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열정, 스포츠 만화 2]
‘세계 챔피언이 꿈이었던 나… 세계챔피언이 되길 바랐던 내 동생 순아….’
만화가 강주배의 초창기 복싱만화 <두명의 복서>(전 2권, 1981년 간)의 첫 시작이다. 이 짧은 화자 독백은 스포츠의 본질을 꿰뚫는다. 스포츠는 최고가 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실현하는 장이다. 전사(戰士)들의 혈투, 챔피언은 오로지 하나! 수십,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패배자들의 눈물을 자양분으로 삼아 탄생한 챔피언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는 단순한 챔피언을 넘어 영웅이 되고, 팬들은 열광하고 또 열광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로마의 신화처럼 먼 훗날 기억될 위대한 전설로 남는다. 로마 최고의 스포츠스타라 할 수 있는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진정한 자유인’이란 의미까지 덧씌워져 마르크스로부터 ‘고대역사를 통틀어 가장 걸출한 인물’이라고 찬양 받았다.
현실의 스포츠에서 패자는 침묵한다. 스포츠만화는 그런 면에서 현실의 스포츠 혹은 스포츠 신화가 담아내지 못하는 이면까지 놓치지 않는 진정한 휴먼드라마다. 챔피언의 위대함은 위대함대로 칭송하고, 패배자의 눈물은 눈물대로 닦아주는. 세계 챔피언이 되고자 스포츠에 뛰어든 사연도 제각각이다.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들처럼 단체 스포츠의 멤버들은 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 스포츠만화보다 더 스포츠를 완전체로 만들어줄 예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기에 스포츠만화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완성시키는 진짜 각본이다. 한국 만화가들은 이러한 숙명에 도전해왔다. 한국 스포츠만화의 ‘5대가’라 할 수 있는 박기정, 이상무, 이현세, 김철호, 허영만을 중심으로 한국 스포츠만화의 변천을 짚어본다.
스포츠만화는 ‘스포츠를 그리는 만화’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스포츠만화는 두 가지 조건이 부합했을 때 탄생된다. 첫째, 스포츠만화는 당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즉, 현실의 인기 스포츠가 만화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둘째, 스포츠만화는 아무나 그리고 싶다고 그릴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데생력, 연출력이 떨어지는 작가는 스포츠만화를 제대로 소화해낼 수 없다. 필력이 부족한 작가가 호랑이를 그리면 고양이처럼 보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60년대 한국 스포츠만화의 주춧돌을 놓은 만화가는 박기정이었다. 중고교시절 아마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박기정은 타고난 스포츠맨이었을 뿐이라, 탁월한 스포츠만화 연출가였다. 야구만화 <황금의 팔>, 복싱만화 <도전자>(이상 1964), 레슬링만화 <레슬러>(1965) 등은 만화시장에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예비 만화가들을 위한 연출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박기정은 스포츠만화를 통해 울분에 가득 찬 시대를 담아내려 했다. “아무하고라도 좋으니 시합이나 시켜주세요. 이 답답한 가슴을 폭발시켜 달라고요!”라고 외치는 <도전자>(1964)의 백훈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반항을 응축한 캐릭터였다. 재일교포나 고아 등으로 등장하는 백훈의 울분은 스포츠를 통해 해소됐다. 박기정은 기성세대가 조성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일탈을 막는 스포츠의 감정정화기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시한폭탄처럼 감정이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캐릭터 백훈과 스포츠의 매칭은 시쳇말로 ‘찰떡궁합’이었다. 히트 여부는 박기정 개인의 연출력 문제였다. 그러나 박기정은 시대를 앞서가는 영화적 연출력으로 백훈과 오동추의 거칠 것 없는 질주를 어떤 각도에서나 드라마틱하게 잡아냈다.
반일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시점에서 복싱과 레슬링에 전 국민이 열광했다. 링에서 합법적으로 일본인이 때릴 수 있는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인에게 패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복싱만화 <도전자>와 레슬링만화 <레슬러>는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빛을 보았다. <도전자>도 백훈의 개인 가정사를 걷어낸다면, 재일교포가 링에서 일본 최고 선수와 일본에 귀화한 ‘조국의 배반자’를 시원스럽게 때려눕히는 이야기였다.
