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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오컬트, 자카르타에 상륙하다 : 8박 10일 글로벌 호러 워크숍 작업기

숨 쉬듯 호러가 새어 나오고, 원초적인 공포 표현의 대담함이 돋보이는 인도네시아의 웹툰 속에서 매력적인 IP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적 교육과 시스템을 심는 청년들의 창작캠프 르포.

2026-09-01 김지원

K-오컬트, 자카르타에 상륙하다 : 8박 10일 글로벌 호러 워크숍 작업기



낯선 습기 속에서 마주한 다문화와 호러의 씨앗


자카르타 공항에서 훅 끼쳐오는 건기의 습한 공기. 인도네시아의 다층적 종교 문화를 미리 학습했지만 활자로 읽던 것과 현장의 질감은 전혀 달랐다. 국립 박물관의 힌두교·불교 동상들부터 자카르타 대성당, 그리고 이슬람의 이스티크랄 모스크 사원까지. 반나절 만에 네 개의 거대한 종교를 만나며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신앙이 섞여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모나스 독립광장 한편에 성황을 이루는 '귀신의 집'도 시선을 붙잡았다. 20여 년 전 한국의 유원지에서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공포 체험이 이곳에선 왜 이토록 인기일까? 이 작은 의문은 다음 날 시작될 호러 워크숍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왼쪽부터) ▲이스티크랄 모스크 사원 ▲귀신의 집 내부 벽화 ▲인도네시아 전통 유물 [작가 제공]



무속과 애니미즘이 섞여버린 4층 스튜디오 


웹툰 워크숍을 위해 모인 키사이 엔터테인먼트(Kisai Entertainment)의 4층 스튜디오에서 호러 웹툰 장르를 소개하며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됐다. 한국의 호러와 샤머니즘, 인도네시아의 현지 호러 세션을 통해 각국의 공포 민담을 교류했다. 

“어째서 인도네시아엔 공포 이야기가 많은 걸까?” 라는 질문은 곧 역사와 정치, 철학을 관통하는 담론으로 확장됐고, 애니미즘이 짙게 깔린 현지 정서, 그리고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경제적 불안감이 이들로 하여금 현실 밖의 서사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4층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어간 작품 기획 이틀째. 언어의 장벽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어느새 한국 작가들은 현지 작가들과 스스럼없이 아이디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때 한 인도네시아 작가가 조심스레 다가와 한글로 번역된 A4 용지 2장을 건넸다. <개인적인 배경 및 작품의 영감>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활자 속에는 양가 가족 모두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애니미즘과 다이너미즘 신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과 본인이 직접 겪은 심령 현상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왼쪽부터) ▲자기소개 중인 서정우 작가 ▲김지원 작가 ▲김이린 작가 [사진 = 작가 제공]


보이지 않는 존재가 종교 성소까지 자신을 따라왔지만 그 안까지 들어오지 못함을 목격한 경험, 기도 중 기도 매트가 저절로 움직여 있던 경험 등 소위 호러 영화에서 나올 법한 폴터가이스트 현상 등이었다. 이는 단순한 괴담을 넘어 현지인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영적 존재와의 기묘한 공존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현지 주술사 미팅 불발로 아쉬웠던 일정이  그 어떤 취재보다 값진 날것의 영감으로 쥐어지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또한 호러 전문 제작사 마그마 스튜디오(MAGMA entertainment)도 찾았다. 2022년 인도네시아에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 <Qodrat>을 보며 이슬람 사회가 지닌 종교적 두려움이 어떻게 상업적 공포 코드로 소비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김승현 작가 ▲김수빈 작가 ▲김태욱 작가 [사진 = 작가 제공]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은 영감과 교류

전시장에선 양국 귀신을 레퍼런스 삼아 작업한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 기획을 볼 수 있었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의 히로인 ‘처녀귀신’을 레퍼런스 삼은 인도네시아 작가의 작품, 인도네시아 남해에서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 ‘니 로로 키둘’을 소재로 준비한 한국 작가의 작품 등 저마다 각양각색의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왼쪽부터) ▲ K-호러, 샤머니즘을 소개하는 김지원 작가 ▲ 서정우 작가의 호러 스릴러 워크숍 ▲인도네시아 호러와 귀신을 소개하는 모습 [사진 = 작가 제공]


사실 한국에선 호러, 오컬트 작품을 준비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자극적이고 무섭게 만들까?’로 머릿속을 쥐어짠다. 반면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간단한 그림 속에서는 숨 쉬듯 호러의 색채가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고 있다. 서사나 설정 자체에서도 한국보다 원초적인 공포  표현의 선을 쉽게 넘는 대담함이 돋보인다. 아쉬운 점은 전문적인 실무 시스템이다. 제작, 작화 시스템이 갖춰진 학원이나 학교도 적을뿐더러 매력적인 IP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산업 구조가 열악했다. 

현지 작가들을 멘토링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웹툰 특유의 연출이었다. 마침 과거에 작업해 두었던 오컬트 장르의 샘플 원고가 있었고, 현지 작가들이 장르적 특징을 살린 연출을 직관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로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왼쪽부터) ▲ 마그마 스튜디오 ▲ 연재 중인 호러 그래픽 노블  ▲단체 방문 사진 [사진 = 작가 제공]


한국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인스타그램, 디스코드 채널 등으로 현지 작가들과 서로 교류 중이다. AI 번역 덕에 이제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는다. 진심으로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태도만 있다면 타국 작가와의 협업은 언제든 가능하다. 앞으로 펼쳐질 기회가 기대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 마감을 마친 한국+인도네시아 호러워크숍팀 [사진 = 작가 제공]


(왼쪽부터) ▲ 전시 콘셉트 전달 중 ▲ 모두 힘을 합쳐 전시 완성 ▲ 전시 관람 중인 내빈들 [사진 = 작가 제공]

(왼쪽부터) ▲ 호러워크숍 단체사진 ▲ 통역사와 호러팀 ▲ 요청 받은 기념사진 [사진 = 작가 제공]


필진이미지

김지원

만화 웹툰 작가. <런웨이는 거짓말로 시작된다> 연재. <나의 목소리를 그려줄게> 전시 총괄 기획.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향해 활동 중이며 현재 글로벌 정식 연재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