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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의 탄생, 장편서사의 과정, 그리고 세계 정복

1999년 세기말. 만화 역사에 크게 한 획을 긋는 작품이 하나 등장한다. ‘닌자액션무협활극’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만화. 만화가 ‘키시모토 마사시(岸本?史, きしもとまさし : 1974~)’의 메이저 장편 데뷔작인 가 그 주인공이다.

2015-09-25 김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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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나루토와 소년만화
닌자란 무엇인가?
닌자만화 연대기
나루토와 세계정복
보루토로 이어지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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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 진화하는 소년만화
1999년 세기말. 만화 역사에 크게 한 획을 긋는 작품이 하나 등장한다.
‘닌자액션무협활극’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만화. 만화가 ‘키시모토 마사시(岸本?史, きしもとまさし : 1974~)’의 메이저 장편 데뷔작인 가 그 주인공이다.

나루토(만화책) 2.jpg

이 만화는 소년만화의 산실인 <주간 소년점프>에서 1999년 43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해 2014년 50호까지 총 16년간 633화, 72권의 단행본이 발행되었으며 1억 1천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2000년대 점프 3대 만화로 칭송 받으며 전설이 되었다. 일본에는 2000년대 이후 ‘원나블’이라 불리는 3대 만화가 있는데 그 만화가 바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며 꾸준히 사랑 받아온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라는 3대 소년만화다. 이 3가지 만화는 소년점프가 수십 년간 쌓아놓은 소년만화의 성공공식이 철저히 적용되어 소년들에게 또는 소년이었던 어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열정을 불러 일으켰으며 다양한 만화에 영향을 주며 소년만화계의 거대한 기둥 역할을 하게 된다.

원작자인 키시모토 마사시는 1974년 11월 8 일생으로 나루토를 그리기 전까지는 단지 닌자 만화의 광팬이었다. 만화가를 꿈꾸던 시절 그는 소년점프에서 1993년 연재되었던 만화 의 광팬이었는데 <나루토>를 그리게 된 계기 자체가 이 <닌쿠>에서부터 시작한다. 작가의 인터뷰에도 언급이 되어있지만 <닌쿠>는 <나루토>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닌쿠>는 일본을 베이스로 한 가공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닌자 활극으로 닌자들이 현대복을 입는다는 점, 소대 단위로 특수부대가 결성되어 미션을 따르고 완수하는 점, 소년만화답지 않게 굉장히 시니컬한 전개를 이어가는 점 등 이후에 등장하는 다른 닌자 만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은혼>의 소라치 히데아키도 <닌쿠>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힘) 불행히도 <닌쿠>는 연재될 당시 마니아들에게는 사랑 받았으나 대중들에게는 크게 인정 받지 못하였고,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관에 비해 독특한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전개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결국 <닌쿠>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딱 일 년간 연재를 하다가 휴재를 빙자한 퇴출을 당하게 된다. 다행히 <나루토>의 키시모토 마사시와 다른 작가들의 추천으로 인해 미완이었던 작품은 2005년 소년점프의 자매지인 <울트라점프>에서 <닌쿠 세컨드 스테이지>를 연재하며 2011년 완결하게 된다. 

닌쿠2.jpg
 
키시모토 마사시는 사실 닌자 만화에 빠지기 전까지 사무라이에 빠져 있었으나 일본 <소년점프>의 또 다른 전설인 <바람의 검심(원제: るろうに?心-루로우니 켄신)>에 압도되어 그 방향을 닌자 쪽으로 돌리게 된다. <나루토>를 그리기 전 단편 데뷔작인 ‘카라쿠리(원제 からくり-꼭두각시 인형)’라는 만화는 강화 인조인간들의 사투를 그린 활극이었다. 여기에는 그의 취향이 다양하게 반영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단편 데뷔작에서 그의 천재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키시모토 마사시는 대학교 2학년 시절 <소년점프>에 호프☆스텝상에 이 만화를 응모하게 되었는데 단지 입선이 목표였던 작품 제출은 심사위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결국 대상인 신인상(상금 50만 엔)을 타게 된다. 신인상은 선발과 동시에 점프에 그 만화가 게재되며 이후에 새로운 단편을 점프에 연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데뷔하는 만화가들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하지만 키시모토 마사시는 이 시절을 지옥같이 보내게 된다.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닌자활극 만화를 빈번히 연재하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신인상을 탔던 ‘카라쿠리’와 비슷한 레퍼토리만 이어졌기에 편집진에게 모두 퇴짜를 받고 트라우마를 겪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위인전이 그렇듯 키시모토 마사시는 여기에서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노력으로 채우며 극복하게 된다. 단편연재 실패 후 그는 만화의 기본 구성을 철저히 파고들기 위해 영화관과 만화방, 독서실을 전전하며 소설의 스토리텔링 작법을 연구하고 영화의 카메라 워크와 인체구조를 다시금 연마하며 각도의 묘사법들을 죽도록 파고들어 연구하였다. 절차탁마와 같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며 황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이 트라우마를 겪었던 당시 잡았던 콘셉트와 다양한 캐릭터들은 이후 <나루토>에 반영되어 <나루토>의 스토리텔링은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결국 이러한 탄탄한 과정은 <나루토>를 메가 히트로 이어지게 만든다.