<도전자> 시작한 이후인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정부에 의해 한일국교수립이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한일국교수립을 반대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한일관계를 이어줄 가교가 필요했다. 박정희 정부는 역도산 문하로 일본 레슬링계에서 성공한 프로레슬러 김일을 주목하고 그를 초청했다. 장영철, 천덕규 등이 이끄는 한국 프로레슬링은 김일의 가세로 흥행에 불이 붙었다. 김일의 박치기가 터질 때마다, 모두들 환호했다. 박기정은 <도전자>에 이은 후속 스포츠만화의 소재로 레슬링을 잡았다. 그의 스포츠만화 연출력은 <레슬러>에서 더 과감해졌다.
<레슬러>는 프로레슬링과 아마레슬링을 모두 다루었다. 오동추는 프로레슬링에, 백훈은 아마레슬링에 뛰어들었다. <레슬러> 2권에서 오동추가 등을 진 채 상대의 목을 감아 머리 너머로 메치는 연출은 불과 두 컷이지만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친다. 오동추의 상대가 가라데춉을 사용해 오동추의 목을 타격한 뒤 바로 태그로 들어가 승리를 따내는 연출은 한 페이지를 세 컷으로 나눈 프레임 속에서 대단한 속도감을 준다. <레슬러> 7권에서 전국아마추어레슬링대회 자유형 밴텀급 우승을 노리는 백훈이 상대와 맞잡은 상태에서 균형을 무너뜨려 한 쪽 판을 제압하고 뒤를 잡는 과정 역시 단 세 컷 안에 완성된다. 박기정은 연속동작의 시작과 끝을 한 페이지 내에서 가로가 긴 연속 세 컷으로 구성하는 나름의 문법을 확립했다. 당시 한국 영화는 문예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한 영화의 컷 구성과 미학이 만화 원고를 앞에 두고 책상에 앉아 펜을 든 박기정의 뇌리에 영향을 미쳤다.
스포츠만화에서 박기정의 라이벌로 지목할 만한 작가는 백산이었다. 스포츠광이던 백산은 1962년 우리나라 야구만화의 효시와도 같은 <빅토리 야구단>을 발표했다. 스포츠만화에 대한 그의 집착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야구, 축구, 농구, 프로레슬링를 너머 가라데, 합기도, 육상, 럭비까지 종목을 확대했고, 심지어 1985년 당구만화 <당구황제>를 선보였다. 프로레슬러 김일의 전기를 만화로 옮기기도 했는데, 그 때는 김일을 찾아가 프로레슬링 기술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박기정, 박기준 문하의 이상무가 1970년대 들어 두각을 나타내며 스포츠만화 제왕의 자리를 승계했다. 1960년대가 울분과 반항의 시대였다면, 1970년대는 우리나라의 고도경제성장기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였다. 심성이 착하고, 노력하는 자는 사회적,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시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독고탁이었다.
‘울지 않는 소년’(이상무의 축구만화 제목) 독고탁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꿋꿋하고 혼자 해결해나가는 소년이었다. 게다가 스포츠는 정직하다. 독고탁의 심성과 스포츠의 공정성은 코드가 잘 맞았다. 제각각 ‘소쩍새 우는 사연’쯤은 하나씩 갖고 있던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독고탁은 ‘참이슬’ 같은 존재였다.
