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의 글에 이어, 일본의 만화와 그 주변문화가 프랑스에 얼마만큼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작은 살롱을 방문하도록 하자. 올해로 2번째를 맞이하는 이 살롱은, 원래는 격년제를 예정했으나 첫 번째는 2000년에 열렸었다는 것으로 보아서 그다지 엄격함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1회와는 틀리게 엄청나게 멋진 장소를 빌렸다. 건축관련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들른다고 하는, 문외자라고 하더라도 뭔가 멋있는 것만 보면 감동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파리의 라 빌레뜨(La villette). 이 행사는 <상업고급학교>라는 곳에서 조직하는데, 사실은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 아마도 지하철에서 광고라도 보지 않았다면 알고 찾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광고에서 애니메이션 상영작으로 <메트로 폴리스>와 <아발론>이 붙어있어서, 아, 아주 형편없진 않나보다...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설사 별로 건질만 한 것이 없다고 실망하게 되더라도 라 빌레트의 탁 터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말을 훌륭히 보내는 것이니까 라는 마음도 없진 않았다.
<헌터x헌터>의 코스튬 플레이
그러나 의외로 꽤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큰 실망을 하진 않았다. 주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환타지 문학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 살롱은 아마츄어 팬진들, 관련 출판사나 게임업체들이 부스들을 차지하면서 현재의 유행을 아주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어있다. 올해의 테마는 <스트림 펑크(Stream Punk)>이며 선진적인 테크놀러지와 19세기의 분위기를 함께 어울려 내는 것이다.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정신없기도 하고, 또 무슨 기모노를 어떻게 입는지를 보여준다든가, 일본차를 내놓고 대접을 한다든가, 뭐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문화에 광분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인가...하며 툴툴거리면서 돌아보는데, 앗, 왠 <전국노래자랑>? 설마...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의 가수화가 실행된 나라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관객과 웃음을 자아나게 하는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뭐라고 해야되나, 여하간 아마츄어들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도 이 <전국노래자랑>의 구성은 나름대로 아주 알찬 편이다. 일러스트, 가라오케, 코스튬 플레이, 퀴즈, 환타지 문학, 성우, 아마츄어 게이머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배경설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분야마다 인터넷상에서 미리 규칙을 숙지하고 신청한 다음, 종목에 따라서 미리 예선전을 치르기도 하고 또는 살롱의 3일이라는 기간 안에 행해지기도 한다
갑자기 분장하고 나타난
우에다야스유키
일러스트는 역시 올해의 주제를 표현해내는 것으로 제한된다. 살롱 기간동안에 전시되고 수상자가 선정된다. 코스튬 플레이는 미리 신청을 해둔 다음 살롱기간에 대중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만큼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아닌것처럼 보였다. 일단은 참가한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은 듯. 물론 다리가 기니까, 옷만 잘 받쳐주면...효과는 훨씬 더 좋은 듯 했지만 말이다. 가라오케 역시 이젠 하나의 용어로 굳어진 듯. 역시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는 것으로 자신이 마음대로 선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제시된 리스트들 중에서 골라서 부를 수 있다. 행사기간 중에 예선을 치르고 마지막날 본선을 치른다. 퀴즈는 각기 팀을 이루어서 애니메이션, 만화, 미국 코믹스, 그리고 게임분야로 나눠서 상대방과 겨루게 된다. 성우는 지금껏 프랑스에서 방영된 적이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한해서 3분 가량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것이다. 이 성우의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프랑스에서 불어로 더빙된 애니메이션을 보면,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의 질을 떨어트리는데 확고한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배경설치는 10줄 가량의 시나리오, 즉 자신이 가상한 하나의 세계, 인물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서 입체물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다. 미리 제출해서 행사 기간 내내 전시가 되며 마지막날에 수상자가 발표된다. 게이머는 제1회 유럽 콘솔 트루니(EUROPEAN CONSOLE TOURNEY) 에 내보낼 프랑스의 게이머를 선정하기 위한 경쟁전이다. 동일한 이름의 회사가 이 행사를 지원한다. 환상문학에 대한 콩쿠르도 있다. 여기서 선정된 3 작품에 한해선 <프랑스 스와(France Soir; 일간지)>에서 출판을 해준다고 한다. 물론 이런 행사들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협찬사가 있기 때문이다.
기모노 입기
이 살롱의 목적은 말 그대로 이 상상적인 부분을 애호하는 대중들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끔 하는 것이다. 관련업체들과 팬진들을 둘러보면, 일본만화번역 출판사, 일본만화 전문 잡지사, 그리고 역시 일본만화로 무장한 팬진들이 대 성황이다. 물론 프랑스의 독립작가들도 함께 참여했으나, 잘 눈에 뛰진 았았다. 오히려 관심이 모아진 것은 역시 외국에서 초청된 작가들. 이번엔 <센티멜탈 레인>으로 유명해진 캐릭터 디자이너인 아베 요시토시(ABE Yoshitoshi)와 프로덕션의 우에다 야스유키(UEDA Yasuyuki)가 초청되었다. 우에다 야스유키는 갑자기 자신이 코스튬 플레이처럼 복장을 갖추고 나와서 지속적으로 관객을 웃겨가면서 카메라의 촛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 가운데 위치한 장소에선 시간에 맞춰서 여러가지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건버스터>, <빅오>. <키, 금속인형>. <청의 6호>같은 근래작들이 백빽이 들어찬 관객들의 호응에 부응했다. 그리고 이런 행사마다 빠지지 않는 심포지움. 이번 주제는 <데생 작가가 영화에 관련되어 일할때>. 여기선 장 끌로드 메지에르(Jean Claude MEZIERES)와 필립 카자(Philippe CAZA)가 참여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장편영화의 배경과 장식에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들로, 전자는 뤽 베송(Luc BESSON)의 <제 5원소>에서 그리고 후자는 르네 랄루(Rene LALOUX)의 강다하(Gandahar)에서 이런 작업을 했다. 역시 영화에선 일정정도 제한을 많이 당하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배경이나 장식, 등장인물의 복장 등이며 어떤 감독과 일하게 되느냐에 따라서 역할이 다양해진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전체 관망
뭐, 어쨋건 한번쯤은 돌아볼만한 행사. 재미있는 것은 관객층이 너무도 다양하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어린애들에서부터 노인들까지, 글쎄, 어떤 <신기함>이나 <낯설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원체 모든 <살롱>을 다니기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그들의 시선을 통해 본 일본문화와 접하는 이상한 기분을 맛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