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에서 힘숨찐까지 최근 웹툰계 인기 키워드 웹툰 장르의 변주 속에서 탄생한 회귀물, 힘숨찐, 먼치킨
회귀물, 힘숨찐, 먼치킨의 의미와 특징
앞으로 웹툰 장르를 규정하고 정리 할 약속 필요
이지성
회귀, 힘숨찐, 먼치킨. 이게 다 무엇일까. 알고 보니 웹툰 장르를 칭하는 말이었다. 장르는 소설과 영화가 쌓아온 역사 속에서 탄생했는데, 처음에는 웹툰도 그들이 만든 장르를 따랐다.
변화는 웹툰 속에 소설, 영화, 게임의 특성이 녹아들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인터넷 문화를 기반으로 두고 있던 웹툰이 반응해 장르가 파편화되고, 집중 발전되는 등 새로운 변주를 이어가고 있다. 회귀, 힘숨찐, 먼치킨은 그 결과이다. 새로운 장르 혹은 장르명이기도 한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회귀물은 캐릭터가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르다. 역행물, 리턴물, 리셋물 등으로 불렸고, 타임슬립, 타임워프, 타임루프 등 시간 이동 설정에 따라 세분화할 수도 있지만 따로 구분하지 않고 회귀물로 자리잡았다. 극중 인물의 욕망과 맞닿는 곳에 시간 역행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인물은 삶을 다시 사는데, 이 같은 스토리가 가장 보편적이다.
△ <한 번 더 해요>
네이버 웹툰 <한 번 더 해요>, <금수저> 등이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한 번 더 해요>의 경우 결혼 이후 어려운 삶을 사는 등장인물들이 결혼 전으로 돌아가 새 삶을 사는 이야기다. <금수저>의 경우 소위 말하는 흙수저 삶을 사는 주인공이 금수저 삶을 꿈꾸는 욕망에 시간 역행이 작용했다.
일상 혹은 인생의 곳곳에서 아른거리는 욕망에 시간 역행이 일어나는 상상을 한다. 때문에 회귀물은 독자로 하여금 어느 때보다 커다란 만족감을 주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힘숨찐. 풀어쓰면 ‘힘을 숨긴 찐따’이다.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털털한 모습을 보여 힘을 숨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넓게는 나약한 주인공이 잠재된 힘을 깨우는 이야기도 포함된다. 찐따라고 표현한 것은 인터넷 문화의 익살성일 것이다.
힘숨찐의 장르적 특성은 캐릭터에 있다. 어떻게 힘을 각성을 해나가는지. 혹은 파워를 언제까지 숨기는지. 캐릭터의 어떤 점을 건드렸을 때 숨겼던 힘이 폭발하면서 매력이 터질지. 캐릭터가 힘을 숨기고 살게 된 비화는 무엇인지. 캐릭터 설정에 무게가 쏠린다.
△ <킬러 분식>
힘숨찐 웹툰으로 <킬러 분식>이 있다. 세계적인 킬러 ‘추’는 피비린내 나는 킬러 생활을 청산하고 분식집을 차렸다. 예쁜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딸은 킬러 생활을 청산한 이유이자 그가 가진 전부이다. 하지만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 다시 킬러로서 본 모습을 들어낼 수밖에 없는 위기가 닥친다.
<킬러분식>을 보는 내내 주인공 ‘추’의 위태로운 상황과 그의 견딤에 마음이 동했다. 마찬가지로 여타의 힘숨찐 장르를 보는 독자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몰입 시키는 것이 관건인 장르이다.
‘먼치킨’ 이란 단어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난쟁이 ‘먼치킨’에서 유래됐다. 이후 게임이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캐릭터가 마법이나 기술을 부려 다량의 몬스터를 잡거나 원샷 원킬로 악당을 처단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 <원 펀 맨>
먼치킨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원펀맨>이 있다. 힘숨찐과도 비슷한데, 민머리의 허접해 보이는 주인공 사이타마가 극강의 악당을 원 펀치로 끝내는 장면은 아름답다.
먼치킨의 장르적 특징은 화려한 연출에 있다. 주인공이 구사하는 마법, 기술 등을 어떻게 연출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뛰어난 작화와 기교가 중요한 만큼 작가의 역량에 작품의 수준이 크게 좌우된다.
게임물
게임물은 레벨, 랭크, 맵, 캐릭터, 몬스터, 세계관, 레이드, 스킬 등 게임을 비롯해서 얘기할 수 있는 모든 특성을 웹툰에 녹여 만든 작품이다. 현실과 게임 속. 현실 속 게임 세계. 가상 세상과 현실 등 다양한 세상이 공존하거나 서로 다른 세상이 이어진다.
캐릭터의 경우도 개성이 뚜렷하다. 게임 캐릭터의 역할 또는 직업적 특성을 반영한 외모와 성격을 드러낸다. 또한 이들이 모여 힘을 합치는 팀플레이도 개별 캐릭터만큼이나 재미를 준다.
△ <레이드>
<레이드>, <나 혼자만 레벨업>이 대표작이다. 레이드는 게임용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위그드라실이 세상을 장악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문제는 이 디스토피아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세상의 진리 중 하나는 노력의 보상이 반드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지배하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노력의 결과로 보상이 주어진다. 레벨이 오르고 경험치를 따며 돈도 얻는다. 사람들은 이제 도덕적 규범보다는 보상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보상을 나눠 가질 목적으로 사람들은 뭉치고 배신하기에 거리낌이 없다. 신뢰와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레이드>는 인간다움을 보상에 상관없이 행동하는 도덕성과 믿음에 있다고 꼬집는다.
한편, 힘숨찐, 먼치킨, 회기물이 장르를 칭하는 이름으로 만연히 쓰이는 것은 맞지만 웹툰 플랫폼에서 정식 장르명으로 표기하고 있지는 않다. 플랫폼에서도 고민일 것이다. 웹툰의 다채로운 설정 때문에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모든 작품을 꾀어내기에는 무리다.
앞으로 웹툰의 장르를 어떻게 규정하고 정리할지 약속과 규칙이 필요하다. 그렇게 정리됐을 때 우리는 원하는 작품을 정확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