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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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혁명, <이대로 멈출 순 없다>

2020-04-20 손유진



 청소년 혁명, <이대로 멈출 순 없다>





 다음 웹툰 <이대로 멈출 순 없다>는 불량 학생들이 다니기로 유명한 ‘정문여상’에서 펼쳐지는 세력 다툼과 학생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다루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로 퇴학처리 당한 ‘배소연’은 골칫거리 학생들만 몰려 있는 ‘정문여상’에 전학 오게 된다. 그는 비상식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학교의 야만적인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특히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가 되는 것은 물통과와 회계과의 대립으로, 회계과가 만행을 부리는데 대해 다른 과 학생들이 반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본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과격하게 그려진 학생들의 생활상이다. 이러한 묘사들은 다소 과장된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급식비 횡령, 시설 미비, 담배 밀거래, 매일 반복되는 패싸움은 정문여상의 일상이다.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상황들이 어떤 학생들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정문여상의 학생들에게 폭력은 일상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체제 안에서 그들은 최대한의 자유와 방종을 누리고자 한 연유에서이다. 느슨한 규제와 지도의 부재는 오히려 폭력으로의 억압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나름의 질서와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그들만의 질서와 즐거움이 이 작품의 핵심이 된다. 폭력과 파격에서 학생들은 미학을 추구한다. 이것은 과거 초중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일진 만화’ 장르의 정서를 계승했다고 볼 수도 있고, <짱> 같은 학원 폭력물의 답습일 수도 있다. 2000년도 즈음 유행했던 ‘일진 만화’는 학생들의 일진에 대한 선망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 두 장르에서는 보통 일진의 문화를 미화하며 그들의 행위에 정당성과 멋을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힘겨루기나 비행, 일탈 속에서 주인공들은 나름의 서사를 쌓게 되며, 독자들은 이러한 문화에 자신을 대입시킨다.

 청소년층이 향유하는 특정한 주제의식은 바로 ‘반항심’이다. 그들은 ‘학주’의 눈을 피해 교복을 줄이며 화장을 하고, 몰래 담을 넘어 외부 식당을 찾으며, 어른들의 눈을 피해 술담배를 즐기기도 한다. 그들에게 허용된 사회의 범위는 넓지 않다. 억압이 일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대한 탈피가 관습처럼 공유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반항과 폭력이 미학이 된다. 이는 <이대로 멈출 순 없다>(이하 이대멈)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하게 된다. 정문여상에는 싸움으로 다져진 위계질서가 있으며 여기서 상위에 속하는 인물들은 매우 멋진 것처럼 여겨진다. 싸움 장면 또한 액션영화와 같은 문법을 차용하여 그들의 강인함을 돋보이게 만든다. ‘주먹’의 서열이 정문여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어떤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주먹이 센 사람이 이기게 된다. 예를 들어 정문여상에서 암묵적으로 위계적 폭력을 가하는 선도부에 맞선 사람들은 맞다가 병원에 입원하는 등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규탄 받을 일도 학교 안에서는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이 어떻게 미학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일까? 폭력이란 원래 야만의 상징이나 다름없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폭력이란 일종의 영웅적 행위이다. 그리스 신화, 헤라클레스의 시대로의 회귀이다. 헤라클레스가 괴물 늑대나 히드라를 물리치는 영웅 서사를 가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부조리에 폭력으로 대항한다. 원초적인 수단을 통한 해결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운명에 맞서듯 등장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억압에 대한 분노를 주먹다짐으로 표출한다. 이러한 싸움은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자신 나름의 정의를 위해 무법적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도 사람들의 집중을 끌어들인다. 그들에게는 마치 조폭 영화처럼 ‘가오’가 중요하다. 청소년 문화에서 ‘가오’란 폭력 미학의 정수이다. ‘적’을 제압하는 무력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가오를 지킨다. 수업을 빠지고 학칙을 어기는 등 사회적 규범에 반항하는 것 또한 그들에게는 가오로 작용한다. 일련의 불량행위를 통해 가오를 세우는 것이 그들이 만들어내는 영웅 서사이다.