카라쿠리.png

이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키시모토의 부모님은 아들이 만화가의 꿈을 접을까봐 적극적으로 포기하지 않게 밀어주었다는 점이다. 키시모토의 부모님은 당시 돈을 벌지 못하는 백수였던 키시모토 마사시와 쌍둥이 형제인 키시모토 세이시(동생도 만화가임)가 만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용돈을 주고 적극 응원(후원)해주었다. 거기에 부합하듯 열혈 노력파인 키시모토 형제는 <나루토>와 <666 사탄>을 각각 <소년점프>에 연재하며 일본 만화에 길이 남을 역사를 쓰게 된다.

원나블 중 <나루토>는 원피스와는 다른 전개를 보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실 소년만화는 ‘정도배틀(正道 Battle)’이라는 공식이 존재하는데 이 정도배틀은 만화 속에서 주인공이 상대방 악당과 싸움을 하며 점점 성장하는 데 배경이 있다. 이 정도배틀은 2000년 이전 <소년점프>에 연재되었던  <드래곤 볼>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천재적인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자신의 만화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어떻게 성장하며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며 이후 소년만화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나 <드래곤 볼>의 정도배틀(正道 Battle) 요소는 그 기반에 ‘우정’, ‘승리’,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소년점프>의 슬로건이기도 함)를 극적으로 배치하여 만화의 재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전설이 되었다. 그런데 <나루토>는 기존의 정도배틀과 조금 그 방향을 달리한다. 분명 주인공은 우정을 따지고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지만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며 그 스토리텔링 방식이 정도(正道)의 반대인 사도(邪道)에도 발을 담그기 시작(사실 3대 만화 중 나머지 한편인 <블리치>는 더욱 사도에 가깝다)하였고 세계관은 단지 정의가 이긴다는 공식이 아니라 악에도 그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루토>는 총체적으로 타인의 사회적,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고 진정한 사랑을 통해 세계의 평화를 이루는 거대한 이야기이지만 전형적인 소년만화 플롯을 따르고 있는 한편 약자의 소외, 부조리에 의한 고통이라는 무거운 주제도 같이 다루고 있다. 나루토는 활발하고 긍정적이면서 장난기가 많은 소년으로 정의로운 성격을 지닌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이지만 저주받은 힘인 ‘인주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멸시를 받는 약자로 배척 받는다. 또한 닌자치고는 특출한 면이 없는 사고뭉치 문제아에 열등생이기도 하다. 그런 나루토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리고 멸시와 차별 속에서 뒤틀려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마주하며 그런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를 바꾸려고 마음 먹게 되고 그만큼 성장해간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강적들을 차례차례 쓰러트리는 전형적인 소년만화 형식을 따르면서도 단지 승리하는 것만이 아닌, 마냥 강하고 사악해 보이는 적에게도 비극적인 사연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사회문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란 주제까지 시사한다. 바로 그 점이 기존의 다른 소년만화들과 <나루토>의 눈에 띄는 차이이기도 하다. 

<나루토>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악역은 사랑과 상반되는 증오의 연쇄에 의해 타락한다. 전체를 위한 대의(大義)를 실행하기 위해 개인의 고통을 등한시하던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엔 암울한 증오의 연쇄만이 아니라 따듯한 사랑의 연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이루카’가 나루토가 가진 인주력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준 덕분에 나루토는 악당으로 등장했던 ‘미수’, ‘가아라’, ‘오비토’, ‘나가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어마어마한 증오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게 된다. <나루토>에 등장하는 다른 악역들 역시 단순히 지구 정복이나 악의 실행을 위한 파괴를 일삼는 것이 아니다. 나루토가 가진 사회적인 차별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악당들은 각자의 비극적인 또는 불평등한 스토리텔링을 가지며 극의 흐름을 극적으로 구사한다. 

그 중 ‘휴우가 네지’는 천재라고 불리지만 분가 출신이기 때문에 신분적으로 종가를 뛰어넘을 수 없는 가문의 속박에 고통 받고 있었다. 나루토의 대표적인 라이벌인 ‘우치하 사스케’는 형인 ‘우치하 이타치’가 부모님과 우치하일족 전체를 학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복수를 삶의 일념으로 바친 소년이었다. ‘가아라’는 어머니를 제물로 삼은 인주력으로 태어나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며 자랐고, 유일하게 믿었던 ‘야샤마루’에게 배신당하고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살해당할 뻔한 경험을 하며 자신만을 사랑하는 괴물이란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삐뚤어져간다. ‘페인’과 ‘코난’은 강대국이었던 불의 나라 나뭇잎 마을에게 핍박 받고 고통 받던 약소국 출신이다. 유년기에 입은 정신적 상처는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쓸어간 나뭇잎 마을과 같은 강대국들을 향한 증오를 키워 나뭇잎 마을을 위협한다. 

