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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한국만의 스포츠 만화, <가비지타임>

2021-10-13 최정연

차별화된 한국만의 스포츠 만화, <가비지타임>


1. 가비지타임

 ‘이미 승세가 기운 경기가 진행되는 막판 시간이란 뜻’의 네이버 웹툰 <가비지타임>은 현재 프로로 뛰고 있는 천기범 농구선수의 고교 시절, 부산 중앙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만화이다. 


2019년에 시작해, 시즌 3을 연재 중인 이 작품은 교체선수가 단 한 명 뿐인, 총 6명으로 이루어진 언제 폐부 될지 모르는 농구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 김다은과 공태성, 발은 빠르지만 너무 마른 정희찬, 수비는 잘하지만 슛을 못하는 기상호, 재능은 있으나 키가 작은 진재유와 대학을 가기 위해 전학을 선택했지만 기대와 달리 잘 풀리지 않는 성준수. 그들은 늘 그래왔듯 경기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팀원들끼리는 계속해서 충돌하기만 한다. 설상가상 학교에서도 농구부를 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젊은 코치, 이현성이 나타난다. 과연 지상고는 새로운 코치와 함께 8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뤄낼 수 있을까?


2. 한국식 스포츠 만화

 흔히 스포츠 만화라고 하면 일본의 농구 만화 <슬램덩크>나 배구 만화 <하이큐>등의 누구보다 열정적인 청춘을 담은 만화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 만화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경기를 눈앞에서 관전하는 것처럼 가슴 뜨거워지게 하지만 한국의 현실상 거리가 먼, 남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현실은 만화처럼 꿈에 가득 차 있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 아닌, 단순 동아리 활동이나 취미 활동에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부을 수 없다.



 <가비지타임>은 감동적이고 가슴 뜨거워지는 청춘을 그리면서도 대학을 가야 하는 한국의 현실을 잘 녹여내었다. 등장인물들의 목표 또한 터무니없는 전국대회 우승이 아닌, 대학이 요구하는 수상경력인 8강 진출이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으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조형 고등학교의 병찬이는 대학 스카우터의 요구 조건에 따라 한 경기 시간의 30프로인 12분씩만 경기를 뛰지만, 승리를 위해 무리하다 또 같은 부상을 입고 스카웃 기회를 잃고 좌절하기도 하고, 신유고등학교의 신우는 실력 좋은 친구가 한 단계 낮은 대학을 가는 대신 자신도 함께 업혀서 대학에 갈 수 있는 ‘업둥이’ 제안을 받았으나 농구를 포기할 수 없어 솔깃한 제안을 거절하기도 한다. 이렇듯 <가비지타임>은 다른 스포츠 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다른 만화와 차별화된 한국의, 한국만의 스포츠 만화라고 할 수 있다.


3. 자신만의 주인공

 <가비지타임>이 흔한 만화와 다른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주인공에게 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자신을 전국에서 꼴찌인 지상고에서도 제일 허접하다고 소개하는 기상호다. 그러나 만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누구지?’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보통은 슛을 잘 못하는 주인공일지라도 좋은 코치와 팀원들을 만나 재능을 꽃피우고 모두에게 주목받는 이야기로 이어져야 마땅한데, 이 작품에서는 점점 독자들이 주인공이 기상호가 맞는지 갸우뚱해질 정도로 주인공이 거의 벤치에만 앉아 있다. 상호는 주전 선수들이 다치거나 퇴장을 할 경우에만 경기에 들어가게 되는데, 가끔 수비에서 재능을 보이며 멋진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다른 선수들이 활약하는 장면이 훨씬 비중이 높다.



 슛이 없는 주인공이 경기의 마지막에 공을 받고 기적적인 골을 넣을 줄 알았지만, 그냥 냅다 던져서 시간을 끌고 승리하는 등의 예상치 못한 전개들도 펼쳐진다. 그뿐만 아니다. 주인공 팀이 버저비터가 울리는 순간 골을 넣어 승리하는 경우는 종종 타 만화에서 나오는 장면이지만, 반대로 상대 팀이 골을 넣어, 다 이긴 줄 알고 기뻐하고 있던 주인공 팀이 지게 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이렇듯 주인공과 주인공 팀은 그렇게 큰 만화적 허용을, 주인공 버프를 크게 받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위에서 언급했던 병찬이와 신우의 이야기처럼 상대 팀의 사연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러한 점은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들을 만화에 이입하게 만든다. 가비지타임을 읽어보며 자신만의 주인공을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다른 만화들과는 다른 스포츠 만화, <가비지타임>만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진이미지

최정연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