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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스페셜 평창 &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참관기 2

1월 25일 이른 아침. 파리는 여전히 비에 잠겨 있었다. 센 강은 지속된 비로 한계 수위를 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루브르 박물관 수장고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짐을 싸고 있다고 했다.

2018-02-21 박석환

[웹툰, 스페셜 평창 &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참관기 2]


1월 25일 이른 아침. 파리는 여전히 비에 잠겨 있었다. 센 강은 지속된 비로 한계 수위를 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루브르 박물관 수장고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짐을 싸고 있다고 했다. 참가단은 숙소를 나와 파리 몽빠르나스역으로 이동했다. 역에서 간단히 아침을 하고 앙굴렘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TGV로 2시간 거리. 세계인의 만화도시, 앙굴렘으로 가는 기차 안에는 자신이 만화도시로 향하는 만화인 또는 만화팬 임을 알리는 표식들이 넘쳐났다.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의상을 입은 사람, 만화 회사 로고가 선명한 버튼을 단 사람, 앙굴렘 팜플렛을 펼쳐놓고 관람 동선을 짜고 있는 사람 등등. 그 사람들 속에 우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ee d’Angouleme)은 1974년 시작해 올 해 46회 째 행사가 개최된다. 1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올 해 행사에는 2천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387개의 크고 작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23개국의 만화관계자들과 228개의 만화출판사, 835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가한다. 행사 조직위원회가 예상하고 있는 관람객 수는 27만 여 명. 프랑스 서부 샤랑트 주에 있는 인구 5만(2006년 기준)의 작은 도시가 이 기간 중 전 세계 만화인들의 성지로 뒤바뀐다.

△ 2018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포스터

△ 앙굴렘 거리 풍경

프랑스 만화는 통상 BD(베데, 방드데시네, Bande Dessinee)라고 불리며 형식적 특징은 ‘48CC’로 요약된다. 48쪽의 컬러만화를 하드커버로 출판한다는 의미이다. 제한된 형식에 맞춰 내용도 작가의 경험담이나 내면의 고백, 성찰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특징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만화는 앨범이라고 불리며 제9의 예술로 추앙되기도 한다. 24~32페이지 분량의 중철 제본을 한 영미권 코믹북(Comicbook)과 거친 만화용지에 흑백 인쇄된 일본의 망가(Manga), 망가의 전통 속에서 이해되고 있는 한국의 만화(Manhwa)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런 차이점으로 인해 그간 만화와 베데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베데의 극도로 제한된 페이지 형식은 절제된 스토리라인과 함축적 이미지 컷으로 발전했다. 반면, 일본의 망가는 영화적 연출과 전개방식을 제한 없이 컷에 담아 장편 서사를 만들어냈다. 베데가 고급화 전략을 취했다면 망가는 대중화 전략을 취했다. 프랑스 만화팬들은 자국의 베데와 일본의 망가, 미국의 코믹북을 세계 만화의 주류 형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 코제 특별전 포스터

△ 우라사와 나오키 초대전 포스터

올 해 행사에서도 앙굴렘은 베데와 망가 그리고 코믹북에 전시 공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망가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프랑스 만화계 내에서 망가의 상업적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앙굴렘 시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한 앙굴렘박물관에 ‘망가의 신’ 데즈카 오사무 전시가 열렸다. 같은 공간에서 프랑스-벨기에 만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가 자끄 마르탱(Jacques Martin)의 전시도 열렸다. 대표 캐릭터 ‘알릭스’의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지만 망가의 신과 아톰에 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2017년 그랑프리 수상 작가인 코제(Cosey, 스위스 출신)가 유럽만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전시를 펼쳐 보였지만 액자 속에 갇힌 대표 캐릭터 ‘조나탕(Jonathan)’의 모험은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와 ‘페어리테일’의 마시마 히로가 보여준 스펙터클을 넘지 못했다. 오사무와 나오키의 전시는 마치 망가가 어떻게 발전했고 현재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베데의 사례를 제시하며 설명하는 것 같았다.

