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보이지 않는 예술이다.”
<만화의 이해>를 지은 스콧 맥클라우드의 주장이다. 만화가 보이지 않는다니 무슨 얼토당토 않는 궤변일까? 기념비적인 만화이론서에 실린 내용치고는 꽤 파격적이다. 그런데 만화로 만화를 분석하는 그의 친절한 설명을 접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만화가와 독자 사이의 마술 같은 커뮤니케이션에 답이 있다.
만화가는 대체 독자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걸까? 만화가가 종이나 모니터 위에 저지르는 짓은 수많은 공범들의 도움과 부추김을 받는다. 그 공범은 바로 독자다. 만화는 칸에 보이는 그림과 글이 전부가 아니다. 칸과 칸 사이 보이지 않는 홈통을 통해 독자를 끌어들인다. 만화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춤사위로 독자가 완결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독자는 만화가가 창조한 아이콘에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부여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떠난다.
반면 TV드라마는 ‘보이는 예술’이다. 드라마에서는 시청자 스스로 완결된 이야기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연속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관찰자로서 끊임없이 있을 법한 이야기인지 살피게 된다. 극중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긴 하지만 만화에 비하면 상당히 수동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의식 저변의 심상을 불러내는 강령술에 가깝다. 그것을 드라마 특유의 판타지라고 부른다. 관찰과 감정이입 사이의 혼돈된 상태에서 시청자는 판타지에 도취되고 만다.
만화와 드라마는 이처럼 즐기는 방식이 다르다. 얼핏 생각하면 꽤 어울리지만 수용자의 정신작용을 따져보면 궁합이 안 맞는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 만화원작 드라마라는 묘한 조합이 눈에 띄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는 어떻게 드라마라는 영상예술 분야에서 원작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을까? TV드라마를 만화의 OSMU(One Source Multi Use) 파트너로 여긴다면 먼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부터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올바른 길을 찾으려면 근본적인 사고가 먼저다.
만화원작 드라마 전성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원작 드라마는 1967년 TBC에서 방영한 <왈순아지매>다. 정운경 작가의 장수 연재만화를 드라마로 제작했는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왈순아지매>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만화원작 드라마는 1987년 MBC 드라마 <퇴역전선>으로 부활한다. 허영만 작가의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삼았으며 <모래시계>의 김종학-송지나 콤비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조우했다. 하지만 만화원작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1990년대 이후다. 1993년 KBS에서 이현세 원작의 <폴리스>를 방영, 성공을 거두자 불붙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이병헌, 엄정화 등 떠오르는 별들이 대거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95년 <아스팔트 사나이>(허영만 원작, SBS 방영), 1996년 <일곱 개의 숟가락>(김수정 원작, MBC 방영), 1999년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황미나 원작, KBS 방영) 등 다양한 작품들이 시청자를 찾아갔다. 특히 1998년 SBS에서 방영한 <미스터Q>는 평균시청률 45.0를 기록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덩달아 드라마 원작자로서 허영만 작가의 주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드라마는 제작환경이 바뀌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드라마 제작의 키는 방송국에서 외주제작사로 넘어갔다. 제작사들은 방송국으로부터 안정적인 편성을 보장받고 투자자와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에 따라 참신하면서도 대중에게 검증된 소재를 발굴하는 데 혈안이 됐다. 만화원작이 어필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만화원작 드라마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2000년대 이후 국내 방영된 만화원작 드라마>
