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좋은 작품이 남도록, JQ코믹스 이종규 작가 인터뷰 (2)

30년 만화 인생 동안 개인 작가로 활동하다가 스튜디오를 차린 JQ 코믹스 이종규 작가에게 스튜디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21-07-08 손주형

(1)에서 이어집니다

좋은 작품이 남도록, JQ코믹스 이종규 작가 인터뷰 (1)

 

이종규 작가의 웹툰 시장에 대한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 이번에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생겼던 일들,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만큼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웹툰 업계 종사자에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Q. JQ코믹스에선 어떤 분들이 일하고 있나요?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작가는 5명인데 모두 스토리작가예요. 스토리작가는 경력이 쌓이면 기획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 섭외나 플랫폼과의 소통 등을 도맡아 하다 보니 기획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저도 그랬고요.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모여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신입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원래도 신입은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긴 한데, JQ에서는 더 그럴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분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저는 이제 뭘 해야 하죠?’ 하는 질문이요. 이분은 외부에서 몇 번 콘티 작업하신 걸 제가 보고, 스토리에 센스가 있고 연출에 감각적인 부분이 있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드려서 합류하게 되신 분이에요. 새로 입사하신 분들은 들어오자마자 당장 자기 작품을 하기는 어렵지만, 2~3년간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차차 경력이 쌓이고 자기 작품을 할 역량을 갖추게 되죠. 

<포식동물>을 담당하신 작가분 같은 경우는 JQ스튜디오 때부터 지금까지 보조작가 역할을 하시다가 처음으로 본인 타이틀을 맡으신 거에요. 스토리작가가 성장하는 데엔 시간이 제법 필요해요. 시간이 걸린다는 건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인분들께 충분히 성장하기 위한 시간과 경험을 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집단창작이다 보니까 개인에게 주어지는 부하가 좀 줄어드는 편이거든요. 자료조사나 취재 같은 면에서요. 



△ 네이버 웹툰에서 막 런칭한 <포식동물>

Q. 그림 작가 섭외는 어떻게 하시나요?

잘해야죠(웃음). ‘잘’이라는 건, 우선은 좋은 스토리를 써야 해요. 마치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잘 써서 좋은 배우를 섭외하는 것처럼, 좋은 그림 작가분을 섭외하려면 그림 작가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스토리를 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와 동시에 왜 그 작가님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영업을 하는 거죠. 스토리작가를 뽑을 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분들을 선호하지만, 그림 작가의 경우에는 신인분과 협업 할 때 재미를 느껴요. 신인분들과 함께하면서 그분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함께 작업한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내 눈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는 재미도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을 발굴해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래도 1순위 고려 요건은 '스토리에 잘 맞는가'지요. 스토리작가를 오래 해오면서 느낀 게 있다면 좋은 그림 작가분을 만나는 게 어찌 보면 스토리를 잘 쓰는 것 이상의 행운이라는 거예요. 스토리를 좋아해 주시고, ‘와 이거 너무 재밌겠다, 내가 이거 그려보고 싶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작가분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큰 행운이죠. 그런 작품은 여지없이 잘 되고요.


Q. 작가가 직접 설립한 스튜디오가 가지는 강점 같은 게 있을까요?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죠. 장점은 아무래도 작업에 대한 확실한 노하우가 있고, 개인작가의 작품과 조금 더 유사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디테일에 조금 더 강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또 작가의 심정을 잘 아니까 좀 더 공감할 수 있고, 작가에게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고요. 

반면에 단점도 명확히 있어요.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기보다는, 작가주의 성향을 포기하지 못하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웹소설 각색 제안을 많이 받아서 정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게 수익률이 높은 작품이라는 건 머리로는 아는데, 그림 작가님께는 원작 웹소설보다 저희가 만든 스토리를 드리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죠. 이건 경영의 입장에선 해선 안 되는 선택이잖아요(웃음). 그러다 보니 자체개발 IP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IP를 개발해서 회사에서 운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경영적인 측면에서 약점을 가지는 건 저희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 제가 알고 지내는 작가 스튜디오들도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회사들보다는 이런 부분에서 약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개인적인 차이도 있겠지만요.


Q. 작품을 혼자 책임지면 되는 것에서, 스튜디오 구성원이 함께하는 것이 되니 느끼는 부담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금전적인 부담이 아무래도 있죠. 웹툰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굉장히 좋아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전부 다 엄청난 돈을 버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 보니 수익을 계속 거둬야 하는 문제가 있죠. 회사인 지금은 개인 작가 때보단 유지비가 훨씬 많이 들어가니까요. 그리고 수익을 더 많이 내야 좋은 작가님들을 좋은 조건으로 모실 수 있고, 그분이 나중에도 저희와 함께 해 주실 가능성이 높아질 거구요. 그래서 수익률이 높은 작품, 장르를 선택하게 되는 경향이 있긴 해요.

혼자 작업할 때는 작품이 잘 안 돼도 '아이고 이번 작품은 망했네, 다음 작품은 뭐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되죠. 작품이 한 번이라도 잘 안 되면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니까요. 책임감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공격적으로 작품 숫자를 늘리지는 않고 있어요.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면서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를 천천히 넓혀가는 거죠. 아무래도 리스크가 커지면 외부 자금 유입량이 늘어날 텐데, 만화는 수익 발생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여러 개를 한 번에 늘리게 되면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와서 그걸 가지고 움직여야 하죠. 이전에 만들었던 JQ스튜디오가 그런 형태였어요. 그러면 부담이 더 커지죠. 그래서 일단은 한 작품, 한 작품 수익을 거두어나가는 방식으로 가려고 해요. 천천히. 


