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머거리다> : ‘다름’이 ‘다양성’이 되는 세상을 꿈꾸다
[출처] 네이버웹툰/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중학교 때부터 귀에 이어폰을 끼고 날마다 음악을 크게 들어서였을까? 일찍부터 ‘가는귀’가 먹었던 나는 말귀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해 ‘웃픈’ 상황을 연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일 때문에 출판사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도 그러했다. 그가 말한 락(rock) 음악의 ‘락’을 ‘라면’으로 오해한 나머지, ‘라면을 좋아하신다고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락을 라면으로 들었는지 참으로 미스테리하다. 락과 라면은 자음 ‘ㄹ’로 시작하는 것 말고는, 그다지 유사성이 없는 단어들 아닌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잘못 알아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 그로 인한 불소통의 당혹스러움은 경험할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오곤 한다. 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는귀’가 두꺼워지기는커녕, 점점 가늘어져(?) 간 덕분에 그 유명한 ‘사오정’이란 별명도 얻을 수 있었으니!
[출처] 네이버웹툰/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소통, 타인의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
대한민국에서 청각장애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낸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가, 그래서 난 공감이 많이 갔다. 가벼운 난청 증세가 있는 나도 가끔씩 불편한데, 소리를 아예 들을 수 없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엇보다도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옆에서 가까이 들여다보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왜냐하면 선천성 청각장애인 작가가 본인이 경험한 소소한 일상을 귀여운 동물 캐릭터 라일라를 통해 솔직 담백하게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소리를 듣지 못하는 라일라가 말을 하는 엄마의 목을 손으로 만지고, 그때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으로 소리를 경험한다든지, 진동의 촉감이 배인 손끝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댄 뒤 그 진동을 흉내내며 목소리를 내려는 장면들은, 담담하지만 감동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라일라가 소리를 이해하려 애쓰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이야말로 ‘소통’이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세상을 배워 나가는 과정임을 말해 주는 것 같아서였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집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 주인공 라일라가 뒤에서 뭔가 휙 휙 지나가는 것 같아서 뒤돌아보니 방바닥에 여러 개의 고구마가 던져져 있다. 라일라는 뭔가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히는데, 그 이유는 집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라일라는 고구마들이 포탄처럼 날아온 각도를 면밀히 살펴보다가, 창 밖 복도에 서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자신이 컴퓨터 삼매경이었을 때 엄마가 아파트 복도에서 열린 창을 통해 고구마를 열심히 던지고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된다. 열쇠를 깜박 잊고 챙기지 못한 채 집을 나온 엄마가 라일라에게 엄마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 고구마 수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라일라가 초인종을 눌러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는 고민 끝에 고구마를 던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이고, 다행히 아파트 복도 한구석에는 고구마 상자가 있었다는 사실!
이렇듯 청각장애로 불편한 상황들을, 단순한 그림체로 유머러스하게 승화시키면서,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청각장애인 라일라의 일상을 통해 청각장애에 대한 지식,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들을 만날 때 배려할 수 있는 방법 등, 다양한 정보들을 재미있게 전달함과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세상을 우리로 하여금 넌지시 꿈꾸게 만든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세상
그렇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는 세상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90년대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막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자막이 예능 프로그램의 필수가 되어 버렸다고.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청각장애인들도 집 밖에서 핸드폰 문자로 가족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 덕분에 장애인들이 ‘내 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이 세상에 점점 생겨나고 있다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한다.
장애인들이 ‘내 자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 아마도 그 누구도 ‘다름’으로 차별받거나 혐오 받지 않는 세상이 아닐까? ‘다름’이 ‘다양성’으로 인정받는 세상, 누구나 있는 그대로 이해 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