방영년도 | 만화제목 | 작가 | 드라마제목 (방송매체) |
2003 | 조선여형사 다모 | 방학기 | 다모 (MBC) |
발바리의 추억 | 김철수 | 헬로! 발바리 (KBS) |
2004 | 풀하우스 | 원수연 | 풀하우스 (KBS) |
2005 | 불량주부 일기 | 강희우 | 불량주부 (SBS) |
2006 | 궁 | 박소희 | 궁 (MBC) |
다세포소녀 | B급달궁 | 다세포소녀(슈퍼액션) |
2007 | 쩐의 전쟁 | 박인권 | 쩐의 전쟁(SBS) |
2008 | 비천무 | 김혜린 | 비천무 (SBS) |
사랑해 | 허영만 | 사랑해 (SBS) |
식객 | 허영만 | 식객 (SBS) |
타짜 | 허영만 | 타짜 (SBS) |
바람의 나라 | 김진 | 바람의 나라 (KBS) |
2009 | 꽃보다 남자 | 일본 | 꽃보다 남자 (KBS) |
일지매 | 고우영 | 돌아온 일지매 (MBC) |
공포의 외인구단 | 이현세 | 2009 외인구단 (MBC) |
탐나는 도다 | 정혜나 | 탐나는 도다 (MBC) |
열혈장사꾼 | 박인권 | 열혈장사꾼 (KBS) |
2010 |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 박봉성 |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MBC) |
대물 | 박인권 | 대물 (SBS) |
꼴찌, 동경대 가다 | 일본 | 공부의 신 (KBS) |
매리는 외박중 | 원수연 | 매리는 외박중 (KBS) |
2011 | 야뇌 백동수 | 홍기우 | 무사 백동수 (SBS) |
이글 | 일본 | 프레지던트 (KBS) |
2012 | 타임슬립 닥터 진 | 일본 | 닥터 진 (MBC) |
각시탈 | 허영만 | 각시탈 (KBS) |
출처 : 2011 만화산업백서(한국콘텐츠진흥원) 일부 보완
2003년에 방영된 <다모>(방학기 원작, MBC 방영)는 만화원작 드라마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수많은 ‘다모폐인’을 양산하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극중 대사인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그해 최고의 유행어로 떠올랐다. 그 밖에 2004년 <풀하우스>(원수연 원작, KBS 방영), 2006년 <궁>(박소희 원작, MBC 방영), 2007년 <쩐의 전쟁>(박인권 원작, SBS 방영), 2010년 <대물>(박인권 원작, SBS 방영) 등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들이 만화를 탐하는 까닭
그렇다면 드라마 제작사들이 만화원작을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의 취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만화는 그 어떤 매체보다 젊은 층의 사랑을 받았다. 따라서 인기가 입증된 만화를 드라마 원작으로 끌어온다면 그만큼 시청자에게 어필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활자매체의 급격한 퇴조도 한몫 했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의 경우 날이 갈수록 독자수가 격감하고 있다. 반면 만화는 웹툰을 통해 계속해서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제작사 관계자라고 다르지 않다. 소설보다 만화를 검토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고 말한다.
그럼 TV드라마에 적합한 만화원작은 어떻게 골라낼까? 그것을 알려면 먼저 드라마의 성공요인을 짚어봐야 한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불륜 등의 자극적인 소재, 출생의 비밀과 같은 억지 설정, 스타급 배우 캐스팅 여부 등이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래 방영된 드라마들을 분석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극예술의 기본원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예술의 고전 <시학>에서 극을 ‘인간 행동의 모방’으로 정의하고 ‘개연성 있는 플롯’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 원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TV드라마에도 녹슬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 특히 광고수익률이 높은 주중 황금시간대(오후 10~11시) 미니시리즈에서 날이 갈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매력적인 캐릭터,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작품이 시청자의 지지를 받는다. 허영만 작가의 작품이 드라마 원작으로 자주 쓰이는 건 그래서다.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Q>, <식객>, <타짜>에 이르기까지 극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원수연 작가의 만화는 또 다르다. <풀하우스>, <매리는 외박중> 등 로맨스 판타지의 장르적 특성이 TV드라마와 부합했다. 게다가 세련된 의상과 같은 시각적인 장점도 플러스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만화에 시한폭탄을 심어라!