이상무의 만화는 순정만화 코드가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그것은 스승 박기준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울지 않는 소년’이란 독고탁의 별명을 잠시 살펴보자. ‘울지 않는다’라는 것은 역으로 ‘울어야 할 상황’이거나 ‘울고 싶다’라는 내면을 가리킨다. 즉, 독고탁은 ‘울고 싶지만 참고 있을 뿐’이다. 이 풀이를 그대로 독고탁에게 적용하면 ‘울고 싶지만 참고 있을 뿐인 소년’ 독고탁이 된다. 이 문구를 한 단어로 줄이면 ‘울지마!’이다. 이 ‘울지마!’는 순정만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전세계 순정만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가라시 유미코의 1975년 발표작 <캔디 캔디>(국내 애니메이션 제목 ‘들장미 소녀 캔디’)의 그 유명한 OST 가사는 다음과 같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 참고 참고 또 참지 / 울긴 왜 울어 / …웃어라 웃어라 들장미 소녀야 / 바보같이 우는 건 이제 그만 / 캔디캔디’다. 독고탁 캐릭터는 ‘울지마, 힘을 내!’라는 응원을 끌어내는 캔디의 캐릭터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고아 출신이며 기존의 주인공들과 달리 선남선녀가 아닌 두 캐릭터(상당수의 만화에서 독고탁은 고아 출신 혹은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소년으로 등장)는 대단한 닮은꼴이다.
밝고 씩씩한 고아 소녀 캔디가 멋진 ‘왕자님’과의 로맨스로 자신의 불운을 보상받았다면, 고아 소년 독고탁은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불운을 극복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상무의 스포츠만화는 ‘순정스포츠만화’로 명명할 수 있다.
1971년 야구만화 <주근깨>에서 첫 등장한 독고탁은 <내 이름은 독고탁> <개살구> <운명의 9회말> <달려라 꼴찌> <태양을 향해 던져라> <아홉 개의 빨간모자> <우정의 마운드> 등 1970년대~80년대까지의 야구만화 속에서 야구장을 거침없이 누볐다. 스포츠만화에 대한 이상무의 열정은 축구(<울지 않는 소년>), 복싱(<파도여 파도여>), 골프(<싱글로 가는 길>, <불타는 그린>, <운명의 라스트홀>)를 가리지 않고 뻗어나갔으나, 독고탁은 야구장에 있을 때 가장 불타올랐다.
박기준·이상무 문하에서 수학한 배금택, 이상무 문하생 강주배 등은 비장미 넘치는 스포츠만화를 내놓았다. 저주받은 힘을 갖고 태어난 쌍둥이 형제의 숙명적 대결을 그린 배금택의 축구만화 <황제의 슛>(1986)은 강한 인상을 남기며 조재호의 <폭주기관차>(1999)로 리메이크 됐다. 강주배 <두명의 복서>(1981)는 전환과 강민이라는 두 복서 중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비장한 대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은 이상무 스포츠만화의 유산인 셈이다.
1980년 신군부의 쿠데타로 세상이 바뀌었다. 1979년 말부터 12.6에 이어 계엄령, 5.18, 삼청교육대 등 무서운 단어가 일상에서 횡횡했다. 현실에서 정의, 논리도 필요 없게 됐다. 승자 독식, 패자 독박.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어가도 하소연 못할 공포와 광기의 세상이 된 것이다.
스포츠에도 이러한 논리가 적용됐다. 신군부는 프로스포츠를 적극 장려하며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프로야구는 패자에게 관용이 없는 비정한 스포츠이면서 재벌이 지배하는 비즈니스의 세계이기도 했다.
스포츠만화의 제왕도 교체됐다. 새로운 제왕은 1983년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발표한 이현세였다. 독자는 1980년 초반의 살벌한 현실 속에서 외인구단의 리더 설까치를 새로운 우상으로 옹립했다. 독고탁 같은 꿋꿋함만으로는 이런 현실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들어가도 살아나올 수 있는 광기 어린 캐릭터가 바로 까치였다. 스포츠만화임에도 ‘공포의 외인구단’이란 제목이 상징하는 바는 컸다. 그것은 공포스러운 세상에서 외인구단으로 맞서려는 의지의 표상이었다. 복싱만화 <지옥의 링>(1985)의 제목도 현실이 살벌한 삶과 죽음의 링 자체임을 가리켰다. 그 전까지 만화를 보지 않던 성인 독자가 이현세의 호각에 맞춰 대본소로 모여든 것이 그 증거다. 스포츠만화는 현실을 은유하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됐다.
