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銀魂)
아주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 왠만해선 만화책을 보면서 킬킬거리며 뒤로 넘어가지 않는데 이 만화 “은혼”은 ‘어? 언제 다 보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재미있고 신나게 읽은 오랜만의 만화인 것 같다. 작품의 무대는 에도 시대라 ...
2007-07-03
장헌길
아주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 왠만해선 만화책을 보면서 킬킬거리며 뒤로 넘어가지 않는데 이 만화 “은혼”은 ‘어? 언제 다 보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재미있고 신나게 읽은 오랜만의 만화인 것 같다. 작품의 무대는 에도 시대라 불리는 일본, 어느 날 갑자기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천인(天人)이라 불리는 외계인들이 막부와 결탁하여 사무라이들의 검을 빼앗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며 첨단문명을 발전시키는 기상천외한 시대이다. 외계와 지구를 이어주는 ‘터미널’ 건물이 개항의 상징처럼, 검을 빼앗긴 사무라이들에게 굴욕감을 주며 도시 한가운데 높이 솟아있는 에도, 검을 빼앗기고 그 실용가치와 대의명분을 잃은 사무라이들은 굴욕적인 낭인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에도에서 조그맣게 검술도장을 운영하던 신파치와 오토에 남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오타에는 생계를 잇기 위해 술집에 나가고 신파치 역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기들의 나라인양 거리 곳곳에는 지구인을 우습게 보는 천인들이 돌아다니고 식당에서 일하던 신파치는 천인들의 시비 때문에 궁지에 몰려 쩔쩔 메고 있었다. 시비를 거는 천인들에게 치욕을 당하려 할 때 어디선가 나타난 은색의 곱슬머리 남자가 허리춤에 찬 목도를 뽑아 천인들을 때려누이고 신파치는 결국 일자리를 잃고 만다. 이 작품에서 최고의 압권은 주인공 긴토키와 수많은 등장인물의 개성적인 캐릭터다. 20년 전 천인과 결탁한 막부에 대항해 분연히 일어선 양이지사들과 막부간의 전쟁인 ‘양이전쟁’때, 그 뛰어난 검술실력으로 ‘백야차’라 불리던 남자 긴토키는 전쟁의 허망함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지금은 가부키쵸의 한구석에서 해결사노릇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과거가 있는 사무라이다. 항상 허리에 찬 목검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주인공 긴토키의 곁에는 긴토키의 자유롭고 거칠 것 없는 무사다운 삶에 반해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신파치, 우연한 계기로 긴토키, 신파치와 팀을 이루게 된 전사종족 ‘야토족’의 소녀 가구라, 양이지사의 수괴 가츠라, 예전 동료였으나 현재는 외계와 지구를 여행하며 무역업을 하고 있는 사카모토, 에도의 경비를 담당하며 양이지사들을 색출하는데 여념이 없는 신센구미의 곤도, 히지카타, 오키타 등등 수도 없이 많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일본의 역사에 조금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캐릭터들이 “메이지유신”과 관련된 역사 속의 유명한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눈치 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속의 인물들을 기상천외한 설정을 통해 개그맨 같은 캐릭터로 바꾸어놓은 작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인물의 역전을 통해 작품에 생겨난 ‘전복’의 효과는 독자에게는 카타르시스로 작용하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작품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극적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또 하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일본의 전통문학인 ‘하이쿠’처럼 지어진 매 에피소드의 제목과 이야기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곱슬머리치고 악한 녀석 없다’, ‘점프는 이따금 토요일에 나오니까 조심해라’, ‘첫인상 좋은 녀석 중에 쓸만한 인간 없다’, ‘할아버지가 돼서도 서로 별명을 부를 수 있는 친구를 만들라’ 등 작가의 기지가 넘치는 에피소드 제목과 이야기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도 아주 쏠쏠한 재미를 준다.