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같은 도시로부터의 현실적 격리 : <웰캄투실버라이프> 리뷰
‘힐링’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2010년대 초반에 ‘힐링열풍’이라고까지 표현되며 대중화 된 힐링이라는 단어는 이제 마치 표준어처럼 굳어져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명사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유행어들이 잠깐 쓰이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한 단어가 1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것은 그 단어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2010년대 사람들도,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의 사람들도 여전히 힐링을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힐링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해 왔다. 초기의 힐링은 자연으로의 귀의나 위로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건강을 강조하는 쪽이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등의 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휴양지로의 힐링 여행이나 템플스테이 등이 유행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힐링은 현실로부터의 무책임한 도피이자 멘토라는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을 통한 자기합리화라는 비판과 함께 이내 시들해 졌다. 그리고 개인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매일매일 틈틈이 하는 일상 속 힐링이 대세가 되었다. 꼭 긴 시간을 내어 여행을 가거나, 거창하게 멘토 같은 특정인에게 의지하여 위로받지 않아도 ‘퇴근 후 맥주 한 잔’, ‘남들은 이해 못하는 나만의 덕질(마니아적 행동)’, ‘컬러링 같은 나만의 소소한 취미’같은 것이 일상 속 힐링이 되었다.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힐링 트렌드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쁘고 무정한 경쟁사회라는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완벽히 분리되는 것이 힐링의 핵심인 것 같다. 초창기의 힐링처럼 작정하고 벌이는 단절이든, 현재의 힐링처럼 일상 속에서 틈틈이 하는 잠깐의 단절이든, 확실한 것은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도시’에서 확실히 분리된 것을 힐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만 취업난이 심각한 요즈음은 단절이 ‘현실’, 즉 먹고사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은 일시적이고 감당 가능한, 이른바 ‘현실적 단절’이라는 점이 중요해 졌다. 따라서 현대의 힐링은 도피하되, 원할 때에는 언제든 현실, 즉 생업으로 복귀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글 같은 도시에서의 현실적 도피는 최근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가운데 은은하고 다소 지루하기까지 한 힐링 콘텐츠들이 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4500만 원짜리 시골 폐가를 구입하여 그 집을 고치며 터를 잡아가는 시골 생활의 과정을 담은 ‘오느른’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다소 심심한 10분짜리 영상을 올리는 이 채널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 배경이라는 점과, 무정한 경쟁사회에서 분리되었다는 점을 무기로 구독자 20만 명을 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도피도 아니다. 운영자는 시골로 가서 ‘오느른’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MBC에의 소속을 유지하고 있다. 현실적 힐링이라는 요즈음의 콘셉트를 잘 활용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힐링 콘셉트의 사용은 웹툰에서도 왕왕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올해 7월부터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웰캄투실버라이프>를 소개하려 한다.
솔녀 작가의 <웰캄투실버라이프>는 손녀가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직장과 비교적 가까운 조부모님 댁에서 함께 살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일명 ‘생활툰’이다. 그리고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일상!’
이라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 전면에 힐링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1화 댓글에서부터 힐링툰(힐링+웹툰)이라고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어떤 측면이 독자에게 힐링을 주고 있는 것일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 힐링의 핵심 요소가 ‘정글 같은 도시에서의 분리’라고 했을 때, 이 작품은 독자를 어떠한 방법으로 분리시키는가?
일단 이 작품은 할머니, 할아버지 특유의 말투를 통하여 독자가 지금 도시에서의 생업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러한 전략은 <웰‘컴’투실버라이프>가 아니라 <웰‘캄’투실버라이프> 라는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어르신들이 즐겨 사용하는 특유의 구수한 말투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직장이나 회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지금 있는 곳이 정글 같은 도시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이러한 느낌은 독자에게 편안함, 즉 힐링을 준다.
△ 어르신들은 핸드폰 대신에 전화기, 배터리 대신에 약, 컴퓨터 대신에 콤퓨타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언어적 차이점은 이 곳이 각박한 현실이 아니라는 일종의 마커처럼 작용한다.
비단 구수한 말투뿐만이 아니다. 독자들은 추억을 자극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행동에서도 정글 같은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1화에서 할머니가 손녀를 위하여 밥에 김을 싸 주는 장면이 좋은 예이다.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침밥은 아침잠에 밀려난 지 오래다. 어쩌면 도시의 삶은 항상 피곤한데 반해, 고칼로리의 음식은 얼마든지 즐비해 있기 때문인지도, 그것도 아니면 아침잠과 아침밥 중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이러한 장면은 누군가가 나의 아침밥을 열심히 챙겨 주었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억은 도시의 정글에 있던 독자를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어렸을 때로 피난시킨다. 정글에서의 피난, 즉 힐링을 제공하는 것이다.
△ 아침에 먹기 좋게 김을 밥에 싸 주는 장면.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이러한 장치가 독자에게 힐링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독자는 현실에서처럼 자신의 쓸모,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손녀’라는 포지션 자체가 충분한 쓸모이자 존재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작품 내에서 손녀는, 손녀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수시로 입증해야만 돈벌이가 가능한 현실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물론 손녀도 스마트폰 개통이나 플리마켓 참여와 같이 조부모님에게 소소한 도움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현실에서처럼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하는 행위는 결코 아니다. 이렇듯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비정하게 내쳐지는 현실과는 달리 내 자신의 존재 자체로 환영받는 작품의 배경도 독자에게 힐링이 되는 부분이다.
△ 사회에서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경제적 쓸모를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반면,
손녀는 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적, 물질적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모든 힐링은 충분히 현실적인 수준에서 표현된다. 애당초 손녀가 조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도 직장과 가깝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는 것도 손녀라는 이유 하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된다. 조부모님이 제공하는 보살핌도 과하지 않다. 만약 이 작품이 ‘무턱대고 퇴사한 손녀’를 ‘과할 정도의 지극정성으로 부양하는 조부모’라는 설정이었다면 독자는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 충분히 현실적인 정도의 판타지는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고, 그 공감은 다시 독자에게 힐링을 제공한다.
나영석 pd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은 그저 하루 세 끼니를 충실하게 해 먹는 것만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벌칙으로 까나리 액젓을 마시는 자극적인 게임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해외여행 없이 소소한 힐링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이 먹힌 셈이다. 나영석 pd는 이러한 성공 요인에 대해 ‘지루한 것의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고, 프로그램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판타지’를 차용했다는 관점에서 분석하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웰캄투실버라이프>는 ‘정글 같은 도시에서의 현실적 격리’를 제공해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것은 무턱대고 퇴사한다거나, 시골로 귀농한다거나 하는 ‘비현실적’ 격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현대인에게는 약육강식의 정글을 감당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누릴 수 있는 현실적 힐링이 최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