이상무를 대체한 이현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정스포츠만화’의 계승자이기도 했다. 그는 박기준, 이상무로 이어온 순정의 정서를 간직한 인간이었다. 까치는 근본적으로 순수하고 풋풋한 캐릭터였다. 야구만화 <까치의 풋사과>(1988)는 이현세가 추구하는 까치의 프로토타입을 보여준다. 대유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까치는 재정난으로 인해 해체위기에 처한 명성종합고등학교 야구부의 유격수다. 명성고 야구부감독은 월급도 못 받고 있다. 까치 아버지는 까치가 야구부를 그만두면 야구부를 전폭 지원하겠다면서 야구부원들이 투표로 까치를 제명할 것을 제안한다. 야구부원들은 현실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한다. 계산적인 투수 마동탁은 까치를 버리자고 호소한다. 투표 결과는 예상과 달리 전원일치 까치 선택. 엄청난 물질적 유혹을 동료를 위해 뿌리친 때 묻지 않음에 까치의 아버지도 감동한다. ‘언더독’ 명성고는 그 기세를 몰아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경쾌한 해피엔딩으로 설까치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이현세는 풋풋한 까치에 극도의 광기를 불어넣었다. 이로 인해 설까치는 독고탁을 초월해버렸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할 점이 있다. 작품 속에서 설까치는 야구에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설까치를 미치게 한 건 엄지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공포의 외인구단>은 야구를 좋아하는 엄지에 대한 설까치의 미친 구애이며 로맨스다. 설까치에게 엄지가 최우선이고, 야구는 부수적이다. 심지어 <까치의 풋사과>는 야구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이현세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청춘드라마로 설명되고 있다. 이현세의 스포츠만화는 스포츠로 포장한 로맨스물이다.
그래서 이현세를 가장 닮은 만화가는 다름 아닌 고행석이다. 그는 <스포츠 가족>(1988)에서 축구, 복싱, 테니스, 야구, 배구 등에 잇따라 도전한 구영탄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국가대표인 부모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스포츠 천재인 구영탄은 몸치인 척 가장하고 살아간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은하가 “스포츠는 야만인이나 하는 것”이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구영탄은 미술에 재능이 전무하면서도 화판을 들고 미술수업만 따라다닌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은하가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구영탄은 은하에게 미쳐있다. 그렇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죽자 살자 따라다니는 것은 일종의 광기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까치 역시 엄지가 야구를 싫어한다면 야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에 스포츠만화의 천재가 한 명 더 있었다. 1983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인해 성인 독자들이 대본소로 몰려들고 이 타이틀이 총 30권의 장편 시리즈가 되자, 김철호는 같은 해 장편 복싱만화 <스콜피오>를 대본소에 출시했다. <스콜피오>는 무려 총 45권, 후속 시리즈인 <공포의 슈퍼스타>까지 합쳐 총 100권에 달했다. 김철호는 복싱에 미친 만화가였다. 그의 데뷔작이 복싱만화 <나는 복서>(1972)이며, 그가 1974년부터 당대 최고 복싱 월간지 판치라인에서 만화만평을 연재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판치라인의 주요 필진으로서 복서들을 직접 만나 교류할 기회를 얻으면서 복싱에 대한 전문성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됐다.
김철호는 1980년대에 자신의 3대 축구만화인 <그라운드의 표범>(1983), <빵야 빵야>(1986), <0번골잡이>(1988)로 축구만화에서도 아성을 구축했다. 축구전문만화가 오일룡을 제외하면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축구만화가로 기억될 수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는 세계 복싱과 우리나라 복싱의 황금기였다. 웰터급, 미들급에서 슈거레이 레너드, 마빈 해글러, 토마스 헌즈, 로베르토 듀란 등 복싱 천재들이 잇따라 라이벌전을 벌이며 링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들의 경기가 우리나라에 위성생중계 됐다. 김철호는 자신의 복싱 만화에서 세계적인 링의 철권들을 자주 등장시키곤 했다. 김철호의 복싱만화 주인공은 ‘KO 아티스트’로 이들과 맞붙어도 꿇리지 않아야 했다. <스콜피오> 발표 전 가장 유명한 김철호의 복싱만화는 <멕시코우의 KO왕>(1970년대 후반)이며, 1985년엔 파퀴아오의 등장을 예고하듯 8체급 정복의 신화를 이루는 세계 챔피언을 그린 <체급없는 복서>가 발표됐다. 김철호는 주인공 성일의 화끈한 KO 퍼레이드로 현실의 복싱경기보다 경쟁력 우위를 가져갔다. 독자는 김철호의 복싱만화를 보며 우리나라 복서 성일이 레너드나 헌즈를 꺾을 수도 있다는 상상에 흐뭇해졌다. 황준석, 나경민, 박종팔 같은 중량급 강타자들이 세계무대에서 절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현실이었을지라도.