이렇게 선별한 만화원작은 극예술 특유의 각색과정을 통해 드라마에 녹인다. 영화이론가 카렌 클라인은 원작과의 관계에 따라 각색의 패러다임을 분류한 바 있다. 번역적 패러다임, 다원적 패러다임, 변형적 패러다임 등이 그것이다. 번역적 패러다임은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옮겼는가를 평가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하지만 만화원작 드라마에 번역적 패러다임이 적용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20세기 후반에 불어 닥친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열풍은 각색의 패러다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작의 정신을 반영하면서도 영상예술의 특색을 어떻게 발휘할지가 중시되었다(다원적 패러다임). 각색드라마의 독립성을 강조한 작품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변형적 패러다임). 심지어 역사를 재료로 쓰는 사극도 그러한데 만화원작 드라마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다모>는 21세기 버전 만화원작 드라마의 교본이라 할 만하다. 방학기 화백의 연재만화는 서사구조만 남기고 모조리 해체되어 새로운 퓨전사극으로 거듭났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채옥 하나였다. 그러나 드라마는 채옥(하지원 분)뿐 아니라 황보윤(이서진 분), 장성백(김민준 분)까지 비중을 싣고 이들의 관계에 따라 극적 긴장감을 조율했다. 원작의 인물들이 선과 악의 이분법에 뿌리를 내린 고전적 캐릭터라면 드라마 속 그들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적, 현실적 캐릭터다. 원작의 채옥은 여성에게 억압적인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여형사 다모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캐릭터다. 반면 드라마 속 채옥은 여형사의 역할 외에도 멜로라인을 이끌고 있다. 황보윤과 장성백 사이에서 끊임없이 애정과 갈등을 반복한다. 채옥의 모습은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가난한 환경에 태어난 여성의 삶과 사랑을 상징한다.
서자 출신 황보윤도 원작에서는 신분상승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금지된 사랑에 빠진 로맨티스트로 어떤 면에선 현대판 재벌가문의 서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원작과 가장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장성백이다. 욕망에 사로잡힌 비운의 악당이 약자를 위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이상주의적 혁명가로 탈바꿈했다. 스토리도 드라마의 생리에 맞게 큰 변화를 줬다. 원작만화는 사건 중심의 삽화구조에 가깝다. 드라마는 이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플롯구조로 뜯어고쳤다. 채옥의 심적인 변화에 따라 극의 흐름이 크게 출렁인다. 채옥이 노각출의 파옥 사건으로 황보윤을 떠나고(발단), 오빠인지도 모른 채 장성백을 사랑하게 되며(전개), 그를 죽일 수 있는 순간에 죽이지 못하고(위기),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가운데(절정),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는다(결말). 정반합의 원리로 갈등을 쌓아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점층적인 스토리텔링이다. 이러한 기법은 극 전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주 2회 분량 안에서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다시 발단)의 에피소드 플롯이 만들어진다. 단기적인 재미를 극대화시켜 다음 주를 기대하게 만드는 수법이다. 그래야 변덕스러운 시청자들을 끌어안으며 긴 분량의 시리즈를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 되면 전체적인 작품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하지만 TV드라마의 속성은 대중성이다. 수많은 폐인을 양산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모>라도 이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른 만화원작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원작자와 계약하기 무섭게 제작자는 캐릭터를 추가하고, 스토리를 단순화하며, 애정의 삼각관계를 만들고, 대결구도를 강화한다. 긴장과 이완의 순환 속에서 시청자들은 똑딱똑딱 시한폭탄 소리를 들으며 쫄깃한 기분으로 드라마와 사랑에 빠진다.
<꽃보다 남자> VS <탐나는 도다>
물론 만화원작 팬들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원작의 유치찬란한 변신에 ‘멘붕’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화원작 드라마도 결국 드라마다. 시청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청률은 방송사의 광고수입과 직결된다. 제작사의 자금회전도 큰 영향을 받는다. 시청률이 낮으면 방송사는 물론 제작사까지 타격이 크다. 한번 제작했다가 수지를 못 맞추면 신세 망치기 십상이다. 심지어 출연료 체납 때문에 도망 다니는 제작사 사장도 있다.
