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알지만 모르는, ‘육아하는 삶’에 대하여, <아이 키우는 만화>

2020-05-06 윤지혜



알지만 모르는, ‘육아하는 삶’에 대하여, <아이 키우는 만화>

일상의 발견, ‘육아하는 삶’



 사람들은 대부분 웹툰을 재미있기 때문에 본다. 그렇다면 여기서 ‘재미’의 범주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웹툰의 어떤 면에서 재미를 느낄까? 재미라고 하면, 혹자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거나,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한 연애사 등 어떤 사건들에 직면한 인물에 감정이입함으로써 재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미라는 것은 어떤 잘 만들어진 이야기에 빠져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새로운 장면을 발견함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생각해 볼 거리가 발생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쇼쇼 작가의 신작 <아이 키우는 만화>는 전적으로 후자에 가까운 웹툰이다. 그의 전작, <아이 낳는 만화>가 ‘남들도 다 한다는 미명 아래 그 실체를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사건에 대해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내는 작품이었다면, 신작인 <아이 키우는 만화>는 그 연장선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소재의 변화뿐 아니라, 전작이 임신과 출산을 겪은 작가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지다 보니 특정성별의 시점에 집중되기 쉬웠던 반면, 육아는 모든 성별이 겪을 수 있는 문제이며 누구나 어린 아이였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공감의 여지도 넓어졌다.

‘육아’에서 ‘약자’에 이르기 까지

 사회적 관습에 따르면, 아이를 낳아 키워야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혹은 아이가 있는 가정을 완성된 가정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반대로 결혼으로 이어졌으나 아이가 없는 가정에 대해 온전한 부부 관계가 아니라고 보거나, 아이가 있어야 부부 관계가 더 돈독해 진다며 아이를 낳아 기르길 종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개인의 삶에서 ‘가정’과 ‘아이’는 한 세트이며, 육아는 인생의 필수 코스로 말해지곤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사회적 의무로까지 확장되어 이야기되기도 한다. 아이를 다수 낳아 키우는 부부에게 ‘애국자’라며 치켜세워주는 것은 출산과 육아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무한히 긍정 하지만, 막상 육아 장면에서 직면하게 되는 당황스럽거나 힘든 일들, 때론 부당하기까지 한 일들은 잘 말해지지 않는다. 누구나 한다는 미명 아래, 그 어려움은 ‘부모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로 묵살된다.

 <아이 키우는 만화>는 바로 그 지점을 짚어낸다. 산후조리는 잘 해야 한다면서도, 아이는 엄마가 봐야 한다는 시선. 자다가 아이가 울면 일어나는 사람과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나뉘는 것.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울거나 소리치는 아이를 흘겨보는 사람이 있는 것 등등. 누군가는 이미 겪었고, 누군가는 아직 겪지 않아 잘 모르는 일들을 웹툰으로 풀어놓음으로써 공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것은, <아이 키우는 만화>가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 또한 된다는 점이다. 별다른 장애나 질병, 결손 없이 성인으로 자라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일 모두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라고 하는, 작고 연약하면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을 보호하게 되면서 혼자 몸일 때는 그다지 경험하거나 생각한 바 없는 불편과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직면하게 되는 현실을 <아이 키우는 만화>는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그냥 걸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길의 턱이 유모차를 끌 때는 넘어가기 힘들었다거나,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아기를 데리고 왔다고 눈총을 받는 등 아이가 없었다면 느끼기 힘들었을 ‘사회적 약자’로서의 입장을 경험하고 그것을 작품에 드러내고 있다. 즉 <아이 키우는 만화>에서 드러내는 주제가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 ‘부모가 되는 일의 고충’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경험’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육아 문제를 관조하는 담백한 태도

 육아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되는 상황을 겪고 그 경험을 웹툰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그 경험이 얼마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는가 하는 감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서사 전개를 상상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 키우는 만화>에서 쇼쇼 작가가 보여주는 시선은 다소 담백하면서도 시니컬하다. 애초에 형식 자체가 소재에 따라 5~7컷 정도의, 길어 봐야 열 컷이 넘지 않는 짤막한 분량을 두 세편 이어 전개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네 컷 만화를 약간 늘린 듯한 이러한 구성은 간결하게 서사의 핵심만 전달할 수 있게 하여 담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이 키우는 만화>의 시선이 담백하고 시니컬한 것은 비단 짤막하게 구성된 형식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비교적 담담한 태도로, 때로는 유머를 섞어 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또한 작가가 작중에 육아의 장면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한 몫을 한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을 겪더라도, 작중에 드러나는 그의 감정은 분노나 슬픔보다는 ‘황당함’에 가깝다. 말하자면, 어떤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작중에서 인물의 초점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맞춰진다고 하겠다.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아이 키우는 만화>에서 드러내는 육아의 어려움이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 특히 엄마에게 아이에 대해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은 각 가정마다 다양할 수 있음에도 항상 엄마가 제 1양육자로 지목되는 것,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완전한 타인인데 육아에 대한 훈수를 듣게 되는 현실, 인구 감소로 인해 국가적으로도 출산과 육아가 권장 받고 있음에도 대부분 완전히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금전적 문제 등을 각자 해결해야하는 문제 등. 이러한 문제들을 담담하게 조명함으로써 육아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들, 즉 남녀 차별, 시대에 맞지 않는 관습, 부족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복지 정책 등이 혼재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문제시 하는 것이다. 이로써 <아이 키우는 만화>는 단순히 육아 경험담에 국한되지 않고 육아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이며, 앞으로 어떤 방식이어야 할지를 고민하게끔 한다. 

댓글로 확장되는 육아의 경험

 과거 웹툰이라는 매체의 특징으로 작가와 독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댓글’이 손꼽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댓글로 인해 야기되는 몇몇 문제로 인해 웹툰 포털에서 댓글 기능을 삭제하기도 한다. 댓글 기능이 있는 포털이라 할지라도 웹툰만 보고 댓글을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댓글을 선택해야 노출되도록 하는 경향들도 많이 생겨났다. 오늘날의 웹툰에서 댓글은 필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 키우는 만화>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작품에서 이야기된 소재나 문제에 대해 독자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활발히 제시한다. 작품이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던 육아를 공론화하고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면, 댓글창은 그것에 대해 논의를 확장하고 각자의 경험을 더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광장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경험이 절대적이고 가장 완전한 논의를 제시한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독자들의 경험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댓글창의 존재는 작품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 키우는 만화>를 완성해가는 것은 독자들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특징에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 <아이 낳는 만화>에서도 비롯된 문제이지만, 때로는 논의가 특정성별을 비하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등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댓글의 논의가 멀어지는 일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출산이나 육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가 우리 사회에 있어서 민감하고 중요하며 뿌리 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생산적인 논의만이 논의가 아니듯이, 그런 부분들 모두 포함하여 지금의 <아이 키우는 만화>를 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내일은 더 달라질 육아를 위하여,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아이 키우는 만화>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