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님 이야기 |
왕비님 이야기 |
<왕비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보드랍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신의 주위를 보석과 꽃으로 물들이는 처녀가 나오고,
그 처녀를 사랑하는 왕도 등장하고.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보았던 ‘그래서, 왕비와 왕자는 잘 살았더래요.’의 전형적인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헌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보자니…
어라?? 지독하다.
지독하게 사람들의 이기심을 꾸짖고 있으며, 때로
적나라하게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무지, 있어도 가치를 모르는 인간들이여!
처녀는 자신이 가진 재주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선한 인물의 전형이다. 그녀 주위에서는 매일매일 꽃이 피어나고 보석이 빛나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아무도 그녀가 베푸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녀가 베푸는 은혜에 대해 어느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 산소가 너무 흔해 산소의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는 현실 속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첫 번째 인간의 어리석음.
두 번째 어리석음이 드러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결국 그녀가 지닌 온화함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왕이었고, 왕비가 된 그녀는 왕궁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존재가 사라지니 그녀의 가치가 빛나기 시작했다. 부재(不在)에서 존재(存在)의 가치가 살아나는 아이러니함 너머로 작품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란 말이다!”
욕심, 줘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여!
왕비의 부재로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바로 자신의 창고에서 자신의 보석을 꺼내어 백성들에게 뿌려 준 것. 성 위에서 왕이 뿌려주는 보석으로 인해 간만에 백성들은 인생의 풍족함을 느꼈으리라. 그렇다면, 그 풍족한 마음 그대로 보석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 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헌데 아니었다. 보석을 가진 백성들은 그 보석들을 마을과 도시를 가꾸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자신들의 개인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갔던 것. 있을 때 고마운 줄 몰랐고 없으니 아쉬운 걸 알았으면, 이제라도 베푸는 마음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알아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깊이를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맹자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아니라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인간의 본성이었던 모양이다.
망각, 그거라도 있으니까 살아간다?!
있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주면 더 달라고 아우성. 왕과 왕비도 피곤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들, 우리가 없어져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심정으로 왕국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백성들은 난리가 났다. 하룻밤 사이에 왕과 왕비가 사라졌으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성들이 낙심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나눠주는 보석이 없으니 그제야 자신들의 창고에 쌓아놓았던 보석을 하나, 둘씩 내놓기 시작한 것. 그것으로 아쉬운 대로 자신들의 마을을 가꾸고 행복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지만, 사실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람이다.
불과 24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이처럼 깔끔한 스토리와 강력한 의미를 보여주는 <왕비님 이야기>. 장편이 지닐 수 없는, 단편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준다.
top 2006년 5월 vol. 39호 ver02글 : 김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