‘페인전(戰)’을 기점으로 나타난 <나루토>의 이해와 공감을 통한 평화의 논점은 점차 만화 전체를 꿰뚫게 된다. ‘지라이야’는 어릴 적 ‘나가토’ 일행을 돌봐주며 큰 영향을 준 스승이지만, 그조차 그들이 입은 상처, 그리고 반복되는 증오와 복수의 연쇄를 풀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체념하지 않고 제자 나루토에게 그가 가진 평화정신을 물려주면서 나루토가 나가토의 마음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게 해준다. 나가토에게 나루토의 설득이 통한 것도 지라이야가 나가토에게 남긴 평화정신 덕분이었다. 그리고 나루토는 나가토와의 대화를 기점으로 진정한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나루토>에는 ‘증오의 연쇄작용을 청산한다’란 주제가 확고해진다. 그리고 ‘사스케’가 역대 호카케(닌자들의 수장)들에게 “닌자와 마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국가와 국민이란 무엇인가’라는 국가론적인 규모로 주제를 확장한다. 소년만화에서 보기 힘든 거대한 담론이 담긴 주제의식인 것이다. 

또한 <나루토>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만화 안에서 재현하며 일본에서 강조하였던 희생의 미덕에 대해서도 역설적으로 반박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조직된 ‘닌자연합군’은 평화를 명목으로 삼지만 사실상 세상을 위협하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증오로 뭉친 것이고, 목적이 달성된 후엔 거꾸로 와해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비꼬기도 한다. 등장인물 중 ‘나미카제 미나토’는 닌자사회의 시스템 문제를 언급하며 뿌리 깊은 문제점에 대해 한탄한다. 이렇듯 ‘증오의 연쇄를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면서도 세상의 바뀌지 않는 병폐와 모순도 같이 언급하며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 또한 강조한다. 

