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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먼저' 코로나와 장애인 웹툰 - 어떤 건 마음의 재난

2020-11-05 근희



어떤 건 마음의 재난.

근희(수필작가)


재난이라는 것에 익숙해질 때가 있다. 

한 존재의 내면에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라 이 지구를 덮친 코로나19가 그렇다. 이제 그런 팬데믹에 관한 것은 지겹기도 하다. 지겹다는 건 익숙해졌다는 거다. 그러나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저마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런 재난이 익숙한 이들이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혹은 황망히 일어났던 어떤 사고 이후로부터 말이다. 코로나19 앞에 모두가 약자라지만 그 이전과 이후를 말하더라도 이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반박할 수 없다.

우리가 장애인이라 칭하는 이 시민들은 이 난국을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방구석에서는 좀처럼 들을 길이 없다. 집안으로 식물을 들이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세수를 한다. 아, 나갈 일이 없다면 세수는 내일로 미뤄진다. 밥을 먹고 일하고 종일 수고한 자신에게 여가시간을 누리게 한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너무 느렸던 건 아닐까.

그 무렵 접했던 <장애인 먼저, 실천운동본부>에서 ‘코로나와 장애인’을 주제로 제작된 웹툰은 내 생각의 오류를 바로 잡아 주었다. 교육적 측면이 강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총 61편이 ‘장애인권익증진’을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코로나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 같은 시민이라면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4편으로 손바닥소설(엽편소설)처럼 한 장의 짧은 내용이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정된 분량이 있고 텍스트와 그림의 적절한 구성이 이루어져야하기에 다소 빽빽한 느낌으로 가독성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독성?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잘 읽혀야 한다.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명확해야 하고 독자의 입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웹툰의 내용을 살펴보면 ‘코로나19 속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응 방안(글/그림 강윤민 교사)’, ‘재난 상황 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응 매뉴얼(글/그림 설성정 교사)’, ‘코로나19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글/그림 오보나 교사)’, ‘재난 상황 속 장애인 정보접근성(정다운 교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웹툰을 다 읽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재난상황에서 이들이 우선시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렸고 거대한 팬데믹에 휩쓸려 서로의 손을 놓아야 했다. 안전한 서로의 방에서 최소한의 몸짓과 말로만 이어졌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손을 놓으면 넘어지고 입을 가리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주기적인 병원 방문이 필수인 사람이 있는가 하며 마스크를 사는 것도 지체장애인에게는 그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간병인이나 돌봄인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특히 어려운 부분이었을 거다. 코로나19 상황 속 장애인이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특성이 있는데 '의사소통제약', '이동제약', '감염취약', '밀접돌봄', '집단활동'으로 구분 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궁금했던 지점이었기에 꽤 집중하여 자꾸 들여다보았다. 참쌤스쿨에 소속된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텍스트와 그림을 다루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생각은 또 계속 뻗어 나갔다. 아직 재난의 시대에 각자의 방에서 몰두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흘러야 한다. ‘코로나’라는 것도 무성했던 소문의 주인공쯤에서 끝나길 바라는 회피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러면 어떤가. 주변에서는 일상의 한 풍경을 드로잉하기도 하고 색을 칠해가기도 한다. 생전 읽지 않던 책을 뒤적거린다거나 글을 끼적이기도 한다. 공‧사 할 것 없이 랜선으로 연결 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심지어 콘서트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라는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가 그렇게 벗어났으면 좋겠다.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에서도. 요즘은 장애인 웹툰 아카데미도 있으며 실제 활동 중인 작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업 작가, 그들의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일상이 웹툰으로 그려진다면 어떨까. 교육적 측면이 강했던 웹툰은 이미 발표 되었으니 이제 그들의 생생한 일상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든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생적 치유도 함께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람은 아픈 곳이 생기면 그제야 그곳의 소중함을 알고 왜 아픈지, 어떻게 아프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뒤늦은 성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게 몸이면 조금 더 대처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정신이나 마음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아픈 마음을 몸이 대신한 것처럼 살아있는 한 장애를 짊어져야 하는 이들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구성원이다. 일상의 재난은 그 모양새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들의 소우주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형태에 조금 더 시선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웹툰 하나로 글이 여기까지 날아왔다. 장애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았던가. 그러니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을 선명히 바라보고 잘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