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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虎口) 대 호구(護具) : <고교호구왕>

2021-10-20 김진철


호구(虎口) 대 호구(護具) : <고교호구왕>



 우연히 만난 특별한 존재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대신에 그 길은 당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될 정도로 힘들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실에 만족하고 포기할 것인가. 모든 것을 걸고 도전을 할 것인가. 주인공 선한결은 도전을 선택했다. 사실 그의 삶은 도전보다는 포기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중학교 내내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한 번도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의 상황만 넘기면 된다고, 이 시간도 다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바로 깨닫게 된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호구의 삶이 부메랑처럼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한결 앞에 나타난 것이 호구에 영혼이 갇힌 검도의 신 한성이다. 최고의 검도 실력을 갖고 있지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한성은 호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결에게 자신과 함께 검도왕이 되자는 제안을 한다. 무협지를 보면 백면서생이 우연히 초특급 고수를 만나 절대강자가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수십 년의 공력을 얻기도 하고, 비급을 연마해 엄청난 능력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결은 한성에 의해 고난의 수련을 해야 했다. 

 사실 한성이 한결의 몸에 빙의해서 경기를 하면 연전연승으로 검도왕이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히카루의 바둑>에서 사이가 히카루의 몸을 빌려 바둑을 대신 두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 한결의 몸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한결은 한성의 지도 아래 비밀 수련을 통해 나날이 검도 실력을 향상시켜 나간다.  

 스포츠의 백미는 라이벌과의 대결이다. 그것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던 라이벌과의 대결에서 극적으로 승리하는 것에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다면 검도의 길로 들어서게 한결의 라이벌은 누구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라이벌은 중학교 내내 한결을 괴롭혔던 경태일 것이다. 경태는 학교의 일진으로 힘없는 학생들을 괴롭히지만 검도 실력만큼은 뛰어나다. 그런 그에게 선수 대 선수로서 마주 서는 것이 한결의 목표다. 더 나아가 대결에서 승리를 하는 것까지 꿈꾼다. 

그것은 사실 한결의 과거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경태는 매번 맞기만 하고 비굴하게 굴었던 한결의 과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한결이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경태를 마주치면 과거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버린다. 그러니 한결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원인을 제공한 경태와 당당히 맞서 겨루는 것이다. 결국 한결의 진정한 라이벌은 과거의 한결이다. 검도를 배워갈수록 한결은 경태에 대한 복수보다 변화하는 자신에게 집중한다. 스스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되고,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한다. 그런 점에서 한성은 한결에게 단순히 검도의 기술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자세를 성장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 <고교호구왕> 2화 中

 한결의 반대편에는 왕림고의 검도부를 없애려는 이사장이 있다. 그는 검도 선수 출신임에도 학교 검도부를 폐지하려 한다. 이사장은 검도선수 시절 한성에게 밀려 2인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로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한성을 넘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매번 2등을 하는 그에게 한성과 비교하며 폭언을 퍼부었다. 이사장에게 검도는 2인자로서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딸이 검도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강한 팀과 연습경기를 잡고, 그 경기에서 패배하면 해체한다는 조건을 다는 등 수간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검도부를 방해한다. 이사장에게 검도는 2인자로서의 삶의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어서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사장의 행동이 안쓰럽기도 하다. 마치 모차르트에게 질투심을 느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살리에리처럼 2인자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사장에게 한성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벽을 넘는 방법으로 이사장은 불법을 선택한다. 한성에게 물리적으로 타격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사장의 아버지의 선택이었지만 결국 한결의 위험을 외면한 이사장 역시 공범이나 다름없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욕심이었다. 1등만이 전부라는 이사장 아버지의 강박관념은 자식을 괴물로 만들고야 말았다. 이사장에게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남아 그를 조종하고 있다. 한결에게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한성의 목소리였다면, 이사장에게 아버지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목소리이다. 이사장이 검도부를 없애려 하는 것은 만년 2인자였던 과거를 이제는 지우려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사장은 검도부를 없애는 것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잘못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사장은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소리가 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때로는 이기적인 목소리에, 때로는 불의에 순응하는 목소리를 따르기도 한다. 목소리를 따라 현실에 안주하기도 하고, 과도한 열정을 쏟기도 한다. 어떤 목소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속 반전의 캐릭터인 감독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 훈련도 시키지 않는 감독인 것 같았는데 사실은 꽤나 실력을 갖춘 인물이고, 승부에 집착하기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검도부원들에게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오늘날 교육의 현장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치는 것. 이것은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을 머리에 넣고, 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검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한결이라는 힘없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의 성장을 따라가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만난다. 그러니 누구나 한결이 될 수 있다. 영화 <오징어게임>처럼 수많은 경쟁자들과의 대결에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경쟁의 호구(虎口)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호구(護具)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필진이미지

김진철

동화작가, 만화평론가
《낭이와 타니의 시간여행》, 《잔소리 주머니》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