초기 <나루토>의 “옛날에 괴물 구미호가 있었다.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였다. 그 꼬리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산이 무너지고 해일이 덮쳤으니, 사람들은 고민 끝에 닌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 중 한 닌자가 괴물 구미호를 봉인하지만, 목숨을 잃고 만다. 그 닌자의 이름은 4대 호카게라고 한다.”로 시작한 짧은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세상의 정의와 부조리, 이치를 이야기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소년만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정점을 찍는 이유가 된다. 1993년 만화를 읽던 소년들은 나루토와 함께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바로 만화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소년만화는 단지 만화의 주인공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만화를 보고 있는 독자들의 성장과도 함께한다. 나루토는 기존에 보았던 다른 소년만화에 비해 더 많은 사회적인 이슈를 담는 한편 소년만화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단지 액션이 재미있고 활극의 배경이 재미있는 것을 넘어 어른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세계관이 바로 <나루토>에 존재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감정과 닌자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술법과 마법 같은 닌자 비술들의 싸움은 덤이다. 72권의 대 서사시가 부담된다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막연히 서양 영화에 신비하게 등장했던 닌자들의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만화가 바로 여기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닌자란 무엇인가?
소년만화에서 <나루토>가 닌자 만화의 정점으로 인정받았지만 <나루토>에서 보이는 다양한 닌자들의 모습은 단지 원작자인 키시모토 마사시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닌자는 지금까지 다양한 미디어에서 다소 일관적인 모습으로 보였는데 <나루토>에 이르러 더욱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태초에 새로운 것이 없듯 닌자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나루토>에 이르러 급발전한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키시모토 마사시가 많은 부분 오마주 했던 <닌쿠>를 비롯하여 게임에서 보아왔던 ‘시노비’까지 닌자는 끊임없이 진화되어 왔다. 그렇다면 닌자가 등장하는 만화엔 어떤 것이 있었고 다양한 미디어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알아보자.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닌자와 다르게 닌자(忍者, にんじゃ)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서기 1100년대)부터 존재해온 첩보원, 또는 첩보조직을 가리키는 총체적인 명칭이다. 전쟁 시 사무라이가 할 수 없는 첩보, 절도, 암살, 파괴, 후방 교란 등의 각종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하던 직업이 바로 닌자다. 닌자는 시노비(忍)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아마도 시노비는 30대가 넘은 분들이 게임 속 캐릭터로 더 많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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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는 오리엔탈리즘의 표본이라 불릴 만큼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스토리텔링이 덧붙여진 캐릭터다. 닌자는 중세부터 존재해온 첩보원의 일종으로 보면 편하다. 재패니즈판타지의 대명사격으로 알려져 서양에선 와패니즈(Western+Japanease의 합성어)에 굉장한 영향을 끼쳤지만 현실에선 ‘자객’에 가깝다. 닌자에 대해 알려진 단편적인 자료들을 모아서 추론해 보면 그 개념이 더 간추려지는데 닌자는 일본의 막부(정부) 및 다이묘(지역 단체장)를 위해서 일한 일부를 제외하면 주로 정보수집 및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정보 중개인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어느 나라에나 있었던 스파이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다. 닌자 중 남자는 타지카라(タヂカラ. 사내 남(男)을 타(田) + 치카라(力)로 파자해서 만든 단어), 여성은 쿠노이치(くのいち. 계집녀(女)를 쿠(く)+노(ノ)+이치(一)로 파자해서 만든 단어)라고 한다. 두 개의 단어가 익숙하다면 당신은 생각보다 많이 일본 문화를 접한 사람이다. ‘타지카라’는 몰라도 ‘쿠노이치’를 안다면 더더욱 그렇다. 영화와 게임 속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닌자의 모습은 첩보원을 넘어 인술을 초능력처럼 화려하게 사용하는 모습으로 많이 각인되어 있는데 이는 근대 일본 무협 장르를 탄탄하게 구축해낸 야마다 후타로(山田風太郞:1922~2001)의 작품들이 크게 한 몫을 했다. 예를 들어, 만화/애니메이션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의 원작 소설인 <코우가인법첩(甲賀忍法帖)>은 야마다 후타로의 1958년도 작품이며, 미디어 소재로서의 닌자의 인기를 늘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또 이 작품을 통해 등장한 여성 닌자는 후일 <쿠노이치 인법첩(く ノ一忍法帖)>이라는 독립된 작품을 통해 최초로 ‘쿠노이치’라는 이름이 주어지게 된다. 즉, 기존의 닌자를 위와 같은 작품들에서 인용한 콘셉트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자 시바 료타로의 소설 <올빼미의 성>과 같은 작품들이 이를 받아들여 보다 세련되게 서술해냄으로써 조금 더 세련된 ‘닌자’라는 새로운 개념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후 일본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과정에서 사무라이와 함께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닌자는 왠지 굉장히 강한 1인 특수부대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위와 같은 과장된 닌자의 인식이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닌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분분한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시되는 것은 아마도 처음에 간자로 쓰이던 현지 첩자 시스템이 점차 발달하면서 특수 첩자 혹은 특수부대 비슷하게 발달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먹고 살기 힘든 농민들이 닌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심리학, 건설학, 과학, 격투술 등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어야 하므로 현지 첩자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반박이 간혹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이러한 반박은 그 자체로 닌자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애초에 ‘닌자’가 심리학이니 건설학이니 과학이니 약학 등등의 다양한 학문을 익혀야 한다든지, 부단한 훈련을 통해 체술을 익힌다든지 하는 이런 주장 자체가 확인 불가능한 상상에 기반한 내용도 많다. ‘구자인법’ 같은 수인(손가락으로 특수한 모양을 만듦)을 맺어 기괴한 도술을 부리는 인술 같은 건 더 언급할 것도 없고 다만 그 시절 일본 무인들의 사상은 싸움에서 명예롭게 싸우고 죽어 이름을 남기는 것이었던 것에 반해, 닌자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정체를 절대로 알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반적인 관점에서 닌자들의 그러한 행동 자체가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분신술이나 각종 도법들도 실은 그 주문서가 아직 남아있는데, 실은 그 작성자들도 이게 진짜로 효용이 있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작전에 투입시키는 대원들을 위한 일종의 사기 고취용 주문서였다고 전한다. 마치 총알이 피해 가는 부적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참고로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鬪者皆陣列在煎)”라는 주문으로 잘 알려진 ‘구자인법’이라든가 <나루토>에서 나올 법한 각종 수인들도 실제하고 있지만 이는 집중력을 고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이다. 결국 말하자면 <나루토>에서 ‘나라 시카마루’가 손가락을 마주치면서 명상(혹은 작전을 짜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또한 닌자는 자연 발생한 직업의 관점으로서도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닌자는 소속된 조직이 있는 첩보원 이외에도 평민들 중에도 투잡을 뛴 사람 역시 있었던 것으로 예상해 볼 수도 있다. 즉, ‘전란 중의 영주가 닌자를 공급받으려 한다면 가장 좋은 소스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놀랍게도 거기에 걸맞은 가장 좋은 소스는 유민(流民)들이다. 일본은 정치적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전란이 빈번했고 이런 전란에서 가장 최하층인 농민은 쉽게 유리화되어 유민이 되었다. 이런 유민들은 지방의 영주들이 세를 불릴 목적으로 언제나 환영 받았다. 이 때문에 전란 중에 유민이야말로 가장 좋은 닌자를 공급받을 수 있는 리소스가 된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매체에서 자주 보게 되는 근육이 울룩불룩하며 나이스바디의 키 크고 잘생긴 미남미녀들은 절대 닌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대표적으로 닌자 가이덴의 류 하야부사). 유민 틈에 끼어 유민으로 가장하고 들어가야 할 닌자들이 절세미남미녀의 훈남훈녀들이라면 금세 눈에 띌 것이고, 임무 수행 대상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당장 심문 대상이 될 테니 말이다. 때문에 닌자는 되도록이면 안 튀는 인물 중에서도 고르고 게다가 근육이 붙은 몸은 의심의 대상(전통적으로 일본의 농민들이 체력 단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키가 작았음)이기 때문에 더더욱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닌자의 도구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이 많은데 봉건영주 시대의 일본에서는 평민이 지니는 물건조차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닌자는 우리의 생각처럼 특화된 최종결전병기인 007의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범용성 높은 일상병기인 본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과 같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정보를 빼오는 닌자의 경우는 특별하였는데 특히 ‘이가 닌자’나 ‘코가 닌자’가 유명했던 것은 이 정보를 추출하는 데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가나 코가 등의 유명한 닌자 집단의 보존된 거주시설에서 볼 수 있는 흔적에서 확인된 점은 그들이 일상부터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닌자의 조직은 운영하는 자들의 방침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딱히 공통되게 닌자라는 것들은 어찌어찌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즉, 애초에 닌자에 대한 기록 자체가 공개적으로 남은 기록이 많지 않은데, 그들이 무슨 오만가지 기술과 학문을 배우고 거기에 전투술까지 배운다는 그런 정보 자체가 대부분은 상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제한된 역사적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닌자의 모습은 막부나 특정 다이묘 밑에서 일한 인물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보통 현지인을 가장하여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팔아먹는 전형적인 ‘정보중개인’의 모습이고 이러한 정보의 수집 및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존재는 역사상 어느 지역에나 존재했기 때문에, 대체로 비교할 만한 시대적/환경적 요인들을 고려할 때 실제 닌자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살짝 추론할 만한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무협지에서 보아온 무공이 하늘을 가르고 강을 건너며 경천동지할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닌자의 모습 역시 과장된 모습이 대부분인 것이다. 많이 알려진 쿠노이치만 해도 현재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야마다 후타로라는 일본 역사 소설가가 창작해낸 단어라는 오해가 있을 만큼 그 진위가 분명치 않다. ‘만천집해’라는 고문서에서는 한자 ‘女’를 분리시킨 어원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일본 역사상 여성 닌자가 존재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닌자는 복면을 쓴 검은 복장으로 대표되는데 복면은 형태마다 다르다. 얼굴 가면 형 복면, 눈가면 형태의 복면, 입을 가리는 복면 등으로 되어 있으며 속에 철로 된 망사티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은 수리검(手裏劍: 십자, 봉 형태의 표창)과 쇄겸(鎖鎌: 사슬낫), 만력 쇄(萬力鎖 : 추가 달린 사슬무기), 바람총(독침을 입으로 통해 부는 총) 등을 다룰 뿐 아니라 독, 미혼향(迷混香: 마취제)을 사용하기도 한다. 닌자들의 규칙 중 하나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그래서 복면을 쓰고 다녔다. 또한 닌자들은 각종 특수한 공작활동을 하는 집단인 데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점 등의 요소 때문에 각종 창작물에 굉장히 많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소림사의 승려들처럼 닌자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소개되며 외화벌이에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일본에는 실제로 닌자 마을이 만들어졌으며 닌자를 관광상품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닌자 연대기
닌자 만화는 현재 다양한 캐릭터로 일본 만화 속에 등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말했던 <나루토>이며 일본 극화계의 김진명급 작가인 코이케 카즈오의 <바람의 닌자>와 닌자소설의 신기원을 이루었던 야마다 후타로 원작을 세가와 마사키가 만화로 옮긴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이 있다. 하지만 닌자의 콘텐츠가 일본에서 시작하였으나 일본에만 정착된 것은 아니다. 미국 만화인 <닌자 거북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와패니즈 콘텐츠이며, 한국의 일지매도 도술을 쓰고 있으나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 묘사된 모습은 닌자에 가깝다.