현대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다. 방송은 시청자 확보를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전장이다.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난 드라마라도 시청률이 낮으면 시도 때도 없이 조기종영 압력을 받는다. 반대로 시시껄렁한 드라마지만 시청자만 사로잡으면 늘어지든 말든 연장에 들어간다. 일본만화 원작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순위 | 제목 | 방영년도 | 평균시청률() |
1 | 미스터Q | 1998 | 45.0 |
2 | 꽃보다 남자(일본원작) | 2009 | 33.0 |
3 | 풀하우스 | 2004 | 32.1 |
4 | 쩐의 전쟁 | 2007 | 30.5 |
5 | 공부의 신(일본원작) | 2010 | 26.3 |
6 | 대물 | 2010 | 25.8 |
7 | 폴리스 | 1993 | 25.5 |
8 |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 | 1995 | 25.0 |
9 | 궁 | 2006 | 22.6 |
10 | 바람의 나라 | 2008 | 20.7 |
출처 : 2011 만화산업백서(한국콘텐츠진흥원)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일본만화가 범람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그해에 일본만화 원작인 <꽃보다 남자>가 대박을 쳤다. F4 열풍이 불며 평균시청률 33.0를 기록했다. 나라 밖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일본, 중국, 동남아는 물론 중동, 남미, 유럽 등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출됐다. 반면 같은 해 정혜나 원작의 <탐나는 도다>는 명품드라마라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로 인해 조기종영하고 말았다. 시청률 면에서 <꽃보다 남자>와 <탐나는 도다>의 성패를 가른 요인은 무엇일까? 둘 다 트렌디 드라마였고 같은 제작사(그룹에이트)에서 만들었다. 작품의 수준을 놓고 보면 오히려 <탐나는 도다> 쪽에 후한 점수를 줘야 마땅하다. 그러나 <탐나는 도다>는 중장년 시청자가 주로 보는 주말저녁에 편성됐다. <탐나는 도다> 같은 트렌디 드라마가, 그것도 신인급 연기자들을 내세워 어찌 해볼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었다.
결국 두 드라마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방송여건이었다. 하지만 결과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드라마제작 현실에서 남는 것은 시청률과 마케팅 실적뿐이다. 어찌 보면 2009년 이후 일본만화 원작 드라마가 범람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일본만화의 콘텐츠 경쟁력이 우위에 있어서가 아니다.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 같은 드라마가 연이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였고 돈냄새를 맡은 경쟁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여기에 최근 변화하고 있는 드라마 제작환경도 한 몫 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사들이 작품 하나 만들려면 방송사만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스폰서를 찾고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일본 등 해외에서도 적지 않은 투자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마케팅도 다르지 않다. 제작단계에서부터 해외 판매처를 확보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일본 쪽이 우선순위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시청자도 시청자지만 투자자와 고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K-POP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것도, 날이 갈수록 일본만화 원작이 범람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잡종’이 먹어주는 시대
지금까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만화원작 드라마가 어떤 게 있는지, 드라마에서 만화원작을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만화원작을 어떻게 드라마에 녹이는지 TV드라마의 특성에 기초해 살펴봤다. 또 치열한 시청률 경쟁과 제작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본만화 원작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간략히 진단했다.
TV드라마에서 만화원작의 가치는 단순히 소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만화라는 양분을 흡수하며 드라마의 표현양식은 날로 다양화되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전문분야를 파고드는 감각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상상의 지평이 열리고 있다.
만화 또한 TV드라마와 결합하며 적지 않은 시너지효과를 얻고 있다. 만화원작 드라마는 현대인에게 만화를 향유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만화는 드라마를 통해 대중적으로 재해석되며 국경을 넘어 광범위한 팬을 확보할 수 있다. 만화계로선 새로운 창작의 모멘텀이요, 수익원을 다각화할 수 있는 기회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로에 대한 몰이해다. 드라마 종사자들은 대체로 시청률과 근시안적인 돈벌이 관행에 젖어 만화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다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시청률의 중요성은 과거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마니아층에 어필하는 만화의 특장점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소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미디어는 많은데 콘텐츠는 거기서 거기인 현실에서 짭짤한 수익모델이 되지 않을까.
만화인 역시 드라마를 잘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만화원작 드라마에 대해 물어보면 손사래 치기 바쁘다. 누구 말마따나 만화작가는 만화만 잘 그리면 되고, 드라마 종사자는 드라마만 잘 찍으면 된다. 단, 그렇게 생각한다면 침체된 만화산업에 대해서도 말을 아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하이브리드 시대다. 영상예술의 파급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만화가의 권리를 지키고, 선순환구조를 창출하고 싶다면 스스로 ‘잡종’이 되어야 한다. 드라마도 적당히 즐기고 참견도 좀 하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