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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이의 포스가 몰려오고 있다 (1) : 야오이 관련 용어 설명

야오이란 무엇인가? : 그 다양한 용어 설명

2006-04-01 서찬휘


1. 야오이, BL 그리고 그들만의 문화

 


여기 ‘야오이(やおい)’라는 일본식 조어가 있다. 이는 1970년대 일본에서 やまなし(야마나시 : 절정 없음),おちなし(오치나시 : 결말 없음),いみなし(이미나시 : 의미 혹은 동기 없음)의 앞 세 글자를 딴 표현으로 별 의미와 내용 없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다루면 그만이었던 만화 동인지들의 경향을 비하하는 표현으로서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남성 캐릭터들을 성적인 관계로 맺어주는, 소위 커플링하는 여상 독자 대상(여성향)의 섹슈얼 팬터지를 담은 만화 동인지, 혹은 그러한 경향과 방식을 나타내는 표현(또 그런 표현을 담은 만화, 소설 등)으로 점차 의미의 변천을 겪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BL(Boys Love)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야오이라는 단어를 대신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개념의 정의상 좁게는 야오이가 원작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재조립한 2차 창작, 동인 패러디이고 BL이 야오이에 비해 가볍고 부드러운 경향을 보이는 오리지널, 1차 창작 혹은 상업물 범주라고 구분하지만 넓게는 여성향 남성 커플링을 소재로 삼는 ‘경향’에서 어감과 정도에 차이를 두는 정도로 쓰이곤 한다.



그 어감을 피하기 위해 BL이란 표현을 쓰는 경향도 있지만, 본래 BL은 남성 동성애를 다루면서 퇴폐·탐미 성향을 띠는 오리지널 작품군인 ‘쥬네(JUNE : 본래는 이런 경향의 잡지 이름)’에서 파생한 용어로서 위에서 언급한 좁은 의미의 야오이, 즉 2차 창작물로서의 패러디 야오이와는 사실 별개의 장르다. 물론 BL은 퇴폐와 탐미의 물이 거의 빠지고 소재로 삼는 캐릭터들의 연령대도 낮고(어쨌든 ‘Boys니까) 분위기도 훨씬 밝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며, 깊이도 얕다. 이런 점이 사실상 야오이와의 경계선을 갈수록 옅게 하는 요인인 셈이지만.
일본 쪽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야오이 문화는 <코믹월드> 등을 비롯한 아마추어 동인 활동을 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전파해 나가는데, 남성과 남성간의 미적인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음에도 퀴어에 비해 훨씬 가벼우면서 공상에 가까운 ‘조합’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젊은 혹은 어린 여성들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섰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야오이는 ― 남성들에게 포르노나 모에(萌え)가 그러하듯 ― 만화나 소설 등의 ‘작품’이라는 틀을 넘어 하나의 ‘즐길 거리’라는 문화 코드 내지는 조류로 사회에 그 세를 서서히 불려가기 시작했다.
(※ 퀴어(queer) : 사전적 의미로는 이상한, 괴상한, 수상한이라는 형용사로 주로 활용되며, 동성애자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속어로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퀴어 시네마 퀴어 문학 등 동성애을 소재로 하는 다양한 창작품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도 있다. (편집자주))

2.공 수 동인녀 부녀자, 그리고 그들만의 즐거움
여기서 유념해야 할 부분은 야오이(또는 BL)는 어디까지나 ‘여성들의,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호모 섹슈얼 팬터지’라는 점이다. 공식으로 놓고 보자면 야오이는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들을 남녀관계에 대입해 삽입하는 쪽(남자 역)인 ‘공(攻, せめ : 세메)’과 삽입당하는 쪽(여자 역)인 수(受, うけ : 우케)로 놓고 공-수 순서로 ‘×’ 기호를 이용해 나열하는 일종의 위치놀이, 역할극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관계성을 소재로 하는 ‘놀이(유희)’의 성향이 강하며 실제 동성애와 동성애를 다룬 작품군(소위 ‘퀴어물’)과는 엄연히 구별해야 한다.
야오이 창작자들과 수요자들은 동성애를 흠모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도 동성애자도 아니며, 또한 실제 동성애자들을 이 ‘놀이’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팬터지의 영역에서 예의 조합과 배치가 가능한 재료들에 반응하며,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서 있기를 순수하게 갈망한다.
다시 말해 야오이 코드에서 ‘동성애’란 코드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 야오이 성향이 있다는 것이 곧 동성애자들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것과 같은 건 아니며, 오히려 보통의 작품들에서 관계도(구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를 발견하고 그걸 엮어주는 묘미에 훨씬 큰 비중을 둔다. 요는 엮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방법과 그에 도달하기 위한 얄팍하나마의 과정이지, 그 전제조건인 ‘동성애’는 되레 부차에 가깝다. 이 방법과 과정을 끌어낼 ‘캐릭터’와 활용할 ‘망상 소재’들이 풍부한 작품일수록 야오이 애호가들의 목표가 되게 마련이다. 인물이 미형이냐 아니냐조차 이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물들 간의 감정선을 깊이 있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순정만화(소녀만화) 계열의 작품들보다는 캐릭터들 간의 대립과 경쟁 ‘구도’ 속에서 서로 강해지기를 바라 마지않는 소년물이나 여자보단 남자들이 수두룩한 작품들이 오히려 이 부류 여성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여성이 주가 아닌 소년들이 주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도 있지만, 캐릭터들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성을 자기 마음대로 각색할 수 있는 대상이 거칠게 널려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일 터이다.




이러한 야오이 애호가들을 우리는 흔히 ‘동인녀’라고 칭하지만, ‘아마추어 동인 활동’을 펼치는 이들을 가리키는 동인녀가 무조건 야오이 애호가라는 단순 도식은 위험하다. 이 탓에 ‘동인녀는 야오녀(야오이 애호 여성)가 아니다’라 외치는 이들도 있는데, 물 건너 일본에서는 이 야오녀 계열의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 썩을 부(腐)를 써서 부녀자(腐女子 : 후죠시), 즉 ‘썩은 여자’라는 자조적 표현을 쓴다. 부녀자(婦女子)와 발음은 같되 글자 하나를 바꾼 표현으로 말 그대로 ‘뇌까지 썩었다’라는 뜻. 비슷한 개념으로 야오이나 BL을 즐기는 남자를 부남자(腐男子 : 후단시) 혹은 부형(腐兄 : 후케이)이라 부르기도 한다.top
 

* 이 글은 만화 중심의 대중문화 언론 『만』(http://mahn.co.kr/)과의 공동 기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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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