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웹툰 소재 파헤치기① 왜 여성국극이 필요했을까?

여성국극은 왜 필요했을까? 여성국극의 등장 배경 및 역사 한눈에 읽기

2020-09-14 신보라


여성국극은 왜 필요했을까?
 여성국극의 등장 배경 및 역사 한눈에 읽기



다양해진 소재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웹툰 시장 속 <정년이>가 독특한 소재와 매력으로 눈길을 끈다. 옆 동네 남자 주인공들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로 가득찬 <정년이>. 우리는 이 웹툰을 통해 여성국극을 접했다. <정년이>는 실제 한국에서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배경으로 한다. 정년이가 살고 있는 종전 이후 대중들에겐 왜 여성 국극이 필요했을까?


먼저 정년이의 선배들을 살펴보자. 정년이의 어머니 채공선, 소복 단장님, 백도앵의 어머니, 그리고 옥경과 혜랑이 있다. 그들은 종합예술인인 기생 출신이다. 실제로 기생 출신의 소리꾼들이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여 <옥중화> (춘향전)를 공연함으로써 여성국극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게 되었을까. 해방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면, 1909년 관기官妓 제도 철폐로 누구나 기생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경기 이남의 세습무 집안, 곧 광대 집안의 여자들은 무당이 되기보다는 기생이 되는 쪽을 많이 택했다. 이들은 가곡, 가사, 시조 외에도 판소리도 배우게 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 순수 명창으로도 활동할 정도에 이르렀다. 우리에겐 <정년이> 속 도앵이와 이름이 겹쳐지는 임춘앵 선생이 이 명창들 중 하나다. 여성국극의 왕자 임춘앵 선생을 비롯한 박녹주, 김소희 명창들이 여성국극 단체들을 결성해 시공관에서 <옥중화>를 처음으로 공연하게 되었다. 첫 공연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듬해 두 번째 <해님 달님> 공연은 흥행에 성공한다. 무대 장치와 의상 소품이 화려했고 여성 극단의 공연이라는 특색으로 여성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것이 흥행의 요인이었다. 이렇게 여성국극은 전쟁 직전 화려한 막을 열게 된다.

여성국극은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 내내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단순한 소리보다는 군무 등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감정 전달을 위한 창법, 연기 등 지금의 뮤지컬과 같은 요소들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1954년 한국 영화가 15편 제작됐던 데 비해 여성국극은 30편이 제작된 사실만 봐도 여성국극의 국민오락으로서의 상당한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정년이> 속 옥경이가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한 아이돌로 묘사가 되는데, 여성국극의 왕자 임춘앵 선생 또한 실제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임춘앵이 입은 바지는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그가 발걸음을 한 번만 내디뎌도 환호성이 울릴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많은 학생들이 임춘앵 같은 여성국극 단원이 되겠다고 몰래 집을 나왔다가 환송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쟁이라는 힘든 상황을 잊게 해주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인기 있는 배우들의 공연은 대중들에게 판타지 그 자체였다.


이렇게 화려한 볼거리들로 여성국극은 여성들을 공연장으로 끌어 모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 인식 변화와 여성들의 높아진 경제력이다. 여성국극은 성 인식 변화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성 인식에 대한 변화가 일었다. 그 영향으로 여성 국악인들은 남성 중심의 국악계에 반발했고 앞서 설명한 최초의 여성국극 단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한 것이다. 성 인식 변화에서 시작한 여성국극은 극의 성격과 표현에서도 그 특징이 드러난다. 연인의 사랑 연기는 실제 남녀가 아닌 여성들끼리 연기하며 훨씬 더 대담하게 표현되었다. 아직은 대중들의 이상 속에 존재하는 자유연애와 성에 대한 관심은 여성국극에 열광하게 만든 이유였다. 여성국극은 여성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하는 배우들, 특히 남장 배우들의 대리 경험을 통해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해 주었다. 

이런 성 인식 변화와 더불어 여성들은 높아진 경제력으로 공연 티켓 구매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 이후 집 밖으로 나와 경제 활동을 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만두, 국수 등을 파는 식당을 하거나 보따리 장사 등을 하며 전쟁 후 일자리를 잃은 남성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여성국극은 1950년대 12개 정도의 단체들이 활동할 정도로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국산 영화 진흥 정책으로 인해 1960년대 영화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정년이>에선 텔레비전이 등장한다. 1956년 첫 방송 송출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TV 시청이 가능해지며 대중들은 국극에서 멀어진다. 영화와 텔레비전 도입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함께 내부적 요인들도 있었다. 전문성을 갖춘 배우들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우후죽순 생겨난 많은 단체들로 인해 전과 같은 높은 수준의 공연이 힘들어진 것이다. 

결정적으로 1970년대 이루어진 전통문화 보존 사업으로 여성국극은 사이비예술로 지목되어 국가적 지원과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일부 팬은 사재를 털어 여성국극의 명맥을 유지시키려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진 여성국극은 대중예술로서의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을 위한 공연에 직접 뛰어들고 직접 구매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해방과 전쟁이라는 대혼란의 시기, 알을 깨고 나와 문화와 경제를 이끌게 된 여성들의 지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