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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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필터가 되고 싶다 : <그다이> 최용성 작가

강렬하다. 2015년 초부터 레진코믹스에 연재된 <그다이>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공포스릴러 웹툰이다. 굿데이(Good Day)를 호주식 슬랭으로 표현한 '그다이(G'day)'는 호주워킹홀리데이 동안 일어난 실종,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색다른 구성, 독특한 그림체로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살인범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17-11-29 송경원

강렬하다. 2015년 초부터 레진코믹스에 연재된 <그다이>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공포스릴러 웹툰이다. 굿데이(Good Day)를 호주식 슬랭으로 표현한 \'그다이(G\'day)\'는 호주워킹홀리데이 동안 일어난 실종,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색다른 구성, 독특한 그림체로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살인범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림만 봐도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웹툰이다. 레진코믹스에서 브랜드마케팅 작품으로 선정하여 지하철 등 적극적으로 오프라인 광고도 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다이>가 최용성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최용성 작가는 2017년 네 권 분량의 단행본 출간까지 마치고 현재 차기작인 <벌건 대낮>을 연재 중이다. 개성 넘치는 스릴러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작가가 로맨스물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또 한 번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웹툰답게 소화할 줄 알고, 어떤 장르의 옷을 입어도 최용성이라는 인장을 남기는 법을 안다. 최용성 작가를 만나 그 왕성한 소화력과 표현력의 비결에 대해 물었다.



Q. <그다이>를 마치고 새 연재 <벌건 대낮>을 시작했다. 두 번째 연재인데 달라진 건 없는지.
A. 잠깐 쉬었다가 본래 사이클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다이> 연재 때는 세이브 원고를 한 번도 다 소진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벌써 다 써버렸다. (웃음) 구상했던 걸 옮기는 과정은 비슷하다. 다만 장르가 다르다 보니 새로 배우는 기분이다.

Q. 스릴러에서 로맨스로 완전 다른 장르를 선택했다.
A. 스릴러를 좋아한다. 다만 <그다이>를 마치고 나서 다시 스릴러를 할 만큼 내가 가진 소스가 풍부하진 않다고 판단했다. <그다이> 연재할 때 독자 반응이 좋았던 지점은 캐릭터들의 심리묘사였기 때문에 그 지점을 살려보고 싶어 장르를 고르다 로맨스를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게 특히 재미있다. 원래는 좀 더 수위가 높은 성인물로 작업하려 했다. 준비과정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자문하다보니 19금 요소까지 넣으려니 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지금의 방향으로 톤을 잡았다.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다이> 때는 무서워서 못 봤다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쉬웠기 때문에. (웃음) 기왕이면 가족, 지인, 친구들에게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


Q. <그다이> 때도 세밀한 캐릭터 묘사로 호평을 받았다.
A. 작품을 그리면서 새삼 확인한 건데 내가 사람을 관찰하는 걸 정말 좋아하더라.(웃음) 상대의 마음을 상상해보는 게 즐겁다. 멜로나 순정만화를 많이 본 것도 아니고 장르적으로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 묘사에는 일상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로맨스가 적합한 장르라고 판단했다.

Q. 다른 작품, 다른 작가들을 보고 배우고 흡수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벌건 대낮>을 시작하기 전에 참고한 작품이 있나.
A. 알렝 드 보통을 좋아한다. <그다이> 연재를 끝내고 시간이 났을 때 특히 많이 읽었다. 그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내가 알렝 드 보통이라면 어떻게 생각할지, 일상에 관해 통찰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상상해봤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특정 장면이나 표현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나 자체가 바뀌는 거다. 알렝 드 보통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뭔가가 달라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퍼런스로 삼는 작가는 셀 수 없이 많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게 있으면 베끼기 직전까지 배우고자 한다.

Q. 그 점이 신선하다. 대개 작가들은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걸 금기 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솔직하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A.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이니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거고 그냥 그걸 굳이 감추고 싶지 않을 뿐이다. 지금의 나, 그리고 내 생각은 무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다. 중요한 건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보다 중요한 내 안에서 그 작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순서 같은 요소들이다. 말하자면 어떻게 소화해서 내 것으로 바꿀 것인지의 문제다.

Q. 미국의 만화가 겸 원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로버트 밸리의 작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다른 지점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A. 입시 때 많이 보고 배웠던 작가다. 실사를 과감히 왜곡하고 과장하는 표현들이 매력적이다. 내가 지향하는 미학적인 관점과 닮았다고 느꼈다. 로버트 밸리처럼 그리다보면 스토리를 구상하는 방식도 자유분방해진다. 공포물에 어울리는 그림체이기도 해서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파고 든 것도 있다. 언젠가는 공포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게 데뷔작이 될지는 몰랐지만.(웃음) 소설, 만화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배운다. 가령 미국 시트콤 의 연출도 내게 영향을 줬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재구성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다이>에서도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무엇을 감춰야 긴장과 흥미를 지속시킬지를 자주 고민했다.


Q. 서스펜스를 쌓아나가는 방식이 영화적이다. 가령 인물의 반응을 먼저 보여주고 뭐가 있는지를 등장시키는 연출은 스릴러의 기본공식인데, 충실히 구현한다. 1화부터 마지막 연재분까지 보고 있으면 이 작가가 연재 하는 중간에도 빠르게 무언가를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A.  따로 공부한 건 아니고 여러 작품들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것들이 녹아드는 것 같다. 학교에서 책을 보고 배우는 것도 있지만 결국 그게 내 것이 되려면 소화를 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나 책을 볼 때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내가 저 장면을 쓴다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본다. 단순히 테크닉을 빌려온다기보다는 저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를 상상한다. 나한테는 그게 공부다. 이를테면 웹툰은 나에게 모국어다. 다른 언어로 표현된 작품들, 예를 들어 소설이나 영어를 보고 나만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즐겁다. 조금 어색하고 서툴러도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쪽을 찾아나가려 그리고, 또 그린다.

