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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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는 <무사만리행>

2세기 후반 마한연맹 고리국의 무사 '나루'의 로마 제국 검투사로 활약상을 다룬 '무사만리행'

2023-10-03 최기현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무사만리행>은 2세기 후반 마한연맹 고리국의 무사 나루가 로마 제국의 검투사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진정한 강함은 무엇일까’에 대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놓인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만날 수 있다. 


2세기 후반, 고리국이 멸망하고 나루가 모시던 공주는 자국의 배신자에 의해 서쪽으로 팔려 간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루는 로마 제국의 검투 노예가 되었다. 나루가 공주를 수소문하려면 자유를 얻어야 하는데 나루가 검투 노예 신분에서 자유를 얻는 방법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루디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길뿐이다. 이제부터 나루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의 치열한 전투를 이겨내고 어디에 있을지 모를 공주를 찾아야 한다.


<무사만리행>의 등장인물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거나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었기에 보통의 사람보다 더 극단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낸다. 로마의 검투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간다. 당장 몇 시간 후에 콜로세움 무대에 끌려가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될 수도 있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 검투사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승리한다면 노예이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로마의 고위층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치광이 황제의 기분을 거스르거나 황제에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쉽게 목이 달아나고 삼족이 멸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적이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사만리행>의 작가는 이런 불확실한 순간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인간의 본성과 성향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한 댓글의 발언처럼 웹툰의 서사에 몰입하다 보면 다음에 나올 장면에서 황제가 어떤 말을 할지 숨을 죽이고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되어 황제의 말을 기다린다. 


자기 삶의 목적은 공주를 구해내는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주인공 나루,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로 절대적인 강함을 추구하는 로마의 미치광이 황제, 그 미치광이 황제 아래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근위대장, 자신이 가르치는 검투 노예를 무심한 듯 아끼는 교관, 단역으로 나오지만 죽음 앞에서도 프로의식을 가지고 명예를 지키는 의사,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허세 가득한 검투사 등 작품 속 캐릭터의 성향이 잘 구현되었다. 



여기에 작가는 키워드, 하늘 배경, 가상의 조건을 조합하여 흥미로운 세계관을 창조했다. 같은 시기에 존재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인 로마와 고리국의 무사 키워드를 조합했을 뿐만 아니라 클리셰도 과감하게 비틀었다. 빌런인 줄 알았던 황제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독자에게 호감을 얻는 반면 지혜롭고 대담한 줄 알았던 근위대장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여 비호감 캐릭터로 추락한다. 또한 하늘을 배경으로 제목을 보여주며 해당 화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부분 자유를 상징하는 파란 하늘을 제목의 배경으로 삼았지만 가끔 그 화의 분위기에 따라 노을 진 하늘이나 어두운 하늘인 경우가 있다. 파란 하늘을 연재 내내 노출하며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더욱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전달한다. 그 외에도 고증을 반영하여 세계관을 설정하되 가상의 조건을 추가로 부여하여 서사를 전개했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사실과 달리 검투사의 은퇴조건을 별도로 설정한다던가 검투 노예인 나루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루디스 토너먼트라는 가상의 조건으로 두었다. <무사만리행>의 글작가인 운 작가는 전작인 <여의주> 역시 공직선거법의 틀 안에서 서사를 진행하지만 보다 흥미로운 설정을 위해 원래는 주인공에게 해당하지 않지만 가상의 TV토론회 규정을 추가하는 식으로 서사를 전개했다. 이러한 장치는 서사를 짜임새 있게 보완하는 한편 웹툰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모험을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도 있지만, 자칫 죽음과 연결될 수 있는 불확실성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낸다. <무사만리행>에 여러 관전 포인트가 있지만 그중 죽음이라는 불확실하고 극단적인 환경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담아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만약 극단적인 환경이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등장인물의 성향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환경을 딛고 결국 자신이 모시던 고리국의 공주를 구해낼 수 있을지 나루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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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현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만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 공연,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만화 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글로는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5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2022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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