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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트 스피글먼 부부, 아동만화 전문 레이블 ‘툰북스’ 설립

미국에서 어린이용 만화 전문 레이블 ‘툰북스(TOON BOOKS)가 내년 초부터 활동을 예고하여 출판계에 화제를 끌고 있다. 그냥 어린이 대상 만화책 레이블이 무슨 화제 거리인가 궁금할 수 있겠지만, 레이블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이 레이블의 총괄편집인은 프랑소와즈 물리, 그리고 시리즈 자문역은 아트 스피글먼이다. 이 부부는..

2007-12-13 김낙호

미국에서 어린이용 만화 전문 레이블 ‘툰북스(TOON BOOKS)가 내년 초부터 활동을 예고하여 출판계에 화제를 끌고 있다. 그냥 어린이 대상 만화책 레이블이 무슨 화제 거리인가 궁금할 수 있겠지만, 레이블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이 레이블의 총괄편집인은 프랑소와즈 물리, 그리고 시리즈 자문역은 아트 스피글먼이다. 이 부부는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집요하게 발굴하고 포장하여 결국 문화예술계의 주류와 연결시키는 성과를 이루어낸 주인공들로, 전설적 잡지 RAW를 탄생시켰던 이들이다. 그 중 스피글먼은 논픽션 만화 『쥐』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던 것으로도 더욱 유명하다. 그런데 과격한 실험정신, 심오한 인간사에 대한 통찰 같은 이미지가 강한 이들이 도대체 무슨 어린이 만화책이란 말인가.

툰북스 사이트
툰북스 사이트 ☞ http://toon-books.com/about.html)

툰북스의 기원이 되는 것은 한국에도 『호롱불』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바 있는 만화모음집 Little Lit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컨셉은 미국 작가주의 만화계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는 다양한 작가들을 모아서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책이라는 컨셉으로 만화 단편 작품을 받아서 묶어낸 것이었다. 결과는 어린이들에게는 순수한 재미를, 어른들에게는 또한 그들만의 또다른 재미거리가 담겨있는 수준 높은 모음집이었고 비평과 대중성 양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프로젝트가 계속되어 몇 편의 모음집이 추후 발간되었다. 물론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진행한 것은 바로 물리와 스피글먼이었다.

툰북스는 이 시리즈에서 시작된 ‘품격 있는 아동만화’라는 컨셉을 아예 출판 레이블로 확장시킨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이 레이블은 4살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며 아이가 스스로 재미를 느끼며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든 작품은 오리지널 스토리이며, 교육자들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언어와 스토리 등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도록 검토한다든지, 유명 아동작가와 만화가들, 신인들을 고루 활용한다는 전략 역시 같이 발표되어 있다. 발표는 원래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부모가 읽어주는 책과 함께,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서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양질의 만화책을 만들겠다는 품질에 대한 포부로 가득하다. 어찌 보면 고급 그림동화책 시장이 차지하고 있는 부문(사실 이쪽 작품군에도 만화표현을 중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즉 부모가 실제로 품질을 보고 따져가며 골라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영역에, 좀 더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질 좋은 만화책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학습에 도움이 되니까” 같은 무언가를 학습시켜야겠다는 섣부른 강요도 없고, 혹은 “만화이기는 하지만, 애들이 좋아하는 오락적 자극을 사줄 필요가 있으니까” 같은 식의 아동 오락에 대한 지배 욕심도 없다. 오히려 지극히 정공법으로, 바로 만화이기 때문에 독서로서 우수한 경험을 주며 또 더 좋은 독서습관을 길러준다는 논리로 간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잘 만든 아동만화를 시작하고, 이미 뉴욕 중심의 고급 문화예술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스타 제작자들이 확고한 보증을 하고 있는 식이다. 이들은 이미 RAW를 통해서 성인들의 세상에서 만화의 위상을 수직 상승시킨 것에 일조했고, 이제 이 레이블로 막 독서를 시작하려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다시 같은 일에 도전하는 셈이다. 내년 봄에 실제 책이 나와봐야 자세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설득력은 충분한 스펙인 셈이다. 미국보다 더욱 만화가 일상적으로 널리 향유되고 있는 한국이라면, 이러한 사례를 보고 참조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