성일은 체격이 작지만 단 한 방으로 상대방을 넉아웃시키는 폭발적인 펀치의 소유자였다. 1980년대 초반의 WBA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김태식이 성일과 가장 닮았다. 실제로 김철호는 김태식을 매우 좋아해서 1980년 김태식의 인생을 그린 복싱만화 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1978년 10월 3일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김태식과 일본 플라이급 2위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대결을 서두에 내세웠다. 당시 와타나베는 12전 전승(11KO)으로 일본의 복싱 영웅 구시켄 요코를 능가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경량급 간판이었다. 한국 주니어플라이급 5위에 불과한 김태식은 와타나베를 1회 2분 52초만에 KO로 침몰시켰고, 1980년 2월 17일 루이스 이바라를 2회 KO로 꺾고 WBA 플라이급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호쾌한 복싱 동작 묘사에 있어 김철호를 따라갈 만화가는 없었다.
허영만, 그라운드 이면의 비즈니스 속성에 관심 다재다능함으로 친다면 허영만은 대한민국 제일이다. 스토리를 끌어가는 구성과 연출력의 자신감은 그가 특정 소재를 꺼리지 않는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음식만화(<식객>), 역사만화(<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커피만화(<커피 한 잔 할까요?>), 주식만화(<3천만원>) 등을 보면 그런 능력을 일부러 입증하려는 듯 해보이기도 하다.
허영만도 1970년대, 80년대 스포츠만화로 이상무, 이현세와 경쟁했지만 항상 2인자였다. 이강토가 시대를 대표할 캐릭터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허영만은 스포츠 그라운드를 보여주면서도 실제로는 그라운드의 이면이나 비즈니스 속성을 조명하는 차별화 전략을 사용했다. 허영만의 복싱만화 대표작 <무당거미>(1981)를 예로 들어보자. <무당거미>는 프로복싱의 어두운 이면으로부터 탄생했다. 허영만은 문화체육관에서 복싱을 관전하다가 불공정 판정으로 난리가 난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무당거미> 스토리를 짰다. ‘대형 프로모터, 심판의 부당한 입김에 의해 피해를 당한 주인공의 복수’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야구만화도 마찬가지였다. <호움런을 쳐라>, <강속구를 쳐라>, <바뀐 타자의 초구를 노려라>(1977), <태양을 향해 달려라>(1979) 등 1970년대 아마야구 만화의 재미를 보여준 허영만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제작한 <제7구단>(1985), <흑기사>(1986), <대머리감독님>(1989) 등 에선 프로의 세계 이면을 지배하는 비즈니스 속성을 부각시켰다. <제7구단>의 최약체 구단 샥스팀의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연습을 더 하기보다는 밤마다 감독, 코치 집에 선물을 들고 다닌다. 또한 샥스가 고스터 고로 재미를 보자, 타 구단들은 고스터 고와 비슷한 고릴라들을 앞다퉈 수입한다. 허영만은 스포츠 판까지도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현실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현실감있게 조명해냈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관심은 훗날 오락성 강한 도박만화 <48+1>(1989), <타짜>(2000) 등을 낳기에 이르렀다.