닌자 만화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더 다양한 만화가 쏟아지겠지만 일본에 존재한 다양한 닌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인 핫토리 한조의 일대기를 그린 <바람의 닌자>와 그를 모티브 삼아 그린 명랑만화 <꾸러기 닌자 토리(원제 忍者ハットリ くん- 닌자 핫토리 군)>를 보면 그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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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닌자(원제 半?の門-한조의 문)>는 어린 나이에 타국의 인질이 되어버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그림자가 된 닌자 ‘핫토리 한조’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주군의 명을 지키기 위해 발휘되는 닌자의 기술들이 한조의 손에서 펼쳐지며 날개를 펼치려는 영웅과 그의 그림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닌자의 대서사시를 극화체로 담고 있다. 그에 반해 <닌자 핫토리 군>은 만화 잡지 <소년>에서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코로코로 코믹과 텔레비군 소학관의 학년별 학습 잡지에서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연재되었다. <닌자 핫토리 군>은 원작자가 <도라에몽>을 그린 후지코 후지오A이다보니 줄거리나 전개 양상이 <도라에몽>을 연상시키지만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오랜 기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았다. 비슷한 명랑만화류에는 아마코 소베에 원작의 <닌자보이 란타로(원제忍たま?太?- 닌타마 란타로)>가 있는데 이 만화 역시 NHK를 통해 22째 초장기 방영되고 있다. 일본에 존재하는 다른 장기상영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듯 <닌자보이 란타로>는 1986년 아사히 초등학생 신문에서 하루 3p씩 연재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현재의 젊은이들도 좋아하는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이 만화는 성인팬 중 여성들의 인기가 더 대단한데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닌자활극이 여성에게까지 사랑 받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두 번째로 닌자 만화 중 볼 만한 만화는 세가와 마사키의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원제 : バジリスク ?甲賀忍法帖? バジリスク ?こうがにんぽうちょう?)>이다. 세가와 마사키는 ‘시노비(닌자)’를 만든 게임 제작사로 유명한 세가의 캐릭터 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터의 경력을 가진 작가다. 1997년 코단샤(講談社)의 만화잡지 <모닝>을 통해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을 보면 알겠지만 이 만화가의 만화들은 일본의 만화 중에서도 꽤 진보적인 측에 속한다. 세가와 마사키는 만화에 컴퓨터를 도입한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었는데 배경 혹은 사물을 CG로 처리하여 때론 정교하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해 내기로 유명하다. 2004년 대중에 공개된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은 1613년 도쿠가와 막부의 오고 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3대 쇼군의 책봉을 앞두고 연공서열에 따라 장남을 선택할지 아니면 야심가인 둘째 며느리의 차남을 선택할지 고심하던 중 이를 둘러싸고 내부적인 파벌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당시 ‘이가 닌자’와 ‘코가 닌자’의 격돌을 담고 있으며 원작자인 야마다 후타로가 묘사하였던 환상적인 인법(인술)의 표현이 일품이다. 이 만화는 만화책으로 인기를 끈 후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GONZO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또한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콘텐츠는 ‘나카마 유키에’와 ‘오다기리 조’ 주연의 ‘SINOBI(시노비)’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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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을 재미있게 본 분들께 추천드릴 만한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인 데즈카 오사무의 제자인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만든 <수병위인풍첩(원제: ?兵衛忍風帖-쥬베이인풍첩)>을 들 수 있다. 1993년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는 ‘무사 쥬베이’로 개봉하였는데 음습한 톤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가감 없는 칼부림 액션과 잔혹하면서도 에로한 묘사가 낭자한 것이 특징으로,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하드코어한 유혈 미학이 절정에 도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닌자가 아니지만 적으로 등장하는 악당들이 대부분 닌자로 묘사되어 닌자 만화의 계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딱히 줄거리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쥬베이가 귀문 8인조에 맞서 속도감 넘치게 선보이는 찬바라 액션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극의 진행 속도가 매우 밀도 높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덕분에 주인공은 극 중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개고생을 해댄다. 게다가 귀문 8조는 전부 인간이지만 후속작인 TVA ‘용보옥편’의 마인들보다 훨씬 강한 적이라서 더더욱 고생한다. (19금 장면이 많으니 성인분들만 보길 바란다.)

