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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어〉 :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대

2021-05-25 이한솔



〈집이 없어〉 :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대


‘MZ 세대’라는 단어가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MZ 세대란 1980년 초와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기간에 출생한 Z세대를 함께 통칭하는 용어다. 세대를 가르는 정확한 기준과 나이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지금의 10대 청소년과 2, 30대 청년층을 모두 묶어서 MZ 세대라고 가리킨다. MZ 세대가 노동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동시에 주요 소비자층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분석하려는 관점과 해설도 부쩍 늘어났다. 논지는 대개 비슷하다. MZ 세대는 개인주의적이고, 손해를 인내하지 않으며, 과시적인 명품 소비 성향을 보이고…….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요즘 애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일반적인 젊은이의 특징이 아닌가? 모호하게 세대를 툭툭 분류하여 그런 이야기만 하는 것은 조금 무심한 태도 아닌가?  

MZ 세대에 속하는 요즘 애들,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보다 다정하고 섬세한 태도를 견지하는 웹툰이 있다.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다. 최근 MZ 세대가 주의를 기울인다는 부동산과 관련된 내용도 아니고, 자가 마련을 목표로 보여주는 작품도 물론 아니다. 〈집이 없어〉는 제목 그대로 집이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집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집이 없어〉의 고등학생들은 학교 부지의 낡은 건물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그들이 집도 기숙사도 아닌 음침한 폐가에서 사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집이 없기 때문에. ‘집’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없다. 안정적인 공간도,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도, 심리적인 여유도.


△ 〈집이 없어〉 13화


주요 등장인물들이 머무르는 건물은 온갖 부적들이 붙어 있고, 음침해 보이는 골동품이 잔뜩 쌓여 있는, 말 그대로 ‘폐가’인 공간이다. ‘해준’과 ‘은영’은 폐가에서 귀신뿐만 아니라 사람의 잘린 손가락이 들어 있는 단지까지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해준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이제 집에 남아있는 것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했던 과거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뿐이다. 쉼터와 텐트를 전전해왔다는 묘사, 과거 회상 속 어지럽혀진 집안 풍경,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는 부모의 모습 등을 통해 은영 역시 비슷한 처지임을 알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정신줄 놓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들은 “사람은커녕 벌레와 거미줄만 가득한, 집 같지도 않은 그곳”으로 매일 돌아간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1)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첫 문장으로 꼽는 『안나 까레니나』의 구절대로, 〈집이 없어〉의 청소년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작중에서 해준은 말한다. “힘들고 지칠 때 빨리 오고 싶어져야 집이다. (21화)”라고. 그러한 의미로 집을 규정한다면, ‘주완’과 ‘하라’ 역시 모두 집이 없는 인물들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중산층 정상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주완에게 집은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고, 하라에게는 끊임없이 성과를 증명해내야 하는 시험장이다. 그토록 넉넉한 정서적,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는 힘들고 지칠 때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없는 것이다.

MZ 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보다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태도다. 기존의 세대가 고수해온 가치관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되겠지만, 무엇보다 정상 가족 체제의 수호가 대표적인 가치 중 하나일 것이다. 가족이란 가장 우선되어야 할 소속집단이고, ‘천륜’으로 이어져 끊어낼 수 없으며, 약간의 ‘집안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구세대의 낭만과 가치를 호소하는 만화 〈귀멸의 칼날〉에서 주인공 ‘탄지로’가 끊임없이 “나는 장남이다, 나는 장남이야”라고 외치며 여동생을 지키는 것처럼, 가정 내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며 어떻게든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행위였다.



△ 〈집이 없어〉 5화


그러나 MZ 세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윗세대가 혀를 차더라도, 결혼과 가정의 유지는 숭고한 책무로서의 가치를 잃은 지 오래고, MZ 세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개인을 잃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세대다. 이제는 돌아갈 만한 ‘정상성’의 울타리도 없거니와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물론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무섭다고, 너무 무섭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해준의 독백처럼.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보다, 폐가 곳곳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집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집이 없어〉가 보여주는 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족들과 화해하여 ‘정상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죄책감 가지지 마. 그건 다른 사람들 몫이지. 넌 너만 생각해. 네가 제일 중요해. 그러니까 가족들이 힘들게 하면 늘 생각해. 난 언제든 나갈 수 있다. 다시 안 돌아와도 된다. 가족, 그거 별 거 아니다. (57화)”


‘마리’는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모든 가사를 도맡고 있으며, 오빠의 물리적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인물이다. 마리의 고모는 마리를 위해 오빠와의 화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그건 집이 아니라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없다면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리고 고모가 보여준 탈출구는 마리를 통해 ‘민주’에게도 전해진다. 미성년자인 딸이 아버지를 위해 집을 청소하고 밥을 차리는 건 감동적인 일이 아니라고, 그런 환경으로부터 달아나라고, 너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라고 말해줌으로써.





△ 〈집이 없어〉 39화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가족을 떠나가라니, 심지어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모른 척하고 떠나가라니! MZ 세대는 이기적이고,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며,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줄 모르고……. 〈집이 없어〉는 그런 식으로 무심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다정하게 끌어안아 준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처한 문제는 마법처럼 해결되지 않고, 극적인 화해도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마리의 고모가 말해준 것처럼, 그들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같이 살 사람도 고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전 세대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1) 레프 똘스또이, 이명현 역, 『안나 까레니나』, 열린책들, 2018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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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솔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