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안팎
네이버웹툰-쑤녕, <내곁엔 없을까>
수군수군 쑥떡쑥떡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킥’ 웃는다. 내가 지나가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난다.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소문 속 ‘나’는 이상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이다. 질 나쁜 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어떠한 해명도 통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명은 누구도 듣지 않는다. 화를 내고 울어보아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내곁엔 없을까?>는 파란 눈의 예쁜 아이, 정나율의 이야기다. 소문의 벽으로 소외된 나율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율의 파란 눈은 한국의 일반적인 외양과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는 곧 ‘틀리다’로 치환된다. 사회에서 나율은 배제되고, 배척당한다. 어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체념뿐이다. 물론 다행히 나율의 곁에는 언제나 엄마와 언니, 소꿉친구인 호민이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은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차별과 배제, 그리고 수많은 소문 속에서 나율이 겪은 사건들은 나율을 점차 위축시킨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던 나율에게 변화가 생긴다.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하지만 한 순간 멀어진 친구였던 서윤이 전학을 온 것이다. 오해로 멀어졌기에 겉으로는 냉담하게 대하지만 나율과 서윤 모두 상대방을 의식한다. 오해만 쌓아가던 차에 같은 반의 샛별과 은희가 미술 시간에 같은 조를 하자고 권유한다. 사소한 계기로 나율과 서윤의 관계는 변화하고, 마침내 나율은 삶의 자세를 바꾸게 된다. 소문의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문과 소외
나율은 언제나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지만, 늘 시련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생리가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지만, 나율의 두드러진 외양적 특성은 사회에서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다르다’의 기본적인 전제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서윤은 나윤의 태생적인 괴로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서윤 또한 태어날 때부터 큰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래보다 통통한 탓에 학교에서 눈에 띠었고, 쉽게 타겟이 되었다. 놀려도 되는 존재, 손쉬운 대상이 된 아이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다. 그저 상황을 인지하고 인정할 따름이다.
서윤과 나율이 가까워진 것은 서로에게 당위적인 선택이다. 어리고도 여린 존재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지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율이 서윤의 비밀을 퍼뜨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윤은 가장 믿었던 친구의 배신에 상처받는다. 사실 서윤은 나율에게 진짜 네가 한 일인지 묻기만 했다면, 어떤 문제도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서윤은 너무 크게 실망했고, 수많은 상처들이 있었기에 나율을 무시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아는 과정이 두려웠기에 도망친 것이다. 문제는 소문의 피해자가 서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다시 나율은 소문의 중심에 선다. 심지어 가장 친하던 친구까지 잃은 채로. 나율의 입장에서는 어제까지도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더 큰 소외감에 나율은 무너진다. 이후로도 나율은 끊임없는 소문에 시달리고 언제나 배제된다.
트라우마 스펙트럼
<내곁엔 없을까>의 강점은 큰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 나율과 서윤 외의 인물들 내면의 다양한 트라우마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나율의 언니 나정은 K-장녀를 형상화한 캐릭터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얼핏 차가워보이지만 가족이 최우선이다. 엄마와 동생을 항상 위하며 살아간다. 술에 취해서도 동생이 좋아하는 마카롱을 사오고, 엄마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강단이 있지만, 세심한 나정의 마음 속에 늘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다. 바로 나율의 파란 눈이다. 나율의 눈은 본인에게 가장 큰 상처이지만 동시에 나정의 상처다. 엄마의 관심이 늘 동생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정이 수능을 끝마치자마자 파란 렌즈를 끼는 에피소드는 나정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에피소드다. 나의 괴로움을 무마하는 대신, 동생을 이해해보기 위한 시도기 때문이다.
호민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호쾌한 성격의 잘생긴 호민은 나율의 소꿉친구다. 하지만 나율이 자신 때문에 주목받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앞장서서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장난도 많이 치지만 누구보다도 나율을 아끼고 걱정한다. 이런 호민도 가족 안에서는 상처가 있다. 엄마를 슬프게 만든 아빠를 보며, 좋은 ‘남자’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나정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더욱 커진다. 주변 상황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는 호민은 자신이 나정에게 남자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다. 물론 외전을 통해 둘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호민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여 극복하고자 노력하려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남은 것들
<내곁엔 없을까>는 사실 로맨스 장르에 속한다. 나율-서윤, 나정-호민의 사랑이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서 점차 발전하면서 설렘을 유발한다. 하지만 웹툰 전반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지니고 있던 상처들, 그리고 갈등을 감각적인 그림체로 표현하는 것이 <내곁엔 없을까>의 특장점이다. 서사의 진행이 더뎌 보일 수 있으나, 그만큼 인물의 섬세한 감정의 변화가 차곡차곡 누적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차분하게 인물의 내면을 훑으며 성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서사의 축을 이끌기 위해 다시 큰 갈등을 구성한다. 하지만 갈등의 해소가 너무 급작스럽게 봉합하면서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지켜온 무드가 갑자기 흔들린 경향이 보인다.
과연 <내곁엔 없을까>의 캐릭터들은 각자 지녔던 트라우마를 극복했을까. 사랑은 이루어졌으나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그들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아물었을지 여전히 궁금할 따름이다. 외전에서 어느 고등학생은 나율에게 어떤 렌즈를 끼는지 묻는다. 나율은 자신의 눈이 렌즈가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파란 눈이었다고 답한다. 이 장면을 통해 단단해진 나율을 마주할 수 있다. 나의 곁에 친구들이 있었다고, 사랑이 있었다고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그들은 ‘어떻게’ 조금씩 성장해갔는지, 우리 또한 그들에게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간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