일본의 닌자 콘텐츠는 <나루토>에 와서야 드디어 기존의 콘셉트에서 자유로워진다. <나루토> 이후에 닌자들은 드디어 복면을 벗기 시작하였으며 세계로 뻗어나간 닌자 콘텐츠들은 더욱 다양하게 영화와 만화로 제작되어 다시 일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예로 한국의 가수인 비가 출연하였던 ‘닌자 어쌔신’이 대표적이다. ‘닌자 어쌔신’은 ‘매트릭스’의 감독인 워쇼스키 남매가 제작자로 참여하여 유명했는데 어둠을 뚫고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타고난 암살자인 닌자 집단에 관한 고전적인 오리엔탈리즘 요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어둡고 침침한 누아르 장르의 요소를 더했다. 어린아이를 선별하여 무술의 고수이자 암살자로 훈련시키는 수수께끼의 도장은 고전 닌자물의 전통적인 구조이며 양아버지의 손에 엄격하게 길들여지는 주인공의 가족형태는 닌자일파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일종의 기원전설이다. 여기에 닌자로 키워진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복수심을 추진력으로 닌자들에게 대적하고 유로폴의 수사까지 얽히면서 전혀 새로운 타입의 닌자 영화가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이미 본 사람들도 실망한 영화이고 감히 추천하기 힘들 정도로 닌자의 이미지가 과장되고 스토리텔링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단지 외국에서 닌자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보려면 이 영화를 꼭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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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콘텐츠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잡종 콘텐츠인 와패니즈는 현재 일본으로 역수출되어 또 다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닌자 슬레이어>라는 제목의 만화인데 <닌자 슬레이어>(Ninja Slayer)는 브래들리 본드(Bradley Bond)와 필립 닌자 모제즈(Philip Ninj@Morzez) 원작의 SF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간단하게 ‘인살(忍殺)’이라고도 부르며 서양에서 영어로 쓰여진 소설로 일본 번역팀이 일본어로 어설피 번역하여 트위터로 연재하다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정식 출판되었다. 이 콘텐츠는 한국으로 따지면 왈도체(번역기 어투)로 번역되어 더 인기를 끌었던 것인데 그 예를 보자면 이렇다. 

“Hello?! Might fine morning!” →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참담한 번역이지만 이러한 번역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해외에서 만들어진 닌자가 역수출되는 기현상을 만나게 된다. <닌자 슬레이어>는 근미래의 일본에서 네오 사이타마를 무대로 벌어지는 닌자들의 싸움을 그려낸 SF소설이다. 양덕(서양오타쿠)들이 흔히 갖고 있는 기묘한 닌자관에다, 영어에 무리해서 일본어를 끼워 넣은 듯한 기묘한 문장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어 원문도 살짝 맛이 가 있는 상태인데, 여기에 일본어 번역팀의 센스 넘치는 발번역이 더해져 일본에서 팬들을 중심으로 온갖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독특한 캐릭터와 사이버펑크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호평이며 현재는 출판을 넘어 만화로, 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며 더 다양한 인기를 얻고 있다. <나루토> 역시 위에서 언급한 화풍이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과 맞아 떨어져 일본 현지보다도 오히려 미국, 유럽 등 서양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그 인기에 대한 반증으로 다양한 코스프레(Costume Play)를 들 수 있다.


