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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앱 결제’ 한발 물러선 구글…아직 ‘꼼수’ 남았다

인앱 결제 강제 정책 도입 시점을 6개월 연기하기로 발표한 구글. 정말 물러선 것일까?

2021-08-17 조경건


‘인앱 결제’ 한발 물러선 구글…아직 ‘꼼수’ 남았다


올해 10월 ‘인앱(in-app) 결제’ 의무화 강행을 예고한 구글이 거센 반발에 한발 물러섰다. 내년 3월 31일까지 6개월을 미뤘는데, 또 다른 ‘꼼수’를 준비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구글의 단계적 ‘꼼수’

앞서 구글플레이는 오는 10월부터 게임에만 물리던 30%의 수수료를 모든 유료 앱과 콘텐츠의 결제 금액에 확대 적용한다고 예고했다. 이용자가 웹툰, 음원 등 콘텐츠나 유료 앱을 구매하면 구글플레이가 개발사로부터 결제액의 30%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앱 개발사의 수수료 부담 증가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인앱 결제 강행으로 국내 기업이 내야 할 수수료는 적게는 885억 원, 많게는 1568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로 이미 수수료 30%를 강제 적용하는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네이버 웹툰 이용권(쿠키) 1개의 가격이 120원으로, 100원인 구글플레이보다 20% 비싸다. 

이에 관련 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여당이 규제법안 처리에 나서자 구글은 단계적으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이득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구글은 먼저 연 매출액 가운데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까지는 수수료를 15%만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웹툰, 웹소설 플랫폼 중 연간 매출이 100만 달러 미만인 곳은 없어 업계의 반발은 계속됐다. 그러자 구글은 웹소설, 웹툰, e북, 비디오, 오디오 등 디지털콘텐츠 사업자들에게 ‘구글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수수료를 15%로 인하하겠다고 했다. 언뜻 보기엔 수수료를 절반으로 감면해주는 혜택 같지만, 인앱 결제를 강제하지 않던 기존에 비하면 없던 비용이 추가되는 셈이다. 웹툰과 웹소설 등 콘텐츠 제작사와 작가들 입장에선 혜택이 아닌 손해다. 

결국 구글은 최근 인앱 결제 강제 정책 도입 시점을 6개월 연기했다. 퍼니마 코치카 구글플레이 글로벌 게임·앱 비즈니스 개발 총괄은 지난 19일 안드로이드 개발자 블로그를 통해 “대규모·소규모 개발자의 반응을 주의 깊게 고려해 6개월 연장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치카는 “전 세계 개발자로부터 지난해가 유독 어려웠다고 들었다”며 “특히 글로벌 팬데믹으로 큰 충격을 받은 지역의 개발팀이 새 결제 정책 도입을 위한 기술 업데이트가 평소보다 힘들었다고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앱 개발자들의 고충을 고려한 배려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국 정부 등이 규제책을 내놓자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권력으로 밀어붙이려다 권력에 제동

구글이 한발 물러선 이유는 앱 개발자나 콘텐츠 업계의 반발 때문은 아니다. 애초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정책이고, 실제로 반발이 터졌으나 최근까지도 강행 방침을 고수했다. 앱마켓 시장에서의 ‘절대권력’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력자’ 구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은 또 다른 권력이었다. 특히 자국에서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뉴욕주를 포함한 36개 주와 워싱턴DC는 인앱 결제 강제 정책 등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구글을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원고인 지방정부 검찰총장들은 소장에서 “구글은 과도한 수수료를 징수하고 유지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앱 유통에서 경쟁을 축소하고 저해하는 반경쟁적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며 “잠재적인 경쟁 앱 스토어를 겨냥했을 뿐 아니라 앱 개발자 자신들이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앱을 배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에픽게임즈·스포티파이 등 수수료 정책에 영향을 받는 대형 콘텐츠 기업들도 앱공정성연대(CAF·Coalition for App Fairness)라는 단체로 연합, 구글과 애플의 수수료 정책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물론 연방 차원에서 인앱 결제 강제를 막기 위한 법안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레지나 콥 미국 애리조나주 하원 예결위원장이 발의한 인앱 결제 강제금지 법안은 앱 개발자들이 구글이나 애플이 아닌 타사 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개발자들은 15~30%에 달하는 앱 판매 수수료를 내지 않을 수 있고, 소비자는 더 낮은 가격에 앱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다. 콥 의원은 “애플과 구글 측에서는 계약 하에 수수료가 매겨졌다며 반대의견을 내는데, 협상은 양자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고 이런 수수료 정책은 소비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일 일명 ‘구글 갑질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를 통과했다. 통상 마찰과 중복규제 등을 이유로 신중론을 펼치던 국민의힘은 법안 심사를 거부하고 과방위 회의에 모두 불참했으나,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했다. 개정안은 구글을 비롯한 앱 마켓사업자가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모바일콘텐츠 제공사업자에게 인앱 결제와 같은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개정안이 통과되면 구글과 애플은 자사 결제 수단을 강요할 수 없다. 