 등장인물들이 행사하는 폭력에는 각자의 목적이 있다. 정문여상에는 세 전공이 존재한다. 물류과와 회계과, 정보과가 그것이다. 회계과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선도부는 이 작품에서 마치 악당처럼 다뤄진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심지어는 선도부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담배 밀매권을 독점하기도 한다. 독점을 위해 그들은 다수로 몰려가 한 명을 ‘다구리’ 놓기도 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폭력을 행하는 무리도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주인공이 속한 정보과이다. 그들은 선도부의 만행을 폭력으로 해소하고자 하는데, 시즌 1의 마지막에서는 선도부원의 오토바이를 훔쳐 불태우기도 한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본 작품에서 규칙처럼 작용한다. 한편, 무리 간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또는 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심지어는 그저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폭력을 행하는 부류도 있다. 학교 특별활동 부서 중 하나인 ‘마작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쓰며, 다른 부서인 ‘영화감상부’에서는 주인공이 부 소유에 속하는 담배를 훔쳐 피웠을 때 이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그를 때린다. ‘구본탁’이라는 인물은 그저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사서 시비를 걸고 다닌다. 이렇듯 그들의 폭력에도 나름의 양상이 존재한다.

 그들의 비행을 단순한 비이성과 야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물론 실제로 일어나는 폭력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사회의 구성원인 반면, 실제로는 그렇게 대접받지 못한다. 이에는 필연적으로 반박과 충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학교는 알튀세르의 관점에서는 재생산 장치요, 푸코에게 있어서는 판옵티콘의 일종이다. 학생들은 그곳에서 굴종하는 법을 주입받는다. 실제 사회에서도 학교는 차별과 억압의 온상지이다. 체벌금지법이 발의되기 전까지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부조리하게 폭력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아직까지도 학생 미투 운동이 존재할 정도로 학교는 매우 폐쇄적인 위계질서를 띤다. 비단 폭력의 형태가 아니어도 국가나 교사의 가치관을 주입받거나 부조리한 학칙을 준수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은 예사요, 자연 갈색모나 곱슬모가 불량스럽다며 인위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당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부당함에 학생들은 항상 목소리를 내왔으며, 본 작품에서는 그것이 극단적인 양상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라 보여진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정보과 학생들이 급식비 횡령 사태에 맞서 무력 시위를 벌이고 결국 급식업체를 바꾸는 업적을 성취하였는데, 이 과정이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담임은 학생의 목소리에 침묵하며 고위 교사들은 자신의 이득을 지키는데 급급한다. 학생들만이 스스로를 도울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에게 행사되는 폭력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것이 본 작품이 주는 메시지 중 하나이다.

 만화의 핵심이 되는 비행 문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지만 이로써 이 글은 학교 폭력을 비호한다는 혐의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본 작품은 영리하게 빠져나가고자 한다. 정문여상의 학생들은 모두 비행을 하고 대등한 위치에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학교 폭력이란 으레 약한 학생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이다. 그러나 정문여상이라는 가상의 세계는 일방적인 괴롭힘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디스토피아이다. 마치 정문여상의 모두가 암묵적으로 폭력 체제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작품은 엄연히 현실의 폭력에 선을 긋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극적인 방침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학원액션물이라는 장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로 보인다.

 본 작품은 특히나 여성 청소년 특유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남성이 중심이 되는 기존 학원물과는 다르게 여자 고등학생들만이 표출할 수 있는 힘에 조명한다. 학교라는 압제에 맞설 때 여성 청소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 보여주는 과정이 작품의 핵심이다. 물론 폭력이 기본 테제가 되고 있지만, 남성들만이 향유하던 폭력 장르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서브컬쳐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연약한 여고생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여고생에게 본래의 모습을 돌려주는 것이 본 작품의 주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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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