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자의 가족> :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출처] 열린책들/도박 중독자의 가족/이하진
최근 광고를 보다가 눈에 띄는 카피가 있었다.
“부자합시다!”
옛날 카드 광고에서 외쳤던 “모두 부자 되세요”보다 더 강력한 일갈이다.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싶다. 이때의 ‘잘’은 당연히 부의 축적에 있다. 일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부족하다. 노동만으로는 부의 증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가 수익을 기대하며 투자를 시작한다. 가상 화폐나 주식과 같은 투자처의 종류는 다양해지고 접근은 쉬워졌다. 게다가 변동 폭이 큰 만큼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엄청나다.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출처] 열린책들/도박 중독자의 가족/이하진
우리에게 너무나도 흔한 말이 된 영끌 투자는 결국 ‘우리 집’, ‘우리 가족’의 더 나은 삶에 대한 가능성을 위한 노력에서 기인한다. 문제는 지나친 투자가 도박으로 변질되는 데 있다. 하루에도 변동 폭이 30%나 되는 가상 화폐 시장에서 돈을 따는 사람도 잃는 사람도 투자가 아닌 도박에 빠르게 중독된다. 추구하는 삶을 위한 투자는 도박이 되고, 잃은 돈을 다시 복구하려다 점차 수렁에 빠진다. 기대했던 행복은 끔찍한 불행으로 돌아온다. 가족을 위해 도박에 빠지고, 도박에 빠진 중독자를 돕던 가족은 ‘돕는 행위’에 중독되고 만다. 잔인하게도 도박에 중독되면 잠시의 쾌락을 느낄 수라도 있다지만, ‘돕는 행위’에 빠지면 정신이 쇠약해지고 불안만 가중될 뿐이다.
[출처] 열린책들/도박 중독자의 가족/이하진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도박 중독자의 주변인들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웹툰은 행복한 가정이 도박을 통해 어떻게 망가졌고, 어떤 식으로 이겨 내고 있는지를 비교적 담담하게 술회한다. 첫째 며느리인 작가는 시댁의 셋째가 돈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련의 행동을 통해 셋째가 도박 중독이라는 점을 간파한다. 이미 어린 시절 가족 간 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라 빠르게 도박 중독 센터를 방문하여 여러 가지 조언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며느리라는 위치로 인해 진심은 왜곡되고, 오히려 ‘가족’을 와해시키는 모양새로 일은 흘러간다. 애정을 가지고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노력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 특히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점차 더 커지고 남편과의 사이도 벌어지며 이혼 이야기가 오고가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아이는 갈등 상황에서 배제되고, 상처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던 상황에서 작가는 새로운 선택을 한다. 가족에서 한 발짝 멀어짐으로써 가족을 지키는 방식을 택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동일하지만, 나의 뜻대로 바꾸기보다 기다리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무조건적인 희생과 도움에서 벗어나면서 가족은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안착한다.
[출처] 열린책들/도박 중독자의 가족/이하진
웹툰은 ‘도박 중독자’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가족의 모습을 조명한다. 도박 중독이 지속될 수 있는 가족 환경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도박 중독자의 가족이 취해야 할 모습을 환기시킨다. 가족이기에 흠을 감추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돕는 모습은 절대 건강한 가족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도박은 치료될 것이고, 가족은 다시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의 끝,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지는 가족의 삶을 주시하도록 만든다. 실화라는 묵직한 무게감을 통해 도박 중독자로 인해 파탄이 나는 가족의 현실적인 모습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 중독자의 가족>의 강점은 가족이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는 점에 있다. 특히 갈등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는 오히려 명징해진다. 웹툰 속에서도 갈등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이 해체되지 않았던 것은 가족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닌, 가족과 ‘나’를 공존하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함몰되지 않았기에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 여전히 자신은 ‘공동 의존’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웹툰을 읽고 난 후 이 말은 오히려 건강한 가족을 위해 나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읽힌다. 가족이기에, 가족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