허영만이 다룬 스포츠만화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폭넓었고, 1987년 발표한 <2시간 10분>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마라톤 소재 만화였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스포츠만화 제작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종목은 유도였다. ‘굳히기의 달인’ 안병근(78kg급), ‘왕발’ 하형주(95kg급)의 투혼이 금메달을 넘어 국민의 감동까지 이끌어냈고, 트렌드에 민감한 허영만이 이런 찬스를 놓칠 리 없었다. 허영만은 유도만화 <도시의 밤송이>(1986)를 발표하고 지리산에서 곰과 같이 사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체구가 작지만 곰 같은 힘과 살쾡이 같은 날렵함을 지닌 밤송이 머리의 주인공 강토는 체육고 유도부에 입부하자마자 유도에 두각을 나타낸다. 강토는 상대방이 아무리 업어치기 해도 나뭇잎처럼 사뿐하게 떨어진다. 주위에서 그 비결을 묻자, 강토는 “산속에서는 살쾡이가 높은 데서 떨어질 때 몸의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잡는 걸 여러번 봤었거든요. 그래서 살쾡이와 똑같이 떨어지는 연습을 높은 데서 오랫동안 했어요.”라고 말한다. 수재에게 공부 잘 하는 비결을 물으면 “그냥 공부가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주인공이라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야 마땅하다. 강토는 60kg 이하의 엑스트라 라이트급 선수이지만 청소년 세계유도선수권에서 자신의 체급 뿐 아니라 무제한급까지 평정한다. ‘비범한 능력=올림픽, 세계선수권 제패’는 스포츠만화의 흥행 방정식이었다.
이 작품은 1970년대~80년대 스포츠만화의 전형을 따랐다는 면에서 새로울 건 없다. 깊은 산 속에서 생활하던 주인공이 엄청난 운동능력으로 단박에 그 종목을 평정한다는 설정은 강토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입산수도한 후 링의 괴인이 된다는 복싱만화 <무당거미>(1981)에서 이미 써먹은 레퍼토리였다.
한편 조재호의 축구만화 <폭주기관차>(1999)는 2002한·일월드컵을 정조준해 제작됐고, 작품 속 호야와 호찬 형제의 거침없는 질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새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축구만화로 남게 됐다.
스포츠만화는 그 외연을 동계스포츠로 넓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빙판 위에서 육탄전을 벌여 상대의 전력에 균열을 내는 격렬한 스포츠, 아이스하키가 그 선봉에 섰다. 이현세의 아이스하키만화 <무자리까치>(1987)와 박원빈의 <공포의 보디체크>(1988)가 1980년대 대본소 전성기의 후반부를 장식했는데, 이 시기는 NHL(북미하이스하키리그) 역대급 스타 웨인 그레츠키의 전성기와 맞물린다. 웨인 그레츠키의 폭발적 인기가 우리나라에도 아이스하키에 대한 관심을 차츰 고조시키고 있었다. 1928년 일본 동경제국대학팀에 의해 우리나라에 도입된 아이스하키는 1964년 11월 동대문실내링크 개장으로 성장하는 상황이었다.
<무자리까치>는 강원도 무자리에 사는 소년 설까치가 서울로 상경해 고교 아이스하키팀에 입단해 벌이는 이야기다. 짐작할 수 있듯, 까치가 아이스하키 스타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건 엄지가 아이스하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명랑하고 코믹한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분량이 세 권에 불과해 본격적인 아이스하키를 풀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박원빈의 <공포의 보디체크>는 이현세의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변주에 가깝다. 실제로 박원빈은 이현세의 화실 후배이며, <공포의 보디체크>의 그림은 95%쯤 이현세 풍이다. 박원빈은 이런 한계를 아이스하키 소재의 전문성과 대단히 강렬한 드라마로 극복하려 했다. 예를 들어, <공포의 보디체크>는 1987년 당시의 세계아이스하키 판도를 사실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자료에서 한국은 세계 26위쯤(A풀리그 : 1위 스웨덴, 2위 소련, 3위 체코, 4위 캐나다, 5위 미국, 6위 핀란드, 7위 서독, 8위 스위스 / B풀리그 : 1위 폴란드, 2위 노르웨이, 3위 오스트리아, 4위 프랑스, 5위 동독, 6위 이탈리아, 7위 일본, 8위 덴마크 / C풀리그 : 1위 네덜란드, 2위 중공, 3위 루마니아, 4위 유고, 5위 헝가리, 6위 북한, 7위 불가리아, 8위 호주 / D풀리그 : 1위 벨기에, 2위 한국, 3위 뉴질랜드, 4위 홍콩 등) 자리하고 있다.