Q. <그다이> 단행본은 웹툰과 느낌이 또 다르다.
A.  만화과 수업 중에 자주 이런 이야길 듣는다. 출판만화와 웹툰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페이지로 바꾸면 재미가 없다고. 가장 안전한 방법은 콘티를 짤 때 페이지처럼 컷을 구성하고 그걸 웹툰으로 바꾸는 거다. 하지만 <그다이>의 경우 스릴러이기 때문에 훨씬 집중력 있는 몰입이 필요했고 처음부터 웹툰이란 플렛폼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다. 연재 초기엔 컷을 작게 나누었는데 뒤로 갈수록 컷도 커지고 화면 자체에 공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단행본을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지만 한편으론 기대도 됐다. 나는 만화가를 꿈꿨던 사람이다. 내가 어릴 때는 웹툰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종이만화를 생각했다. 책이라는 형태로 손에 잡히는 실물이 생기는 건 그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Q. <그다이>는 한편으론 무척 영화적인 스토리지만 동시에 웹툰에서만 할 수 있는 연출이 많다.예를 들어 12화에서 시온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정말 무섭다. 글이나 영화로 옮겨도 그 맛을 살릴 수 없을 것 같다.
A. 나도 좋아하는, 애착이 있는 장면이다. 기능적으로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는 게 웹툰의 속성이니 그에 적합한 상상과 표현을 하려 한다. 콘티는 일부러 헐겁게 짜는 편이다. 마지막 장면의 뉘앙스나 전체의 방향 정도만 정해놓고 작업을 하다 좀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거기에 대해 고민한다. 영화는 자본, 장비, 인력이 대규모로 투입되니 수정이 어려워 콘티를 꼼꼼히 짜야겠지만 웹툰은 작가의 상상을 자유롭게 펼치고 바꾸는 게 가능하다. 가능한 장점을 살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문법이 엉망이고 중언부언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재미있게 전달되느냐, 아니냐 두 가지 뿐이다.


Q.  <그다이>는 성공적인 데뷔작이다. 신인작가의 작품을 플랫폼에서 브랜드 마케팅까지 하는 놀라운 케이스이기도 했다.
A. <그다이>는 작화, 스토리 모두 친숙하지 않은 방향이라 처음엔 반응이 없어서 힘들었다. 그 때는 학교 다니면서 꿈꾸던 연재작가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제일 큰 동력이었다. 일어나서 눈감을 때까지 작업에 몰두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스스로 제일 뿌듯한 건 어떤 형태로든 한 편의 작품을 마감했다는 거다. <그다이>를 통해 연재는 외로운 길이라는 걸 새삼 배웠다. 작업 중에는 그것만 보고 달린다. 한 호흡 쉬고 새 연재를 시작하는 지금은 일정 수준의 퀄리티로 안정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완결을 하는 게 목표다.

Q. 데뷔 전과 데뷔 후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A. 수입이 생겼다는 거?(웃음) 성격 탓일 수도 있는데 큰 변화는 없다. 지금도 학생 같은 면이 있고, 학생일 때도 작가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길 듣기도 했다. 수입이 의미가 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작품,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쉽고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는 거다. 예전에는 시간과 돈의 제약이 있던 것도 지금은 의지에 따라 갖출 수 있는 환경이다. 웹툰작가라는 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해도 좋다는 허락 받은 기분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서 남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 순수미술은 반응이 오기까지 오래 걸려서 만화가 더 끌렸던 것 같다. 내 생각, 내 결과물을 누군가에 보여줄 수 있는 위치, 그게 직업이라는 게 즐겁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해도 좋겠다.

Q. 반대로 가장 어려운 지점은 무엇인지.
A.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릴 수 없다는 것?(웃음) 그래도 나는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편인데 현실적으로 그럴 때마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가령 나만의 즐거움으로 채우면 그게 꼭 사람들의 반응과 일치하리라는 법이 없다. 대중성을 연구해 취향을 맞출 것이냐,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갈 것이냐가 늘 선택처럼 놓인다. 누구도 강요하진 않고 간혹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한 쪽이 선명해지면 한 쪽이 희미해진다. 대중성의 개념이야 다양하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 매체에 기대하는 바를 읽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늘 유동적이지만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작가로써의 욕심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선보이고 공감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Q.  한 작품을 끝내고 생각을 정리하는 한 사이클을 마쳤다. 그 사이 장기적인 목표나 방향에 대해 고민한 것이 있다면
A. 단기적으로는 꾸준히 연재를 하고 싶은 게 첫 번째다. 매 작품을 끝낼 때마다 또 이야기 할 게 생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내가 화두를 던질만한 것이 생기고, 공부하고, 다음 작품을 이어나가는 게 목표다. 꼭 주류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고 싶다. 다만 확실한 건 시그니처가 될 스타일을 갖추겠다는 거다. 어떤 장르를 새로 시작 하더라도 ‘아, 이 사람 답다’는 느낌으로 기억되고 싶다. <벌건 대낮> 연재를 시작하고 가장 기억나는 독자 반응이 하나 있었다. ‘스릴러 다음에 로맨스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을 보니 최용성 답다, 로맨스도 이렇게 푸는 구나.’ 그 말이 가장 고무되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흡수하더라도 나를 거쳐서 나오는 것이기에 하나의 필터로써의 의미가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