나루토와 세계 정복
이러한 다양한 시도는 미디어 믹스라고 불리는데 미디어 믹스(Media Mix)란 소설, 만화, 게임, 라이트노벨, 캐릭터 굿즈 등 여러 매체(미디어)를 동시에 기획하여 내놓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미디어 믹스는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닌자라는 존재는 과거 핑크무비라 불리는 다양한 성인 AV(성인영화)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콘텐츠였고 출판이 만화로 이어지고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고 애니메이션이 게임으로 이어지고 게임이 영화로 이어지는 콘텐츠 확장은 이미 일본에서 익히 보아오던 것이었다. 이런 미디어 믹스를 과거에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 One Source Multi Use)라 부르며 하나의 소스를 가지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을 말해왔다. ‘OSMU’란 원래는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여러 매체를 조합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현재는 전자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특히 일본의 마법소녀물이나 히어로물, 변신로봇물, 특촬물 등은 대부분 장난감 같은 관련 상품을 팔기 위해 만들거나 그 비중이 높기에 미디어 믹스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장르들이다. 일본에 다양한 상품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OSMU를 통한 미디어 믹스가 과거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OSMU의 대표적인 예로 포켓몬을 들 수 있다. 포켓몬은 전 세계적으로 250억 달러(25조 원)의 매출을 낸 일본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해 닌텐도의 게임 개발, 만화 제작, 광고 활용 등으로 파생 시너지를 키운 결과다. 더 대표적인 예로는 같은 소년지의 선배인 <드래곤 볼>을 들 수 있다. <드래곤 볼>은 만화로 시작해 라디오, TV에서 극장판까지 굉장히 많이 제작되었으며 캐릭터의 높은 인기는 팬시 상품부터 시작해 패션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콘텐츠 산업은 OSMU에 굉장히 강하다. 그 중심에는 만화가 있고 그 만화는 <소년점프>를 통해 발현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루토> 역시 OSMU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나루토>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OSMU를 해왔던 것일까? <나루토>의 미디어 믹스를 보면 그 과정과 방향성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만화 <나루토>는 앞서 이야기했듯 72권, 1억 1 천부라는 판매고를 올린 메가 히트급 콘텐츠다. 만화로 한참 인기를 끌던 2002년 TV도쿄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나루토 TVA(Television Animation)는 다양한 만화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던 ‘스튜디오 삐에로’가 총 650편을 제작/방영하며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원작에 충실한 TVA와는 별개로 원작에 살을 보태는 OVA(Original VideoAnimation)가 4기까지 제작되었으며 극장판으로도 1부 3편, 2부 6편, 3부 2편(1편이었으나 최근 나루토의 아들 보루토의 에피소드가 극장 상영됨) 총 11편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또한 <나루토>는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나루티밋 시리즈’, ‘격투 닌자대전 시리즈’, ‘배틀 스타디움 D.O.N (드래곤 볼과 원피스, 나루토 크로스오버)’가 발매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최근 일본 기업 중 남코반다이가 중국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것도 <나루토>의 OSMU를 통해 미디어믹스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남코반다이는 중국에서 텐센트와 온라인 게임 `나루토`를 공동 개발하면서 TV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면서 시너지를 쌓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온라인 게임을 홍보하는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남코반다이는 TV 애니메이션을 무료 방영하면서 이와 관련한 게임 외에도 완구, 의류 등 각종 라이선스 상품을 판매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미디어 믹스의 힘인 것이다. 

<나루토>의 미디어 믹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루토>는 일본에서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연극과 뮤지컬(‘Naruto Live Action’이라 불림)로 만들어져 대중에게 선보였는데 일본에서의 큰 성공에 힘입어 일본뿐만 아니라 마카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해외 공연도 이루어졌다. 아마도 해외의 <나루토> 인기를 감안하면 더 다양한 나라에서 올려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공은 <나루토>의 영화 제작에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싱크로율 높은 주인공들의 향연과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양한 마법 같은 인술들이 실사로 만들어지길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루토>의 영화화는 일본이 아닌 할리웃을 통해 이뤄질 것 같은데 킥애스, 헝거게임을 만든 ‘라이언 게이트’가 실사화를 위해 협상하고 있다고 한다.

장기간 미디어 노출은 또 다른 사업을 파생시킨다. 우리나라의 ‘둘리’나 현재 아이들의 무한사랑을 받고 있는 ‘뽀로로’의 수입은 전방위적이다. 우선 만화책이나 캐릭터가 대중적인 인기의 기반을 잡아주면 TV와 극장에서 방영/상영된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로 수출되어 거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게 되며 그 만화를 본 대중(아이들)은 공책, 팬시, 가방부터 시작해 모자, 옷 등의 패션으로까지 이어지며 다른 산업들을 부흥시키게 된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정적인 팬들의 사랑은 장난감과 음식 그리고 체험학습까지 파생시키며 미디어의 인기가 현실에 적극 반영되는 특이한 현상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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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재가 완결된 <나루토>를 보더라도 ‘나루토 전시회’가 지난 25일부터 도쿄 롯폰기(六本木) 힐스의 모리(森)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주간 소년점프>(슈에이샤=集英社)에서 15년에 걸쳐 연재된 인기 만화의 첫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는 <나루토>를 이해할 만한 장대한 세계관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 있었고 회장 밖에서는 롯폰기힐스와의 관광 연동 기획도 진행 되었다. 일본 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대히트작을 더 깊이 알고 즐길 수 있는 기회로써 원화의 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전체 700회 가운데 엄선한 인기 에피소드나 명장면 등 컬러 원화를 포함한 150여 점이 공개되었고 박력 있는 전투 묘사, 개성적인 캐릭터 등 인물 밑그림이나 공간을 표현하는 그림 솜씨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의 다채로운 붓놀림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원화를 바라보면서 이야기가 탄생하는 과정에 여러 가지 상상을 더해 보는 것도 전시회가 아니고서는 경험하기 힘든 즐길거리였다고 한다. 나루토와 라이벌 사스케의 최종 결전을 되돌아보는 영상과 키시모토 마사시가 연재 완결 후 작품에 대한 생각을 말한 새로운 인터뷰 영상도 전시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전시회를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전시도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독자에서 소비자, 소비자에서 체험자로 연결되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http://naruto-ten.com

