 창작 마켓 중 하나인 일본의 ‘코미케’ 조감도

웹툰 전성기인 현재에도 동인지 마켓이나 전시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도 오픈 플랫폼이나 구독시스템, 커뮤니티 등을 통해 누구나 자기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름의 디지털화를 거쳐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자기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과 별개로, 웹툰 플랫폼의 댓글과 별점으로만 머무르고 있는 독자들의 잠재력은 기술 발전과 가능성에 비해 단순 소비자로만 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웹툰을 선보이는 방식이 스크롤되는 이미지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코드 영역 사이에 소비자와 생산자, 즉 독자와 작가의 경계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장치를 내장시킬 수 있다면, 댓글 수와 찬성 수로만 표현되는 독자들의 갈망이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구독과 창작의 발현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 AR, VR 기술이 다른 세계로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한때 영상 시장의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던 DVD는 디스크 하나에 다양한 언어와 영상을 압축해 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본 영상물 외에도 제작자의 코멘터리를 추가하거나, 국가 코드 선택에 따라 해당 국가에 맞는 자막과 더빙을 재생시키는 것 등이 가능했다. 그런 과거의 기술들은 현재의 스트리밍 미디어 시대에 와서는 오히려 시청자가 스스로 자막을 만들어 해당 채널에 공유하거나, 제작자만 선보일 수 있었던 코멘터리의 영역을 시청자의 영역으로 통합해 제작자와 시청자의 영역을 프로슈머화하는 사례로 변형 계승되고 있다.

웹툰 플랫폼의 구조 또한 지금의 단순한 이미지 스크롤을 보다 사용자의 조작이 개별정의화 될 수 있도록 개방되거나, 댓글과 별점이 텍스트 입력과 버튼 클릭에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한 시청각 환경으로 변이할 수 있다면, 웹툰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또 다른 형태의 프로슈머 문화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런 시도는 최상단에 있는 인기 웹툰보다는 막 연재가 시작됐거나, 모종의 독자 테러(?)로 순위권 아래에 놓여있는 연재작에 먼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해당 웹툰들의 댓글들에 나타나는 독자들의 적극성만큼은 이미 프로슈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