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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발을 미리 가다!

어느새 또다시, 한 해가 가버리고 있다. 이런 서글픔을 제대로 느낄 틈도 없이, 연말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상술과 함께 다가온다. 샹젤리제에선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백화점 앞은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인형과 장식물들이 넘치며, 심지어 성인들을 위한 클럽 <리도>에서도 올해는 어린이들을 위한 산타할아버지 쇼가 벌어지고 있다.

2001-12-01 한상정


하워드 크루즈(Howard Cruse) 작품

어느새 또다시, 한 해가 가버리고 있다. 이런 서글픔을 제대로 느낄 틈도 없이, 연말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상술과 함께 다가온다. 샹젤리제에선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백화점 앞은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인형과 장식물들이 넘치며, 심지어 성인들을 위한 클럽 <리도>에서도 올해는 어린이들을 위한 산타할아버지 쇼가 벌어지고 있다.

이 화려한 연말의 한 모퉁이에서, 12월 4일, 이제 거의 한달 앞으로 다가온 제 29회, 내년의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발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도 하듯이 <알파 아트(Alph art> 수상 후보작들이 발표되었다. 매해 1월에 열리는 이 국제적 규모의 페스티발은 최소한 유럽에서는 최대의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대략 20만명의 관람객, 3,000명 가량의 관계자들, 그 중 600명 가량의 만화가들이 모여들며, 지난 한 해 동안의 만화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게끔 한다.

알파아트 상

<알파 아트>는 유럽만화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즉 땅땅(TinTin)의 에르제(Herg )의 미완성작품의 이름이다. 물론 그의 사후에 다른 작가에 의해 완성된 만화책과 동일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에르제의 미완성작을 계속 이어받는다라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상의 이름이 아닐까? 올해는 페스티발을 점점 더 나은 길로 이끄려고 하는 의도가 이 사전 후보작 설정으로 뒷받침되는 듯 하다. 왜냐하면 지금껏 페스티발의 수상작 선정위원회는 전문가들이라고 말하긴 약간 어려웠기 때문이다. 설사 만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단지 몇 달 사이에 일년에 발행되는 모든 만화책을 다 읽기는 거의 불가능 한 일.

따라서 이번 4일에 발표된 수상후보작들은 기자들, 시나리오 작가들, 소설가, 만화가 등, 비록 대중적으로 읽혀지지 않는 만화라고 하더라도 관심있게 볼 수 있는 심사위원들에 의해서 선발되었다. 이 후보작들의 리스트들로 보건대, 이 시도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듯 하다. 일단은 아주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서 발간된 만화책들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최고의 앨범부문, 최고의 시나리오부문, 최고의 대사 부문, 최고의 처녀작부문, 최고의 뎃생 부문으로 각 부문마다 7개의 작품씩이 선정되어있다. 페스티발이 끝날 즈음에 이 중에서 수상작들이 발표될 것이다. 유럽만의 페스티발이라는 한계점을 뛰어넘기 위한 페스티발의 노력은 어떠한 <국제>란 이름을 달고 있는 행사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년에 일본이 초청국이었던 데 이어, 올해의 초청국은 미국으로 정해졌다.


마이크 미뇰라
(Mike Mignola)
<헬 보이(Hell boy)>


앙굴렘에서, 일시적인 행사로 끝나기 쉬운 이 행사를 뒤에서 떡하니 뒷받침 해주고 있는 프랑스 국립 만화이미지 연구소(Centre National de la BandeDessin e et lImage)에서는 이번 페스티발의 초청국에 맞추어서 2개의 중요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코믹스, 독립작가 새대(Comics : g n ration ind pendants)전>과 <미국만화의 거장전(M itres de la bande dessin am ricaine)>. 작년의 <유럽만화의 거장들>에 이은 시리즈라고나 할까. 90년대 이전까지의 미국만화는 캐릭터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즉 <슈퍼맨>, <배트맨> 이라는 캐릭터가 시장점유율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 <슈퍼맨>을 "누가 그렸냐"는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고유의 특이한 상황, 즉 출판사가 캐릭터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작가들은 그 캐릭터와 시나리오에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불과했던 오랜 전통 때문일 것이다. 즉, 작가들이 출판사의 횡포에 항의하다가 잘리거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바뀐다고 해도, 만화는 계속해서 아무런 문제없이 출판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 한 만화책의 판매율은 서서히 "어느 작가의 작품인가"에 따라서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가 작가들에 의해 유도된 경향이 더 크기 때문인지, 이 전시들에선 이러한 작가들을 소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코믹스, 독립작가 새대>에 전시될 작가들 중, 어떤 이들은 자기 작품을 독자적으로 출판하고 있으며, 다른 이들은 자신의 작품에 관한 권리를 스스로 보유하고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주간지나 월간지에 자신이 직접 자기의 작품들을 싣기도 한다.


제프 스미스(Jeff Smith)
의 <본(Bone)>


이 전시회는 7개의 부문, <시나리오 세대>, <그래픽 세대> 등으로 구분되며 각기 3-4명의 유사한 경향의 작가의 작품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 중 꽤나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헬 보이>의 마이크 미뇰라(Mike Mignola), 질 톰슨(Jill Thomson), <지옥으로부터>의 알랭 무어(Alan Moore), <더 샌드맨(The Sendman)>시리즈의 닐 제만(Neil Gaiman), 의 제프 스미스(Jeff Smith), 하워드 크루즈(Howard Cruse), 케이트 나이트(Keith Knight), 톰 하트(Tom Hart), 디란 호록스(Dylan Horrocks), 로베르타 그레고리(Roberta Gregory), 죤 포르셀리노(John Porcellino) 등을 꼽을 수 있다. <미국만화의 거장전>은 역시 미국만화의 역사적인 이해에 중요한 인물들을 선정한 듯 하다. 근 1세기에 달하는 만화사를 자랑하는 미국은 아래와 같은 거장들을 탄생시켰다. 죠르쥬 해리만(Georges Herriman), 잭 커비(Jack Kirby), 윌 아이스너(Will Eisner), 로베르 크럼(Robert Crumb), 샤를르 슐츠(Charles M. Schulz), 할 포스터(Hal Foster), 알렉스 레이몽드(Alex Raymond), 스티브 디코(Steve Ditko), 월트 켈리(Walt Kelly). 그리고 그 이외에도 10여명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에 관한 기록이나 증언들이 이 전시회에 더 맛있는 양념을 쳐 줄거라고. 이 전시회는 페스티발이 끝난 이후에도 5월 2일까지 계속 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기획들, 아이들을 위한 아틀리에라든가, 아마츄어들을 위한 기획이라든가, 강연회, 마지막 날밤의 영화상영 등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올해의 이슈에 맞게 얼마나 위의 전시들이 잘 준비되어서 새로운 안목을 우리에게 부여해 줄 수 있을까가 아닐런지.
필진이미지

한상정

만화평론가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