Q. 요즘 대세인 웹소설 각색은 생각 없으신가요?

이제 웹소설 각색 작품도 하나 들어갈 예정이에요. 기존 웹소설 시장에 있던 작품들하고는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이라 저희도 재미있게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좋은 작품이라면 웹소설도 안 할 이유가 없죠. 다만 저희가 노블코믹스를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대형 스튜디오처럼 공정을 갖추기도 조금 어려워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만들고 있어요.


Q. 사실 지금 말씀해주신 게 회사에선 듣기 힘든 말이에요. ‘우리가 재밌는 걸 한다.’

낭만적이지만 경영의 관점에선 실패한 선택이죠. 그래도 미래 가치를 보는 회사를 키워나가는 방식이 있을 거라고 봐요. 당장 수익률이 높은 것보단, 직접 만들어 낸 IP가 좋은 결과를 만들고, 그게 쌓이면 미래에 더 가치 있는 회사가 될 거라고 믿거든요. 그게 장기적인 계획이죠. 작품도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거라고 믿고 있고요. 지금의 수익성은 떨어지더라도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는 데엔 더 중요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봐요. 그렇게 위로를 하는 거죠(웃음)


Q. 조금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한 작품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작품을 담당했던 분이 퇴사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좀 궁금해요.

작품이 대박 나면 어떻게 될지는 저희끼리도 항상 상상하는 거예요. 밥 먹을 때마다 '행복회로'를 돌리며 시뮬레이션을 하거든요. 

저희는 일단 계약을 할 때 ‘작품의 연재 종료까지’를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퇴사 의사를 밝히더라도 작품 하나는 완결하고 나가기로 모두 합의를 했죠. 근데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만에 하나 중간에 작가가 그만둔다고 해도 나머지 스토리를 받아서 진행하게 되겠죠.

저는 농담처럼 직원분들께 '성공해서 나가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언제든지 나가도 된다고요. 저는 대표라 나갈 수가 없지만… 나는 틀렸지만 너희는 나가서 너희 거 해…! 하는 식으로요. 저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본인이 일정 이상의 역량이 생겼을 때 나가서 저희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회사를 세팅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죠. 낭만적인 이야기지만 직원이 나가서 그렇게 될 정도면 저희 회사도 굉장히 잘 됐을 거거든요. 디즈니 출신의 누가 세운 어떤 회사 이런 식으로요. 


Q. 신인 작가와 협업하시는 과정에서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나’와, 내가 겪어왔기 때문에 너무 잘 알고 있는 ‘작가로서의 나’가 충돌하면 어떻게 하시나요?

그게 어쩌면 JQ스튜디오를 접고 JQ코믹스를 세우게 된 가장 큰 이유 같아요. 스튜디오 모델은 스토리기획부터 컬러, 편집, 마무리까지 전 스텝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짜여있잖아요. 이런 시스템에서는 어떤 재능 있는 신인이 들어와도 모든 공정을 조금씩 다 하는 게 아니라, 그 중의 어떤 특정한 역할만을 맡게 돼요. 이게 특정 부분에만 강점을 가진 사람에겐 굉장히 유용한 시스템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개인 작가로서는 가지고 있는 자질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시스템일 수 있는 거죠. 

지금의 JQ코믹스는 어떤 좋은 작가, 그림에 재능이 있거나 스토리에 재능이 있는 작가를 만나면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구요. 신인 작가와 협업할 때 그 작가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해요.


Q.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천천히 가시는 게 불안하진 않으신가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잖아요. 숫자를 급하게 막 늘릴 수는 없고요. 지금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에는 한계가 명확하죠.  앞으로 규모가 커질 거라고 생각은 해요. 3~4년 차 정도가 커지는 타이밍이 될 건데, 누적 작품이 늘어나게 되면 전문 회계 담당자도 필요할 것이고, 전문 PD도 고려해야 될 거예요. 그래서 그 역량을 키우는 데 좀 주목을 할 것 같고,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시기는 올해 하반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협업이다 보니 수익셰어나 저작권 문제가 굉장히 민감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회사기 때문에 수익셰어는 없고, 연봉에 성과급이 나가요. 그런데 아직 성과급을 초과할 만큼 벌지를 못했어요(웃음). 저작권의 경우엔 굉장히 위험하고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봐요. 사견을 좀 덧붙이자면 스튜디오 체제가 유지되고 살아남는 스튜디오들이 두각을 드러낼 때는 이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얼마나 잘 해결했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작가 입장에선 ‘스튜디오가 매출이 얼마라고 광고를 그렇게 하는데, 내가 이거 끝내고 나가서 내 작품 하면 그거의 1/10은 더 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과급을 얼마를 주겠다’로 작가를 잡아 둘 수는 없어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성과급이 얼만데요’를 따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금액보단 구성원들 모두가 ‘이 팀이 다 같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돈으로 아무리 보상해도 창작자가 가지는 프라이드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어떤 파트를 맡든 굉장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게 세팅하지 않으면 결국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이 작가를 데려가서 소모하게 되는 거거든요. 왜, 아폴로 13호가 달에 도착해서 내릴 때 나사의 직원들이 모두 소리치잖아요.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요. 그것처럼 어떤 작품이 떴을 때 팀원들이 다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그런 팀을 세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스튜디오를 세팅하는지가 중요할 텐데, 그 과정에서 한 번에 완성형이 나오긴 어려울 거예요.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어떤 문제가 생겨날 거거든요.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될 거고, 그렇게 더 나은 시스템이 완성되어 가겠죠.


Q. 끝으로 만화계에서 함께 하는 동료 작가분들과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다들 웹툰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우려되는 부분도 있고 고민도 걱정도 많으실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것은 본질을 놓지 않는 것, 즉 좋은 작품 만드는 걸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필진이미지

손주형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