<나루토>의 세계 정복은 오랫동안 차분하게, 느리지만 시기에 맞도록 신속하게 준비되고 차근차근 시작되었다. <드래곤 볼> 이후에 캐릭터 상품의 부재를 느꼈던 일본의 캐릭터 사업으로서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한 것이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사랑 받고 장기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의 탄생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에 있어 캐릭터 산업이 최근 살짝 주춤한 한국으로선 앞으로 보여지는 나루토의 미디어 믹스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보루토로 이어지는 전설
원나블이라 불리던 3대 만화의 전설 중 가장 일찍 전설을 마감한 것은 <나루토>였다. 하지만 그 아쉬움도 잠깐, 주인공이 조연으로 물러선 후속편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소년점프>의 메가 히트작인 <드래곤 볼>역시 몇 번씩 재연재되며 인기를 이어나갔으니 말이다. 처음 <나루토>의 에필로그처럼 등장하였던 나루토의 아들 ‘보루토’의 이야기는 만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제작발표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보루토>는 사실상 <나루토>의 후속 편에 해당하는데 여기엔 기존에 등장했던 등장인물들의 자식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즈마키 보루토’의 ‘보루토’는 볼트(Bolt)의 일본식 발음으로, 이름을 풀이하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 순직한 외당숙인 네지(네지는 일본어로 너트(Nut)의 의미)를 기리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보루토의 뒤를 몰래 쫓아다니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우치하 사스케’와 ‘사쿠라’ 사이에서 태어난 ‘우치하 사라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며 그들 대부분은 <나루토>에서 이어지는 캐릭터들이며 그들의 자녀들이다. 

또한 <보루토>에는 <드래곤 볼>의 오마주도 등장한다. 보루토의 스승은 아버지 나루토의 숙적이었던 사스케인데 그 이유인 즉슨 <드래곤 볼>의 열혈팬인 키시모토 마사시가 손오반과 피콜로 같은 사제 관계를 <나루토>의 세계관에서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 나이대에 <드래곤 볼>의 팬이 아닌 사람이 있겠냐만은) 또한 닌자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던 <나루토>에 있어서도 이러한 후속 편은 더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연재된 만화들 대부분이 세계관을 만들면서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에 허점들이 노출되는데 이러한 후속편은 그 빠진 고리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이전의 빈약한 이야기들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미디어 믹스에 있어서도 이러한 추가 캐릭터들은 사업성의 지속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우선 시리즈로 이어지던 극장판은 또다시 새로운 스토리로 만들어질 수 있으며, 3편까지 만들어졌던 게임인 ‘나루티밋’ 시리즈는 2016년 발매에 대해 게임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추가 캐릭터로 ‘우즈마키 보루토’와 ‘우치하 사라다’를 포함시킬 것임을 확정지었다. 게임의 진화와 더불어 게임 유저들은 더 다양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나루토>는 어쩌면 소년만화에 있어 꼭 등장해야 했던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 이미 어느 정도 루틴화되어 지루해져 가는 정도(正道)배틀 만화에 사도(邪道)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만화 스토리텔링을 더욱 확장시켰으며 <소년점프>의 슬로건인 우정, 노력, 승리라는 개념 역시 어디까지 진정성을 발휘하며 변주할 수 있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간혹 만화는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의 삶과 닮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루토의> 1부는 끊임없이 노력했던 만화가인 키시모토 마사시가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바라보며 노력과 열정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꿈꾸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크기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라도 노력만 하면 뒤집을 수 있는 세계였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며 키시모토 마사시가 바라본 세상은 온갖 부조리가 판을 치고, 빈부의 격차는 극복하기 힘들었으며 장애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이럴 바엔 차라리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다 엎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2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물론 결말은 희망적인 메시지로 끝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도 40대가 되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또다시 바뀔 것이라 생각된다. 나루토의 아들 보루토의 등장은 어쩌면 ‘키시모토 마사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자신의 눈이 아닌 자신의 아이들이 바라보았으면 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20대의 나이든 소년이 바라보던 세상은 이제 40대 아버지가 바라보는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루토>의 전설은 또다시 <보루토>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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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만화의 진화가 어떤 식으로 바람직하게 이어져 왔는지 궁금한 분들께 <나루토>를 추천한다. 한때 닌자가 되고 싶었던 해맑은 당신들의 눈동자가 아직까지 빛을 밝히길 바라며 이 긴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