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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기기괴괴 성형수, 애니메이션 개봉...성공적이었을까?

뛰어난 연출, 긴장을 높이는 음향 효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편집 '기기괴괴'는 과연 좋은 작품일까?

2020-10-09 최서윤


뛰어난 연출, 긴장을 높이는 음향 효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편집 
'기기괴괴'는 과연 좋은 작품일까?



최서윤



<기기괴괴 성형수>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네이버 웹툰 <기기괴괴> 시리즈의 에피소드, ‘성형수’가 그 원작이다. 신체부위를 20분 담그고 나면 원하는 대로 해당 부위를 조형할 수 있게 되는 가상의 액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원작의 애니메이션화는 성공적이었을까? 일단 작품의 완성도는 준수해 보인다. 기술적인 아쉬움은 있지만(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때때로 어색하다. 특히 걸음걸이가 그렇다), 공포 연출은 대체로 효과적이었다. ‘트랙 아웃 줌인(트랙을 따라 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렌즈를 줌하여 발생시키는 시각효과)’을 떠올리게 하는 연출, 긴장을 높이는 음향 효과, 적절한 (때론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음악사용은 극의 몰입을 도왔다. 공감하기 어렵고 호감 가지 않는 주인공임에도, 후반부에 주인공과 함께 불안과 공포를 느낀 것은 뛰어난 연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편집도 좋았다.



이처럼 <기기괴괴 성형수>는 분명 장점이 많은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인지 묻는다면, 나는 긍정하기 어렵다. 2020년에 보기에는 낡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기기괴괴 성형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예지는 인기 연예인 미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다(원작과 다른 점이다. 제작진은 단편이었던 원작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주인공의 배경에 디테일을 더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살이 쪘다’‘못생겼다’는 이유로 그에게 무례하다. “눈이 예쁘다”고 말해준 지훈만이 예외다. 그러던 어느 날, 미리가 출연하는 홈쇼핑 방송에 예지가 보조 출연한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며 예지의 외모를 조롱하는 악플이 쇄도한다.


그 일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예지에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보낸 성형수가 도착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직접 성형수를 사용해 본 예지는 제품의 효능을 긍정하게 되고, 성형수와 함께 도착한 초대장의 주소로 찾아간다. 그곳에 시술사가 있었다. 시술사가 부르는 비용은 그야 말로 ‘억’ 소리가 나오지만, 예지는 가족에게 ‘투자’라고 생각하라며 윽박지르고 돈을 갈취해 전신 시술을 받는다. 그 뒤 온 세상이 예지에게 친절해진다.

아쉬운 점은 예지가 외모를 바꾼 뒤 주도적으로 한 일이 ‘다양한 남자 만나기’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도 가족에게 ‘투자’하라고 윽박지르기에 사업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기대와 달리, 예지는 남자들이 흔히 상상하는 여자 속물의 전형적 행동을 보이는 데 그쳤다. 스스로를 상품화하여 값 비싸게 팔아치운 뒤 여생을 타인에게 기대려는 여자.


한국 사회에 그런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묘사로는 낡아빠졌다. 2015년 이후 비혼· 비연애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커리어에 대한 야망과 자산 운용에 대한 이야기를 활발히 나눈다.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탈코르셋 운동도 전개됐다. 이 작품에는 이런 사회적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 작품의 제작 기간이 6년이었고, 6년 간 한국 사회는 급변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재현에 대한 각색도 아쉽다. <기기괴괴 성형수>에서 지훈이라는 인물로 각색된 원작의 재현은 (이하 스포일러) 성형수를 통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한 인물이다. 재현은 예지를 사랑하는 감정이 있지만, 예지가 그의 비밀을 알아채자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다. 이런 재현의 행동은 기괴하지만 해석과 상상의 여지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몸이 되고 싶은 욕망에 대한 고찰이라든지, 남성 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모’에 대한 압력이 큰 현실에서 재현이 느꼈을 해방감이라든지.


그러나 <기기괴괴 성형수>의 지훈은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납작한 인물이다. ‘여러 사람의 아름다움을 수집하고 싶어 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기괴함만 강조하는 공허한 엔딩을 도출했다. 개연성도 부족하다. 예지와 보낸 시간이 원작과 달리 감정을 교류한 연애가 아닌, 그저 범죄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면,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 작업 방식 아닌가?

‘납작함’을 느끼는 또 다른 지점은 목소리 연기에 있다. ‘예쁘지만 싸가지 없는 여성’의 앙칼진 말본새, 살이 찐 여성의 둔탁한 어조, 마마보이의 징징대는 어투 등이 너무나 과하고 전형적이어서 오히려 몰입을 해친다. 예지가 성형수로 다시 태어난 뒤 이 문제는 더욱 부각되는데, 둔탁하게 말하던 예지가 느닷없이 ‘미인 말씨’를 쓰는 것이다. 성대를 누르던 살이 제거되어 소리의 높이와 얇기가 바뀌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갑자기 말버릇마저 바뀐다고? 이런 작위적이고 과한 느낌이 작품을 낡아보이게 만든다.

이제 한국의 애니메이션 기술력은 세계 시장에서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력과 흥미로운 소재만으로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깊이 있는 주제와 새로운 지평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제작진은 인터뷰 기사에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주제에 대한 진중하고 깊이 있는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 더 체제를 위협하고 전복하는, 새로운 상상력의 ‘괴물’을 만나고 싶었다. 너무나도 체제 순응적이었던 예지는 따분하고 찌질한 악당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