현재 5천6백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프랑스 만화 시장은 베데와 망가가 양분하고 있다. 이 시장에 한국만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4년이다. 한국만화가협회(당시 회장 권영섭)가 이현세, 이두호 등 만화가 14명의 작품 24편을 들고 참가(한겨레, 1994.01.25.)했다. 1995년 정부 주도하에 제1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이 개최되면서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의 역대 그랑프리 수상작 22점에 대한 전시가 열렸다. 이후 한국만화계와 앙굴렘의 교류는 지속됐다. 공식적으로 한국관 부스를 처음 연 것은 1999년 전시(경향신문, 1999.01.28.)에서였다. 획기적 전기가 된 것은 2003년이다. 일군의 한국 만화가들과 행정가들이 2002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을 찾았고 2003년 앙굴렘에서 대규모로 한국만화특별전을 개최했다. 당시 한국만화계는 일본식 망가가 주류를 이뤘고 IT기술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만화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적 정서와 작가주의적 성향을 지닌 이른바 문예만화가 한 장르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만화특별전은 이처럼 복잡다단하게 전개된 한국만화의 전체상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에 대한 프랑스 만화계의 시선은 독특했다. 코믹스라 불리기도 했던 한국의 일본식 망가에 대해서는 망가에 비해 표현이 순하고 절제되어 청소년에게 좋은 만화로, 디지털만화는 아카데믹한 실험이나 도전 정도로 평가했다. 반면, 문예만화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한국의 문예만화는 작가의 고백 서사라는 베데의 내용과 망가의 장편 서사 형식이 혼재되어 있었다. 베데는 아니고 망가와는 다른 중간 수준의 콘텐츠를 한국 만화에서 발견한 것이다.
2003년 앙굴렘에서 한국만화특별전이 열리고 그 해 44종의 한국만화가 프랑스에서 출판됐다. 2006년에는 259종의 만화가 프랑스 만화팬들을 찾았다. 같은 기간 망가가 1,110종 발행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 시기, 가장 환대를 받았던 작가가 김동화이다. ‘황토빛이야기’ ‘기생이야기’ 등 다수의 작품이 유럽에 수출되면서 기대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김동화는 이를 계기로 만화가로서는 유일무이하게 한국 정부가 수여한 수출유공자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반면, 2016년 현재 프랑스에서 출판된 한국만화는 13종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망가는 1,494종이 발행(스트라베이스, 해외만화시장연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7. 참고) 됐다. 2006년 4배 차이였던 것이 10년 새 10배 차이로 벌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이 수치는 출판만화를 비교한 것이다. 그간 한국만화는 출판만화가 쇠퇴하면서 디지털만화라 할 수 있는 웹툰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출판만화의 수출 종수는 대폭 줄었지만 프랑스어 웹툰의 서비스 종수는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랑스어권 웹툰사이트 델리툰에 게재된 작품은 대부분 한국 작품이다.

△ 한불경험교류 컨퍼러스 전경

△ 김정기 작가 드로잉쇼 전경

한국만화계는 2000년 이후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를 받아들였다. 디지털화 되고 있는 내수 시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해외 만화계에 알리기도 했다. 지난 2013년 앙굴렘에서 두 번째 열린 한국만화특별전의 주제는 ‘만화 그 다음’이었다. 이 전시에서 한국만화계는 2003년과는 전혀 다른 다음 시대의 만화 즉 ‘웹툰’을 소개했다. 올 해 앙굴렘에서도 한국만화계는 웹툰에 집중했다.

25일에는 프랑스만화가협회(ADA BD)와 함께 ENJMIN(국립디지털게임미디어학교) 대강당에서 ‘한불 경험 교류’라는 주제로 웹툰컨퍼런스를 개최했고 27일에는 웹툰작가 전선욱의 드로잉쇼를 망가파빌리온에서 진행했다. 같은 날 델리툰과 함께 웹툰아뜰리에를 열었다. 컨퍼런스에서는 카카오페이지(포도트리)의 이소현 팀장이 웹툰을 중심으로 발전한 한국만화시장의 현황과 웹툰플랫폼의 운영방식 등에 대해 설명했다. 드로잉쇼에서는 액정태블릿을 이용해 웹툰을 창작하는 과정이 소개됐고 아뜰리에에서는 프랑스 예비만화가들을 대상으로 한 웹툰 교육이 진행됐다.

하지만 프랑스 만화계와 앙굴렘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프랑스 만화계는 여전히 김동화를 찾았고 25일 망가파빌리온에서 초능력 같은 드로잉 쇼를 펼친 김정기를 연호했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달라 보인다. 일부에서는 프랑스 만화팬들이 노화 되고 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 프랑스에서도 디지털만화의 등장은 전통적인 만화계와 다른 지점에서 도출됐기 때문에 아직 교차 지점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프랑스가 한국만화에 원하던 작품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줄었다는 점이다. 웹툰이 한국만화계의 혁신을 가져온 것은 맞지만 어느 순간 한국 만화형식이 지녔던 다양성을 사라지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웹툰으로 인해 한국만화가 풍요로워졌다면 웹툰이 만들어낸 시장으로 인해 한국만화의 다양성은 더욱 더 풍요롭게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이 지금 한국 만화계에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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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

만화평론가
재담미디어 CSO
前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과 교수
前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