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웹툰은 ‘빠른’ 매체라고들 한다. 디지털로 그려 업로드하고, 스크롤로 빠르게 읽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물리적 실체를 가진 원화를 보유한 작가들은 부러움을 사곤 한다.그 중에서도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고,좋은 문장력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길에서 만나다>를 완결하고 <진눈깨비 소년>을 연재중인 쥬드프라이데이 작가다.
Q. 웹투니스타(이하 웹): 드디어 인터뷰에서 만나게 됐다. 그간 꾸준히 교류가 있었지만 인터뷰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인터뷰를 하게 되어 반갑다.
A. 쥬드프라이데이(이하 쥬드): 오래 전에 인터뷰 약속을 했었는데, 인도에 살고 있어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약속을 지키게 되어 다행이다(웃음). 나도 반갑다.
Q. 웹: 만화가가 되기 전에 다양한 일을 했었다. 그리고 만화가가 되기 위해 걸어온길이 굉장히 독특하다.
A. 쥬드: 광고 관련 과를 졸업해 방송 쪽 일을 했었다. 한 7년 정도. 원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잘 안됐다. 사실은 굉장히 빨리 데뷔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실패한 시나리오 작가다. 시나리오를 읽은 분들이 ‘이건 만화 시나리오 같다’고 했다. 사실 현재는 CG로 커버가 되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1년에 만화를 그려서 올리기 시작했고, 4개월 만에 베스트 도전에 갔다. 그리고 8개월 후에는 정식연재가 됐다. 그러다 보니 제 시간에 업로드를 하기 위해 그림을 수채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채색하고 또 그리고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일을 그만두고 전업 만화가가 됐다.
Q. 웹: 그렇게 연재한 작품 <길에서 만나다>는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이 서울의 길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느린 호흡으로 읽어야 제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현재 총 2권의 단행본으로 읽어볼 수 있다. ‘느린 호흡’ 이라는 말은 웹투니스타에서 이 작품을 소개할 때 항상 소개할 때 하는 말이다. 웹툰의 속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조급함이 들지는 않았는지?
A. 쥬드: 내가 기본적으로 굉장히 조급한 사람이다(웃음). 사실 최근에 태블릿 PC를 직접 고쳐보려고 하다가 친구가 하던걸 빼앗아서 내가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게 됐다. 조급함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해서 실생활에 항상 적용이 되는 건 아니더라. 하지만 만화는 그래도 스토리를 구성하고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수정하는 시간이 있다. 의도적으로 ‘느리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천천히 볼 수 있는 만화도 있으면 좋지 않나(웃음). 내 만화에서 빠른 전개나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Q. 웹: 주인공 은희수는 대화할 줄도 모르고, 사람과 친해질 줄도 모르지만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 영화를 찍는다. 또다른 주인공인 미키는 혼자 작업해야 하는 풍경사진을 찍지만, 대화를 좋아한다.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의 은희수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미키의 직업이 대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A. 쥬드: 은희수 같은 주인공이 둘 등장하는 만화는 나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웃음). 어쨌든 성장을 위해서는 갈등구조가 필요하고, 상반된 이미지가 필요했다. 상반됐다고 해도 완전히 달라서는 곤란하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다른 두 사람을 통해서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만화를 통해 그런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더 길고 디테일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는 변화의 과정이 짧고 빠르게 등장하지만, 그 부분을 더 확대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웹: 제목 <길에서 만나다>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 초반부에 실재하는 길의 이미지와 함께 독자들에게 주인공들이 길을 통해 받은 심상을 전달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쥬드: 내가 길에서 봤던 것은 방향이었다. 공원을 예로 들면, 공원에는 방향이 없다. 그곳에 도착하면 입구나 출구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머무르는 곳이다. 집이나 학교도 그렇다. 길은 하지만 한 방향으로 오거나 가는 곳이다. 길은 곧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길을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건 삶에서 선택이라는 부분과 겹친다고 생각을 했다.
Q. 웹: 사랑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제이와 나츠미, 미키와 희수, 미키와 제이의 관계가 작품에 비춰지는 모습을 보면 재기 발랄한 젊은이들의 사랑이라기 보다 옛날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조미료를 빼서 담담하고 덤덤해서 더 아릿한.일부러 그렇게 그린 건가?
A. 쥬드: 일단은 그런 재기 발랄한 연애를 못해본 탓이지 않을까(웃음). 지금 하고 있는 건 나의 경험이던가, 들었던 이야기던가, 아니면 기사나 글을 보고 공감한 이야기들이다. 내 경험을 통해서 변형된 이야기들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가라는 직업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쓰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쓰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를 통해서 소화되지 않고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직까지는 내가 쓸 수 없는 부분이다. 앞으로 더 많이 경험하거나 경력이 더 쌓여 소화의 범위가 넓게 된다면 앞으로 그릴 수 있지 않을까.