<공포의 보디체크>의 배경은 1987년 눈보라 치는 일본 훗카이도(北海島). 훗카이제지 아이스하키팀을 운영하는 재일교포 출신 가네다 사장은 일본 사회의 차별에 분노하며 아이스하키로 일본 열도를 정벌하고자 한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훗카이제지 수위로 신분을 감춘 채 살아가는 류. 과거 150kg의 거구도 가랑잎처럼 날리는 보디체크로 유명했던 류는 보디체크의 후유증으로 조금만 부딪혀도 시신경이 손상된다. 외인구단의 손병호 감독을 연상케 하는 가네나에게 설득당한 그는 아이스하키를 하면 결국 시력을 잃게 된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훗카이제지팀에 합류한다. 과거 심판의 재일교포 차별에 불만을 품고 아이스하키를 그만둔 채 공사판에서 일하던 괴물 수비수 마사키도 류의 오른팔이 된다. 손병호-설까치가 이끄는 외인구단에 이은, 빙판 위 외인구단의 탄생이었다.
스포츠만화는 1980년대의 전성기를 하얗게 불태우고 2000년 들어서면서 예전의 위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의 스포츠스타들이 속속 해외무대로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수많은 TV채널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포츠경기 실황을 앞 다투어 중계하기 시작했다. 수준급의 연출력과 팀워크가 필요한 스포츠만화의 제작 여건이 웹툰 시대의 제작 효율성에 잘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1960년대 초 이후 수많은 만화가가 스포츠만화를 제작했고, 숱한 스포츠만화의 명작들이 그 유산으로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스포츠만화의 ‘5대가’ 이외에도 이두호, 이우정, 고행석, 고우영, 방학기, 장태산, 박수동 등의 스포츠만화들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스포츠영웅의 만화화도 간간이 이루어졌다. 무도인 최배달, 프로레슬러 역도산, 복서 김태식, 프로야구선수 장훈, 복서 홍수환과 서정권 등의 인생도 만화로 다뤄져 스포츠 및 만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고우영은 최배달을 그린 <대야망>(1970)에서 최배달의 증언을 빌어 유도, 복싱, 킥복싱, 사바뜨, 태극권, 카포에라 등 지구촌의 다양한 무술을 분석해내기도 했다. 이제 스포츠만화는 웹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웹툰 시대 스포츠만화를 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만화가는 최훈이다. 그는 웹툰 플랫폼에서 다양한 스포츠카툰을 시도하면서 선을 간략화한 귀여운 만화체로 야구만화 (2007), <클로저 이상용>(2013) 등을 장편으로 완결했다.
웹툰 시대에도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만화가 간간이 시도되고 있다. 곽인근의 웹툰 <반짝반짝 컬링부>(2010)는 동계스포츠 종목인 컬링을 리드미컬하면서도 경쾌하게 다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7년 말부터 선보인 김부처의 웹툰 <파워 플레이>(카카오페이지 연재)는 아이스하키 만화다. 알바로 빙판 청소를 하던 주인공 강오수가 졸지에 해체 위기의 범아고 아이스하키팀에 ‘스나이퍼’(중거리슛이 강한 선수)로 픽업돼 팀을 이끄는 이야기다. 1980년대 만화 <공포의 보디체크>와 비교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흥밋거리다. 웹툰 시대의 몇몇 스포츠만화를 보면 과거와 달리, 굳이 엄청나게 간지 나는 그림체로 승부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스포츠만화임에도 코믹한 요소가 상당히 강화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의 스포츠도 흥미 요소를 높이기 위해 경기 룰을 개정하는 시도를 한다. 여성의 스포츠 진출과 새로운 스포츠 종목이 확대되고 있다. 웹툰 시대의 스포츠만화 역시 웹툰 독자와의 호흡이 가능한 지점을 타진하면서 발전하리라 믿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스포츠만화에 환호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