또한 앱 마켓 사업자가 모바일 콘텐츠 등의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정부가 앱 마켓 운영에 관한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구글은 이 개정안이 한미 간 통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딴지를 걸었지만, CAF는 지난달 23일 과방위 여당 간사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서한을 보내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도 거대 IT기업의 독점 심화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통상 문제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개정안은 이르면 23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야당의 반발과 법제사법위원회 숙려기간 때문에 8월 결산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승래 의원은 언론을 통해 “법사위 숙려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7월 국회 처리가 어려워 8월 결산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6개월 연기’도 꼼수?…대책은 견제 장치

구글이 돌연 인앱 결제 강제화 시점을 늦춘 것은 이러한 법적 제재를 앞두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각국 입법부에서 규제법 처리를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구글 입장에서는 입법이 미뤄지는 동안 여론이 잠잠해질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인앱 결제 연기가 정계 상황을 노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앱 결제 강제를 내년 3월로 연기한 것을 두고 “대선 시점과 묘하게 맞물리는데, 대선 결과를 보고 시행하겠다는 오만함마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구글이 인앱 결제 찬성 후보를 지원할 때가 우려된다”며 “국내 앱 마켓 점유율 70%를 넘는 구글이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결제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독점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수료 30% 부과는 콘텐츠 가격 상승과 소비자부담으로 이어질 불공정 횡포”라며 “이 일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야당이 본회의에서는 대승적 동참을 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편법을 쓸 가능성도 있다. 수수료를 30%에서 15%로 감면해주겠다고 밝혔던 ‘구글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 가입자들에게 각종 프로모션을 몰아주거나 앱 검수를 우선적으로 통과시키는 혜택을 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방법이 있다. 또 플레이스토어를 해외 서비스로 전면 전환해 국내 규제법을 피할 수도 있다. 국내 플레이스토어를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서비스 개념으로 바꿔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꼼수’를 쓸 가능성은 남아있기 때문에 업계와 소비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반발 분위기가 내년 3월까지 이어지기만 한다면 기존 정책 강행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갑’의 위치인 구글과 대형 플랫폼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견제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는 국회의 대처가 빨랐지만, 여야가 뒤바뀐 상황이었다면 ‘구글 갑질 방지법’은 여전히 과방위조차 통과되지 않았을 테다. 특히 국내 최대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는 업계를 보호하는 대신 이익 챙기기에 집중해 실망을 안겼다. 지난달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는 올해 초부터 구글과 인앱 결제 적용을 위한 협상을 진행, 수수료를 30%에서 15%로 인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언급한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며 구글과 미리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의혹에 대해 네이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고, 구글은 “계약이나 협상과 관련한 부분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는 구글 인앱 결제 자체를 막는 것보다 수수료를 15%로 낮추는 대신 도입을 받아들이는 것이 총 매출에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인앱 결제 강행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뒤로는 구글과 거래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렇듯 대형 플랫폼이 구글에 우호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콘텐츠 업계가 믿을 수 있는 보호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웹툰 창작자나 제작시장이 ‘갑질’로 발목을 잡히는 일이 없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