Q. 웹: SNS를 통해 공유되는 명대사가 엄청나게 많다. 독자들 중에는 ‘글에 그림을 입힌다’고 감상을 남기는 독자도 있을 정도다. 이런 명대사들을 일부러 신경 써서 만드나?
A. 쥬드: 아무래도 광고과 출신이다 보니 ‘카피’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확실히 신경 써서 쓰고, 만들어 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이렇게 만들어내는 문장들에 속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사실 생각나서 적어 놓았더라도 일부러 빼거나 문장을 늘려서 대사에 희석시키는 편이다. 물론 독자 분들이 좋아하시는 부분인 것을 알고 있다. SNS에 공유되는 것들을 보면 캘리그라피로 써서 올려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보니 염두에 두고는 있다.
Q. 웹: 그럼 현재 연재중인 작품 이야기를 해 보자. <진눈깨비 소년>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연재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2017년 단행본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고, 네이버 댓글 중 자칭 타칭 최고로 훈훈한 댓글란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고교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실 전체 이야기나 전개를 보면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그 시절을 길게 보여준 이유가 있었는지?
A. 쥬드: 처음에 <진.소>를 준비할 때는 다섯 개의 연애에 관한 단편이었다. 주인공 해나와 우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고양이 소년’이라는 단편의 주인공이었다. 편집부에서 ‘진눈깨비 소년’이라는 에피소드를 제목으로 추천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제목에서 작품이 확장이 된 것 같다. 정체성, 진로, 일과 같은 문제들이 이야기에 붙으면서 이렇게 긴 성장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이유나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완만하게 천천히 시간을 갖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그리게 된 것 같다.
Q. 웹: 진소나 길만 모두에서 악인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쥬드: 내가 <길.만>이나 <진.소>를 그리고 있다고 해서 낭만주의자나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굉장한 악인이었던 적이 많다. 학생 때나 연애를 할 때,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렇다. 때문에 악인을 변호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악인이 될 수 있다. 그게 나에겐 처세술일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Q. 웹: 작품에서 음악이 굉장히 중요하게 등장한다. 예를 들면 우진이 해나에게 처음 고백하기 전 친구들이 함께 차에서 들었던 음악은 아마도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든베르그 변주곡의 일 것이다. 이렇게 음악을 중요하게 쓰는 이유가 있을까?
A. 쥬드: 일단 그 음악은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든베르그 변주곡 가 맞다. 사실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는 않고, 듣기 좋거나 회차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랐다. 클래식을 쓰는 이유는 저작권과 저작 인적권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 아무래도 피아노 소나타 같은 곡들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최소한의 경계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좀 자제하게 된 것은 음악들이 특정 정서를 강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만화는 배경음이 없는 매체인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음악을 틀어버리면 정서를 한정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웹: 아무래도 수채화로 그리다 보니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그림을 가지고 있게 될 것 같다. 독자로서 정말 원화전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혹시 계획에 있는지 궁금하다.
A. 쥬드: 원화전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꼭 해보고 싶다. 웹툰 사이즈 원고뿐 아니라 큰 크기의 그림을 몇 점 그려서 전시를 해 보고 싶다. 2013년에 컨텐츠 진흥원 주도로 영국에서 원화전을 한 적이 있다. 단독 원화전은 아니었다. 실제 그림을 판매하기도 하는 전시였다. 당시에 <길.만>의 원화작품을 큰 사이즈로 두 장을 그렸다. 그 두 작품에 가격을 매겨달라고 하길래 친구와 히말라야에 있다가 누워서 ‘가격을 얼마로 하면 좋을까?’라고 물었더니 ‘백만 원 하면 누가 사겠니?’라고 하길래 백만 원이라고 적어서 보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다 팔렸던 적이 있었다.
Q. 웹: 드디어 만난 인터뷰에 함께 해 주어서 정말로 고맙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아름다운 문장과 그림으로 만나길 기대한다.
A. 쥬드: 다시 한번 불러주어 고맙고, 앞으로도 좋은 리뷰 해주길 기대하고 있겠다.
쥬드프라이데이 작가의 작품에 사람들이 ‘힐링 웹툰’이라는 평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등장인물 모두가 우직하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뢰의 비용은 비싸다. 때문에 함부로 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깊은 매력을 느낀다. <진.소>를 연재하는 3년간 단 한번도 도망치지 않고 우직하게, 성실하게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는 이유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